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생활 속 평범한 행복과 기업 블로그 콘텐츠의 재탄생

인터넷에는 읽을만한 콘텐츠가 별로 없다고들 합니다. 한 군데서 올린 정보를 사방에서 퍼 올리니 새로운 정보도 딱히 없고 낚시성 정보가 워낙 많아 속는 느낌도 많이 들지요. 그래서 인터넷에서 뭔가 읽을 거리를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저는 기업 블로그를 열심히 보라고 권합니다. 요즘 기업 블로그 콘텐츠 정말 많이 좋아졌거든요. 


물론 기업이 운영하다 보니 자기네 목소리를 내는 콘텐츠가 많긴 합니다만(그러려고 기업 블로그 하는 거겠지요) 그런 콘텐츠만 올리면 사람들이 재미없이 하니 다양한 교양 콘텐츠를 많이 올라옵니다. 문화, 예술은 물론 여행 정보는 기본이고 생활의 상식 같은 정보들도 많습니다. 기업이 하니까, 하고 색안경 끼고 보기엔 놓치기 아까운 정보들이 참 많아요. 이렇게 비교하면 어떨까요?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예전 기업 사외보들이 웬만한 잡지 보다 수준이 높았던 것처럼 기업 블로그도 웬만한 인터넷 미디어보다 품질이 좋다고요.  


그런데 아까운 건, 이렇게 좋은 콘텐츠들이 잠깐 노출되고 금세 사라진다는 겁니다. 물론 글은 여전히 남아 있고 훌륭한 검색 사이트 덕분에 필요하다면 언제든 그 정보를 찾아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공들여 만든 콘텐츠가 묻혀 버리니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드는 처지에선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이렇게 아까운 콘텐츠를 어떻게 더 알릴 수는 없을까.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고민하는 숙제입니다. 



가장 손쉽지만 실천으로 옮기기는 좀 어려운 방법이 하나 있는데, 책으로 내는 겁니다. 그리고 최근 아주 좋은 샘플이 나왔는데요, ‘소박한 생활 속 평범한 행복’이란 책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네,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 냈습니다. ^^ 


이 책은 SK 기업 블로그인 행복블로그에서 소개한 행복한 백 사람의 인터뷰를 엮은 것입니다. 그 중에는 조금 유명한 분도 있지만 사실 대부분은 평범한 직장인, 가정 주부, 취업을 앞둔 대학생 등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분들입니다. 블로그 계에서 유명한 분들도 좀 있고요. 아마도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얘기가 뭐 재밌다고 책으로 내나? 



책을 내면서 참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어차피 글이야 다 똑같겠지만 화면으로 보는 것과 종이로 보는 것은 많이 달랐습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서로 다른 점이라고 할까요. 화면은 빠르고 종이는 느렸습니다. 화면이 동적이라면 종이는 정적이었지요. 화면이 잠깐 스쳐지나는 미인이라면, 종이는 내 곁에 둔 여자친구였습니다. 아, 물론 제게 그랬다는 겁니다. ^^ 


소박한 생활 속 평범한 행복은 기업 블로그 글을 모아 책으로 냈다는 점에서 콘텐츠를 재활용하는 또다른 방법을 제시했다고 봅니다. 물론 이 책이 대박나게 팔리면 좋겠지만 ^^ 유명한 사람이 쓴 책도 아니고, 유명한 사람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벤트가 빵빵한 것도 아니고, 저희가 힘이 있어 출판 마케팅 능력이 우수한 것도 아니어서 대박 팔릴 가능성은 그렇게 높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받아본 분들이 정말 기뻐하고(물론 나온 분들이니까! ^^) 책에 나오진 않았어도 한 번씩 읽어본 분들이 누군가에게 선물하면 좋겠네, 라고 말씀하는 걸로 봐서 나름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자부합니다. 실제로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이 책을 무려 열 권이나 사서 자기가 쓴 편지와 함께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줬답니다. 책을 낸 저도 열 권 살 생각은 못했는데, 순간 부끄러웠습니다. 



