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영혼은 악마에게나 줘버리고

페이스북 글을 퍼오는 기능을 테스트하는 중입니다. 

재미는 있는데 모양새는 영~ 

그런데 이거 저 말고 다른 사람도 다 퍼갈 수 있는 건가요? 

(혼자 묻기 신공 ㅜㅜ)



신고

킬리만자로의 눈 그리고 위스키 소다

"당신은 내가 신경 안 쓰는 많은 것들을 신경 쓰는군."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해리." 

"술에 대해 신경 쓰는 건 어때?"

"그건 당신한테 해로워요. 블랙의 건강 보감에는 알코올 종류는 일절 피하라고 되어 있어요. 당신은 술 마시면 안되요." 

"몰로!" 그가 소리쳤다. 

"예, 브와나."

"위스키 소다를 가져와." 

"예, 브와나."

"술 마시면 안돼요." 그녀가 말했다. "내가 말한 포기란 게 바로 그런 거에요. 술은 당신한테 해롭다고 되어 있어요. 당신한테 좋지 않다고요." 

"아니야. 그가 말했다. "나한테 좋아."


헤밍웨이, 킬리만자로의 눈, 이종인 옮김, 열린책들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 킬리만자로의 한 캠프. 다리를 다쳐 움직이지 못하는 해리와 헬렌은 해리를 데려갈 비행기가 오기를 막연히 기다립니다. 하지만 해리의 상처는 예상 외로 심각하고 그래서 해리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대신 삶을 마감할 준비를 합니다. 그러나 아내인 헬렌은 희망을 버리지 않지요. 희망을 버린 사람과 버리지 않은 사람. 그래서 두 사람은 신경 쓰는 일이 서로 다릅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설명하기에 술만큼 좋은 소재도 없습니다. 해리는 마시고 싶어하고, 헬렌은 말리려 합니다. 


위스키 소다는 위스키에 소다, 즉 탄산음료를 섞은 아주 쉽고 간단한 칵테일입니다. 시원하고 톡쏘는 탄산이 위스키의 독한 맛을 가려주어 술 못하는 사람들도 마시기 좋습니다. 그래서 위스키와 탄산을 섞은 칵테일도 종류가 참 많습니다. 


잭다니엘 + 콜라 = 잭콕

바카디럼 + 콜라 = 쿠바리브레 

조니워커 + 진저에일 = 레드볼루션


뭐 언뜻 생각나는 것만해도 이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녀석들 생긴 걸 보면 긴 잔에 탄산이 보글보글 올라가는… 네, 생각나는 것 있으시지요? 바로 하이볼입니다. 요즘은 위스키 소다에 꼭 얼음이 들어가기 때문에 위스키 소다가 곧 하이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해리가 마신 위스키 소다엔 아마 얼음이 없었을 겁니다. 그래도 아프리카처럼 더운 곳에서라면 충분히 시원하지 않았을까요? 얼음이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프리카 킬리만자로의 벌판이라서 아마 얼음은 없었을 겁니다. 혹시 모르지요.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이 있었을지는. ^^ 


마지막을 준비하는 해리는 위스키 소다를 마시면서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생각하며, 헬렌을 바라 봅니다. 사실 헬렌도 무척 술을 좋아합니다. 단지 해리를 위해 말릴 뿐. 그러나 둘은 결국 위스키 소다를 기울이며 '죽음을 신경쓰지 않고' '함께 있고 싶어'합니다. 부드럽고 시원한 위스키 소다가 그들의 대화를 이어주고 조용히 마지막으로 이끌어 갑니다. 


비록 해리는 헬렌과 함께 하지 못하지만 칵테일의 매력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때 살아납니다. 부드러운 술, 살짝 기분좋게 달아오르는 취기 그리고 마음에 묻었던 이야기들. 두 사람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바에 앉아 위스키 소다를 기울이는 것, 상상만 해도 그저 흐뭇할 따름입니다. / Fin



신고
  • BlogIcon 진주애비 2013.07.29 23:4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아따..여기 오기가 왜 이리 힘들었는지..ㅋㅋ
    결국.네이년으로 이사 갔어요..이윤 묻지 마세요..흑

개츠비 스페셜 - 개츠비 따라 마시기


디카프리오는 멋있어. 하지만 왜 개츠비가 위대해? 


하긴 영화 뿐이랴. 원작을 읽는 사람들도 왜 개츠비가 '그레이트' 한지 이상하게 생각한다. 사랑하는 여자를 찾기 위해 돈을 벌고, 마침내 그 여자를 찾았지만 여자는 이미 결혼했고, 결혼한 여자는  그리 행복해 보이지는 않고, 여자의 남편은 바람을 피고, 당연히 개츠비는 여자에게 다시 대시하고, 하지만 누가 봐도 그 여자는 대시할 만한 가치는 없어 보이고. 결국 여자는 사고를 치고, 개츠비는 사고를 대신 짊어지고, 여자의 남편은 비굴한 방법으로 개츠비를… 뭐, 스토리만 보면 이건 완전 막장 드라마다. 그런데도 개츠비는 그레이트하고, 이 소설은 가장 미국적인 소설이라고 한다. 내가 이렇게 쓰면, 누군가는 틀림없이 이렇게 댓글을 달거다. 이런 무식한 놈. 위대한 개츠비를 뭘로 보고. 


어렸을 때 읽은 개츠비는 정말 재미없는 소설이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감이 잘 오지 않는 분위기, 어색한 번역투 문장, 그렇게 버려둔 책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나이들어 다시 읽은 개츠비는, 뭐랄까 개츠비의 치열한 삶에 공감했다고나 할까 새로운 느낌이었다. 물론 번역도 훨씬 좋아졌고.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술 얘기가 툭툭 튀어나오니, 마구 마구 몰입할 밖에. 그래서 디카프리오를 그리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이 영화는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영화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개츠비가 마셨던 술들을 따라 마시는 중이다. 


"하이볼 드릴까요?." 수석 웨이터가 물었다. 

"멋진 레스토랑이군." 울프심 씨가 천장에 그려진 장로교의 요정들을 쳐다 보며 말했다. "하지만 길 건너편이 더 좋아!"

"그래, 하이볼로 줘요." 개츠비가 웨이터에게 말하고 나서 울프심에게 말했다. "거긴 너무 더워요."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 한애경 옮김, 열린책들


더울 떄 마시는 칵테일로 하이볼만한 것도 없다. 



하이볼이 궁금하다면 -> 개츠비와 칵테일 #1 - 하이볼


하이볼은 원래 위스키와 탄산수를 섞는데 이 하이볼은 특별히 진저엘과 잭다니엘로 주문했다. 진저엘의  달달한 맛이 잭의 강한 맛을 가려주니 갈증날 때 시원하게 들이킬 수 있다. 그래, 이런 하이볼이라면 계속해서 열 잔도 마실 수 있겠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바로 그때 톰이 얼음이 가득 들어 찰랑거리는 진리키 넉 잔을 들고 돌아왔다. 

개츠비가 자기 잔을 받아 들었다.

"정말 시원해 보이네요." 개츠비가 눈에 띄게 긴장해서 말했다. 

우리는 게걸스럽게 각자의 잔을 들이켰다.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 한애경 옮김, 열린책들


진리키는 진과 라임주스를 섞는 단순한 칵테일이지만, 그래서 누구나 쉽게 만들어 마시는 칵테일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마신다고 해서 누구나 맛을 낼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은은하고 향긋한 진과 새콤한 라임을 적절히 조화시키는게 중요하다. 


진리키가 궁금하다면? -> 개츠비와 칵테일 #2 - 진리키


보통은 그냥 빌드하지만 진과 라임주스를 셰이크해서 만든 전문가의 진리키. 첫 잔인 하이볼의 달콤함을 순식간에 잊게 할, 상큼하면서도 시원한 맛이다. 



하지만 속옷이 축축한 뱁처럼 다리를 휘어 감고 땀방울이 등줄기를 시원하게 가르던 몸의 기억만은 생생하다. 이 생각은 욕실 다섯 개를 빌려 시원하게 냉수욕이나 하자는 데이지의 제안에서 비롯되어 <민트 줄렙을 마실 장소>라는 형태로 좀 더 구체화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다같이 <끝내주는 아이디어>라고 입을 모았다.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 한애경 옮김, 열린책들


설탕과 민트를 으깬 후 잭 다니엘을 부어 만든 민트 줄렙. 개인적으로 제이앤비나 짐빔 같은 미국 술을 몹시 싫어하는 까닭에 죄다 잭 다니엘로 주문. 우리에겐 좀 생소해도 미국에선 되게 자주 마시는 탓인지 메이커스 마크라는 버번 회사에서는 아예 민트 줄렙 버전을 내놓기도 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선 마시기 쉽지 않지만. 


민트 줄렙이 궁금하다면? -> 개츠비와 칵테일 #3 - 민트 줄렙


민트를 으깨고 베이스를 붓는다는 점에서 민트 줄렙이 모히토의 시초가 되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럼에도 탄산수를 넣지 않는 까닭에 생각보다 도수는 세다. 첫 잔과 둘째 잔이 아주 시원했다면 민트 줄렙은 드디어 강한 술을 마실 준비를 시켜주는 셈. 



나는 농담으로 바텐더에게 개츠비 스페셜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되도 않는 주접을 떨었지만, 영화에 힘입어 출판계가 할인을 넘어 땡처리 수준으로 위대한 개츠비를 몰아붙이는 상황에서 술 업계가 좀 묻어가는 것도 괜찮은 생각은 아닐까. 게다가 이 칵테일들은 죄다 여름에 마시기에 정말 좋은 칵테일이 아닌가. 개츠비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개츠비 스페셜을 조금 더 즐겨보리라, 그렇게 마음 먹는다. 개츠비처럼 위대하진 못해도, 누구에게나 사랑할 마음은 있는 법이니까. /  Fin  

신고

목로주점, 막내둥이의 술 카시스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주인공 제르베즈에게 함석공 쿠포가 대시합니다. 첫 남자에게 버림받은 제르베즈는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않으리라 마음 먹지만 순하고 착한 쿠포에게 마음이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막내둥이 카시스라고 불리나요, 쿠포씨?"

"아! 그건 동료들이 강제로날 술집에 데려가면 내가 보통 카시스 주만 마시기 때문에 붙인 별명입니다…"


에밀 졸라, 목로주점(상), 유기환 옮김, 열린책들


카시스는 영어로는 블랙커런트, 우리말로는 까치밥나무라고 부르는 식물의 열매랍니다. 베리 종류라고 이해하시면 쉽겠네요. 실제로 술맛도 교회 성찬식에서 쓰는 아주 달달한 포도주나 고창에서 직접 담았다는 복분자주와 비슷합니다. 꽤 달다는 것이 특징이고요. 그래서 약간 걸쭉한 느낌도 듭니다. 


술이 꽤 달아서 샷으로 마시기 보다는 칵테일에 많이 씁니다. 섹스온더비치(이름은 참~ ^^), 핑크레이디 같은 칵테일이 카시스를 재료로 쓴 대표적인 칵테일이지요. 이미 드셔본 분들 많겠지만, 카시스가 들어간 칵테일은 대부분 아주 달콤한 맛입니다. 그러나 카시스도 알콜도수가 15도나 되는 엄연한 술입니다. 단 맛에 홀짝 홀짝 들이키다가는 어느 순간에 확 취할 수도 있습니다. 




쿠포는 술을 못 마시는 사람입니다. 아버지가 술 마시다 죽은 까닭에 술을 혐오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동료들을 따라 술집에 갈 땐 카시스 정도는 마셔줄 정도로 꽉 막힌 사람도 아닙니다. 거기에 막내둥이라는 애칭을 고려하면 동료들이 쿠포를 꽤 좋아했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독한 술을 못 마시는 사람, 하면 우리는 대개 순진한 사람을 떠올립니다(그렇다고 독한 술을 마시는 사람은 못된 사람이란 뜻이 아닙니다ㅏ ㅜㅜ). 쿠포는 순진하면서도 제르베즈와 결혼을 반대하는 누이에게 맞설 정도로 고집도 있는 사람이지요. 어쩌면 그 사랑이 참으로 순수하게 시작했기 때문일 겁니다. 


카시스와 쿠포. 소설을 읽다 보면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이란 생각이 듭니다. 작가도 그 점을 알고 쿠포의 별명을 막내둥이 카시스로 지었겠지요(라고 또 우겨봅니다 ^^). 하지만 쿠포는 인생에 누구나 한 번쯤은 다가오는 위기를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카시스 대신 독주를 마시면서 점차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위기가 닥칠 때 술처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반대로 술처럼 좋은 약도 없습니다. 결국 어떻게 마시느냐, 어떤 마음으로 대하느냐에 따라 술은 독이 되고 약이 됩니다. 어떻게 마시느냐에는, 누구랑 마시느냐도 포함됩니다. 언제든 연락해서 뭉칠 수 있는 좋은 술 친구 하나 정도는, 마치 비상금처럼 꼭 꿍쳐둬야 하는 법입니다. ^^ / Fin

신고

이연실의 목로주점 vs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저는 목로주점이 뭔지 잘 모르는 세대입니다. 제가 아는 목로주점은 '흙바람 벽에 30촉 백열등이 그네를 타는' 아주 로맨틱한 목로주점 뿐입니다. 그래서 대학 시절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을 처음 만났을 땐 무척 로맨틱한 이야기일거라고 상상했습니다. 그런데 왠걸, 제가 생각했던 로맨틱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참 우울하고 슬픈 이야기였지요. 그런데 그때는 왜 이 책 제목을 목로주점으로 번역했을까 같은 고민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전 대학 다닐 땐 술을 거의 안 마셨거든요. 아마 대학 내내 마신 술이 소주 한 병, 맥주 두 병 정도 될 겁니다. 술에 관심도 없으니 주점을 뭐라 번역한들 저하고는 큰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마흔이 넘고, 술맛을 조금씩 알아가는 지금 다시 목로주점을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목로주점이 뭐야?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사전을 찾아보니 '목로'라는 게 '널빤지로 만든 좁고 긴 상' 이랍니다. 이런게 있는 술집이 목로주점이고요. 그래서 아, 이게 나름 바(Bar) 같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쨌든 제 상상력이 부족해선지 저는 도저히 목로주점이 어떤 술집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목로주점 이미지를 찾아봤지만 그 어느 사진도 오리지널 목로주점을 보여주진 않았습니다. 


