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날엔 라프로익

괜히 그런 날이 있어. 

정말 슬픈 날. 


사람으로도, 

다른 어떤 무엇으로도 위로 받을 수 없고 

그저 혼자 마음 속으로 꾹꾹 

치미는 슬픔을 눌러야 하는 날. 


맥주거품처럼 밀고 오르는 슬픔을 

더는 누르기 힘들어 누군가를 불러내고 말았다. 

혼자선 더 이상 이겨낼 자신이 없었으므로. 


이런 날엔 술만큼 도움되는 것도 없다. 


잘 아는 바에 앉아

가장 슬픈 날엔 뭘 마시면 좋겠냐 

되도 않는 청승을 떨다 

라프로익을 시켰다. 


많이 드실래요?

아니요. 한 잔만요. 


바텐더는 라프로익 쿼터 캐스크를 권했다. 

작은 통에서 숙성해 맛이 더 진하다는 설명과 함께. 


라프로익 쿼터 캐스크 

싱글몰트

스코틀랜드 아일라 

48도 

온더락 대신 스트레이트로. 


라프로익. 

흔히들 스모키 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소독약 같다 하고 

더 심한 누군가는 락스 같다지만 

이 날 만큼은, 제단에 피운 향 같았다. 



잔을 들어 빙빙 돌리면 올라오는 향기가 

목구멍이 켁, 하도록 스며드는 그 향기가 

슬플 땐 더 울어도 된다고 

그렇게 나를 다독이는 듯 싶었다. 


울진 않았다.

대신 취했다.  


이런 게 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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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philomedia.tistory.com BlogIcon 필로스 2012.11.21 15:3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분위기가 전해 오는군.. 레이토피아에 글이 다시 올라오니 반갑구려...

  • 2013.02.26 06:10 ADDR 수정/삭제 답글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