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남자 - 여행객의 필수품, 에일

"절벽 아래에는, 여행객들이 가져가는 짐들이, 출발의 와중에 무질서하게 쌓여 있었고, 그것들은 다리로 사용하는 널빤지 덕분에 선박으로 신속하게 옮겨졌다. 비스킷 몇 포, 절인 대구 한 통, 휴대용 수프 한 상자, 식수 한 통, 맥아 한 통, 타르 한 통, 에일 너덧 병, 여러 가닥 가죽띠로 동여맨 커다란 여행 가방, 작은 여행 가방들, 고리짝들, 횃불을 밝히거나 신호를 보낼 때 쓸 삼 부스러기 한 뭉치 등, 그들의 짐은 그런 것들이었다. 누더기를 걸친 사람들은 그러나 저마다 여행 가방을 가지고 있었다. 유랑 생활의 징표였다. "


- 빅토르 위고, 웃는 남자, 이형식 옮김, 열린책들 중에서 


한 무리의 거지들이 밀항하려고 우르카에 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거지들이라도 소지품이 없을 수 없겠지요. 이 글 다음 문장에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끼니 수단을 내동댕이치지 않는 한…" 먹고 살기 위한 최소한의 도구는 갖고 다녀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그 최소한의 도구에 맥아와 에일이 있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맥아는 보리를 싹 틔운 녀석으로 맥주나 위스키의 기본 원료가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에일은 아무데서나 물을 마실 수 없었던 그 시절의 필수 음료수였을 겁니다. 게다가 때론 약으로도 썼을 테고요. 


에일(Ale)을 그냥 영국 흑맥주 정도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에일에도 맑은 빛깔 맥주가 많이 있습니다. 에일은 맥주를 발효시키는 한 가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엔 정말 수도 없이 많은 맥주가 있습니다만 맥주를 무조건 둘로 나누라 하면 에일과 라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차이점은 발효할 때 어떤 효모를 썼느냐입니다. 


맥주를 발효시키는 미생물이 바로 효모인데요, 이 효모는 상면발효 효모와 하면발효 효모가 있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하시겠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상면발효는 위쪽에서 발효한다는 뜻이고 반대로 하면발효는 아래쪽에서 발효한다는 뜻이라는 걸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일단 여기서 맥주 만드는 과정을 간단히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보리를 물에 담가 싹을 띄워 맥아를 만듭니다. 이 맥아를 잘 말려 볶는데, 이때 얼마나 많이 볶느냐에 따라 맥주 색깔이 결정됩니다. 웃자는 얘기겠지만 기네스 맥주를 세운 아서 기네스가 맥아를 볶다가 졸아서(!) 좀 태웠는데 태운 맥아로 만든 맥주가 정말 맛있어서 계속 태웠다 어쨌다 하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제 볶은 맥아를 갈아 물에 넣고 끓여 맥아즙을 만듭니다. 이 맥아즙에 효모를 넣고 발효시키면 알콜과 탄산이 생기면서 맥주가 되는 거지요. 잘 숙성시키고 깨끗하게 걸러내면 맥주 완성!(물론 간단히 써서 이 정도지, 이 과정들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렵겠습니까 ^^)


다시 발효 과정으로 돌아갑니다. 맥아즙에 넣는 효모는 발효 온도에 따라 좀 높은 온도(16도 정도)에서 발효하는 효모가 있고 낮은 온도(10도 정도)에서 발효하는 효모가 있습니다. 높은 온도에서 발효하는 효모는 발효가 끝나면 맥주 위로 떠오르고, 낮은 온도에서 발효하는 효모는 가라앉는다는군요. 이 과정을 우리 말로 옮기려다 보니 상면발효, 하면발효 같은 괴상한(!) 용어를 쓸 수 밖에 없었나 봅니다. 


에일방식으로 만든 일본 부엉이표 맥주. 사무실에서 혼자!


상면발효 맥주는 탄산이 적은대신 묵직하고 부드러운 맛을 냅니다. 반면 하면발효 맥주는 탄산이 많고 시원하며 짜릿하지요. 상면발효 맥주를 에일이라 부르고 하면발효 맥주를 라거라고 합니다. 네, 우리나라 맥주에 붙은 라거는 상표가 아니라 맥주 제조 방식으로 구분한 명칭입니다. 