그나마 찾은 정보를 정리하면 목로주점이란 구한말에 등장한 서민 술집이랍니다. 허름한 술집 안에는 널빤지 상이 하나 있고 그 위에는 안주거리가 올라가 있다는 거지요. 술을 시켜서 이 안주와 함께 마시는 집이었는데 안주는 기본으로 제공하고 술값만 내면 됐다는 겁니다. 대신 의자가 없이 서서 먹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마 선술집(서서 먹는 술집)으로 슬슬 이름이 바뀌지 않았을까, 그런 추측을 해봅니다. 


여기까지 뒤지다 보니 어라, 내가 뭔 뻘짓을 하는 거지? 번역이야 무엇이든 원 제목인 L’Assommoir 가 뭔지 찾아보면 되는 거잖아? 하는 생각을 했더랍니다. 이젠 다 까먹은 프랑스어 지식을 동원해 찾아낸 게 바로 이 그림입니다. 1900년대 파리 술집 풍경이라네요. 



돈 없고 가난한 서민들이 앉아서 오래동안 마실 수는 없고 그저 서서 그날 하루의 시름을 달래는 곳. 그런게 L’Assommoir였는가 봅니다. 여기까지 만족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역자해설에 딱 이런 말이 있습니다. 


"목로주점을 뜻하는 프랑스어 Assommoir는 원래 보통 명사로서 짐승을 도살하는 데 사용되는 도살용 몽둥이라는 뜻과 불순한 술을 파는 술집 또는 술집 주인이라는 뜻을 지닌다."


목로주점(하) 역자해설 중에서, 유기환, 열린책들

 

아하, 그렇지. 이런 뉘앙스가 있는 술집이 이 소설의 배경이 되어야지. 30촉 백열등이 그네를 타는 목로주점은 절대 이 소설의 배경이 아닌게야. 하지만 왜 목로주점이라고 번역했을까요. 선술집, 대포집 등의 어감보다는 목로주점의 어감이 훨씬 '문학답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콜롱브 영감의 목로주점에 있는 기다란 카운터를 목로라고 여겼기 때문일까요. 여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제목의 어감을 이해하고 나니 목로주점에 몰입하기가 좀 더 쉬웠습니다(라고 우겨봅니다. ^^ 안 그러면 목로주점을 찾아 헤맨 시간들이 의미가 없어지니까요). 


자, 그럼 콜롱브 영감의 목로주점에선 무슨 술을 팔았을까요? 


"콜롱브 영감의 <목로주점>은 푸아소니에 가와 로슈슈아르 대로가 만나는 길모퉁이에 있었다. 간판에는 끝에서 끝까지 푸른 글자로 기다랗게 쓰인 하나의 낱말, <증류주 Distillation>라는 하나의 낱말만이 보였다."


목로주점(하), 에밀 졸라, 유기환 옮김, 열린책들


네, 증류주를 팔았겠네요. 게다가 이 주점에는 증류기도 있었습니다. 가히 악마의 부엌이라고 부를만할 증류기가요. 콜롱브 영감이 어떤 술을 증류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아마 과일 술을 주로 증류했을 겁니다. 포도로 만든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가 제일 많았을 것 같네요. 실제로 영어판에는 브랜디라는 표현이 중간 중간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마시는 이런 고급 브랜디는 아니었을 겁니다. 싸구려 와인을 증류해 만든 싸구려 브랜디로 도수도 일정하지 않고 맛도 거칠었겠지요. 하지만, 고단한 서민이 잠시 자기 삶을 잊고 영혼을 내려 놓을 수 있기엔 충분했습니다. 내려놓은 영혼을 잃어버리지만 않는다면, 목로주점은 꽤 훌륭한 안식처였겠지요. 그러나 결국 자제하지 못하고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들 때문에 목로주점은 이 불행한 비극의 제목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연실의 목로주점과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이 겹치면서, 저는 목로주점의 정체성을 혼돈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목로주점의 이미지는 여전히 이연실에 남겨두렵니다. 술이란 약이기도 하고 독이기도 하지만, 좋은 사람과 함께 마시면 언제든 약이 되는 법이라는 걸 전 알고 있으니까요. / Fin

신고
  • BlogIcon 서미 2013.08.25 15:0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좋은 글 고맙습니다.
    목로주점 읽어봐야겠어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3.08.26 00:10 신고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읽은 걸 후회하진 않으실 거에요 ^^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몹시 목이 말랐던 제르베즈는 포도주를 몇 방울 떨어뜨린 물을 여러 잔 마셨다."


목로주점(상), 에밀 졸라, 유기환 옮김, 열린책들 


책 제목처럼, 졸라의 목로주점에는 술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옵니다. 그러나 목로주점의 술은 인생을 즐겁게 만드는 술이 아니라 인생을 망치는 술입니다. 어디 목로주점 뿐이겠습니까. 문학에 등장하는 술은 대부분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란 천사보다 악마의 이야기를 더 좋아하기 때문일까요. 


목로주점과 술 이야기는 나중에 통으로 묶어서 해보고, 오늘은 아주 가벼운 구절 하나만 챙겨 봅니다. 


자기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도망간 랑티에 때문에 다시는 남자 따위와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제르베즈지만 쿠포의 끊임없는 구애에 결국 마음을 허락하고 쿠포와 결혼까지 합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피로연장인 '은 풍차' 식당에서 목이 말랐던 제르베즈는 포도주를 몇 방울 떨어뜨린 물을 마시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제르베즈는 술을 역겨워했고 쳐다보기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남편인 쿠포 역시 독주는 딱 질색이었지요. 


이 부분을 보고 역시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여자)는 없고나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요즘은 열 번 찍다간 스토킹으로 고발 당합니다. ^^ (뭔 쓸데없는 소리를 ㅜㅜ) 


아,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술과 물입니다. 우리는 흔히 술에 물타는 행위를 거의 범죄처럼 취급합니다. 물론 술 양을 늘리려고 물을 타는 진짜 범죄 행위가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술에 물을 타는 행위는 사실 술을 만드는 회사부터 술을 마시는 사람들까지 흔히 하는 행동입니다. 


술 만드는 회사가 술에 물을 타다니! 분노하시겠지만 실제로 우리가 가장 흔히 마시는 소주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참xx, 처음00 같은 소주는 고구마, 보리 등등 여러 곡식들을 발효하고 증류해서 90도 가량의 소주 원액을 만들고(이걸 주정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에 물과 감미료를 타서 제품 별로 16 ~ 25도 사이의 도수를 맞춰 출시합니다. 그래서 '희석식 소주'라고 부르는 거지요. 


위스키나 브랜디 같은 증류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신의 솜씨가 있는 전문가라 해도 해마다 품질이 다른 포도나 곡물로 해마다 다른 날씨에서 해마다 다른 통에 술을 담그는데 그 도수를 똑같이 맞출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에게 나오는 술은 도수가 언제나 똑같지요? 이건 물이나 도수가 다른 같은 술을 섞어서 도수를 맞추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심지어 맥주도 물을 섞어 도수를 맞추고 맛을 내기도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술 제조회사 마다 달라 자기들의 비법이 되는 셈이지요. 


게다가 술에 물을 타면 좋은 점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독한 술을 부드럽게 마실 수 있습니다. 물론 술의 제맛을 즐기려면 스트레이트가 제격이겠습니다만 모든 사람이 독한 술을 즐겨 마실 수 있는 건 아니지요. 게다가 술에 물을 타면 독한 맛 뿐 아니라 향까지 부드러워집니다. 위스키나 브랜디의 향이 와인 못지 않게 얼마나 우아하고 화려한지 물을 타서 향을 맡아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일본 술 회사가 자기네 위스키를 맛있게 즐기라고 소개한 미즈와리 칵테일


그래서 칵테일이 발달한 일본에서는 물과 위스키를 2:1 정도로 섞은 '미즈와리'라는 칵테일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 비율이 위스키의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비율이라도고 하지요. 스카치 위스키를 마시기 힘든 분들은 이 방법을 써보는 것도 좋습니다. 스카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저도 어쩔 수 없이(!) 스카치를 마시는 날엔 이렇게 마십니다. ^^ 


뭐, 성경에 보면 예수님도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항아리에 물을 부어 포도주를 만드셨다는데… 아마 항아리에 남아 있는 와인에 물을 더 부어서 맛을 내신 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봅니다(흐음, 설마 이런 걸로 신성모독이라고 하지는 않겠지요 ㅜㅜ). 그저 웃자는 얘기입니다. 


술과 물. 좋은 의도로 잘 섞으면 술을 마시는 좋은 방법입니다. ^^ / Fin


PS> 참고로 제목으로 삼은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은 틀린 말입니다. 원래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입니다. ^^ 


신고

웃는 남자 - 여행객의 필수품, 에일

"절벽 아래에는, 여행객들이 가져가는 짐들이, 출발의 와중에 무질서하게 쌓여 있었고, 그것들은 다리로 사용하는 널빤지 덕분에 선박으로 신속하게 옮겨졌다. 비스킷 몇 포, 절인 대구 한 통, 휴대용 수프 한 상자, 식수 한 통, 맥아 한 통, 타르 한 통, 에일 너덧 병, 여러 가닥 가죽띠로 동여맨 커다란 여행 가방, 작은 여행 가방들, 고리짝들, 횃불을 밝히거나 신호를 보낼 때 쓸 삼 부스러기 한 뭉치 등, 그들의 짐은 그런 것들이었다. 누더기를 걸친 사람들은 그러나 저마다 여행 가방을 가지고 있었다. 유랑 생활의 징표였다. "


- 빅토르 위고, 웃는 남자, 이형식 옮김, 열린책들 중에서 


한 무리의 거지들이 밀항하려고 우르카에 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거지들이라도 소지품이 없을 수 없겠지요. 이 글 다음 문장에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끼니 수단을 내동댕이치지 않는 한…" 먹고 살기 위한 최소한의 도구는 갖고 다녀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그 최소한의 도구에 맥아와 에일이 있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맥아는 보리를 싹 틔운 녀석으로 맥주나 위스키의 기본 원료가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에일은 아무데서나 물을 마실 수 없었던 그 시절의 필수 음료수였을 겁니다. 게다가 때론 약으로도 썼을 테고요. 


에일(Ale)을 그냥 영국 흑맥주 정도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에일에도 맑은 빛깔 맥주가 많이 있습니다. 에일은 맥주를 발효시키는 한 가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엔 정말 수도 없이 많은 맥주가 있습니다만 맥주를 무조건 둘로 나누라 하면 에일과 라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차이점은 발효할 때 어떤 효모를 썼느냐입니다. 


맥주를 발효시키는 미생물이 바로 효모인데요, 이 효모는 상면발효 효모와 하면발효 효모가 있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하시겠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상면발효는 위쪽에서 발효한다는 뜻이고 반대로 하면발효는 아래쪽에서 발효한다는 뜻이라는 걸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일단 여기서 맥주 만드는 과정을 간단히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보리를 물에 담가 싹을 띄워 맥아를 만듭니다. 이 맥아를 잘 말려 볶는데, 이때 얼마나 많이 볶느냐에 따라 맥주 색깔이 결정됩니다. 웃자는 얘기겠지만 기네스 맥주를 세운 아서 기네스가 맥아를 볶다가 졸아서(!) 좀 태웠는데 태운 맥아로 만든 맥주가 정말 맛있어서 계속 태웠다 어쨌다 하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제 볶은 맥아를 갈아 물에 넣고 끓여 맥아즙을 만듭니다. 이 맥아즙에 효모를 넣고 발효시키면 알콜과 탄산이 생기면서 맥주가 되는 거지요. 잘 숙성시키고 깨끗하게 걸러내면 맥주 완성!(물론 간단히 써서 이 정도지, 이 과정들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렵겠습니까 ^^)


다시 발효 과정으로 돌아갑니다. 맥아즙에 넣는 효모는 발효 온도에 따라 좀 높은 온도(16도 정도)에서 발효하는 효모가 있고 낮은 온도(10도 정도)에서 발효하는 효모가 있습니다. 높은 온도에서 발효하는 효모는 발효가 끝나면 맥주 위로 떠오르고, 낮은 온도에서 발효하는 효모는 가라앉는다는군요. 이 과정을 우리 말로 옮기려다 보니 상면발효, 하면발효 같은 괴상한(!) 용어를 쓸 수 밖에 없었나 봅니다. 


에일방식으로 만든 일본 부엉이표 맥주. 사무실에서 혼자!


상면발효 맥주는 탄산이 적은대신 묵직하고 부드러운 맛을 냅니다. 반면 하면발효 맥주는 탄산이 많고 시원하며 짜릿하지요. 상면발효 맥주를 에일이라 부르고 하면발효 맥주를 라거라고 합니다. 네, 우리나라 맥주에 붙은 라거는 상표가 아니라 맥주 제조 방식으로 구분한 명칭입니다. 


에일 맥주의 천국은 역시 영국이고요, 그래서 영국을 배경으로 한 웃는 남자에도 에일 얘기가 자연스레 등장하는 듯 싶습니다. 애당초 맥주는 사실 죄다 에일 방식이었을 겁니다. 라거 방식이 등장한 건 온도를 낮출 수 있는 냉장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라 하거든요. / Fin



신고

봄바람 부는 날, 창모루에 갔다

봄바람이 불 때면 누구나 바람을 쐬고 싶은 법이다. 아침에 껴입은 두터운 외투가 낮이 되면 부끄러워지는 4월, 그냥 잠깐이나마 바람을 좀 쐬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내 영혼이 자유롭다고 해도 몸까지 자유로울 수는 없으니. 그저 한숨으로 바람을 내고 있는데 A가 말했다. 창모루 어때? 대단한 인물이다. 어쩜 그렇게 딱 좋은 집을 골라내는지. 


창모루는 올림픽대로 동쪽 끝, 미사리 지나 팔당대교로 꺾어 올라가는 그 코너에 있다. 멀지도 않고 바람 쐬며 드라이브 하기에 딱 좋은 거리에 있는 셈이다. 단점은 차로 가야 하니까 누군가 한 사람은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는 것. 물론 대리를 부를 수도 있지만, 그러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고 만다. 왜냐고? 이 얘긴 나중에 다시. 