소박한 생활 속 평범한 행복은 그저 평범합니다. 하지만 평범함 속에 숨어 있는 행복을 평범하다는 이유로 무시하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이 불행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 봅니다. 누구에게나 행복은 있습니다. 단지 그 행복을 찾지 못할 뿐. 소박한 생활 속 평범한 행복이, 지금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어느 한 분에게라도 행복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제겐 큰 행복입니다. / Fin


아이패드 미니도 드리는 이벤트 함 놀러오세요

YES24에서 팝니다

(물론 다른 서점에서도 팝니다만 제가 YES24 플래티넘 회원인 관계로 ㅋ)

(이 링크를 통해 사셨다고 해도 저한테 생기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링크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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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의 미래, 종편의 해악

종편 개국 첫날부터 대박 터졌다. 강호동이 일본 조폭 모임에 참석했다는 뉴스다. 내용을 까보니,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선배 따라 엉겁결에 간 자리랜다. 젠장 고3이 선배가 가재서 갔는데 그 자리가 무슨 자린지 알게 뭐냐. 그리고 강호동이 지금 몇 살인데, 고3적 얘기를 꺼내냐? 아마 강호동 자기는 기억도 못할 일일텐데, 이걸 어데서 주워들은 종편이 ‘강호동’이라는 이름 값 때문에 ‘대박이야’라고 싶어 저지른 뉴스일게다.

네이버에서 검색한 강호동. 졸지에 일본 조폭된 강호동의 명예는 누가 책임질까?


게다가 이 소식은 TV에 나온 드라마든 연예든 무조건 뉴스라고 받아 쓰는 쓰레기 같은 미디어와 그런 쓰레기를 모른 척 하고 받아주는 포털을 등에 업고 순식간에 대한민국에 퍼졌다. 아무 것도 모르는 고3 시절에 따라간 자리인데, 그걸 일본 조폭 만난 거라고 써서, 대한민국 사람 대부분은 강호동이 일본 조폭과 사고쳤구나, 라고 확대 해석했을 게 틀림없다. 나도 그랬으니까. 강호동 할 일 없대더니 사고쳤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애꿎은 강호동은 유명하다는 죄 때문에 졸지에 일본 조폭이 되버린 거다.안 그래도 터프한 외모에 조폭이란 낱말까지 붙어 완전 이미지 구겨놨으니, 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걸 믿고 흥분한 국민의 마음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한겨레에서 퍼온 시작부터 광고주에게 인사하는 종편 직원들 사진


이것만 봐도 종편의 미래는 뻔하다. 시작부터 광고주에게 머리 조아려 시작한 종편이니, 틀림없이 시청률 경쟁에 목을 맬테고, 별 말도 안되는 걸 뉴스라고 파헤칠거다. 이 과정에 제일 만만한 연예인을 포함해 이런저런 사람들의 사생활이 다 까발려질 거고, 대중은 진실이고 말고를 떠나 그 사실을 믿어버릴 거다. 까다 까다 안 나오면 별 말도 안되는 걸 깔테고(지금도 충분히 까발리고 있지 않은가) 결국 까발려지는 대상이 내가 아닐 거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쓰잘데기 없는 소식을 속보니 뉴스니 퍼뜨리고, 이런 쓰잘데기 없는 뉴스를 포장해 낚시질하는 쓰레기 같은 미디어에 낚인 국민이 인생에 별 도움 될 것 없는 허잡한 쓰레기를 읽으며 낭비하는 시간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유용한 정보를 찾아 지식을 높여야 할 시간에, 포털에 걸린 낚시성 콘텐츠로 시간을 낭비할 때 발생하는 손해는 누가 책임질까. 거기서 생기는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는데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할 것인가.


