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몹시 목이 말랐던 제르베즈는 포도주를 몇 방울 떨어뜨린 물을 여러 잔 마셨다."


목로주점(상), 에밀 졸라, 유기환 옮김, 열린책들 


책 제목처럼, 졸라의 목로주점에는 술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옵니다. 그러나 목로주점의 술은 인생을 즐겁게 만드는 술이 아니라 인생을 망치는 술입니다. 어디 목로주점 뿐이겠습니까. 문학에 등장하는 술은 대부분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란 천사보다 악마의 이야기를 더 좋아하기 때문일까요. 


목로주점과 술 이야기는 나중에 통으로 묶어서 해보고, 오늘은 아주 가벼운 구절 하나만 챙겨 봅니다. 


자기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도망간 랑티에 때문에 다시는 남자 따위와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제르베즈지만 쿠포의 끊임없는 구애에 결국 마음을 허락하고 쿠포와 결혼까지 합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피로연장인 '은 풍차' 식당에서 목이 말랐던 제르베즈는 포도주를 몇 방울 떨어뜨린 물을 마시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제르베즈는 술을 역겨워했고 쳐다보기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남편인 쿠포 역시 독주는 딱 질색이었지요. 


이 부분을 보고 역시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여자)는 없고나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요즘은 열 번 찍다간 스토킹으로 고발 당합니다. ^^ (뭔 쓸데없는 소리를 ㅜㅜ) 


아,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술과 물입니다. 우리는 흔히 술에 물타는 행위를 거의 범죄처럼 취급합니다. 물론 술 양을 늘리려고 물을 타는 진짜 범죄 행위가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술에 물을 타는 행위는 사실 술을 만드는 회사부터 술을 마시는 사람들까지 흔히 하는 행동입니다. 


술 만드는 회사가 술에 물을 타다니! 분노하시겠지만 실제로 우리가 가장 흔히 마시는 소주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참xx, 처음00 같은 소주는 고구마, 보리 등등 여러 곡식들을 발효하고 증류해서 90도 가량의 소주 원액을 만들고(이걸 주정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에 물과 감미료를 타서 제품 별로 16 ~ 25도 사이의 도수를 맞춰 출시합니다. 그래서 '희석식 소주'라고 부르는 거지요. 


위스키나 브랜디 같은 증류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신의 솜씨가 있는 전문가라 해도 해마다 품질이 다른 포도나 곡물로 해마다 다른 날씨에서 해마다 다른 통에 술을 담그는데 그 도수를 똑같이 맞출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에게 나오는 술은 도수가 언제나 똑같지요? 이건 물이나 도수가 다른 같은 술을 섞어서 도수를 맞추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심지어 맥주도 물을 섞어 도수를 맞추고 맛을 내기도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술 제조회사 마다 달라 자기들의 비법이 되는 셈이지요. 


게다가 술에 물을 타면 좋은 점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독한 술을 부드럽게 마실 수 있습니다. 물론 술의 제맛을 즐기려면 스트레이트가 제격이겠습니다만 모든 사람이 독한 술을 즐겨 마실 수 있는 건 아니지요. 게다가 술에 물을 타면 독한 맛 뿐 아니라 향까지 부드러워집니다. 위스키나 브랜디의 향이 와인 못지 않게 얼마나 우아하고 화려한지 물을 타서 향을 맡아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일본 술 회사가 자기네 위스키를 맛있게 즐기라고 소개한 미즈와리 칵테일


그래서 칵테일이 발달한 일본에서는 물과 위스키를 2:1 정도로 섞은 '미즈와리'라는 칵테일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 비율이 위스키의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비율이라도고 하지요. 스카치 위스키를 마시기 힘든 분들은 이 방법을 써보는 것도 좋습니다. 스카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저도 어쩔 수 없이(!) 스카치를 마시는 날엔 이렇게 마십니다. ^^ 


뭐, 성경에 보면 예수님도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항아리에 물을 부어 포도주를 만드셨다는데… 아마 항아리에 남아 있는 와인에 물을 더 부어서 맛을 내신 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봅니다(흐음, 설마 이런 걸로 신성모독이라고 하지는 않겠지요 ㅜㅜ). 그저 웃자는 얘기입니다. 


술과 물. 좋은 의도로 잘 섞으면 술을 마시는 좋은 방법입니다. ^^ / Fin


PS> 참고로 제목으로 삼은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은 틀린 말입니다. 원래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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