에일 맥주의 천국은 역시 영국이고요, 그래서 영국을 배경으로 한 웃는 남자에도 에일 얘기가 자연스레 등장하는 듯 싶습니다. 애당초 맥주는 사실 죄다 에일 방식이었을 겁니다. 라거 방식이 등장한 건 온도를 낮출 수 있는 냉장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라 하거든요.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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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부는 날, 창모루에 갔다

봄바람이 불 때면 누구나 바람을 쐬고 싶은 법이다. 아침에 껴입은 두터운 외투가 낮이 되면 부끄러워지는 4월, 그냥 잠깐이나마 바람을 좀 쐬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내 영혼이 자유롭다고 해도 몸까지 자유로울 수는 없으니. 그저 한숨으로 바람을 내고 있는데 A가 말했다. 창모루 어때? 대단한 인물이다. 어쩜 그렇게 딱 좋은 집을 골라내는지. 


창모루는 올림픽대로 동쪽 끝, 미사리 지나 팔당대교로 꺾어 올라가는 그 코너에 있다. 멀지도 않고 바람 쐬며 드라이브 하기에 딱 좋은 거리에 있는 셈이다. 단점은 차로 가야 하니까 누군가 한 사람은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는 것. 물론 대리를 부를 수도 있지만, 그러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고 만다. 왜냐고? 이 얘긴 나중에 다시. 


창모루의 메인 메뉴는 매콤한 해물 칼국수다. 국수 대신 수제비를 넣기도 하고, 수제비와 국수를 다 넣기도 한다. 이름하여 칼제비. 국수도 좋아하고 수제비도 좋아하는 우리는 당연히 칼제비. 그것도 딱 1인분만 시킨다. 



배추김치와 무김치 그리고 칼제비에 뿌릴 김가루가 한 접시 가득 나오고 잠시 후 노란 양은냄비에 담긴 칼제비가 나온다. 유부로 덮여 있어 안에 들은 건 잘 보이지 않지만 수제비와 국수가 잘 들어 있다. 금세 팔팔 끓어오르는 칼제비를 보고 있다가 적당한 때 김가루를 붓는다. 김가루는 얼마든 더 준다. 대신 셀프다. 김가루 좋아하는 우리는 한 접시 더. 




국물이 끓어오르기를 기다려 소주를 한 잔 청한다. 오늘 운전은 A가 당첨. 혼자서 소주 한 병을 먹을 수 있는 난 신났다. 면과 수제비가 채 익기도 전에 소주 한 잔을 들이키고 총각김치 한 쪽을 집었다. 김치와 먹는 소주는 좀 처량하지만(!) 김치 뒤에 또 다른 안주가 있을 땐 김치도 성급한 술잔을 달랠 좋은 안주인 법이다. 뭔 말이냐고? 김치 맛 괜찮다는 얘기다. 



국수와 수제비가 익기를 기다려 한 숟가락 들었다. 앗 뜨거 하면서도 호호 불어 먹는다. 나름 바지락과 새우, 오징어가 들어간 매콤한 국물이 괜찮다. 김가루와 유부도 잘 어울리고. 소주 안주로 삼기에 이만한 국수도 드물다. 호호 불어 국수와 수제비를 건져 먹을 무렵, 감자전이 나왔다. 



이 집 감자전의 특징은 크다는 거다. 왕돈까스를 담을 만한 접시를 꽉 채운 감자전. 맛은 뭐 흔한 감자전 맛하고 다를 바 없지만 노릇노릇한 감자전을 찢어 입에 넣으면 쫀득쫀득하면서 풍성한 느낌이 든다. 바로 이게 감자전 맛이니까. 칼제비를 1인분만 시킨 건 바로 이 감자전 때문이다. 창모루 처음 왔을 때 칼제비 2인분에 감자전 시켰다가 반도 못 먹고 남겼다. 얼마나 아까왔든지. 


마지막 술잔을 털고 칼제비 국물까지 싹싹 긁은 뒤 남은 감자전 한 쪽을 입에 넣으면 식사 끝. 알콜의 힘과 얼큰한 칼제비 뒷맛, 감자전의 묵직함이 기분 좋은 여운으로 남는다. 이렇게 먹고 나오면서 내는 돈은 칼제비 6천원, 감자전 1만원, 소주 3천원. 합해서 만구천원이다. 이래서 대리를 부르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게다. 