창모루의 메인 메뉴는 매콤한 해물 칼국수다. 국수 대신 수제비를 넣기도 하고, 수제비와 국수를 다 넣기도 한다. 이름하여 칼제비. 국수도 좋아하고 수제비도 좋아하는 우리는 당연히 칼제비. 그것도 딱 1인분만 시킨다. 



배추김치와 무김치 그리고 칼제비에 뿌릴 김가루가 한 접시 가득 나오고 잠시 후 노란 양은냄비에 담긴 칼제비가 나온다. 유부로 덮여 있어 안에 들은 건 잘 보이지 않지만 수제비와 국수가 잘 들어 있다. 금세 팔팔 끓어오르는 칼제비를 보고 있다가 적당한 때 김가루를 붓는다. 김가루는 얼마든 더 준다. 대신 셀프다. 김가루 좋아하는 우리는 한 접시 더. 




국물이 끓어오르기를 기다려 소주를 한 잔 청한다. 오늘 운전은 A가 당첨. 혼자서 소주 한 병을 먹을 수 있는 난 신났다. 면과 수제비가 채 익기도 전에 소주 한 잔을 들이키고 총각김치 한 쪽을 집었다. 김치와 먹는 소주는 좀 처량하지만(!) 김치 뒤에 또 다른 안주가 있을 땐 김치도 성급한 술잔을 달랠 좋은 안주인 법이다. 뭔 말이냐고? 김치 맛 괜찮다는 얘기다. 



국수와 수제비가 익기를 기다려 한 숟가락 들었다. 앗 뜨거 하면서도 호호 불어 먹는다. 나름 바지락과 새우, 오징어가 들어간 매콤한 국물이 괜찮다. 김가루와 유부도 잘 어울리고. 소주 안주로 삼기에 이만한 국수도 드물다. 호호 불어 국수와 수제비를 건져 먹을 무렵, 감자전이 나왔다. 



이 집 감자전의 특징은 크다는 거다. 왕돈까스를 담을 만한 접시를 꽉 채운 감자전. 맛은 뭐 흔한 감자전 맛하고 다를 바 없지만 노릇노릇한 감자전을 찢어 입에 넣으면 쫀득쫀득하면서 풍성한 느낌이 든다. 바로 이게 감자전 맛이니까. 칼제비를 1인분만 시킨 건 바로 이 감자전 때문이다. 창모루 처음 왔을 때 칼제비 2인분에 감자전 시켰다가 반도 못 먹고 남겼다. 얼마나 아까왔든지. 


마지막 술잔을 털고 칼제비 국물까지 싹싹 긁은 뒤 남은 감자전 한 쪽을 입에 넣으면 식사 끝. 알콜의 힘과 얼큰한 칼제비 뒷맛, 감자전의 묵직함이 기분 좋은 여운으로 남는다. 이렇게 먹고 나오면서 내는 돈은 칼제비 6천원, 감자전 1만원, 소주 3천원. 합해서 만구천원이다. 이래서 대리를 부르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게다. 


A의 투덜거림을 귓전으로 흘리고 다시 올림픽대로를 돌아 오는 길, 살짝 연 창으로 봄바람이 들어왔다. 흐뭇했다. 그저 흐뭇하단 말 외에 이 감정을 어찌 설명할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를 뿐이다. / Fin 


덧> 쓰고 나니 이 집엔 해물칼xx 시리즈와 감자전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집에서 만든 것 같은 투박한 계란말이(!), 닭발, 오돌뼈, 꼼장어 같은 포장마차 메뉴도 있습니다~ ^^ 

신고

개츠비와 칵테일 #3 - 민트 줄렙


"하지만 속옷이 축축한 뱀처럼 다리를 휘어 감고 땀방울이 등줄기를 시원하게 가르던 몸의 기억만은 생생하다. 이 생각은 욕실 다섯 개를 빌려 시원하게 냉수욕이나 하자는 데이지의 제안에서 비롯되어 <민트 줄렙을 마실만한 장소>라는 형태로 좀 더 구체화되었던 것이다."


-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랄드, 한애경 옮김, 열린책들 


찌는 듯이 무더운 어느 날, 데이지가 개츠비를 초대하고 톰은 진리키를 대접합니다. 그러나 더위에 지친 데이지는 자꾸 시내로 나가자고 조르고 그 과정에서 남편인 톰이 보는 앞에서 개츠비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사고를 저지르고 말지요. 


"당신은 멋져요" 데이지가 다시 한 번 말했다. 

데이지는 개츠비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셈이었고 톰 뷰캐넌은 이를 알아차렸다. 그는 충격을 받았다. 


자, 분위기는 슬슬 대형 사고를 치기 직전으로 달아오릅니다. 빈정이 상한 톰은 시내로 나가자며 위스키 한 병을 챙겼고 일행은 차를 나눠 타고 데이지가 추천한대로 민트 줄렙을 마실만한 장소를 고르다가 플라자호텔 스위트룸으로 갑니다. 물론 그 과정에도 복잡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생략. ㅋ 그리고 등장한 술이 민트 줄렙입니다. 


민트 줄렙은 이름처럼 민트를 넣은 칵테일입니다. 미국 남부에서 시작한 칵테일로 버번 위스키와 민트, 설탕으로 만들지요. 



온더락스 만한 잔에 위스키를 15ml 정도 붓고 민트 잎, 설탕 2스푼 정도를 넣은 후 잘 찧어줍니다(뭐, 머들러라는 전문 기구가 있으면 좋겠으나 없으면 나무 젓가락 뒤로 찧어도 됩니다 ^^). 적당히 찧고 설탕도 어느 정도 녹은 듯 하면(다 녹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설탕 가루 남아 있는 게 또 나름 매력이니까요) 얼음으로(기왕이면 잘게 부순 얼음) 잔을 채우고 위스키를 30ml 더 붓습니다. 그리고 잘 저어준 후 민트 잎으로 장식하면 끝. 얼음이 적당히 녹아 시원한 느낌이 들 때까지 저으면 됩니다만, 뭐… 내키는대로 하시면 됩니다. 


이게 민트 줄렙입니다. 줄렙은 쓴 약을 먹은 후 마시는 달콤한 음료를 말하는 아라비아어랍니다(요건 인터넷 검색 ㅜㅜ). 


이름은 한없이 달콤해 보이나 위스키 45ml에 민트 잎과 설탕 밖에 들어가는 것이 없으므로 사실 꽤 독한 술입니다. 그래서 물이나 탄산수나 토닉워터를 부어 마시기도 합니다. 여튼 만만한 술이 아니어서 무더운 날 마시면 훅 올라올 것이 틀림없습니다. 게다가 위대한 개츠비에서는 그저 민트잎과 얼음으로만 만들 것을 암시합니다. 


"웨이터가 노크를 하더니 으깬 민트와 얼음을 들고 들어왔다."


여기서 제 고민은 왜 피츠제랄드가 하고 많은 술 중에 민트 줄렙을 골랐을까 하는 거였습니다. 말도 안되는 억측을 해보자면…


버번 위스키로 만든 민트 줄렙은 가장 미국적인 칵테일 중 하나다, 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고, 데이지를 사이에 두고 톰과 개츠비가 다투는 장면을 자극하기엔 민트 줄렙의 독하면서도 달달한 맛이 잘 어울렸기 때문이겠다 라고도 생각합니다. 경계를 넘어선 사랑이란, 독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달콤할테니까요. 뭐,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  


그러나 결국 주인공들은 민트 줄렙은 입에 대지도 못한 채 파국을 향해 달려 갑니다. 사실 민트 줄렙을 마셨으면 그 비극적인 사고가 음주운전 때문이라고 우길 수도 있었을 텐데, 책에선 '위스키를 따지도 않았다'고 했으니 음주운전은 아니었겠네요. 


참고로 칵테일 레시피를 소개하면서 30ml다 45ml다 뭐 이런 얘기를 하는데, 이걸 어떻게 재서 마시란 말이냐, 하고 따지실 수 있겠습니다. 골치 아플 거 없습니다. 집에 양주잔 하나 정도는 다 있으시지요? 그게 한 잔에 30ml입니다. 그러니 30ml를 넣으려면 한 잔 넣으면 되고 45ml를 넣으려면 한 잔 반 넣으면 됩니다. ^^ / Fin 




신고

개츠비와 칵테일 #2 - 진리키

바로 그때 톰이 얼음이 가득 들어 찰랑거리는 진리키 넉잔을 들고 돌아왔다. 

개츠비가 자기 잔을 받아들었다. "정말 시원해 보이네요." 


-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랄드, 한애경 옮김, 열린책들 중에서


'이런 무더위 속에서는 불필요한 몸짓 하나하나가 평범한 일상을 모독하는 셈'이라고 작가가 썼을 정도로 무더운 여름에 이렇게 얼음이 찰랑거리는 칵테일은 상상만 해도 짜릿합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칵테일 이름은 다름 아닌 진리키. 


진 리키 Gin Rickey는 진(Gin)과 라임주스를 섞어 만든 단순한 칵테일입니다. 하이볼 편에서 소개한 하이볼 잔 같은 길고 넉넉한 잔에 얼음을 채우고 진 30 혹은 45ml를 부은 후에 라임 조각(흔히 웨지라고 부르는 ㅜㅜ)을 짜내고 그 라임을 그대로 잔에 넣습니다. 그리고 탄산수를 부어 잔을 가득 채우지요(이걸 풀업이라고 합니다). 살짝 저어(이건 스터라고 하고요) 그냥 시원하게 마시면 됩니다. 


원래 진 리키는 1880년대 미국 워싱턴의 슈메이커라는 바의 바텐더인 조지 윌리엄슨이란 사람이 만들었다 합니다. 처음엔 진이 아닌 버번 위스키를 썼다는군요. 이 술을 당시 유명한 로비스트인 조 리키 대령이란 사람이 좋아했대나 어쨌대나 해서 처음엔 조 리키라고 불렀는데요 베이스를 진으로 바꾸면서 술이 대박이 났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름도 자연스레 진 리키가 되었겠지요(요건 영문 위키 검색 ^^).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사실 진 리키란 술을 제대로 맛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라임을 구하기 어려워서 그렇습니다. 즙이 넉넉한 라임을 아낌없이 짜 넣어야 하는데 호텔 바나 정말 유명한 칵테일 바가 아닌 이상 라임이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솔직히 시원한 맛에 먹지, 칵테일로서 아주 짜릿하지도 않습니다. 라임이란 게 레몬 비스무레하게 시큼새콤한 맛이니까요. 그래서 최근 바텐더들은 달콤 쌉싸름한 맛을 내기 위해 이런 저런 부재료를 쓰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진 리키보다는 진 얘기를 더 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진을 그다지 많이 마시지 않는데 사실 이 진이 아주 훌륭한 술이거든요. 요즘 대형마트 술 코너에 가면 탠커레이, 탠커레이 넘버10, 봄베이 같은 진이 있는데요, 탠커레이 넘버 10 한 번 드셔보길 추천합니다. 솔향 같은 상큼하고 시원한 향에 그저 감탄하실 겁니다. 


진은 칵테일로 응용하기에 정말 좋은 술입니다. 진 자체도 훌륭하지만 다른 부재료와 너무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진과 토닉워트를 1:2 취향에 따라 1:3으로 섞고 레몬 조각만 넣어도 훌륭한 진토닉이 됩니다. 흔히 진토닉을 무척 맛없는 칵테일로 알고 있는데 칵테일을 잘 모르는 술집 주인들이 싼 진에 김빠진 토닉워터를 써서 그런 겁니다. 탠커레이 넘버10 같은 진이라면 정말 훌륭한 진토닉을 누구나 만들 수 있습니다. ^^ / Fin 


신고

개츠비와 칵테일 #1 - 하이볼

"그래, 하이볼로 줘요."


-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랄드, 한애경 옮김, 열린책들 중에서. 


무더운 7월 하순, 개츠비는 닉을 데리고 마이어 울프심을 만나러 갑니다. 키가 작고 납작코인데다가 코털까지 무성한(!) 울프심은, 개츠비가 비록 도박사라고 소개는 하지만, 악명 높은 갱이었지요. 닉은 울프심이 1919년 월드시리즈를 조작했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아찔한' 기분까지 느낍니다. 뭐 어쨌든. 이렇게 무서운 사람을 만날 땐 술 한 잔 마셔야 하지 않을까요. ㅋ 


이 셋이 만난 자리에서 웨이터가 권하는 칵테일이 하이볼입니다. 하이볼은 1자로 쭉 뻗은 긴 잔에 얼음을 채우고 위스키와 탄산수를 섞어 마시는 칵테일인데요, 얼음과 탄산수가 들어 있으니 아주 시원한 칵테일입니다. 여름에 마시기엔 그만인게죠. 얼음이 없던 시절에도 탄산수의 톡 쏘는 맛이 충분히 시원했을 겁니다. 위스키 30 혹은 45ml에 탄산수를 부어 가볍게 섞은 후 레몬 정도를 띄워 마시니까 만들기도 쉽고 위스키나 탄산수 종류에 따라 아주 다양한 맛을 낼 수 있지요. 



사진 속 하이볼은 어떤 작은 바에서 주문한 것인데요, 바텐더가 나름 자기만의 비법으로 만들었다고 자랑하던 버번 베이스 하이볼인데... 깜박 이름을 잊었다는 ㅜㅜ 잭다니엘과 꼬엥트로를 섞어서 잭의 독한 맛은 감추고 오렌지의 향긋한 맛을 잘 살렸더군요. 좋았습니다. 


한때 어떤 위스키 브랜드는 하이볼을 더 맛나게 마시는 방법이라며 자기네 위스키를 탄산수와 섞어 마셔라, 뭐 이런 프로모션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류의 칵테일을 왜 하이볼이라 부르냐 하면… 그 칵테일을 담는 길죽한 잔 이름이 하이볼 글래스라서 그렇습니다. 