이게 바로 종편의 해악이다. 물론 이제 막 시작한 종편이 앞으로는 정말 건전하고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지도 모르지. 이제 막 태어난 아가한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우리 속담에 될성 부른 나무 떡잎 부터 알아본다 했다. 내 보기에 종편은 씨앗도 잘못됐고, 뿌린 땅도 잘못됐고, 뿌린 넘도 잘못됐다. 출발이 이럴 진대, 종편이 잘될 거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말하는 나도 결국엔 종편 낚시에 걸려 시간을 낭비하고 말게다. 물론 낚시에 걸린 건 내 책임이지만, 낚시대가 수도 없이 깔린 세상에서 미끼 하나 잘못 물었다고 물고기를 탓할 수는 없는 법. 종편 채널은 지울 수 있으나 포털에 깔린 낚시바늘은 어찌해야 할지, 걱정과 화가 앞선다. 인터넷을 확 끊어버릴 수도 없고. 쓰바(정말 이 말만은 쓰고 싶지 않았으나!).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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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통 2011.12.07 18:2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쓰바 아니고요 씨바 ㅎㅎ

[독서일기] 모든 이름엔 스토리가 있는 법

나는 내 첫 만년필을 기억한다. 그 촉감이 얼마나 매끄러웠는지, 잉크가 손을 얼마나 푸르게 물들였는지를. 그것은 베이클라이트 합성 수지로 만든 것이었고, 은색 테두리가 둘려 있었다 / 마거릿 애트우드, 눈먼 암살자 1, 차은정 옮김, 민음사

이 글을 읽으며 나도 내 첫 만년필을 기억했다. 파카. 짙은 파란색 플라스틱 몸체에 은색 뚜껑, 그리고 그 유명한 화살표. 그땐 파카가 제일 좋은 만년필인 줄 알았던 탓에 또래 아이들 모두 부러워했던 그 만년필. 손에 잉크를 묻혀가며 잉크를 넣고 스윽 스윽 써내려간 부드러운 느낌. 세워놓고 윗 부분을 톡 치면 한바퀴 재주를 넘던 만년필 뚜껑.

지금 나는 파카보다는 워터맨을 더 좋아할 뿐이고 ㅜㅜ

그러다가 한 낱말에서, 마치 돌부리에 걸린 듯, 주춤했다. 베이클라이트. 만일 내가 이 글을 읽지 않았다면 읽다가 멈추고 말았을 그 낱말, 바로 베이클라이트였다. 도대체 베이클라이트가 뭐야?

바로 그 글. 플라스틱의 어제, 오늘 그리고 미래 from 제일모직 이야기

“전기화확회사를 운영하던 베이클랜드는 1909년 포름알데히드와 페놀을 이용해 ‘베이클라이트’를 만들었습니다. 베이클라이트는 깨지기 쉬운 셀룰로이드의 단점을 보완하면서도 열만 가하면 다양한 형태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요… 베이클라이트를 최초의 플라스틱으로 보는 사람도 많이 있답니다”  플라스틱의 어제, 오늘 그리고 미래 중에서.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마거릿 애트우드의 '눈먼 암살자'에서 화자인 아이리스 그리픈에게 베이클라이트는 우리로 따지면, 태엽을 감았던 자명종 시계, 스테인레스 도시락, 검정 고무신처럼 추억을 상징하는 물건이었을게다. 베이클라이트를 몰랐다면 나 역시 이런 느낌으로 책을 읽지 못했을 테고.


모든 이름엔 다 저마다 이야기가 있는 법. 이름에 담긴 이야기를 알면 인생이 더 즐거운 법이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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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blog.daum.net/bouquetdor BlogIcon 풍류대장 2011.08.26 21:1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교복 윗주머니에 꽂은채 축구하다
    떨어트린것도 모르고
    한참있다 모래밭 운동장에서 찾은
    기스덩어리의 나의 빠이로트 만년필...
    나의 첫 만년필을 저도 또렷히 기억합니다

사랑은 어쩔 수 없는 역설이다 - 뉴문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러브 스토리, 트와일라잇. 소재는 독특했으나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었다. 뱀파이어 영화에 러브 스토리라니. 내게 있어서 이건 마치 우유에 밥 말아 먹는 그런 느낌 같은 거다(이런 종류의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죄송!). 트와일라잇에 대해 그냥 이런 기억만 있는 내게 난데없이 딸 아이가 트와일라잇을 보고 싶다기에, 재미없어~ 그러면서 눙치고 지나가려 했더니 책을 사 달란다. 응? 이게 책이 있다고? 알고 봤더니 4권짜리 장편소설이다. 아이고야. 그러고 나서 트와일라잇의 속편이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뉴문’이란다.