A의 투덜거림을 귓전으로 흘리고 다시 올림픽대로를 돌아 오는 길, 살짝 연 창으로 봄바람이 들어왔다. 흐뭇했다. 그저 흐뭇하단 말 외에 이 감정을 어찌 설명할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를 뿐이다. / Fin 


덧> 쓰고 나니 이 집엔 해물칼xx 시리즈와 감자전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집에서 만든 것 같은 투박한 계란말이(!), 닭발, 오돌뼈, 꼼장어 같은 포장마차 메뉴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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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츠비와 칵테일 #3 - 민트 줄렙


"하지만 속옷이 축축한 뱀처럼 다리를 휘어 감고 땀방울이 등줄기를 시원하게 가르던 몸의 기억만은 생생하다. 이 생각은 욕실 다섯 개를 빌려 시원하게 냉수욕이나 하자는 데이지의 제안에서 비롯되어 <민트 줄렙을 마실만한 장소>라는 형태로 좀 더 구체화되었던 것이다."


-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랄드, 한애경 옮김, 열린책들 


찌는 듯이 무더운 어느 날, 데이지가 개츠비를 초대하고 톰은 진리키를 대접합니다. 그러나 더위에 지친 데이지는 자꾸 시내로 나가자고 조르고 그 과정에서 남편인 톰이 보는 앞에서 개츠비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사고를 저지르고 말지요. 


"당신은 멋져요" 데이지가 다시 한 번 말했다. 

데이지는 개츠비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셈이었고 톰 뷰캐넌은 이를 알아차렸다. 그는 충격을 받았다. 


자, 분위기는 슬슬 대형 사고를 치기 직전으로 달아오릅니다. 빈정이 상한 톰은 시내로 나가자며 위스키 한 병을 챙겼고 일행은 차를 나눠 타고 데이지가 추천한대로 민트 줄렙을 마실만한 장소를 고르다가 플라자호텔 스위트룸으로 갑니다. 물론 그 과정에도 복잡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생략. ㅋ 그리고 등장한 술이 민트 줄렙입니다. 


민트 줄렙은 이름처럼 민트를 넣은 칵테일입니다. 미국 남부에서 시작한 칵테일로 버번 위스키와 민트, 설탕으로 만들지요. 



온더락스 만한 잔에 위스키를 15ml 정도 붓고 민트 잎, 설탕 2스푼 정도를 넣은 후 잘 찧어줍니다(뭐, 머들러라는 전문 기구가 있으면 좋겠으나 없으면 나무 젓가락 뒤로 찧어도 됩니다 ^^). 적당히 찧고 설탕도 어느 정도 녹은 듯 하면(다 녹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설탕 가루 남아 있는 게 또 나름 매력이니까요) 얼음으로(기왕이면 잘게 부순 얼음) 잔을 채우고 위스키를 30ml 더 붓습니다. 그리고 잘 저어준 후 민트 잎으로 장식하면 끝. 얼음이 적당히 녹아 시원한 느낌이 들 때까지 저으면 됩니다만, 뭐… 내키는대로 하시면 됩니다. 


이게 민트 줄렙입니다. 줄렙은 쓴 약을 먹은 후 마시는 달콤한 음료를 말하는 아라비아어랍니다(요건 인터넷 검색 ㅜㅜ). 


이름은 한없이 달콤해 보이나 위스키 45ml에 민트 잎과 설탕 밖에 들어가는 것이 없으므로 사실 꽤 독한 술입니다. 그래서 물이나 탄산수나 토닉워터를 부어 마시기도 합니다. 여튼 만만한 술이 아니어서 무더운 날 마시면 훅 올라올 것이 틀림없습니다. 게다가 위대한 개츠비에서는 그저 민트잎과 얼음으로만 만들 것을 암시합니다. 


"웨이터가 노크를 하더니 으깬 민트와 얼음을 들고 들어왔다."