여튼 더운 여름에 시원하게 마시기엔 딱 좋은 칵테일이 하이볼이지요. 하지만 술을 시원하게 마시려고만 하이볼 같은 칵테일을 만든 건 아닙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인 1920년대는 금주법이 판치는 시대였지요(물론 위대한 개츠비 소설 속에서는 금주법 시대라는 걸 깨닫기 어려울 정도로 술 얘기가 많이 나오지만!). 몰래 술을 마시기에 칵테일은 참 좋은 방법이지요. 마치 물이나 주스를 마시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실제로 미국에서 칵테일이 발달한 까닭이 금주법 때문이었다고들 합니다. / Fin 



신고
  • BlogIcon 핸즈 2013.12.09 10:5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어떤 작은 바'의 사진이 낮이 익은데요? ㅋ 혹시 석촌호수 쪽의 카페루이 아닌가요?? ㅋㅋ

각자 따라 마시기에요 - 버번 위스키


"여러분 만나서 반가와요." 부인이 목쉰 소리로 인사했다. "커피를 드시겠어요, 아니면 한잔 하시겠어요?" 아내가 자랑스러운 듯, 데이킨의 눈에는 정겨운 빛이 감돌았다. 

"오다 보니 무척 춥던데요." 맥이 주섬주섬 말했다. 

순금 의치들이 반짝였다. "그러실 줄 알았어요. 한잔하면 나아질 거에요."

부인은 위스키 한 병과 칵테일용 컵 하나를 꺼냈다. "각자 따라 마시기에요. 술잔 높이보다 더 따를 수는 없으실 테죠."

술병과 잔이 돌았다. 데이킨 부인은 마지막으로 자기 잔을 단숨에 들이켜고는 술병의 마개를 닫고 도로 작은 찬장에 가져다 두었다. 


- 존 스타인벡, 의심스러운 싸움, 윤희기 옮김, 열린책들 중에서 


존 스타인벡의 의심스러운 싸움. 전 미국 역사를 잘 모르지만 ㅜㅜ 1930년 대 공산주의 운동이 한창인 시기의 이야기입니다. 


착취당하는 노동자를 모아 파업을 일으키려는 맥과 짐이 또 한 무리의 노동자들 지도자인 데이킨을 처음 만나러 갑니다. 때는 찬 바람이 부는 늦가을. 바람은 강하고 차지만 노동자들은 변변한 옷 조차도 없었겠죠. 꽤 추웠을 겁니다. 그때 데이킨 부인이 내놓는 건 위스키. 아마도 버번 위스키일 겁니다. 미국이니까요. 


알아서 취향껏 한잔씩만 따라 마시라고 말하는 데이킨 부인의 센스가 재밌습니다. 한잔씩 돌려 마셨다는 얘기만 읽어도 왠지 몸이 훈훈한 것 같은 느낌이 들지요. 그런데 저는 참, 이해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장면 뿐 아니라 서양 드라마 같은데 보면 남자들이 사무실에서 온더락스 잔에 얼음도 없이, 안주도 없이 쌩으로 위스키 한잔씩 따라 무슨 물이나 주스 마시듯 마시잖아요? 그런 장면이 하도 멋있어서 저도 사무실에서 좀 따라해 봤습니다만! 일단 한잔 드릴까요 하면 손님들이 놀라 까무러치고, 설령 드신다는 손님이 있어 같이 마셔도 그 독한 맛에 콜록 콜록 기침을 하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안주도 없이! 아무리 술을 좋아해도 저는 아직까지 그 경지는 아닌 듯. 그 술 맛있게 마시는 장면은 아무리 생각해도 술 회사들의 로비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저 혼자 생각입니다. ㅋ 


버번 위스키 얘기를 좀 할까요. 위스키는 혹시 뭘로 만드는지 아세요? 술자리에서 제가 이렇게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거의 대답을 잘 못합니다. 원래 위스키는 보리로 만듭니다. 네, 맥주 만드는 그 보리요. 과정이 좀 복잡하긴 합니다만 보리를 발효하면 맥주가 되고, 증류하면 위스키가 됩니다. 그래서 보리로 만든 위스키를 몰트(Malt) 위스키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보리가 없을 때도 있잖아요? 원래는 위스키에 세금을 열 붙이니까 도망가서 보리 말고 다른 곡물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어쨌든 보리 대신 귀리, 호밀 같은 곡물로도 위스키를 만들었답니다. 그걸 그레인(Grain) 위스키라고 부르고요. 그런데 보리 위스키를 먹다 보니 곡물 위스키가 아무래도 좀 맛이 덜한 것 같아서 둘을 섞기 시작했대요. 그랬더니 가격대 성능비가 훌륭한 위스키가 태어났다 아닙니까. 그걸 섞었다고 해서 블렌디드 위스키라고 합니다. 발렌타인, 조니워커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섞은 위스키입니다. 


청교도들이 영국을 벗어나 미국에 딱 왔는데 보리가 있을 턱이 없지요. 가만 보니 옥수수 천국이더라 이겁니다. 말이 먹는 귀리(!)로도 술을 만드는데 옥수수로는 못 만드랴 싶어서 담았더니 아, 이게 또 나름 맛이 괜찮더라 이거지요. 이 술을 처음 만든 켄터키 주 버번 지역 이름을 따서 버번 위스키라 부르기 시작했답니다. 지금은 미국에서 나는 위스키를 그냥 버번 위스키라고 부르는데, 미국 알콜 관련 법에 버번이라고 부르려면 미국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답니다. 



미국 하면 떠오르는 위스키 중 하나가 잭다니엘입니다. 짙은 갈색에 초콜릿 향을 뿌리는 이 술을, 저도 30대 초반엔 엄청 마셨습니다. 미국 술이니까 잭다니엘도 버번이라고 부르면 되겠거니 하지만, 잭다니엘은 테네시 위스키라고 합니다. 테네시 주에서 만들어서 그렀다는 건데요, 큰 차이는… 증류한 술을 사탕단풍나무를 태워 만든 숯으로 한 번 걸러낸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콜릿 같은 진한 향과 맛이 나는 거라고요.  


데이킨 부인이 내놓은 위스키를 버번일 거라고 추측한 건, 가난한 노동자들이 물건너온 비싼 스카치 위스키를 마시진 못했을 거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어쨌든 미국인들이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잘 견디도록 버번 위스키도 나름 한 몫하지 않았을까요? 미국이 버번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건,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소주를, 엄청 구박하면서도, 여전히 사랑하는 것처럼요. / Fin

신고

깔끔한 국수, 소연

그가 점심을 먹으러 오겠단다. 한 해에 한 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멀기도 멀고, 바쁘기도 바쁜 사람인데 특별히 점심을 먹어주시겠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뭘 대접해야 할꼬? 딱히 생각나는 게 없어서 일단 코엑스 옆 오크우드 호텔 건너편 주차장에 차를 대라 일렀다. 주차요금이 좀 비싸긴 하지만 워낙 넓으니 댈 만하다. 그런데 이 주차장이 얼마 전에 현대백화점 전용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앞으로 외부 차량이 차를 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뭐, 주차요금 내면 되겠지. 


난데없이 주차장 얘기로 샜다. 여튼 주차장에서 그를 만났다. 반갑게 악수를 하고 안부를 물었다. 여전히 변함없는 그 모습이 꽤 보기 좋다. 먹는 게 젤 고민이여, 샤브샤브나 먹을까요, 뭐 이런 수다를 떨면서 주차장 뒷길로 벗어나는데 깔끔한 간판이 하나 보였다. '소연'이다. 국수와 만두 전문이라는. 그도 나도 국수와 만두를 좋아하는 까닭에 저기 한 번 가 볼까, 자연스레 소연으로 들어섰다. 


점심시간이 채 안 되었는데 자리가 거의 찼다. 단체석 테이블 사이, 비어 있는 2인석 자리에 몸을 밀어 넣고 메뉴를 보다가, 국수와 만두를 시켰다. 국숫집 간판 보고 들어왔으면 국수를 시켜야지. 메뉴엔 국밥도 있었고, 보쌈도 있고, 녹두전이나 감자전도 있었다. 물론 막걸리나 소주도 있을 테지. 하지만 국수에 소주를 주문할 내공은 못되어서 그냥 참았다. 



식탁에 깐 종이, 숟가락을 씌운 봉투. 그리고 찬이 나왔다. 깔끔했다. 그리고 국수. 멸치국물로 육수를 낸 국수다. 생긴 건 약간 멀갰지만 호박과 고추, 버섯 고명이 이쁘다. 국물부터 맛을 봤다. 어라, 이거 깔끔하네. 국수도 한 젓가락 입에 넣었다. 깔끔하네. 



흔히 깔끔하다고 할 땐, 우선 깨끗하고, 화려하진 않아도 예쁘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일 게다. 맛이 깔끔하달 땐 복잡하지 않고 자극하지 않으며 단순하면서도 입을 편하게 해준다는 걸 의미할 게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그리고 소연의 국수는 정말 깔끔한 맛이란 이런 거라고 알려줬다. 



정말 별거 없어 보이는 만두도 쫄깃하고 적당히 간이 배었다. 원래 나는 뚱뚱하고 두부가 잔뜩 들어간 만두를 좋아하지만 뭐 이렇게 작으면서도 피가 탱탱하고 풀 맛 나는 만두도 꽤 괜찮다. 뭐, 소연스럽다고나 할까. 


남자들 먹기에 국수 양이 좀 작은 듯 했지만 국물까지 싹 비우고 나니 모자라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긴 만두도 다섯 개나 먹지 않았던가. 이 정도면 점심식사 한 끼, 아주 깔끔하게 즐긴 셈이다. 맛이 깔끔하단 말은 이제 아무데서나 쓰면 안되겠다. 


소연 / 삼성1동 149-10 / 02-577-4490


점심엔 언제나 사람 많다. 저녁엔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보쌈과 빈대떡도 깔끔하다. 소주를 퍼지르는대신 막걸리 한 사발 정도면 딱 좋을 법 하다. 젠장, 쓰다 보니 낮술 또 땡긴다. ^^ 

신고
  • BlogIcon ^^ 2013.04.02 11:4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인연을 담는 식당인가요? 소박한 인연을 만드는 식당인가요? ㅋㅋ
    사진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좋네요~ 오늘같은 날씨엔 면이 최고! ㅎㅎ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3.04.07 14:48 신고 수정/삭제

      인연이야 어디서든 만들면 되겠지요 ^^

국수의 갑, 국수전골

국수는 누구나 부담없이 즐기는 음식, 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국수에도 비싼 넘이 있다. 흔히 하는 말로 '갑'이 있단 말이다. 나는 그 갑을 국수전골이라 생각한다. 맛있지만 아무 때나 먹을 수 없는, 어린 시절엔 누군가 사줘야 하고, 나이든 지금은 누군가 귀한 손님이 와야만 같이 먹는 그 국수전골. 


월요일은 우리 사무실 사십대 아저씨 셋이서 점심 먹는 날이다. 뭐 다른 날도 같이 먹긴 하지만, 월요일 만큼은 꼭 먹자, 그렇게 정해서 먹는 날이다. 그러다 보니 은근 메뉴에 신경 쓰인다. 그래봐야 순대국을 제일 많이 먹긴 하지만. 


오늘은 부산국밥 먹자, 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사장님이 말했다. 난 싫었다. 하지만 보스가 말하는데 바로 토를 다는 건 아랫 사람이 할 일이 아닌게지. 그래서 그냥 실실 웃기만 했다. 내 눈치가 이상했는지 아님 다른 거 뭐? 하시길래 오늘은 특별하게 국수전골 먹어요, 했다. 아 좋지, 그런데 어디?


사무실이 잠실에 있을 땐 롯데백화점 11층에 있는 한우리 국수전골을 자주 갔다. 1인분에 만오천 원. 고기는 호주산. 좀 비싸지만 꽤 깔끔하고 고급스럽다. 직원 수가 많지 않을 땐 회식도 했다. 최고 인기 메뉴였지. 



그런데 지금 사무실 근처에선 국수전골을 먹은 적이 없다. 아마 국수전골하면 그저 한우리가 최고니까 거기가서 먹어야지,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문득 국수전골이 먹고 싶어서 사실 아침에 슬쩍 한 군데를 찾아놨다.


양대창 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집에서 점심 메뉴로 국수전골을 하고 있었다. 일인분에 만육천 원. 강남이라 비싸긴 비싸고마, 머 그런 생각을 했지만, 어쩌랴. 먹고 싶은 날은 먹어야지. 들어가자마자 다른 메뉴는 보지도 않고 국수전골을 주문했는데, 어라, 끓여 나온단다. 



음식이란 맛도 중요하고, 가격도 중요하지만 보이는 것도 꽤 중요한데… 아무래도 점심 시간에 서빙하기가 너무 번잡스러워 그런가 보다 생각하면서도 왠지 손해보는 느낌이 들었다. 보글 보글 끓는 국수전골을 바라보고 흐뭇하게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 아, 상상만 해도 짜릿한데. 



여튼 다 끓여 대접에 담아 나온 국수전골을 보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소주 한 병을 불렀다. 이런 국물 음식에 소주가 없다는 건 범죄야 범죄… 혼자 궁시렁 거리며 시켰는데, 오후에 미팅이 있는 사장님은 한 잔도 입에 안 대시고, 또 한 아저씨는 아예 술도 못 마시고… 결국 나 혼자 반 병 꺾고 말았다. 


