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군항제를 가다 - 벚꽃에 아쉬움을 묻다

진해는, 언젠간 한 번 꼭 가봐야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마음 속의 여행지였습니다. 해마다 벚꽃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는 진해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년엔 꼭, 내년엔 꼭 그런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진해로는 발걸음을 떼기 쉽지 않았습니다. 아마, 멀다는 핑계 때문이었을 겁니다. 군항제, 벚꽃 많은 만큼 사람도 많다는 누군가에게 들은 선입견 때문에 멀다는 핑계가 더 자연스럽게 먹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진해를, 드디어 다녀왔습니다. 그것도 3월 27일 당일치기로 말입니다. 승용차를 이용했다면 아마 어림없었을 일인데, 그나마 KTX 패키지를 이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겁니다. 서울역에서 동대구까지 KTX를 타고, 거기서부터 버스로 이동하는 그런 패키지 상품이었습니다. 교통만 제공하지 진해에 가서는 자유 관람을 하는, 그야 말로 데려다 주고 데려 오기만 하는 여행 상품이었던 거죠.

패키지 상품은 저렴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좌석을 고를 수 없다는 점 - 한 마디로 복불복이라는! - 이 단점이더군요. KTX도 갈 때는 역방향, 올 때는 순방향이었지만 바로 문 앞(바로 문 앞 좌석은 역방향과 마찬가지로 할인이 되는데!)에 앉아 있으니 살짝 손해보는 느낌도 듭니다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요.

여튼 서울역에서 아침 여덟시 반 KTX를 타고 동대구로 떠났습니다. 동대구까지는 잘 갔는데 문제는 버스였군요. 대구 인근을 벗어나는 데만 한 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덕분에 진해 도착은 예정보다 한 시간이 더 걸린 오후 1시 30분 정도. 이 때부터 6시까지 알아서 진해를 관광하고 다시 버스에 탑승하면 됩니다. 알아서 관광하고 오세요. 오후엔 차 많이 막힙니다. 이 말 한 마디만 하고 가이드는 우리를 진해 역에 내려주었습니다.

문제는 이제부터지요. 가이드한테 받은 지도 한 장을 가지고 진해를 돌아다녀야 하는데 도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는 겁니다. 여좌촌, 해군작전사령부, 사관학교 등등을 가보자 라는 아이디어만 있었는데 정작 진해에 내리니… 게다가 길거리에 사람은 왜 그리 많고 차는 또 얼마나 막히는지.

일단 지도를 기반 삼아 여좌촌의 로망스 다리인가 뭔가부터 찾자고 길거리에서 뒤적거리고 있는데, 할아버지 택시 기사 한 분이 접근합니다. 어디를 찾느냐?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바로 비용을 흥정하고 택시를 타기로 했습니다. 아무 정보가 없는데 돌아다니느니 비용이 좀 들더라도 택시를 타고 다니는 것이 나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택시 비용도 그리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요.


택시가 제일 먼저 들른 곳은 해군작전사령부입니다. 입구에선 많은 분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저희는 그냥 택시를 타고 주욱 돌았죠. 군항제 기간 동안만 공개하는데 안쪽에서는 내릴 수는 없고 차를 타고 드라이브만 해야 한답니다. 차 안에서 이제 막 피어 오르기 시작한 벚꽃들을 즐기고, 작전사령부 내의 큰 배도 보고 그렇게 차를 돌려 나왔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어리버리 해서 뭘 봐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다음 목적지는 해군사관학교입니다. 커다란 군함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듯 했습니다. 사실 벚꽃도 많이 피어 있을 거라 생각도 했었고요. 일단 입구까지 들어가는데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차가 많이 막혔다는 얘깁니다. 그만큼 찾는 사람들도 많았고요. 승용차들은 입구 주차장에 차를 대고 버스를 타야 하는데 택시를 타고 가니 연병장까지 바로 죽 들어갈 수 있어 편하긴 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냥 승용차들도 연병장까지 들어오긴 하던데, 입구 주차장이 만차 되어서 들여 보낸 거라 합니다. 이거 이거 늦게온 사람들이 장땡이군요! ^^