여기서 제 고민은 왜 피츠제랄드가 하고 많은 술 중에 민트 줄렙을 골랐을까 하는 거였습니다. 말도 안되는 억측을 해보자면…


버번 위스키로 만든 민트 줄렙은 가장 미국적인 칵테일 중 하나다, 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고, 데이지를 사이에 두고 톰과 개츠비가 다투는 장면을 자극하기엔 민트 줄렙의 독하면서도 달달한 맛이 잘 어울렸기 때문이겠다 라고도 생각합니다. 경계를 넘어선 사랑이란, 독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달콤할테니까요. 뭐,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  


그러나 결국 주인공들은 민트 줄렙은 입에 대지도 못한 채 파국을 향해 달려 갑니다. 사실 민트 줄렙을 마셨으면 그 비극적인 사고가 음주운전 때문이라고 우길 수도 있었을 텐데, 책에선 '위스키를 따지도 않았다'고 했으니 음주운전은 아니었겠네요. 


참고로 칵테일 레시피를 소개하면서 30ml다 45ml다 뭐 이런 얘기를 하는데, 이걸 어떻게 재서 마시란 말이냐, 하고 따지실 수 있겠습니다. 골치 아플 거 없습니다. 집에 양주잔 하나 정도는 다 있으시지요? 그게 한 잔에 30ml입니다. 그러니 30ml를 넣으려면 한 잔 넣으면 되고 45ml를 넣으려면 한 잔 반 넣으면 됩니다. ^^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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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츠비와 칵테일 #2 - 진리키

바로 그때 톰이 얼음이 가득 들어 찰랑거리는 진리키 넉잔을 들고 돌아왔다. 

개츠비가 자기 잔을 받아들었다. "정말 시원해 보이네요." 


-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랄드, 한애경 옮김, 열린책들 중에서


'이런 무더위 속에서는 불필요한 몸짓 하나하나가 평범한 일상을 모독하는 셈'이라고 작가가 썼을 정도로 무더운 여름에 이렇게 얼음이 찰랑거리는 칵테일은 상상만 해도 짜릿합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칵테일 이름은 다름 아닌 진리키. 


진 리키 Gin Rickey는 진(Gin)과 라임주스를 섞어 만든 단순한 칵테일입니다. 하이볼 편에서 소개한 하이볼 잔 같은 길고 넉넉한 잔에 얼음을 채우고 진 30 혹은 45ml를 부은 후에 라임 조각(흔히 웨지라고 부르는 ㅜㅜ)을 짜내고 그 라임을 그대로 잔에 넣습니다. 그리고 탄산수를 부어 잔을 가득 채우지요(이걸 풀업이라고 합니다). 살짝 저어(이건 스터라고 하고요) 그냥 시원하게 마시면 됩니다. 


원래 진 리키는 1880년대 미국 워싱턴의 슈메이커라는 바의 바텐더인 조지 윌리엄슨이란 사람이 만들었다 합니다. 처음엔 진이 아닌 버번 위스키를 썼다는군요. 이 술을 당시 유명한 로비스트인 조 리키 대령이란 사람이 좋아했대나 어쨌대나 해서 처음엔 조 리키라고 불렀는데요 베이스를 진으로 바꾸면서 술이 대박이 났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름도 자연스레 진 리키가 되었겠지요(요건 영문 위키 검색 ^^).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사실 진 리키란 술을 제대로 맛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라임을 구하기 어려워서 그렇습니다. 즙이 넉넉한 라임을 아낌없이 짜 넣어야 하는데 호텔 바나 정말 유명한 칵테일 바가 아닌 이상 라임이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솔직히 시원한 맛에 먹지, 칵테일로서 아주 짜릿하지도 않습니다. 라임이란 게 레몬 비스무레하게 시큼새콤한 맛이니까요. 그래서 최근 바텐더들은 달콤 쌉싸름한 맛을 내기 위해 이런 저런 부재료를 쓰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진 리키보다는 진 얘기를 더 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진을 그다지 많이 마시지 않는데 사실 이 진이 아주 훌륭한 술이거든요. 요즘 대형마트 술 코너에 가면 탠커레이, 탠커레이 넘버10, 봄베이 같은 진이 있는데요, 탠커레이 넘버 10 한 번 드셔보길 추천합니다. 솔향 같은 상큼하고 시원한 향에 그저 감탄하실 겁니다. 


