남산 케이블 카를 타다

남산 케이블카. 참 오래된 추억의 소재다. 그래서일까. 추억을 선물처럼 간직한 채 나이를 한참 먹은 어느 날, 문득 한 번 남산 케이블카를 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흐린 어느 날, 밀려 오는 추억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나는 막연히 남산으로 차를 돌렸다.

1호 터널로 접어드는 길 대신 오른쪽 남산 공원길을 타고 구불구불 몇 분을 달리니 기억 속에 묻어 둔 케이블카의 흔적 대신 '리모델링 공사 중'이라는 흉흉한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순간, 헛걸음을 했구나 싶은 생각에 안타까운 한숨을 쉬었지만 자세히 보니 정상 영업 중. 그 흉흉한 건물 속에서도 케이블카는 남산을 향해 달려 오르고 있었다.

언제였던가. 케이블카를 타 본 기억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어린 시절을 남산에서 보냈던 까닭에 세상에서 제일 처음 타 본 케이블카가 남산 케이블카였을텐데, 왜 중국 만리장성에서 탔던, 미국 팜스프링스에서 탔던, 그런 케이블카의 기억만 떠오르는 것일까. 세월의 흔적이 여실히 묻어 있는 계단을 오르며 그 낯설음에 난 조금씩 당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매표소.

편도는 5,500원. 왕복은 7,000원이란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왕복을 끊으라는 얘기인 듯. 일행인 듯 중년을 훨씬 넘은 사람들의 말 소리가 귀에 거슬려 1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는 케이블카 한 대를 먼저 보냈다. 요즘은 좀처럼 듣기 힘든 따르릉 벨소리. 그 벨소리가 울릴 때마다 케이블카가 들고 난다. 두 번째 벨소리를 들으며 나는 천천히 탑승장으로 올라간다.

케이블카. 낡고 작은 케이블카가 그곳에 있었다. 열린 문으로 들어 가니 양 쪽 구석에 놓인 작은 갈색 의자, 그리고 손 때 묻은 유리창. 잘 보일 듯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밖을 내다 본다. 이윽고 가벼운 흔들림과 함께 출발. 탑승장은 점점 멀어지고 매연 가득한 서울의 중심부가 눈에 들어 온다. 저기가 거기, 저기는 또 거기... 그렇게 익숙한 건물과 지명을 하나씩 읊으며 멀어지는 거리를 바라본다.

시간은 3분. 뭘 했나 싶게 후딱 지난다. 케이블카를 내려 타워로 올라 가면서도 내가 지금 뭘 탔었나 싶은 생각에 쓴 웃음을 짓는다. 3분은, 내 추억을 되살리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으니. 타워를 돌아 흐릿한 서울을 바라 보노라면 또 그렇게 시간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간다.

요즘 들어 누가 이런 걸 타겠냐 싶었지만, 외국 관광객들이 꽤 있었고, 아이들도 여럿 눈에 띤다. 여섯시를 넘긴 시간엔 케이블카도 만원이다. 몸 하나 돌릴 틈 없이 콩나물시루처럼 사람을 싣고 올라오는 케이블카를 보면서 여기서 추억을 찾으려 했던  나도 참 우습다는 생각을 했다. 내려 가는 케이블카, 기억을 고이 접기에도 3분은 짧았다. 아니, 3분 동안 추억을 느끼기엔 내가 너무 나이를 먹었나 보다.

케이블카 3분.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조금 더 느리더라도, 조금 더 흔들리더라도, 조금 더 태워줄 순 없었던 것일까.  밀려드는 사람 실어나르기에 바쁜 케이블카에서 7천원으로 추억을 기대한 건, 애당초 이룰 수 없는 꿈이었던 것일까. / FIN
 
  • 피터아츠 2007.06.19 14:2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작년에 오랜만에 타봤는데

    사람이 출퇴근 지하철 저리가라 할 정도로

    너무 너무 많더군요~~

    덕분에 경치고 뭐고 빨리 내렸으면 하는 셍각밖에

    안들던 기억이 나네요~ㅋ

  • 진주애비 2007.06.19 21:1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와~꼭 제가 타고있는것 처럼 동영상이 실감납니다
    ...3분이면 컵라면이 익는시간이고 축구에서 결승골이 터질수도 있는 시간인데
    추억을 되살리기엔 과연 길지 않네요 ^^ 덕분에 저도 케이블카에 관한 추억에 살짝 빠졌습니다요

  • 손통 2007.06.20 10:4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남산케이블카가 아직도 존재한다고 생각도 못했네. 난 철거했는지 알았다는...

  • ^^ 2007.06.20 18:3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우와~~~~~~~ 동영상 잘 봤습니다. 저도 이제 직접 탄거나 다름 없음. ㅎㅎㅎ

  • Favicon of http://www.rabbicat.kr BlogIcon 토양이 2007.12.19 15:3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아직 타본 적 없는데 이걸 보니 안 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걸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