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먹던 맛, 입맛의 기준이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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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쯤 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그렇겠지만, 열살 전후 초등학교 시절엔 연탄을 때는 집에 살았을 게다. 시간만 되면 연탄을 갈러 가시던 어머니. 그 때 집들은 왜 그렇게 연탄 갈기도 어려웠을까. 계단을 두 세 개 내려가야 하는 움팍 파인 부엌을 지나 다시 계단 두 세 개를 더 내려가는 지하실. 좁아 터진 지하실로 연탄을 갈러 가시던 어머니는 몇 번씩 넘어지고 부딪히기를 반복하셨었다.

동치미 사진을 꺼내 놓고 난데 없이 연탄 얘기라니. 그런데 내게 있어 동치미는 연탄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기억의 소재다. 그리도 힘들게 연탄을 갈야야 했던 집에 살던 그 어느 날. 새벽에 문득 잠에서 깬 나와 내 동생은 지끈지끈 아파오는 머리 때문에 엄마를 소리쳐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두통의 주범은 연탄가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어머니는 동치미 국물을 떠 오셨다. 이걸 마셔야 낫는다면서. 차고, 짭자름한 동치미 국물 한 사발을 먹고서 나와 내 동생은 방을 옮겨 잠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어머니는 장판을 걷어 내고 방바닥의 빈틈을 일일이 휴지를 꾹꾹 눌러 메웠고, 가스배출기를 새 것으로 옮겨 달으셨다. 흰 종이를 우겨 넣으며 하마트면 새끼들 다 잡을 뻔 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어머니의 모습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 뒤로 동치미만 보면, 나는 그 겨울, 지끈 지끈 아파오는 머리를 쓸어 매고 차고 짭자름하게 마셨던 그 동치미 국물이 생각난다. 다른 맛이라고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 채, 오로지 차고, 짭자름한 그 맛.

얼마 전 열나 비싼 한정식 집에서 먹었던 동치미. 직접 담가 독에 묻은 동치미란다. 숟가락으로 국물 한 번 떠 먹은 나는,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차갑고 짠, 바로 그 동치미였던 탓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동치미가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거다. 틀림없이 바로 그 맛인데, 그리고 아무리 입맛이 변해도 어릴 적 입맛은 모든 맛의 기준이 되는 법일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무릇 과거는 아름다운 법이라고, 어릴 적 먹었던 음식의 맛은 무조건 맛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요즘 나오는 동치미들은 저렇게 투박하지도 않을 뿐더러, 맛도 참 오묘하다. 당근, 고추, 쪽파 등등의 부재료가 들어가 보기에도 좋고, 새콤 달콤한 맛이 입에 짝짝 달라붙는다. 사람이란 참 간사하다. 그런 걸 먹을 땐 연탄가스로 탈 난 후 먹었던 동치미가 생각나고, 막상 그런 동치미를 먹을 땐, 이게 무슨 맛이냐고 투덜대니 말이다. 그래서 '맛'이란 건, 이래저래 맞추기 어려운 것인가 보다. 상대미각이란 존재해도 절대미각이란 존재할 수 없는 법인가 보다.

  • Favicon of http://www.rabbicat.kr BlogIcon 토양이 2008.02.18 18:1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는 연탄가스 냄새랑 풍로용 석유 냄새를 참 좋아했었어요. - -;
    그래서 이렇게 빼샥 마른 걸까요 - ㅜ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2.18 18:17 신고 수정/삭제

      이러먼서도 토양님이 평범하다고 말한단 말야?! ㅋㅋ

    • Favicon of http://blog.empas.com/diabloti BlogIcon 정현아범 2008.02.19 13:24 신고 수정/삭제

      저도 풍로 석유냄새 참 좋아했더랬는데, 비만인 걸 보면 석유냄새와 체중간에 상관관계는 성립하지 않는구만요..ㅋ

  • Favicon of http://blog.daum.net/bicyclife BlogIcon 무대의소요 2008.02.18 20:3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동치미 국물 시원하지요. 막상 집에서는 잘 안해먹게 되더라구요. 집에서 김치도 담가먹은지 오래되었고, 담가도 그냥 배추김치나 총각김치 정도니까요. 집이 워낙 건조한데, 겨울에는 더 건조합니다. 밤에 목이 칼칼해지면 동치미 국물 마시면 싹 내려갈 거 같은데 말이요. ㅋ 전 연탄불 세대는 아니지만, 동치미 국물 좋아합니다.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2.18 22:56 신고 수정/삭제

      동치미 국물도 좋은데, 밤에 칼칼~ 하니까 전 왜 맥주 생각이 날까요 ㅋ

  • Favicon of http://blog.empas.com/bouquetdor BlogIcon 진주애비 2008.02.18 22:2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연탄불은 아버지 몫이었습니다
    만약 지금껏 연탄을 땠다면
    그래서 밤이나 새벽마다 내가 연탄을 가는 당번이었다면...
    아 생각만 해도...
    맨날 부부싸움 투성이었을 겁니다
    지금 세상에 살아감에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2.18 22:57 신고 수정/삭제

      저희 아버지는 거의 매일 늦게 오셨던 까닭에 아마 집안 일에는 거의 도움을 안 주셨던 듯... 아직도 연탄을 쓴다면... 저도 생각만 해도 깝깝하네요 ㅋㅋ

  • Favicon of http://philomedia.tistory.com BlogIcon 필로스 2008.02.19 00:1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는 대학다닐 때도 연탄갈아야 하는 자취방에 살았는데요. 왜그리 자주 꺼지는지 연탄값보다 '착화탄'값이 더 들었다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2.19 15:32 신고 수정/삭제

      ㅋㅋ 그거 안 꺼뜨리는 것이 생활의 비법이었지 싶어요 ㅋㅋ 그래도 번개탄이나마 있으셔서 다행~ ㅋㅋ

  • Favicon of http://philomedia.tistory.com BlogIcon 필로스 2008.02.21 22:0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오...스킨 바꾸셨네요...죽입니다^^

  • Favicon of http://dogguli.net BlogIcon 도꾸리 2008.02.22 12:3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동치미 국물이 먹고파용~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그 시원한 국물이...

    머,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그 맛은 다시 못만나겠죠?
    그래서 그 동치미 맛이 더욱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레이님 좋은 하루되세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2.23 21:11 신고 수정/삭제

      그러게요 왠지 속이 더부룩할 때 동치미 국물이면 싹 풀릴 것 같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