연병장에서 오토바이 묘기도 보고, 거북선 앞에서 해군 유니폼을 빌려 사진도 찍고 그랬답니다만, 벚꽃은 없더군요. 에이, 꽃 보러 왔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잠시 접고 이번엔 군함에 올라 탔습니다. 충무공함과 고준봉함 두 대를 개방해 놨더군요. 사람이 너무 많아 둘 다는 못 타고 고준봉함에 올라 사진을 몇 컷 찍었습니다. 처음엔 고준봉 함이 사람 이름을 딴 것이려니 했는데 백두산에 있는 봉 이름이랍니다. 여튼, 태어나서 처음으로 군함에도 올라보고, 신기했습니다.


여기까지 돌아보니 얼추 세 시가 넘었습니다. 점심을 아직 못 먹어 시장했지요. 금강산도 식후경인 법인데 뭐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해의 특별한 먹거리를 추천해 달라 했더니, 바닷가라 회가 어떠냐고 해서 - 사실 저는 회를 안 좋아하지만 아내와 딸 아이는 좋아하는 관계로! - 바닷가의 조용한 횟집을 추천 받아 이것 저것 모듬회 중자 하나로 식사를 배부르게 끝냈습니다.

사실 가볍게 먹을 생각이었는데 식사가 묵직해지는 바람에 대략 한 시간 정도를 흘려 보냈군요. 벚꽃을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 이제 제대로된 벚꽃 구경을 가야할 차례입니다. 여좌천을 거쳐 장복산 공원을 돌아 내려오는 코스입니다. 여좌천은 아까 내렸던 진해 역 바로 옆에 있네요. 택시를 타고 좁은 길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벚나무가 아주 이쁘게 자리 잡았는데 꽃이 살짝 덜 피어서 좀 아쉬웠습니다.


길은 계속해서 장복산으로 이어졌습니다. 외려 산에 벚꽃이 더 많이 피었더군요. 산 정상 터널 앞에서 택시를 돌려 내려오면서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고 좀 걸었습니다. 이 벚꽃들이 다 피면 정말 터널처럼 길을 꾸미겠더라고요. 덜 핀 것이 또 한 번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 정도가 어딥니까. 공원을 따라 산길을 내려오다가 다시 택시를 타고 여좌천 계곡으로 들어서서 택시에서 내렸습니다. 요금을 정산하고, 아직까지 시간 여유가 좀 있어서 걷기로 한 거죠. 계곡을 내려오며 사진을 찍고, 노점상에서 간식도 사 먹고… 사람은 정말 많았지만 ^^ 그런대로 괜찮게 즐기다 왔습니다.


그 먼데까지 가서, 사람에 치이고, 결국 다 피지도 못한 벚꽃 보고 왔단 말이야?? 라고 누군가는 말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네 맞습니다. 그걸 보러 간 거였으니까요. 시간이 부족해서 더 여유있게 즐기고 오진 못했지만, 그것조차도 보지 못한 것보다는 훨씬 나은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며 돌아왔습니다.

마음 같아선 더 여유로울 때, 좀 더 한적할 때 진해를 찾고 싶습니다만, 현실적으론 불가능하겠지요. 벚꽃은 항상 짧은 시간 동안만 피어있을 테고, 그 짧은 시간을 즐기기 위해 사람들은 계속 모여들테니까요. 어차피 그럴 거면, 마음을 비울 건 비우고, 그냥 벚꽃에만 집중하다 오면 될 듯 합니다. 원래 그럴려고 여행했던 거니까요.

여행 일시 : 2009년 3월 27일(2009년 4월 2-3일 쯤 벚꽃 만개할 것으로 예상! 누가? 진해 택시 아저씨!)