국물도 진했고 고기도 고소했고 국수도 잘 익었다. 하지만 왠지 한우리보다는 살짝 모자란 느낌이랄까. 이래서 첫사랑이 무서운게다. ㅋ 하지만 굳이 잠실까지 가서 먹느니, 여기서 먹는게 시간이나 뭐 그런 면에선 더 나은 게지. 역시 남자는 먼 첫사랑보다 가까운 여자를... (뭔 소리다냐 ㅉㅉ)


원래 맛집 글을 쓸 땐 적어도 세 번은 가보고 쓴다는 원칙이 있어서 식당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그래도 대충 조합해서 검색하면 어딘지 나오겠지만. ㅋ 다음엔 직원들 데리고 가서 낮술 한 잔 먹여야겠다. / Fin


신고

세계문학 속 브랜디 #3, 이방인

"우리는 바깥으로 나왔다. 레몽은 내게 고급 브랜디를 한잔 사주었다. 그런 다음 그는 당구를 한판 치고 싶어 했다. 내가 아슬아슬하게 졌다. 게임이 끝난 후 레몽이…"


- 알베르 카뮈, 이방인, 김예령 옮김, 열린책들 


뫼르소는 동네 사람들이 포주라고 여기는 레몽과 친구가 됩니다. 남들이 다 흉보는 사람과 친구가 되는 까닭은 '안 그럴 이유가 없어서'였습니다. 어느 일요일 아침, 레몽이 자기 집에서 정부를 때리다가 경찰에게 수모를 당합니다. 경찰이 가고 난 후 레몽은 뫼르소에게 와서 이런 저런 하소연을 하고, 나중에 경찰서에 불려가면 증인이 되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뫼르소는 그러기로 합니다. 급 기분이 좋아진 레몽이 뫼르소를 데리고 나가 비싼 브랜디를 사줍니다. 자기 편을 들어주는 뫼르소에게 한턱 쏘는 거지요. 그리고 2차로 당구를 치고 3차로 또 어디를 가자고 하지만 뫼로소는 거절합니다. 어째 노는 분위기가 한국 남자들하고 좀 비슷합니다. 세상 남자들은 다 똑같은 모양입니다. ㅋ 여튼. 


도대체 어떤 브랜디길래 고급 브랜디라고 했을까요? 다 아시는 것처럼 브랜디에는 VS, VSOP, XO 같은 등급이 있는데 레몽은 어떤 등급을 사줬을까요? 그건 모르겠고요. ^^ 


브랜디에는 몇 가지 등급이 있는데요, Bureau National Interprofessionnel du Cognac, 줄여서 BNIC, 우리 말로 하면 꼬냑국제사무국 정도로 해야할까요, 여기서 정의한 몇 가지 등급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VS는 Very Special의 약자입니다. 증류한 후 오크통에서 최소 2년은 숙성시켜야 VS를 붙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2년이란 기준이 중요한데요, 기준 일은 4월 1일입니다. 그러니 늦어도 3월 31일까지는 증류해서 통에 넣어야 하지요. 4월 1일 기준으로 통에 들어간 녀석은 Compte 0 즉 0살이고요, 이듬해 3월 31일 지나면 Compte 1 즉 한 살이 됩니다. 2년이란 Compte 2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Compte는 꽁뜨라고 읽으면 되겠고요 영어의 Count입니다. 


다음 VSOP는 Very Superior(혹은 Special) Old Pale의 약자입니다. 4년 이상 숙성, 즉 꽁뜨가 최소 4는 되어야 한다는 얘기지요. 여기서 왜 Very Light Colored 라는 뜻의 Pale 이란 말이 붙었느냐 하면요… 브랜디에 맛과 색깔을 넣으려고 설탕과 카라멜 같은 걸 첨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1817년에 영국 왕실에서 그딴 거 넣지 않은 순수한 브랜디를 내놔라, 해서 Pale 이란 말을 갖다 붙였다는군요. 네, VSOP 급은 설탕이나 카라멜 같은 게 안 들어간 순수한 브랜디란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XO는 Extra Old고요, 최소 6년 이상 숙성해야 이 등급을 붙일 수 있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우리가 꼬냑 얘기들어 보면 20~30년은 기본이고 심지어는 70년 묵었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겨우 6년 이상 숙성했는데 XO급이라는게 좀 이해가 안됩니다. 



일단 '최소'라는 표현에 집중합니다. 최소라는 말은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붙일 수 있다는 말이겠지요. 실제로 제조사들은 그보다 훨씬 오래 숙성시켜 브랜디를 만듭니다. XO급은 적어도 20년에서 많게는 70년 혹은 그 이상 숙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그런데 왜 기준 년도를 이렇게 낮게 매겨놨을까요? 


브랜디는 포도를 발효시켜 와인을 만든 후 이 와인을 증류해 만듭니다(아, 물론 좀 더 복잡한데 그냥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 이 와인을 오크 통에 넣고 숙성시키는 거지요. 그런데 이 포도라는 녀석이 매년 품질이 똑같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좋고, 또 어떤 때는 나쁘고… 그러다 보니 언제 포도를 썼느냐가 중요하고 포도에 따라 품질이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불규칙한 품질은 물론 알콜 도수나 색깔 등등을 맞추기 위해 여러 통의 브랜디 원액을 섞어 최종 상품을 만듭니다. 오래 숙성한 브랜디는 40% 이상 날라가기 때문에 양이 줄어들기도 합니다. 양이 줄어든다는 얘기는 무척 비싸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래서 좀 덜 숙성한 브랜디를 타서 양을 늘리기도 합니다. 이 과정을 섞다라는 뜻의 블렌딩이라고 부르고 블렌딩 하는 사람을 마스터 블렌더라고 부릅니다. 당연히 블렌딩은 회사의 핵심 기술일 수 밖에 없어 마스터 블렌더는 대부분 오너가 겸임합니다. 


여러 통을 섞다 보면 오래 숙성한 것도 있고 좀 덜 숙성한 것도 있고 이제 막 통에 넣은 것도 있겠지요. 이때 가장 덜 숙성한, 어린 브랜디를 기준으로 등급을 매깁니다. 30년 묵은 브랜디에 2년짜리 브랜디를 섞어버리면 VS급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XO급이 되려면 적어도 6년 이상 묵은 브랜디를 섞어야 한다 이런 원칙인 게지요. 그런데 대부분 브랜디 업체들은 가장 오래된 브랜디 햇수만 얘기하지 어린 브랜디 햇수는 얘기 안합니다. ^^ 


물론 섞지 않고 한 통의 브랜디 원액을 그대로 내놓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싱글 몰트처럼 싱글 브랜디 비슷하게 부르기는 한데 워낙 비싸서 만들지도 않고 당연히 구하기도 어렵답니다. 


참고로 여기 말한 등급 말고도 제조사 별로 엄청 많은 등급 표시가 있습니다. 나폴레옹 시대에 열나 풍년이 들어 좋은 포도가 나와 그때 만든 버전을 나폴레옹이라고 불렀다고 해서 생긴 나폴레옹 등급, XO 보다 한 등급 위로 치는 Extra 등급… 특별히 남겨뒀다 해서 리저브 등급… 다 업체의 마케팅에서 생겨난 것들이라 보시면 됩니다. 실제로 나폴레옹은 VSOP와 XO 사이 정도라고 합니다만. 


마지막으로 유명한 브랜디는 죄다 꼬냑인데 브랜디 관련 용어는 죄다 영어입니다. 이건 영국 사람들이 브랜디를 엄청 사 먹었기 때문이랍니다. 돈 내는 사람이 왕인게지요 뭐. / Fin 

신고

세계문학 속 브랜디 #2, 적과 흑

스탕달의 적과 흑. 사랑이란 걸 처음하는 쥘리앵과 레날 부인의 줄다리기가 옛날 생각나게(!) 만듭니다. ^^ 사랑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이 서로 교차하는 그 복잡한 감정을 스탕달이 잘 그려냈다고 생각합니다. 


기껏해야 샴페인, 포도주(특히 말라가 와인) 얘기가 좀 나오는데요, 사실 저는 와인은 잘 모르고, 좋아하지도 않고, 마실 일도 없어서 ^^ 뭐 딱히 할 얘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책 뒤쪽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결투는 순식간에 끝났다. 총알 한 발이 쥘리앵의 팔을 맞혔다. 그들은 쥘리앵의 다친 팔을 손수건으로 동여매고 그 위로 브랜디를 흠뻑 부었다. 기사 보부아지는 자신의 마차로 쥘리앵을 집까지 바래다주고 싶다고 정중하게 말했다. 쥘리앵이 라 몰 저택을 대자 이 젊은 외교관과 친구는 뭔가 눈짓을 주고 받았다."


- 스탕달, 적과 흑(하), 열린책들 


라 몰 후작 댁에서 지내게 된 쥘리앵이 어느 날 파리 시내에 나갔다가 비를 피하느라 어느 카페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거기서 왠 인상 드런 사내와 마주치지요. 그 사내가 쥘리앵을 빤히 쳐다보는데 쥘리앵은 이 시선에서 열나 모욕을 느낍니다. 그래서 왜 쳐다 보냐? 한 마디 했더니 상대가 욕설을 했다 이거지요. 젊은 혈기로 쥘리앵은 결투를 신청하고 사내는 명함 몇 장을 집어던집니다. 다음 날 명함에 있는 주소로 찾아간 쥘리앵은 정작 명함 당사자는 어제 그 사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황당해하고는 결투 없이 물러나려는데, 아, 그 집 마부가 범인이었습니다. 마부가 주인 명함을 던진 거지요. 명함 주인은 마부를 쫓아내지만 자기가 데리고 있던 사람이 벌인 일은 자기가 수습해야 한다고 잘난 뽕을 떨어 결국 쥘리앵과 명함 주인 기사 보부아지가 결투를 합니다. 뭐, 결과는 싱겁습니다. 쥘리앵이 한 방 맞고 끝. 이 상처에 기사는 브랜디를 콸콸 쏟아 붓습니다. 


이 장면은 서부 영화나 전쟁 영화 같은 데서 많이 보셨을 겁니다. 총 맞은 상처에 위스키를 콸콸 붓고 열나 괴로워하는 장면 말이지요. 뭐 지금은 40도 정도지만 그땐 도수가 47-8도 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여튼 의약품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소독용으로는 아주 좋았겠지요. 브랜디는 먹는 약 대신으로도 쓰였지만 상처를 소독하는데도 쓰였습니다. 상비약인 셈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브랜디를 항상 들고 다녔을 겁니다. 뭐 마시기도 하고, 응급약으로도 쓰고. ^^ 


심심해서 넣은 Camus XO ^^


이건 좀 뻔한 얘기고 ^^ 다시 브랜디 얘기를 조금 더 하면… 발효시킨 와인을 잘 마시던 사람들이 왜 브랜디를 만들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몇 가지 설이 있는데요. 


첫째는 세금 문제입니다. 옛날에도 세금 뜯기 가장 좋은 방법이 술에 세금을 붙이는 거였습니다. 와인에 세금을 좀 세게 붙이니까 와인을 끓여 브랜디를 만든 거지요. 뭐, 몰트 위스키에 세금을 열나 붙이니까 보리 말고 다른 곡식으로 위스키를 만든 것과 비슷한 맥락일 겁니다. 사실 우리나라 맥주나 소주가 너무 일관성 있게(!) 된 것도 사실 우리나라 주세 관련 법 때문이기도 합니다. ^^ 


둘째는 보관과 유통 때문입니다. 냉장 시설이 없을 때니 발효주는 상하기 쉬운데 증류주는 상하지 않으니까 오래 보관하고 멀리 유통하려고 끓였다는 겁니다. 실제로 포트와인 같은 경우도 포르투갈에서 영국까지 보내야 하는데 이 동안 상하니까 브랜디를 조금 섞었다는 거지요. 그랬더니 얼라, 더 맛있더라, 그래서 태어났다고들 합니다. 


셋째는 남은 와인을 어떻게 처분할까 고민하다가 끓였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사실 보관 문제하고도 연관있습니다. 남은 와인 버릴 수도 없고, 이 상태론 보관할 수도 없어서 증류했다는 거지요. 


뭐 여러가지 설이 있겠으나 전 이 세 가지가 다 적당히 섞여 브랜디가 탄생했을 거라고 봅니다(쓰고나니 몹시 당연한 얘기이긴 하지만요 ^^) 


다음에 상처날 땐 후시딘 대신 브랜디를 한 번 뿌려볼까 뭐 그런 쓸데없는 생각도 해봅니다. 다음에는 브랜디 등급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 


신고

세계문학 속 브랜디 #1, 순수의 시대

"그는 아내의 얼굴이 몹시 창백한 것을 보고 브랜디를 좀 마시겠느냐고 물었다."


- 이디스 워튼, 순수의 시대, 열린책들 중에서 


아처는 엘렌을 사랑하는 자기 마음을 아내인 메이에게 고백해야겠다는 열망에 빠집니다. 아, 하지만 아처는 메이가 이미 그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남자들, 대개 다 이렇습니다. ㅜㅜ 오페라 극장에서 서둘러 메이를 데리고 오던 길, 메이는 마차에 걸려 넘어지고 결혼식 때 입었던 드레스를 찢어 먹고 맙니다. 마치 그들의 결혼에 흠집이 나기 시작한 것처럼. 집에 올라온 아처는 메이의 표정이 창백하다 생각하고 브랜디를 마시겠냐고 권합니다. 어쩌면 아처 스스로 마시고 싶었을 지도 모릅니다. 순전하고 예쁜 아내에게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고 고백해야 할 판이니까요. 과연 아처는 고백을 했을까요? 


브랜디를 마셨다는 얘기는 안 나오니까, 아마 고백 못 했을 겁니다…(라고 쓰자니, 스포일러도 아니고 참 ㅜㅜ) 여튼, 중요한 건 창백한 메이에게 브랜디를 권했다는 겁니다. 


실제로 약품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엔 술이 의약품 역할을 꽤 했습니다. 위스키의 어원이 '생명의 물'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 묘한 액체를 사람들이 처음에 어떻게 대했는지 짐작할 수 있겠지요. 위스키는 물론 브랜디, 맥주도 약으로 쓰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특히 진은 아예 의약품으로 개발된 술이기도 하지요. 만화에도 꽤 등장하는 알프스 구조견 세인트 버나드는 목에 통을 하나씩 매고 다니는데 그 통에 브랜디가 들어 있답니다. 추위에 얼어 죽기 직전인 사람들에게 브랜디는 몸을 녹여주는 대단한 효과가 있어서 일겁니다. 


출처. http://tvtropes.org/pmwiki/pmwiki.php/Main/SaintBernardRescuehttp://tvtropes.org/pmwiki/pmwiki.php/Main/SaintBernardRescue


브랜디는 과일을 증류해서 만든 술입니다. 곡식을 증류하면 위스키, 과일을 증류하면 브랜디, 이렇게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아, 물론 곡식이나 과일을 발효 시키는 과정이 먼저 필요하지만, 재료에 따라서 이렇다는 거지요. 기회가 되면 증류 과정도 알아보겠습니다. 


