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음주 편력기 #1 - 아버지편

저는 다른 사람보다 술을 빨리, 세게, 그리고 많이 마시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사람 만날 일이 많고, 사람을 만나길 좋아하고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술을 가까이 하게 되는가 봅니다.

누구나 다 그렇지만, 저도 처음부터 그렇게 술을 마시지는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한, 비교적 엄격한 편이었던 어머니는 아들이 술 마시는 걸 절대로 그냥 보아 넘길 분이 아니었습니다. 반면, 지금은 전문직이라고 인정 받는 직업이지만, 예전에는 노가다에 다름 없었던, 그런 직업을 가지셨던 아버지는, 거의 매일 약주를 하셨고, 그런 아버지의 음주에 대한 반감도 나름대로 있었던 모양입니다.

어릴 적,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 쯤이었나, 모처럼 아버지께서 집에 일찍 오셨던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후배 되는 분 – 삼촌이라고 부르라 하셨던 – 이 집에 찾아오셨죠. 나름대로 아버지와 상의할 것도 있고, 그랬었던 것입니다. 그 분과 아버지가 나가시려고 하는데, 어린 제가 잠자다가 나갔습니다. 아버지 가지 마세요 ^^ 결국 아버지는 저 때문에 못 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 별로 불만이 없으셨는데, 단지 그 술 드시는 것에 대해서만은 불만이 많으셨답니다. 그래서 항상 저한테, 넌 술 먹지 마라, 술 먹지 마라 하셨던 거지요. 저희 아버지요?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한동안 끝발 날리셨던 한식, 궁중요리 전문 호텔 요리사 셨습니다. TV나 여성지 인터뷰도 많이 하셨고, 심지어는 국무총리가 우리 아버지가 만든 냉면을 먹고 싶다고 하는 통에, 국무총리 공관에 갔다 오시기까지 하셨답니다. 하루는 모처럼 퇴근 하셔서 쉬시는데 5공 시절 대통령이 왔다고, 불려 나가시기도 했죠. 그 때는 아버지께서 운전을 못 하시던 때라 제가 모셔다 드렸었지요. 그 양반한테 술 한 잔 받아 드셨다는데, 그게 그렇게도 기억에 남으시는가 봅니다.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저는 잘 몰랐습니다. 당신께서는 그 일이 너무 힘드신 탓에 저만 보면, 펜대를 잡아야 해, 펜대를… 그렇게 사무직에 대한 동경도 있으셨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들은 펜대는 놔두고, 하루 종일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일을 하고 있답니다. ^^ 그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건, 대학 들어가면서 아버지가 일하시는 호텔에서 접시닦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았습니다. 대학생이니까 아르바이트 해야지, 그러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마침, 어, 우리도 아르바이트 구하는 모양인데 한 번 해볼래? 해서 덜컥 그러마고 했던 거지요. 접시닦이, 와 그거 장난 아닙니다. 수도 없이 나오는 접시들, 아무리 접시 닦는 기계를 이용한다지만, 기계에 넣기 전에 세제 묻히고, 뜨거운 물로 닦여 나오는 접시를 받아서 다시 마른 수건으로 닦고… 게다가 접시 닦으라고 불러 놓은 아르바이트였지만 접시만 닦는 건 아니었습니다. 주방에서 일어나는 온갖 심부름 다 해야 했습니다. 심지어는 호텔 수영장에서 파는 우동에 곁들이는 단무지 써느라 손톱은 노랗게 물들고 단무지 냄새가 온 몸에 배여 지하철 타기가 창피할 정도였으니까요.

아르바이트가 하는 일은 사실, 거기 소속된 분들이 하는 일과는 또 다릅니다. 아르바이트 하던 저희와 같이 일하시는 분 중에, 요리를 배워 보겠다고, 대학교 일학년인 저보다 한 두살 더 많았던, 형이 있었습니다. 진짜 처음부터 배우는 거지요. 그 형을 보고 있으면, 진짜 저렇게 힘든 일을 어떻게 해낼까 할 정도였습니다. 접시를 비롯해 그 엄청난 설거지를 다 해야 하고, 썰고 깎는 것 다 해야 하고, 음식 재료 들어오면 날라야 하고. 심지어는 막판에 주방 청소까지… 그래서 저는 알았습니다. 왜 유명한 요리사는 남자들인지… 여자들은 요리 연구가라는 이름일 뿐, 왜 호텔에서 일하는 유명한 요리사들이 전부 남자여야 하는지를 그 때 알았습니다. 요리사가 되기 위한 과정이 그렇게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던 거지요. 그 사실을 처음 깨닫는 날, 저는 스팀으로 가득한 접시닦이 기계 앞에서 땀 반, 눈물 반, 그렇게 눈을 적시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힘든 일이라서 아버지는 퇴근 무렵 소주가 그렇게 좋으셨던가 봅니다. 그것도 어디 번듯한 식당에서 드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일하시던 주방 한 켠에, 같이 일하시는 분들과 함께, 간단한 안주 거리 몇 개 놓으시고 맥주 잔에다 소주 받아 드시던 것이었습니다. 보통 아버지들 그렇게 말씀하시잖아요… 아이들이 아빠 또 술 먹었징? 그러면.. 딱 한 잔 했어… 그러시잖아요. 저희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딱 한 잔… 그 한 잔이 맥주잔 한 잔 이라는 걸,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버지 일하시는 옆에서 일하다가 그 때 알게 되었습니다. ^^

그런 아버지셨지만, 어머니가 무서우셨든지, 아들에게는 술 먹지 마라는 말씀 뿐이었습니다. 하다 못해 대학 4년 - 아니 5년이구나 ^^ - 동안 아버지는 아들에게 술 한 잔 사주신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께 첫 잔을 받은 건 졸업식 마치고 였습니다. 운좋게 4학년 1학기 마치고 취직이 되었던 저는, 졸업식 때 직장 선배들이 다 따라와 주었고, 아버지가 일하시던 호텔에서 같이 저녁을 먹는데, 그 자리에서 아버지가 처음으로 저에게 맥주 한 잔 따라 주셨습니다. 그렇게 받은 그 첫 잔, 감히 다 마시지도 못하고 반만 먹고 내려 놓은 그 첫 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요즘은 당뇨기가 약간 있으셔서 술을 드시지 않습니다만, 이번 주말에는 아주 약한 술 한 병이나마, 아버지와 함께 해야 겠습니다. /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