여행 코스 : 진해역 -> 해군작전사령부 -> 해군사관학교 -> 바닷가 횟집 -> 여좌천 -> 장복산 공원 -> 여좌천 -> 진해역

여행 방법 : 택시 대절(저 코스를 처음엔 걸어 다닐려고 했다는! 저처럼 처음 가는 사람들은 차라리 이 방법이 나을 듯)

  • Favicon of http://www.paperon.net BlogIcon 편집장 2009.03.30 09:3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덕분에 먼 남쪽 나라로 부터 온 벚꽃 사진 잘 봤습니다.
    이번 주말 정도면 피크가 되겠군요.
    사무실 건너 5단지 내에도 벚꽃이 조금씩 피기 시작하더라구요. ^^;
    조만간 도시락 들고 점심 먹으러 나가요~ ^^

  • Favicon of http://raonyss.tistory.com BlogIcon 라오니스 2009.03.30 13:2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이맘때면 가보고 싶은 진해이지만
    교통편이 문제였는데, ktx 패키지도 좋겠는데요...
    좋은 정보, 좋은 사진 고맙습니다..^^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30 15:14 신고 수정/삭제

      KTX가 있으니 가능한 일이겠지요 ^^

      단점도 있지만, 하루에 벚꽃을 즐기는 방법으론
      이게 최고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방문해 주시고 댓글 주셔서 고맙습니다 ^^

  • 가고싶오~~ 2009.03.30 17:5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진해시민으로써...오류부분 수정을 요청드릴께요..
    여좌"촌"이 아니라 여좌"천"이랍니다...
    [川]....
    저도 오랜만에 집에 다녀왔는데..차가 엄청 막히더라구요...
    4/3일쯤 가시면 눈꽃을 보실 수 있을 거라 감히 예상합니다..
    수고하세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31 10:59 신고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으아 챙피해라... 여좌천을 왜 일관성 있게 여좌촌으로 썼을까요.

      지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다 고쳤습니다. ^^

  • Favicon of http://blog.daum.net/bouquetdor BlogIcon 진주애비 2009.03.30 19:5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전 개인적으로 젊고 싱싱한
    경주의 벚꽃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도 진해는 한번쯤 가고 싶다는..ㅋㅋ
    참, 정황상 통일번개가 임박한 것 같은데요
    비록 제가 낑기지 못해도
    노여워 하거나
    화를 내거나
    증오를 하거나 하지는 않을겁니다요
    절대로 단언코 기어이...ㅎㅎㅎ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31 11:00 신고 수정/삭제

      전 통일번개가 뭔지는 모르겠으나
      진주아빠님 낑기시는 날로
      다시 하면 되겠지요.

      진주아빠님이 낑기지 않으시는 번개는
      절대로 단언코 기어이...

      ㅋㅋㅋ

  • Favicon of http://afterdigital.tistory.com BlogIcon 조선얼짱 2009.03.31 18:4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그래도 아름다워요.
    저 하얗디 하얀빛의 연분홍 벚꽃 .. 사진 만으로도 풍광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잠시나마 제게 아름다움을 느낄 여유를 주셔서
    꾸벅~^^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31 19:11 신고 수정/삭제

      다음 주면 서울에도 벚꽃이 한창일 듯 한데,
      벚꽃 피는 저녁에 잠실 벌로 나들이 오시지요~~ ^^

  • Favicon of http://sepial.net BlogIcon sepial 2009.04.01 03:3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뭔가 아쉬운 여행을 거의 같은 날에 하고 말았군요....^^;;;;;
    그래도 남의 여행이 역시 더 좋아보이는걸요...떡도 아닌 것이...말이죠. 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4.01 10:06 신고 수정/삭제

      아우 샛별님의 여행과 비교할 수 없죠...
      아, 남아공 언젠간 꼭 가고 말꼬얌! ㅋㅋ

  • ^^ 2009.04.01 12:2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현지 지리정보가 없을땐 택시를 이용하라... 좋은 정보 인걸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4.01 13:01 신고 수정/삭제

      근데 택시를 탈 땐 항상 바가지 쓸 걱정이 앞서서요~ ㅋㅋ

      먼저 요금을 흥정하고 타라! (정도가 될까요? ㅋ)

  • Favicon of http://greendayslog.tistory.com BlogIcon 그린데이 2009.04.06 08:4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흥정해서 어느정도면 가능할까요? ^^;;
    KTX진해여행... 내년엔 한번 도전해 봐야겠어요~
    택시여행이라면 아기와 함께도 가능하겠죠?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4.06 09:07 신고 수정/삭제

      하하, 저는 4시간 반에 5만원 흥정했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