포도를 증류해 만든 꼬냑이 대표적인 브랜디입니다. 그러니까 꼬냑은 브랜디의 한 종류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워낙 꼬냑이 유명해서 꼬냑 = 브랜디 라고 알기도 하는데요, 뭐, 이런 표현이 있더랍니다. 


모든 꼬냑은 브랜디지만 모든 브랜디가 꼬냑은 아니다. 


브랜디라는 이름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프랑스에서 포도 증류주를 수입하면서 태운 포도주(증류했으니 이렇게 부를 수도 있지요. 사실 소주도 태워 만든 술이란 뜻이니까요 ^^) 라는 뜻의 '브란데 웨인'이라고 불렀는데 이게 영국으로 넘어가서 브랜디가 됐다고 합니다. ^^ 



꼬냑은 프랑스 꼬냑 지방에서 생산한 브랜디를 부르는 말이고요, 마찬가지로 아르마냑 지방에서 생산한 넘들은 아르마냑이라고 부릅니다. 아르마냑이 꼬냑보다 150년 정도 앞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아르마냑 보다 꼬냑을 더 쳐주기는 합니다. 아, 참고로 아르마냑 지방은 예전엔 가스코뉴족이 살았던 곳이라 가스코뉴라고도 부르는데요… 가스코뉴, 왠지 낯이 익지요? 삼총사에 나오는 달타냥이 요기 출신입니다. / Fin




신고
  • Favicon of http://seanjk.com BlogIcon sean 2013.03.29 18:0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볼께요. : )

위대한 개츠비 그리고 민트 줄렙

괜히 그런 날이 있어. 

소설 속 주인공이 되고 싶은 날. 

어차피 주인공처럼 멋지진 않으니 

주인공을 따라 술이나 마실 수 밖에. 


위대한 개츠비를 읽다가 

민트 줄렙을 만났어. 


하지만 속옷이 축축한 뱀처럼 다리를 휘어 감고 

땀방울이 등줄기를 시원하게 가르던 몸의 기억만은 생생하다. 

이 생각은 욕실 다섯 개를 빌려 

시원하게 냉수욕이나 하자는 데이지의 제안에서 비롯되어 

<민트 줄렙을 마실만한 장소>라는 형태로 좀 더 구체화되었던 것이다.


소설 속 장면은 멋지지 않아. 

옛 연인인 개츠비와 데이지, 그리고 데이지 남편 톰. 

아슬한 삼각관계가 정면 충돌하기 직전. 

숨막히는 긴장감과 짓누르는 더위 때문인지 

데이지는 민트 줄렙을 마시자고 그러지. 


민트 줄렙 


버번 위스키 45ml

민트

설탕


버번 위스키와 민트 잎, 설탕을 잘 찧고 

얼음으로 잔을 채워 만든 

정말 미국스러운 칵테일. 


날씨가 덥진 않았지만 

왠지 민트 줄렙이 땡겼어. 



가끔 가지만 그닥 좋아하지 않는 바에서 

민트 줄렙을 시켰지. 

강한 버번향, 상큼한 민트

독한 맛 뒤에 묻어나는 설탕의 달콤함. 

그런데 솔직히 맘에 안 들었어. 


어랏? 이게 왜이래? 하고 베이스를 확인했더니 

짐빔 화이트로 만들었다더군. 

짐빔, 어릴 때 몇 번 마셨는데 

그럴 때 마다 아팠거든. 그래서 싫어해. 


베이스를 확인하지 않은 건 내 실수니까 

굳이 따지진 않았고 그냥 조금 남겼어. 

언제나 그렇듯이 

민트 줄렙 만으로 끝나진 않으니까. 


뭐 어때. 

가끔 실수로 싫어하는 술도 마시는 거 

이런 게 사는 거지. 

신고

할머니 포장마차엔 할머니가 없다

그냥 머리가 복잡했다, 고 말했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머리가 복잡한 덴 다 이유가 있었다. 숫자가 안 맞았다거나, 아이가 속썩였다거나, 왠지 앞날이 좀 흐려 보이는 그런 일들이 한데 어우러져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하지만 미처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선 이 복잡한 걸 누구에게 말하기 쉽지 않은 법이다. 왜냐고? 준비가 안 됐으니까. 왜 복잡한지 풀어 말할 준비를 못 했으니까. 


이런 날은 뭐 먹을까 고민하는 것도 힘겹다. 다행히 내 눈치를 챘는지(하긴, 나는 표정을 잘 못 감춘다), 그가 말했다. 할머니 포장마차 갈까? 아, 그래. 괜스레 머리 복잡한 날 포장마차처럼 좋은 솔루션도 드물다. 좁고 시끄럽고 불편하고 별로 안 깨끗하지만, 눈에 보이는 대로 부담 없이 안주를 시키고, 격하게 소주 잔을 부어 제치면서 똑같이 시끄러우면 되니까. 시끄러움 속에 머리를 묻어 버릴 수 있으니까. 


송파구 방이중학교 앞 할머니 포장마차.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문을 열고 들어섰다. 저녁 일곱 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 좁은 가게 안엔 이미 손님이 절반 넘게 차 있다. 남들이 차지하고 앉은 테이블 사이 끼어 있는 테이블로 비집고 들어가 플라스틱 간이 의자를 흔들어 자리를 내었다. 이미 소주 두 병을 비우고 세 병째로 넘어간 아저씨 두 사람이 바로 옆에서 담배를 피우긴 했지만, 여기선 별로 불평할 처지가 아니다. 


이름과 달리 가게 안에 할머니는 없다. 그저 아줌마들. 주문하겠노라고 불러도 아줌마들은 못 들었는지 못 들은척하는지 올 생각을 안하고, 우리는 멀뚱하니 앉아 있다. 주방 쪽으로 가서 주문해야 하나 망설이는 순간, 아줌마가 옆 테이블 음식을 날라오면서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간다. 아하, 옆 테이블 음식 가져다 주면서 주문받으려는 모양이고나. 그저 조금 성급했다는 생각에 픽 웃었다. 하긴, 주문 좀 천천히 한다고 달라질 게 머 있나. 


꼬막, 국수, 소주 한 병, 그리고 주꾸미 볶음 맵게요. 


나름 복잡한 주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소주 상표만 물어보고는 후딱 지나가는 아줌마. 그리고 잠시 후 기본 찬과 소주, 그리고 꼬막이 나왔다. 이럴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잔을 채우는 거다. 젓가락을 들이밀기 전에. 아, 물론 나는 폰카를 먼저 들이댔지만. ^^



첫 잔은 절대 꺾지 않는 법. 언젠가는 이 원칙을 버릴 날이 오겠지만 오늘은 아니다. 그리고 꼬막. 이 집 꼬막은 그저 단순하다. 마늘, 매운고추와 함께 삶아 내는 것. 원래 꼬막은 반 삶아 적당히 핏물이 비치게 먹어야 맛있지만 이 집에선 그런 걸 따질 일이 없다. 포장마차니까. 한 접시에 1만2천 원이니까. 심지어 국산인지 아닌지도 따지지 않는다. 그저 입 안 소주 기운이 가시기 전에 잘 벌어진 녀석을 까 넣으면 된다. 짭짤하고 쫀득하다. 함께 나온 양념장에 찍어 씹으면 고소하다. 됐다. 더 이상 뭘 바랄꼬. 그리고 다음 잔. 주꾸미가 나오기 전에 이미 소주는 반 병이 넘게 사라졌다. 



이 집 대표메뉴인 멸치국수. 4천 원. 더 바랄 것도 없는, 그 멸치국수에 그 가격이다. 저녁을 먹지 않고 시작한 술 자리에 저녁 식사 용으로도 좋고, 국물 안주로도 좋고 마무리 식사로도 좋다. 



꼬막에 멸치국수로 소주 한 병을 다 비웠을 무렵 주꾸미 볶음이 나왔다. 알루미늄 포일에 쌓인 딱 포장마차다운 주꾸미 볶음. 주문대로인지 매운고추가 넉넉히 들어가 매콤한 맛 하나는 일품이다. 고급스럽지도, 주꾸미가 넉넉하지도 않지만 딱 1만5천 원 값어치는 한다. 소주 한 병 더 먹을 안주로 모자람이 없다는 말이다. 


무슨 얘기를 했을까. 학생들에게 책 사라고 했다던 마교수 얘기를 했고, 아이 걱정도 했다. 회사 얘기도 했겠고, 서로 아는 사람들 얘기도 했겠지. 약간 감정을 과장해가며 수다를 떨다 보니 살짝 오른 취기에 복잡한 머리는 잠시 잊었다. 대신 살짝 감기 기운을 얻었다고나 할까. 2차 없이 돌아간 집에선 내내 재채기를 했다. 재채기와 복잡한 머리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면, 기꺼이 재채기를 선택하겠다. 남들이 보기엔 좀 흉할지 모르겠으나. 물론 재채기는 가려서 할 계획이다. 재채기라도 계획대로 된다면. / Fin




신고

아디아포라

예전 티백엔 스태플러 침이 하나씩 박혀 있었다. 

손잡이용 실을 묶는 방법으로 스태플러를 쓴 것이다. 


그런데 이게 어느날 부터 문제가 됐다. 

마시는 음료에 쇳덩어리가 들어가 있으면 어떡해? 

이거 중금속 오염되는 거 아니야?

인터넷으로 이런 우려들이 순식간에 퍼졌다. 


그래서 스태플러는 사라졌다. 

요즘은 뭘로 붙일까? 풀 같은 걸로 붙이겠지. 

스태플러가 없어도 실이 티백에 붙어있긴 하니까. 



그런데 이게 참 우습다. 

티백의 스태플러는 절대 안되면서 

캔음료는 어떻게 마실까? 

알루미늄 캔에 든 청량음료나 맥주 

스틸 캔에 든 참치, 꽁치, 골뱅이 통조림 

이런 건 아무렇지도 않게 먹으면서 

티백에 묶은 스태플러는 안된다는 논리. 


살다 보면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무척 중요하게 여기면서 사는 일이 많다. 


이 일은 꼭 이 시간에 해야 해. 

이런 행동은 하면 안돼. 

이런 음식은 먹으면 안돼. 


이런데 얽매여서 쓸데없이 일을 만들고 

쓸데없이 몸과 마음을 피곤하게 한다. 


물론 저마다 근거는 있다. 

하지만 그 근거가 정확한 건지 

아니면 그냥 습관 때문에 그 근거가 중요하다고 우기는 건지 

정말 의미가 있는 건지 

제대로 생각해 본 적 있는가?


헬라어에 

'아디아포라'라는 말이 있단다.

우리 말로 하면 

상관없어, 중요하지 않아 

이런 뜻이란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

대부분 형식과 틀에 얽매인 그것들을 따르느라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오늘은 그저 

아디아포라를 한 번 외치고 

조금이라도 자유를 찾고 싶다. 


신고

'사랑하며 사는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디아포라  (2) 2012.12.12
아버지와 면도기  (0) 2011.10.21
남자의 배  (0) 2011.10.14
설레임을 넘기고, 새 인연을 기다리다  (5) 2011.01.24
[미련한 다이어트5] 다이어트, 이건 사람 사는게 아니야  (6) 2010.08.25
생일 후기  (0) 2010.08.17
  • Sons 2013.01.15 02:1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잘 읽었습니다.
    마음에 두고 싶네요. 아디아포라.

    좋은 날 되세요.

  • 날개 2013.02.22 11:4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독일산 유기농 요기티를 자주 마시는데요, 늘 쬐꼬만 스테플러침이 껄적지근했어요. 그대로 마시다가 어느 날부터 티백의 길다른 끈을 컵의 손잡이에 감아놓으니 스테플러침이 물에 잠기지 않더군요. 물론 250ml 짜리 긴컵이라서 가능하지요. 아무래도 뜨건 물에 수분간 잠겨 있는 것보다야 안잠기는 것이 훨 나을테니까요. 스테플러침에서 어떤 유해물질이 나올까싶어 검색하다가 예꺼정 흘러 왔드래요. 물론 이몸은 캔 제품은 일체 먹을 일이 없더군요. 아디아포라! 그래요! 티백의 스테플러침 정도는 핸폰 전자기파에 비하면 아디아포라죠. ^^ 해피데이!

[드플부녀] 초보 아빠, 만렙 딸

3주전이었다. 

형님들하고 가볍게 술 한 잔 하는데 

한 형님이 G폰 새로 샀다고 자랑하는 게 아닌가. 

워낙 애플 마니아안 나니까 G폰이 부러울리 없었지만 

이 형님이 보여주는 게임에 눈길이 갔다. 

1942 같기도 하고 제비우스 같기도 한 이 게임. 


게임 같은 거 잘 안 하고 

특히 모양 맞추기에 소질 없는 나지만 

뭔가 붕붕 날라다니면서 쏘는 게임에는 약간 호기심이 생겼다. 


하긴, 지금은 아무리 게임 안 한다고 해도 

소시적엔 갤러그 백만점 정도는 다 해보지 않았던가. 

이게 뭐에요? 하고 물었더니 

요즘 최고의 인기 게임인 드플을 모르냐고 하는 거였다. 



드플이라니?

드래곤 플라이트의 줄임말이었다. 

한 두어번 해보니 나름 재미나서 

생전 안 깔고 있던 카톡도 깔고 게임도 깔았다. 

이게 시작이었다. ㅜㅜ 


집에 와서 밥 먹고 딸 아이 앞에서 

야, 이거 재밌더라 하면서 보여주는데 

힐끗 쳐다본 딸 아이 하는 말. 


드플이네. 나 이거 만렙이야. 


만렙이 뭐냐?

아, 그런 거 있어. 


여튼, 게임 같은 거 쳐다보지도 않던 아빠가 

손가락으로 자꾸 왔다 갔다 하니까 이 녀석도 신기했나 보다. 

옆에서 지켜 보던 녀석. 


아빠 황금색 동전을 먹어야지 왜 피해?

그거 쟤네들이 쏜 총알인줄 안거야? 


자식아, 나도 안다고. 

다만 손가락이 맘대로 안 움직이는 거지. 

나도 골드 먹고 싶단 말이다!


그렇게 드플에 빠져 들었다. ㅜㅜ


신고

슬픈 날엔 라프로익

괜히 그런 날이 있어. 

