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콤, 짭조롬으로 입맛 당기는, 묵은지쌈밥

이 맘 때쯤 김치 냉장고 가장 깊숙한 곳엔 작년 김장 때 담아두었던 마지막 한 포기가 남아 있답니다. 김치찌개나 혹은 만두를 빚기 위해 남겨 놓은, 아주 잘 익은 묵은지 한 포기 말이지요. 그런데 대부분은 그 묵은지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이런 망각이야 말로 묵은지에 대한 최고의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묵은지가 더 맛있게 익어가도록 내버려 두는 방법이 될테니까요. 

아, 오늘 저녁엔 뭘 먹을까, 그렇게 한가로운 고민에 빠져 TV를 보던 어느 주말 오후, 문득 TV 속에선 묵은지에 밥을 싸 먹는 장면이 등장했습니다. “앗, 우리도 묵은지 있는데!” 예전 거제도의 횟집에서 묵은지에 밥과 회를 싸 먹은 기억이 있었으므로, 이 날은 더 고민할 여지도 없었지요. 오늘 저녁은 묵은지 쌈밥, 자연스럽게 결정되었습니다. 

잘 익은 묵은지를 꺼내 매운 양념이 다 가시도록 깨끗이 씻습니다. 왜 씻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씻지 않은 묵은지를 남겨 뒀다고 비교해서 먹어 보세요. 씻지 않은 묵은지의 매운 맛은 함께 먹는 다른 음식의 맛을 방해합니다. 묵은지를 씻으면 매운 맛이나 신 맛이 가시면서 묵은지 특유의 감칠맛이 살아나서 진짜 끝내줍니다. ^^

묵은지 위에 밥을 얹고 - 방송에서는 밥을 볶았더랍니다. 제가 거제도에서 먹은 밥도 살짝 볶은 것이었고요 ^^. 근데 우리 집에서는 안 볶았다는!) 불고기도 한 점 올리고, 잘 익은 마늘 장아찌를 같이 넣습니다. 이쁘게 돌돌 말아 한 입에 쏙 넣으면… 으아… 묵은지의 신맛과 감칠맛이 입안에 퍼지면서 고기와 밥, 마늘의 맛과 함께 어우러집니다. 묵은지가 너무 크면 짠 맛이 강하므로 적당한 크기로 묵은지를 자르는 것이 오늘의 팁입니다. 

어느 틈에 먹다 보니 밥 한 공기가 후딱 달아나 버렸습니다. 사실 장 보러 가는 귀찮은 일만 감수했다면 아마 회를 사다가 먹었을 지도 모릅니다. 딸 아이가 먹으면서 여기에 회 싸먹으면 맛있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아빠가 귀찮다는 이유로 장 보러 가지 않은 게 좀 미안해집니다. 뭐, 다음 주엔 장 보러 가서 회 사오자꾸나… 라고 말했지만, 아뿔싸, 마지막 남은 한 포기 묵은지는 어느 틈에 우리 입 속으로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묵은지가 생기는 내년까지 아쉽지만 미뤄야 할 듯!

자, 정리해볼까요 ^^ 묵은지를 꺼내 잘 씻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릅니다. 밥은 고슬 고슬하고 살짝 볶아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밥과 함께 얹어 먹을 회나, 불고기를 준비하고 그저 돌돌 말아 싸 먹으면 끝! 간단하면서도 특별하고 맛있는 주말 저녁의 한 끼 식사가 즐겁게 끝났습니다. ^^ 내년을 또 기다려야죠. 아니면 어디 가서 묵은지를 좀 사오든지요~ ^^ / FIN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9.08.31 19:5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와.. 정말 감칠맛 나겠네요..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9.03 09:37 신고 수정/삭제

      에이구 좀 따로 챙겨드릴 걸... 엉엉...

  • Favicon of http://www.foodsister.net BlogIcon 먹는 언니 2009.08.31 23:4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아... 저도 살아있는(?) 묵은지의 맛을 느껴보고 싶네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9.03 09:37 신고 수정/삭제

      뭐, 저 묵은지가 살아 있지는 않았어요. 전 살아 있는 걸 싫어해요~~ ㅋㅋ

  • Favicon of http://sepial.net BlogIcon sepial 2009.09.03 01:5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오오~ 묵은지에 보쌈.....급땡기네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9.03 09:38 신고 수정/삭제

      이런 포스팅 하고 나면 샛별님한테 쫌 죄송!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