진은 칵테일로 응용하기에 정말 좋은 술입니다. 진 자체도 훌륭하지만 다른 부재료와 너무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진과 토닉워트를 1:2 취향에 따라 1:3으로 섞고 레몬 조각만 넣어도 훌륭한 진토닉이 됩니다. 흔히 진토닉을 무척 맛없는 칵테일로 알고 있는데 칵테일을 잘 모르는 술집 주인들이 싼 진에 김빠진 토닉워터를 써서 그런 겁니다. 탠커레이 넘버10 같은 진이라면 정말 훌륭한 진토닉을 누구나 만들 수 있습니다. ^^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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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츠비와 칵테일 #1 - 하이볼

"그래, 하이볼로 줘요."


-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랄드, 한애경 옮김, 열린책들 중에서. 


무더운 7월 하순, 개츠비는 닉을 데리고 마이어 울프심을 만나러 갑니다. 키가 작고 납작코인데다가 코털까지 무성한(!) 울프심은, 개츠비가 비록 도박사라고 소개는 하지만, 악명 높은 갱이었지요. 닉은 울프심이 1919년 월드시리즈를 조작했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아찔한' 기분까지 느낍니다. 뭐 어쨌든. 이렇게 무서운 사람을 만날 땐 술 한 잔 마셔야 하지 않을까요. ㅋ 


이 셋이 만난 자리에서 웨이터가 권하는 칵테일이 하이볼입니다. 하이볼은 1자로 쭉 뻗은 긴 잔에 얼음을 채우고 위스키와 탄산수를 섞어 마시는 칵테일인데요, 얼음과 탄산수가 들어 있으니 아주 시원한 칵테일입니다. 여름에 마시기엔 그만인게죠. 얼음이 없던 시절에도 탄산수의 톡 쏘는 맛이 충분히 시원했을 겁니다. 위스키 30 혹은 45ml에 탄산수를 부어 가볍게 섞은 후 레몬 정도를 띄워 마시니까 만들기도 쉽고 위스키나 탄산수 종류에 따라 아주 다양한 맛을 낼 수 있지요. 



사진 속 하이볼은 어떤 작은 바에서 주문한 것인데요, 바텐더가 나름 자기만의 비법으로 만들었다고 자랑하던 버번 베이스 하이볼인데... 깜박 이름을 잊었다는 ㅜㅜ 잭다니엘과 꼬엥트로를 섞어서 잭의 독한 맛은 감추고 오렌지의 향긋한 맛을 잘 살렸더군요. 좋았습니다. 


한때 어떤 위스키 브랜드는 하이볼을 더 맛나게 마시는 방법이라며 자기네 위스키를 탄산수와 섞어 마셔라, 뭐 이런 프로모션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류의 칵테일을 왜 하이볼이라 부르냐 하면… 그 칵테일을 담는 길죽한 잔 이름이 하이볼 글래스라서 그렇습니다. 


여튼 더운 여름에 시원하게 마시기엔 딱 좋은 칵테일이 하이볼이지요. 하지만 술을 시원하게 마시려고만 하이볼 같은 칵테일을 만든 건 아닙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인 1920년대는 금주법이 판치는 시대였지요(물론 위대한 개츠비 소설 속에서는 금주법 시대라는 걸 깨닫기 어려울 정도로 술 얘기가 많이 나오지만!). 몰래 술을 마시기에 칵테일은 참 좋은 방법이지요. 마치 물이나 주스를 마시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실제로 미국에서 칵테일이 발달한 까닭이 금주법 때문이었다고들 합니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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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핸즈 2013.12.09 10:5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어떤 작은 바'의 사진이 낮이 익은데요? ㅋ 혹시 석촌호수 쪽의 카페루이 아닌가요?? ㅋㅋ

각자 따라 마시기에요 - 버번 위스키


"여러분 만나서 반가와요." 부인이 목쉰 소리로 인사했다. "커피를 드시겠어요, 아니면 한잔 하시겠어요?" 아내가 자랑스러운 듯, 데이킨의 눈에는 정겨운 빛이 감돌았다. 

"오다 보니 무척 춥던데요." 맥이 주섬주섬 말했다. 

순금 의치들이 반짝였다. "그러실 줄 알았어요. 한잔하면 나아질 거에요."

부인은 위스키 한 병과 칵테일용 컵 하나를 꺼냈다. "각자 따라 마시기에요. 술잔 높이보다 더 따를 수는 없으실 테죠."