정말 슬픈 날. 


사람으로도, 

다른 어떤 무엇으로도 위로 받을 수 없고 

그저 혼자 마음 속으로 꾹꾹 

치미는 슬픔을 눌러야 하는 날. 


맥주거품처럼 밀고 오르는 슬픔을 

더는 누르기 힘들어 누군가를 불러내고 말았다. 

혼자선 더 이상 이겨낼 자신이 없었으므로. 


이런 날엔 술만큼 도움되는 것도 없다. 


잘 아는 바에 앉아

가장 슬픈 날엔 뭘 마시면 좋겠냐 

되도 않는 청승을 떨다 

라프로익을 시켰다. 


많이 드실래요?

아니요. 한 잔만요. 


바텐더는 라프로익 쿼터 캐스크를 권했다. 

작은 통에서 숙성해 맛이 더 진하다는 설명과 함께. 


라프로익 쿼터 캐스크 

싱글몰트

스코틀랜드 아일라 

48도 

온더락 대신 스트레이트로. 


라프로익. 

흔히들 스모키 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소독약 같다 하고 

더 심한 누군가는 락스 같다지만 

이 날 만큼은, 제단에 피운 향 같았다. 



잔을 들어 빙빙 돌리면 올라오는 향기가 

목구멍이 켁, 하도록 스며드는 그 향기가 

슬플 땐 더 울어도 된다고 

그렇게 나를 다독이는 듯 싶었다. 


울진 않았다.

대신 취했다.  


이런 게 사는 거다. 

신고
  • Favicon of http://philomedia.tistory.com BlogIcon 필로스 2012.11.21 15:3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분위기가 전해 오는군.. 레이토피아에 글이 다시 올라오니 반갑구려...

  • 2013.02.26 06:10 ADDR 수정/삭제 답글

    비밀댓글입니다

소박한 생활 속 평범한 행복과 기업 블로그 콘텐츠의 재탄생

인터넷에는 읽을만한 콘텐츠가 별로 없다고들 합니다. 한 군데서 올린 정보를 사방에서 퍼 올리니 새로운 정보도 딱히 없고 낚시성 정보가 워낙 많아 속는 느낌도 많이 들지요. 그래서 인터넷에서 뭔가 읽을 거리를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저는 기업 블로그를 열심히 보라고 권합니다. 요즘 기업 블로그 콘텐츠 정말 많이 좋아졌거든요. 


물론 기업이 운영하다 보니 자기네 목소리를 내는 콘텐츠가 많긴 합니다만(그러려고 기업 블로그 하는 거겠지요) 그런 콘텐츠만 올리면 사람들이 재미없이 하니 다양한 교양 콘텐츠를 많이 올라옵니다. 문화, 예술은 물론 여행 정보는 기본이고 생활의 상식 같은 정보들도 많습니다. 기업이 하니까, 하고 색안경 끼고 보기엔 놓치기 아까운 정보들이 참 많아요. 이렇게 비교하면 어떨까요?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예전 기업 사외보들이 웬만한 잡지 보다 수준이 높았던 것처럼 기업 블로그도 웬만한 인터넷 미디어보다 품질이 좋다고요.  


그런데 아까운 건, 이렇게 좋은 콘텐츠들이 잠깐 노출되고 금세 사라진다는 겁니다. 물론 글은 여전히 남아 있고 훌륭한 검색 사이트 덕분에 필요하다면 언제든 그 정보를 찾아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공들여 만든 콘텐츠가 묻혀 버리니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드는 처지에선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이렇게 아까운 콘텐츠를 어떻게 더 알릴 수는 없을까.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고민하는 숙제입니다. 



가장 손쉽지만 실천으로 옮기기는 좀 어려운 방법이 하나 있는데, 책으로 내는 겁니다. 그리고 최근 아주 좋은 샘플이 나왔는데요, ‘소박한 생활 속 평범한 행복’이란 책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네,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 냈습니다. ^^ 


이 책은 SK 기업 블로그인 행복블로그에서 소개한 행복한 백 사람의 인터뷰를 엮은 것입니다. 그 중에는 조금 유명한 분도 있지만 사실 대부분은 평범한 직장인, 가정 주부, 취업을 앞둔 대학생 등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분들입니다. 블로그 계에서 유명한 분들도 좀 있고요. 아마도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얘기가 뭐 재밌다고 책으로 내나? 



책을 내면서 참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어차피 글이야 다 똑같겠지만 화면으로 보는 것과 종이로 보는 것은 많이 달랐습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서로 다른 점이라고 할까요. 화면은 빠르고 종이는 느렸습니다. 화면이 동적이라면 종이는 정적이었지요. 화면이 잠깐 스쳐지나는 미인이라면, 종이는 내 곁에 둔 여자친구였습니다. 아, 물론 제게 그랬다는 겁니다. ^^ 


소박한 생활 속 평범한 행복은 기업 블로그 글을 모아 책으로 냈다는 점에서 콘텐츠를 재활용하는 또다른 방법을 제시했다고 봅니다. 물론 이 책이 대박나게 팔리면 좋겠지만 ^^ 유명한 사람이 쓴 책도 아니고, 유명한 사람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벤트가 빵빵한 것도 아니고, 저희가 힘이 있어 출판 마케팅 능력이 우수한 것도 아니어서 대박 팔릴 가능성은 그렇게 높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받아본 분들이 정말 기뻐하고(물론 나온 분들이니까! ^^) 책에 나오진 않았어도 한 번씩 읽어본 분들이 누군가에게 선물하면 좋겠네, 라고 말씀하는 걸로 봐서 나름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자부합니다. 실제로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이 책을 무려 열 권이나 사서 자기가 쓴 편지와 함께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줬답니다. 책을 낸 저도 열 권 살 생각은 못했는데, 순간 부끄러웠습니다. 



소박한 생활 속 평범한 행복은 그저 평범합니다. 하지만 평범함 속에 숨어 있는 행복을 평범하다는 이유로 무시하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이 불행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 봅니다. 누구에게나 행복은 있습니다. 단지 그 행복을 찾지 못할 뿐. 소박한 생활 속 평범한 행복이, 지금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어느 한 분에게라도 행복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제겐 큰 행복입니다. / Fin


아이패드 미니도 드리는 이벤트 함 놀러오세요

YES24에서 팝니다

(물론 다른 서점에서도 팝니다만 제가 YES24 플래티넘 회원인 관계로 ㅋ)

(이 링크를 통해 사셨다고 해도 저한테 생기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링크만 ㅋ)


신고

틀을 깨고 세상을 다르게 보렴

요즘 세상에서 가장 돈 잘 버는 능력이 뭔지 아세요? 사기 치는 거 말고, 로또 잘 사는 거 말고, 이벤트 당첨되는 거 말고요. ^^ 저는 그 능력이 ‘창의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과 다르게 보는 관점,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 창의력으로 대박 난 인물이 바로 스티브 잡스 아닐까요. 똑같은 서비스, 똑같은 상품을 남들과 전혀 다르게 만들어냈으니까요. 

창의력이 중요하다는 사실,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학교에서도 잘 압니다. 그런데 학교 현실은 이렇습니다. 

머리 모양은 파마를 해서는 안 되고 길이는 가슴에 찬 이름표까지. 머리띠를 하더라도 컬러는 안 되고 검은색 위주. 추울 때 교복 위에 있는 점퍼도 화려한 컬러가 있으면 안 됨. 겨울 치마엔 검정 스타킹을 신고 양말을 덧대어 신는다. 

무슨 소리냐고요? 저희 딸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 복장 규정입니다. 제가 지어낸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온 가정통지문에 이런 식으로 쓰여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우리 딸 아이 학교가 좀 유별나긴 한 모양입니다만, 어쨌든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려는 건, 이 학교나 저 학교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네, 제가 무슨 얘기 하려는지 눈치채셨지요? 아이들을 똑같이 만들면서, 똑같이 생각하게 틀 안에 가두면서 어떻게 창의력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저런 규정들은 놀랍게도 제가 중학교 다닐 때도 있었던 규정들입니다. 중학생이 자라 대학생이 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는데도 학교의 규제는 똑같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여전히 아이들을 똑같이 생각하게 가르치고 있고요. 

그래도 아빠보다는 나아서 창의력DNA 없는데도 이딴 걸 다 만들고 ㅜㅜ

솔직히 저는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남들처럼 엉뚱한 생각도 못하고, 그냥 남들이 하는 정도만 따라 하는 그런 수준입니다. 저만 그러면 좋겠는데 딸 아이도 비슷합니다. 사물에 이름을 붙여 봐도, 그림 같은 걸 그려도, 선물을 사도 그냥 그만 그만한 것들을 삽니다. 아주 평범한 거지요. 딸 아이가 그렇게 평범한 대답을 내놓을 때마다 제가 말합니다. ‘이런 저주받은 크리에이티브 떨어지는 DNA 같으니라고.’ 물론 웃자는 얘깁니다. 
 

창의력 떨어지는 DNA를 제공한 아빠가 딸에게 창의력을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관점은 가르칠 수 있지요. 그래서 저는 딸 아이에게 언제나 ‘틀을 깨라, 룰을 깨라.’하고 말합니다. 평소에 하던 대로 하지 말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해 보라고 권하는 거지요. 예를 들어 외식을 하자고 하면, 이번엔 전혀 엉뚱한 걸 먹어 보자고 제안하는 겁니다. 실패할 때도 있지만 날마다 하는 그 흔한 외식 말고 특별한 걸 하면 훨씬 재미있거든요. 

수학 숙제로 고민하는 녀석에게 숙제 같은 거 하지 말라고 합니다. 안 하면 되지 뭐. 숙제 안하면 혼난다고 할 때, 가끔 혼도 나보고 그래야지. 그럼 아내가 옆에서 그러지요. ‘자알 가르친다아~’ 하지만 뭐 어때요. 숙제 같은 거 안해도 인생 사는 데 별 지장 없답니다. 혼나는 거야 어쩔 수 없는 대가겠지만요. ㅋ 

어른도 그렇지만 아이들도 가끔 보면 스스로 룰을 정해 놓고 그 안에 가두는 일이 많습니다. 어, 이런 이렇게 하면 안되는데? 그렇게 생각하지요. 하지만 안될 것이 뭐 있겠습니까? 그 안된다는 생각을 깨주는 것이 아빠가 할 일입니다. 비록 아내와 부부싸움(!)을 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요. 

하지만 말은 이렇게 해도 진짜 딸 아이가 룰을 깨면 덜컥 겁이 나는 건 창의력 없는 DNA 때문인가 봅니다. 어느 날 딸 아이가 간식 사 먹으러 학교 밖으로 나갔다 길래, 너 수업 중에 학교 밖 나가면 안되잖아? 그랬더니 이 녀석 당장 하는 말이, ‘아빠가 룰을 깨라며?’ 하더라고요. 뭐, 먹는 게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간식 사 먹을 매점을 없앤 학교가 죄겠지요. 

다른 사람보다 영어나 수학을 잘하는 능력도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볼 줄 아는 관점입니다. 관점이 달라지면 인생이 더 행복해지는 거, 이미 다 아는 사실 아니겠습니까? 


신고

종편의 미래, 종편의 해악

종편 개국 첫날부터 대박 터졌다. 강호동이 일본 조폭 모임에 참석했다는 뉴스다. 내용을 까보니,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선배 따라 엉겁결에 간 자리랜다. 젠장 고3이 선배가 가재서 갔는데 그 자리가 무슨 자린지 알게 뭐냐. 그리고 강호동이 지금 몇 살인데, 고3적 얘기를 꺼내냐? 아마 강호동 자기는 기억도 못할 일일텐데, 이걸 어데서 주워들은 종편이 ‘강호동’이라는 이름 값 때문에 ‘대박이야’라고 싶어 저지른 뉴스일게다.

네이버에서 검색한 강호동. 졸지에 일본 조폭된 강호동의 명예는 누가 책임질까?


게다가 이 소식은 TV에 나온 드라마든 연예든 무조건 뉴스라고 받아 쓰는 쓰레기 같은 미디어와 그런 쓰레기를 모른 척 하고 받아주는 포털을 등에 업고 순식간에 대한민국에 퍼졌다. 아무 것도 모르는 고3 시절에 따라간 자리인데, 그걸 일본 조폭 만난 거라고 써서, 대한민국 사람 대부분은 강호동이 일본 조폭과 사고쳤구나, 라고 확대 해석했을 게 틀림없다. 나도 그랬으니까. 강호동 할 일 없대더니 사고쳤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애꿎은 강호동은 유명하다는 죄 때문에 졸지에 일본 조폭이 되버린 거다.안 그래도 터프한 외모에 조폭이란 낱말까지 붙어 완전 이미지 구겨놨으니, 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걸 믿고 흥분한 국민의 마음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한겨레에서 퍼온 시작부터 광고주에게 인사하는 종편 직원들 사진


이것만 봐도 종편의 미래는 뻔하다. 시작부터 광고주에게 머리 조아려 시작한 종편이니, 틀림없이 시청률 경쟁에 목을 맬테고, 별 말도 안되는 걸 뉴스라고 파헤칠거다. 이 과정에 제일 만만한 연예인을 포함해 이런저런 사람들의 사생활이 다 까발려질 거고, 대중은 진실이고 말고를 떠나 그 사실을 믿어버릴 거다. 까다 까다 안 나오면 별 말도 안되는 걸 깔테고(지금도 충분히 까발리고 있지 않은가) 결국 까발려지는 대상이 내가 아닐 거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쓰잘데기 없는 소식을 속보니 뉴스니 퍼뜨리고, 이런 쓰잘데기 없는 뉴스를 포장해 낚시질하는 쓰레기 같은 미디어에 낚인 국민이 인생에 별 도움 될 것 없는 허잡한 쓰레기를 읽으며 낭비하는 시간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유용한 정보를 찾아 지식을 높여야 할 시간에, 포털에 걸린 낚시성 콘텐츠로 시간을 낭비할 때 발생하는 손해는 누가 책임질까. 거기서 생기는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는데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할 것인가.


