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면도기

아버지 얼굴이 말끔했다.
면도를 하신 게 틀림없다.
잘 하셨는데, 군데 군데 긁힌 상처가 보인다.

“아버지, 면도하셨어요?
와, 깔끔하게 잘 하셨네.
그런데 면도 날은 다른 걸 좀 쓰세요. 상처 났잖어.”

“그래? 전기 면도기가 고장나서.”

쿵.
그랬다. 전기 면도기가 고장나서
그것도 한참 한참 전에 고장나서
아버진 칼 면도기를 쓰셨던 게다.

‘에이참. 노인네.
고장났으면 고장났다고 말씀을 하시지.’
속으로 혼자 궁시렁 거리며
인터넷 쇼핑몰에서 전기 면도기 하나 샀다.

아들은
가끔 아버지가 남자라는 사실을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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