술병과 잔이 돌았다. 데이킨 부인은 마지막으로 자기 잔을 단숨에 들이켜고는 술병의 마개를 닫고 도로 작은 찬장에 가져다 두었다. 


- 존 스타인벡, 의심스러운 싸움, 윤희기 옮김, 열린책들 중에서 


존 스타인벡의 의심스러운 싸움. 전 미국 역사를 잘 모르지만 ㅜㅜ 1930년 대 공산주의 운동이 한창인 시기의 이야기입니다. 


착취당하는 노동자를 모아 파업을 일으키려는 맥과 짐이 또 한 무리의 노동자들 지도자인 데이킨을 처음 만나러 갑니다. 때는 찬 바람이 부는 늦가을. 바람은 강하고 차지만 노동자들은 변변한 옷 조차도 없었겠죠. 꽤 추웠을 겁니다. 그때 데이킨 부인이 내놓는 건 위스키. 아마도 버번 위스키일 겁니다. 미국이니까요. 


알아서 취향껏 한잔씩만 따라 마시라고 말하는 데이킨 부인의 센스가 재밌습니다. 한잔씩 돌려 마셨다는 얘기만 읽어도 왠지 몸이 훈훈한 것 같은 느낌이 들지요. 그런데 저는 참, 이해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장면 뿐 아니라 서양 드라마 같은데 보면 남자들이 사무실에서 온더락스 잔에 얼음도 없이, 안주도 없이 쌩으로 위스키 한잔씩 따라 무슨 물이나 주스 마시듯 마시잖아요? 그런 장면이 하도 멋있어서 저도 사무실에서 좀 따라해 봤습니다만! 일단 한잔 드릴까요 하면 손님들이 놀라 까무러치고, 설령 드신다는 손님이 있어 같이 마셔도 그 독한 맛에 콜록 콜록 기침을 하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안주도 없이! 아무리 술을 좋아해도 저는 아직까지 그 경지는 아닌 듯. 그 술 맛있게 마시는 장면은 아무리 생각해도 술 회사들의 로비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저 혼자 생각입니다. ㅋ 


버번 위스키 얘기를 좀 할까요. 위스키는 혹시 뭘로 만드는지 아세요? 술자리에서 제가 이렇게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거의 대답을 잘 못합니다. 원래 위스키는 보리로 만듭니다. 네, 맥주 만드는 그 보리요. 과정이 좀 복잡하긴 합니다만 보리를 발효하면 맥주가 되고, 증류하면 위스키가 됩니다. 그래서 보리로 만든 위스키를 몰트(Malt) 위스키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보리가 없을 때도 있잖아요? 원래는 위스키에 세금을 열 붙이니까 도망가서 보리 말고 다른 곡물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어쨌든 보리 대신 귀리, 호밀 같은 곡물로도 위스키를 만들었답니다. 그걸 그레인(Grain) 위스키라고 부르고요. 그런데 보리 위스키를 먹다 보니 곡물 위스키가 아무래도 좀 맛이 덜한 것 같아서 둘을 섞기 시작했대요. 그랬더니 가격대 성능비가 훌륭한 위스키가 태어났다 아닙니까. 그걸 섞었다고 해서 블렌디드 위스키라고 합니다. 발렌타인, 조니워커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섞은 위스키입니다. 


청교도들이 영국을 벗어나 미국에 딱 왔는데 보리가 있을 턱이 없지요. 가만 보니 옥수수 천국이더라 이겁니다. 말이 먹는 귀리(!)로도 술을 만드는데 옥수수로는 못 만드랴 싶어서 담았더니 아, 이게 또 나름 맛이 괜찮더라 이거지요. 이 술을 처음 만든 켄터키 주 버번 지역 이름을 따서 버번 위스키라 부르기 시작했답니다. 지금은 미국에서 나는 위스키를 그냥 버번 위스키라고 부르는데, 미국 알콜 관련 법에 버번이라고 부르려면 미국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답니다. 



미국 하면 떠오르는 위스키 중 하나가 잭다니엘입니다. 짙은 갈색에 초콜릿 향을 뿌리는 이 술을, 저도 30대 초반엔 엄청 마셨습니다. 미국 술이니까 잭다니엘도 버번이라고 부르면 되겠거니 하지만, 잭다니엘은 테네시 위스키라고 합니다. 테네시 주에서 만들어서 그렀다는 건데요, 큰 차이는… 증류한 술을 사탕단풍나무를 태워 만든 숯으로 한 번 걸러낸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콜릿 같은 진한 향과 맛이 나는 거라고요.  