이게 바로 종편의 해악이다. 물론 이제 막 시작한 종편이 앞으로는 정말 건전하고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지도 모르지. 이제 막 태어난 아가한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우리 속담에 될성 부른 나무 떡잎 부터 알아본다 했다. 내 보기에 종편은 씨앗도 잘못됐고, 뿌린 땅도 잘못됐고, 뿌린 넘도 잘못됐다. 출발이 이럴 진대, 종편이 잘될 거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말하는 나도 결국엔 종편 낚시에 걸려 시간을 낭비하고 말게다. 물론 낚시에 걸린 건 내 책임이지만, 낚시대가 수도 없이 깔린 세상에서 미끼 하나 잘못 물었다고 물고기를 탓할 수는 없는 법. 종편 채널은 지울 수 있으나 포털에 깔린 낚시바늘은 어찌해야 할지, 걱정과 화가 앞선다. 인터넷을 확 끊어버릴 수도 없고. 쓰바(정말 이 말만은 쓰고 싶지 않았으나!). / FIN
신고
  • 손통 2011.12.07 18:2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쓰바 아니고요 씨바 ㅎㅎ

데킬라 선라이즈, 이글스, 칵테일이 끌리는 날

그런 날이 있다.
이글스의 거칠거칠하면서도
은근히 애절한 노래가 땡기는 날.

호텔 캘리포니아나 데스페라도도 좋지만
이런 날엔 데킬라 선라이즈다.

한 남자가 바에 앉았다.
그가 주문한 건 또 다른 데킬라 선라이즈.

하루 일을 마친 남자는
잦아드는 노을을 바라 본다.

그리고 떠오르는 한 여자.
가슴은 아려오지만
남자는 용기를 내려고
한 잔을 더 주문한다.

It's another tequila sunrise
Starin' slowly 'cross the sky, said goodbye
He was just a hired hand
Workin' on the dreams he planned to try
The days go by

Ev'ry night when the sun goes down
Just another lonely boy in town
And she's out runnin' 'round

She wasn't just another woman
And I couldn't keep from comin' on
It's been so long
Oh, and it's a hollow feelin' when
It comes down to dealin' friends
It never ends

Take another shot of courage
Wonder why the right words never come
You just get numb
It's another tequila sunrise,this old world
still looks the same,
Another frame, mm..

참고로 이 데킬라 선라이즈는 멜론에서 19금이다.
요즘 딸 아이가 데스페라도와 호텔 캘리포니아에 빠져 있어
데킬라 선라이즈 들려주려 했더니, 딸 아이 폰에서는 안된다는!
술 이름 들어갔다고 19금 판정 내리는 양반들, 도대체 뭐하는 분들인가. ㅉㅉ


DVD로 혼자 보면 멍때리기 진짜 좋은 Hell Freezes Over 버전


아저씨들을 위한 노래방 버전

데킬라 선라이즈.
데킬라 30ml ~ 45ml (양주잔 하나 혹은 하나 반)
맛있는 오렌지 주스 300ml
그레나딘 시럽

맥주잔보다 좀 더 긴 잔에 얼음을 채우고
데킬라를 양주잔으로 한 잔 붓는다.
데킬라를 좋아한다면 반 잔 더.
오렌지 주스로 잔을 채우고
(주스가 맛있어야, 데킬라 선라이즈가 맛있다. 당연한 걸!)
그레나딘 시럽을 한 숟가락 정도
잔 위에 떨어뜨린다.

어떻게 마시냐고?
아무렇게나 마셔도 되나,
먼저 눈으로 색깔을 즐기고
붉게 타는 노을을 상상하면서
한 여자를 생각하고는…
빨대로 잘 저어 마신다.

이런 게 사는 거다. ㅋ



신고
  • ^^ 2011.11.02 17:0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퇴근길 딱 한 잔 하고 싶은 그런날! 칵테일 한 잔 마실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1.11.03 10:14 신고 수정/삭제

      진짜 우리나라에선
      그런 바 찾기가 너무 어려워요.

      딱 한 잔만 하고 가도 좋은
      그런 바를 찾으면 꼭 알려주세요 ㅋ

  • 제임스 레몬트리 2011.11.15 11:3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강남에 여기 괜찮데요. http://blog.naver.com/ram90?Redirect=Log&logNo=142543621

    근데, 저도 데킬라선라이즈 좋아하는데... 오렌지주스맛나는 허접한 칵테일만 마셔봤네요. 전 동명의 영화를 좋아해서 좋아하는데...

아버지와 면도기

아버지 얼굴이 말끔했다.
면도를 하신 게 틀림없다.
잘 하셨는데, 군데 군데 긁힌 상처가 보인다.

“아버지, 면도하셨어요?
와, 깔끔하게 잘 하셨네.
그런데 면도 날은 다른 걸 좀 쓰세요. 상처 났잖어.”

“그래? 전기 면도기가 고장나서.”

쿵.
그랬다. 전기 면도기가 고장나서
그것도 한참 한참 전에 고장나서
아버진 칼 면도기를 쓰셨던 게다.

‘에이참. 노인네.
고장났으면 고장났다고 말씀을 하시지.’
속으로 혼자 궁시렁 거리며
인터넷 쇼핑몰에서 전기 면도기 하나 샀다.

아들은
가끔 아버지가 남자라는 사실을 잊는다.

신고

'사랑하며 사는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디아포라  (2) 2012.12.12
아버지와 면도기  (0) 2011.10.21
남자의 배  (0) 2011.10.14
설레임을 넘기고, 새 인연을 기다리다  (5) 2011.01.24
[미련한 다이어트5] 다이어트, 이건 사람 사는게 아니야  (6) 2010.08.25
생일 후기  (0) 2010.08.17

기네스가 맥주인 건 몰라도 책인 건 알지

1945년 기네스는 건축 엔지니어 출신이고 행정 전문가인
휴 비버 Hugh Beaver를 Manage Director로 영입한다.
기네스 역사에서 맥주를 만들어 본 적 없는 사람이 경영자가 된 건 처음이라고.
그러나 비버는 시대를 정확히 꿰뚫어 볼 줄 알았던 사람.
앞으로 다가올 변화에 맞춰 회사를 개혁하고 중요한 시설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 금주법도 폐지되고, 때마춰 진행한 기네스 광고 덕분에
기네스 매출은 침체기를 딛고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건 뭐 중요한 얘기는 아니다)

1951년, 휴 비버가 친구와 함께 사냥하러 나갔다.
사냥 도중에(아마도 새를 잡다가 무쟈게 놓친 모양이다)
어떤 새가 제일 빠른지 논쟁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다들 자기가 놓친 새가 제일 빨랐다고 주장했겠지.
휴 비버는 골든 플로버가 제일 빨랐다고 주장한 모양이다.
자기 주장을 뒷받침 하려고
온갖 자료를 찾아봤으나 답을 찾지 못한 휴 비버는
술집에서 사람들이 이런 문제로 잘 싸운다는 점에 생각해
누가 일등인지 결과를 모은 책을 만들어 술집에 갖다 두면
기네스 홍보에도 꽤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맥주 잘 팔아 먹으려고 만들었다는 얘기다).

사무실에 있는 기네스 북 밀레니엄 버전 ㅋ

누군가가 휴 비버의 생각을 구현할 만한 사람으로
노리스와 로스 맥훠터라는 쌍둥이 형제를 추천했다.
스포츠 전문 기자(원래 이 바닥에 있는 분들이 아는게 많지 ㅋ) 출신에다가
신기한 거라면 무조건 뛰어들 20대였던 형제는
곧바로 이 책을 만들기로 했고
1954년, 간단한 유인물 형태로
제일 첫 기네스 북이 태어났다.

그런데 대박!
유인물 수준이었던 기네스 북이 다음 해 베스트셀러 1등이 됐고
1956년엔 미국까지 가서 7천부 넘게 팔렸단다.

승승장구, 전 세계의 기록을 다루도록 성장한 기네스 북 덕에
기네스가 맥주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기네스 북이 뭔지는 다 알게 됐다.
기업이 책을 만들면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바로 이거다.

기네스북 밀레니엄 버전에 실린 폴

잠깐 퀴즈 하나 낼까?
기네스 북 밀레니엄 버전엔 폴 매카트니가 있는데, 뭐 땀시 저기 올라가 있을까?
그것도 올라간 분야가... Internet 이라는.
퀴즈 2. 폴 매카트니 아저씨 뒤에 보이는 저 핫(!)한 언니는
왜 인터넷 분야에 올라가 있을까? ㅋ
하지만 지금 기네스 북을 만드는 곳은 기네스가 아니다.
1997년 기네스가 그랜드 메트로폴리탄과 합병해 디아이지오가 되면서
(우리나라에 양주 열나 많이 파는 그 디아이지오 맞다)
기네스 북은 자연스레 디아이지오로 넘어갔다.
2001년 디아이지오는 다시 기네스 북을 굴레인 엔터테인먼트에 팔고
2002년 굴레인 엔터테인먼트는 HIT 엔터테인먼트에 판다.

어쨌거나, 경영자가 심심풀이로 생각한 아이디어가
고객을 위한 서비스로 거듭나면서
대박을 냈다는 점을 생각하면
백날 내 물건 좋다고 해 봐야 소용 없는 일.
물건보다는 물건에 담긴 콘텐츠와 문화를 팔아야
대박이 나는 법이다.

기네스, 참 배울 것 많은 회사다.
신고

스파게티, 페로니, 괜히 느끼한 날엔

그런 날이 있다.

왠지 느끼한 게 먹고 싶은 날.
기름지고, 끈적하고 그러면서도 고소한 맛이 도는
뭐, 그런 게 먹고 싶은 날.
느끼하다는 건, 썩 좋은 뜻은 아닐진대
그 속에도 맛이 들어 있으니 참, 신기한 일이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느끼한 음식은 다르겠으나
이 날 따라 끌린 건 바로 스파게티.
토마토 소스로 매콤하게 볶아낸 스파게티 말고
걸쭉한 크림에 담긴, 크림 소스 스파게티 말이다.

그리고 스파게티 파트너는, 맥주.

‘라거’하면 우리는 맥주 상표를 떠올리지만
사실 라거는 낮은 온도에서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맥주라는 뜻이다.
혹은 하면뱔효 맥주라고도 한다.
하면발효는 글자 그대로, 아래쪽에서 발효하는 맥주다.
그럼 상면발효는, 위에서 발효하는 맥주네? 맞다.
하면뱔효와 상면발효의 차이점은, 효모다.
하면뱔효 맥주 효모는 발효가 끝나면 가라앉고
상면발효 맥주 효모는 발효가 끝나면 떠오른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가라앉거나 뜨는 효모가 다른 점은 발효 온도다.
하면발효 맥주는 낮은 온도에서 발효하기 때문에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있고
상면발효 맥주는 높은 온도에서 발효하기 때문에 걸죽하고 묵직한 맛이 있다.
맥주가 처음 태어날 땐 다 상면발효 맥주였다.
왜? 그땐 냉장 시설이 없었으니까.

스파게티엔 와인 아냐?
누군가 이렇게 말할 법도 싶지만, 와인을 썩 좋아하지 않는 나는
당당하게 맥주를 주문한다. 아무래도 걸쭉한 상면발효 맥주보다는
시원하고 톡 쏘는 하면발효 맥주가 좋겠지. 이 집엔, ‘페로니’가 있다.

페로니는 이탈리아 맥주다. 어쩐지 스파게티와 정말 잘 어울릴 듯 하지 않은가?
마치 삼겹살엔 우리 맥주가 잘 어울리는 것처럼!

오징어 먹물을 넣은 스파게티와 맥주.
맥주는, 한입에 시원하게 털어 넣는 것이 제맛이라지만
가끔은 반주로 입을 적시고
느끼한 맛을 덜어주는데도 그만이다.

살다 보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느끼한 사람, 느끼한 일을 만나, 속이 더부룩할 때가 있다.
그럴 땐, 그저 시원한 맥주 한 잔. 그렇게 털어버릴 뿐. 

이런 게 사는 거다. ㅋ

스파소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93-2
02-3445-8422

신고

남자의 배

요즘 일주일에 한 번씩
SK텔레콤에서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공짜로 가르치는 
AIM / Advanced IT Management 교육을 받는다.

연세대학교 정보대학원 교수님들을 비롯해
고대, 건대 등등 유명한 교수님들이 강의를 하는데
실무에서 필요한 이론들을 아주 재밌게 가르치셔서
아, 나도 대학원이나 가볼까 그런 생각을 하는 중.

그중에서도 내가 특별히 기대했던 과목이 있었으니
‘그리스 신화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라는 과목이다.
건국대학교 교양학부 철학박사 김길수 교수님이 가르치신다.

그런데,
잔뜩 기대했는데, 처음에 완전 졸린 목소리 톤인거다.
으, 두 시간짜린데, 죽겄네라고 생각했으나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강의 짱! 그리스 신화에 그리도 많은 비밀이 숨어 있다니!

그런데 강의 도중 스파르타 얘기가 나왔는데
교수님이 정색을 하면서 이러는 거다.

“스파르타 하면 사람들이 뭘 생각하는지 아세요?”

뭘까? 스파트타식 교육? 뭐 그런 건가 보다 하고 있는데

‘영화 300’이란다. 아, 그렇겠다 싶었다.
그런데 교수님 말씀이, 300은 완전 나쁜 영화란다.

서양철학, 거기서도 플라톤을 전공하셨다는 교수님이
나쁜 영화라고 정색하시니까
당연히 내용에 뭐가 문제가 있으려니 했다.
그런데, 그런데…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내용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말씀 안 하셨음 ㅋ)

남자의 배는 말이죠, 내 배처럼 둥근 거에요.
절대로, 절대로 초콜릿 모양이 될 수 없는 거에요.
남자의 배를 왜곡한 그 영화는, 몹시 나쁜 영화에요.

맞다. 남자의 배는, 네모 각진 것이 아니라 둥근 것이다.

역시 인생은 배워야 할 것 투성이다.

고맙습니다. 교수님!


신고

'사랑하며 사는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디아포라  (2) 2012.12.12
아버지와 면도기  (0) 2011.10.21
남자의 배  (0) 2011.10.14
설레임을 넘기고, 새 인연을 기다리다  (5) 2011.01.24
[미련한 다이어트5] 다이어트, 이건 사람 사는게 아니야  (6) 2010.08.25
생일 후기  (0) 2010.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