데이킨 부인이 내놓은 위스키를 버번일 거라고 추측한 건, 가난한 노동자들이 물건너온 비싼 스카치 위스키를 마시진 못했을 거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어쨌든 미국인들이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잘 견디도록 버번 위스키도 나름 한 몫하지 않았을까요? 미국이 버번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건,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소주를, 엄청 구박하면서도, 여전히 사랑하는 것처럼요.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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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국수, 소연

그가 점심을 먹으러 오겠단다. 한 해에 한 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멀기도 멀고, 바쁘기도 바쁜 사람인데 특별히 점심을 먹어주시겠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뭘 대접해야 할꼬? 딱히 생각나는 게 없어서 일단 코엑스 옆 오크우드 호텔 건너편 주차장에 차를 대라 일렀다. 주차요금이 좀 비싸긴 하지만 워낙 넓으니 댈 만하다. 그런데 이 주차장이 얼마 전에 현대백화점 전용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앞으로 외부 차량이 차를 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뭐, 주차요금 내면 되겠지. 


난데없이 주차장 얘기로 샜다. 여튼 주차장에서 그를 만났다. 반갑게 악수를 하고 안부를 물었다. 여전히 변함없는 그 모습이 꽤 보기 좋다. 먹는 게 젤 고민이여, 샤브샤브나 먹을까요, 뭐 이런 수다를 떨면서 주차장 뒷길로 벗어나는데 깔끔한 간판이 하나 보였다. '소연'이다. 국수와 만두 전문이라는. 그도 나도 국수와 만두를 좋아하는 까닭에 저기 한 번 가 볼까, 자연스레 소연으로 들어섰다. 


점심시간이 채 안 되었는데 자리가 거의 찼다. 단체석 테이블 사이, 비어 있는 2인석 자리에 몸을 밀어 넣고 메뉴를 보다가, 국수와 만두를 시켰다. 국숫집 간판 보고 들어왔으면 국수를 시켜야지. 메뉴엔 국밥도 있었고, 보쌈도 있고, 녹두전이나 감자전도 있었다. 물론 막걸리나 소주도 있을 테지. 하지만 국수에 소주를 주문할 내공은 못되어서 그냥 참았다. 



식탁에 깐 종이, 숟가락을 씌운 봉투. 그리고 찬이 나왔다. 깔끔했다. 그리고 국수. 멸치국물로 육수를 낸 국수다. 생긴 건 약간 멀갰지만 호박과 고추, 버섯 고명이 이쁘다. 국물부터 맛을 봤다. 어라, 이거 깔끔하네. 국수도 한 젓가락 입에 넣었다. 깔끔하네. 



흔히 깔끔하다고 할 땐, 우선 깨끗하고, 화려하진 않아도 예쁘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일 게다. 맛이 깔끔하달 땐 복잡하지 않고 자극하지 않으며 단순하면서도 입을 편하게 해준다는 걸 의미할 게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그리고 소연의 국수는 정말 깔끔한 맛이란 이런 거라고 알려줬다. 



정말 별거 없어 보이는 만두도 쫄깃하고 적당히 간이 배었다. 원래 나는 뚱뚱하고 두부가 잔뜩 들어간 만두를 좋아하지만 뭐 이렇게 작으면서도 피가 탱탱하고 풀 맛 나는 만두도 꽤 괜찮다. 뭐, 소연스럽다고나 할까. 


남자들 먹기에 국수 양이 좀 작은 듯 했지만 국물까지 싹 비우고 나니 모자라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긴 만두도 다섯 개나 먹지 않았던가. 이 정도면 점심식사 한 끼, 아주 깔끔하게 즐긴 셈이다. 맛이 깔끔하단 말은 이제 아무데서나 쓰면 안되겠다. 


소연 / 삼성1동 149-10 / 02-577-4490


점심엔 언제나 사람 많다. 저녁엔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보쌈과 빈대떡도 깔끔하다. 소주를 퍼지르는대신 막걸리 한 사발 정도면 딱 좋을 법 하다. 젠장, 쓰다 보니 낮술 또 땡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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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 2013.04.02 11:4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인연을 담는 식당인가요? 소박한 인연을 만드는 식당인가요? ㅋㅋ
    사진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좋네요~ 오늘같은 날씨엔 면이 최고! ㅎㅎ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3.04.07 14:48 신고 수정/삭제

      인연이야 어디서든 만들면 되겠지요 ^^

국수의 갑, 국수전골

국수는 누구나 부담없이 즐기는 음식, 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국수에도 비싼 넘이 있다. 흔히 하는 말로 '갑'이 있단 말이다. 나는 그 갑을 국수전골이라 생각한다. 맛있지만 아무 때나 먹을 수 없는, 어린 시절엔 누군가 사줘야 하고, 나이든 지금은 누군가 귀한 손님이 와야만 같이 먹는 그 국수전골. 


월요일은 우리 사무실 사십대 아저씨 셋이서 점심 먹는 날이다. 뭐 다른 날도 같이 먹긴 하지만, 월요일 만큼은 꼭 먹자, 그렇게 정해서 먹는 날이다. 그러다 보니 은근 메뉴에 신경 쓰인다. 그래봐야 순대국을 제일 많이 먹긴 하지만. 


오늘은 부산국밥 먹자, 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사장님이 말했다. 난 싫었다. 하지만 보스가 말하는데 바로 토를 다는 건 아랫 사람이 할 일이 아닌게지. 그래서 그냥 실실 웃기만 했다. 내 눈치가 이상했는지 아님 다른 거 뭐? 하시길래 오늘은 특별하게 국수전골 먹어요, 했다. 아 좋지, 그런데 어디?


사무실이 잠실에 있을 땐 롯데백화점 11층에 있는 한우리 국수전골을 자주 갔다. 1인분에 만오천 원. 고기는 호주산. 좀 비싸지만 꽤 깔끔하고 고급스럽다. 직원 수가 많지 않을 땐 회식도 했다. 최고 인기 메뉴였지. 



그런데 지금 사무실 근처에선 국수전골을 먹은 적이 없다. 아마 국수전골하면 그저 한우리가 최고니까 거기가서 먹어야지,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문득 국수전골이 먹고 싶어서 사실 아침에 슬쩍 한 군데를 찾아놨다.


양대창 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집에서 점심 메뉴로 국수전골을 하고 있었다. 일인분에 만육천 원. 강남이라 비싸긴 비싸고마, 머 그런 생각을 했지만, 어쩌랴. 먹고 싶은 날은 먹어야지. 들어가자마자 다른 메뉴는 보지도 않고 국수전골을 주문했는데, 어라, 끓여 나온단다. 



음식이란 맛도 중요하고, 가격도 중요하지만 보이는 것도 꽤 중요한데… 아무래도 점심 시간에 서빙하기가 너무 번잡스러워 그런가 보다 생각하면서도 왠지 손해보는 느낌이 들었다. 보글 보글 끓는 국수전골을 바라보고 흐뭇하게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 아, 상상만 해도 짜릿한데. 



여튼 다 끓여 대접에 담아 나온 국수전골을 보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소주 한 병을 불렀다. 이런 국물 음식에 소주가 없다는 건 범죄야 범죄… 혼자 궁시렁 거리며 시켰는데, 오후에 미팅이 있는 사장님은 한 잔도 입에 안 대시고, 또 한 아저씨는 아예 술도 못 마시고… 결국 나 혼자 반 병 꺾고 말았다. 


국물도 진했고 고기도 고소했고 국수도 잘 익었다. 하지만 왠지 한우리보다는 살짝 모자란 느낌이랄까. 이래서 첫사랑이 무서운게다. ㅋ 하지만 굳이 잠실까지 가서 먹느니, 여기서 먹는게 시간이나 뭐 그런 면에선 더 나은 게지. 역시 남자는 먼 첫사랑보다 가까운 여자를... (뭔 소리다냐 ㅉㅉ)


원래 맛집 글을 쓸 땐 적어도 세 번은 가보고 쓴다는 원칙이 있어서 식당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그래도 대충 조합해서 검색하면 어딘지 나오겠지만. ㅋ 다음엔 직원들 데리고 가서 낮술 한 잔 먹여야겠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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