첫 영화에 대한 기억이 특별하지 않았으므로 속편을 볼 리가 없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말았다. 일요일 오후, 딸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컴퓨터를 이용해 프로젝트 숙제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난(!) 것이다. 서너 시간 보낼 만한 곳이 어디 있겠나. 그래서 찾은 곳이 잠실 롯데시네마다. 아무리 사람 많은 주말에도 표를 구할 수 있다는 그 영화관.

역시 영화는 여전히 내 취향이 아니다. 호러도, 액션도 아닌 멜로에 나는 지루했고, 옆 자리에서 쉴 새 없이 떠드는 젊은 연인들 때문에 영화에 집중하기도 어려웠다. 사실 이 연인들에 대해서는 한마디 하고 싶지만, 영화 끝나고 나오는데 아내가 흘린 목도리를 찾아다 주는 선행을 베푼 까닭에, 그냥 다 용서하기로 했다. ^^

하여튼, 영화는 여전히 사랑의 역설을 다룬다. 사랑하지만 함께 갈 수 없다, 사랑하기에 같이할 수 없다는 사랑의 역설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주인공과 관객들은 그 역설에 때론 공감하고 때론 거부하며 어쩔 수 없이 스토리를 따라간다. 에드워드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벨라의 곁을 떠나고 벨라 역시 사랑한다는 이유로 뱀파이어가 되고 싶어 한다. 과연 진정한 사랑은 뭘까. 정말 서로 사랑한다면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하는 걸까? 아니면 사랑은 기복이 심한 일시적인 감정이므로 후회하지 않도록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하는 걸까.

어쩌면 애당초 사랑은 운명이어서 내가 선택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까닭에 사람들은 상대를 아프게 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 행동이 오히려 상대를 더 아프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결국,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주어야 할까. 그것이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이기에.

영화는, 사랑한다면 원하는 대로 하라고 말한다. 결론은 똑같으니 어차피 돌아가지 말라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역시 사람이든 뱀파이어든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닌가 보다. 어쩌면 돌고 도는 것이 사랑의 속성일지도 모른다. 한 방에 쭉 가면 그건 사랑이 아니잖아요, 소개팅이지~ 라고 우스개를 던지며 위로해 봐도, 사랑이 쉽지 않은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물론 사랑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도 질러보고 싶다. 사랑한다면 원하는 대로 하라. 더는 서로 상처받지 않도록./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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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cafe.daum.net/shinjinju BlogIcon 풍류대장 2009.12.08 13:1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장르는 좀 다르지만
    저도 오늘 영화 한 편 때릴 계획입니다
    그나저나 요즘에도 극장에서 팝콘을 파는가요??...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12.08 13:37 신고 수정/삭제

      오늘 같은 날 무슨 영홥니까, 그저 소주지~ ㅋㅋ

  • 2009.12.09 16:33 ADDR 수정/삭제 답글

    비밀댓글입니다

  • 로즈마리 2009.12.18 17:5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마지막 글에 여운이 남네요
    사랑한다면 원하는대로... ^^
    뉴 문~ 전 러브스토리는 다 좋더라는 ㅋ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12.21 11:18 신고 수정/삭제

      ^^ 크리스마스와 올 겨울엔 뜨겁게 사랑하세요~

청이야기, 인생은 돌고 돌아 슬프지만, 그러나...

고전을 다시 본다는 건, 어릴 적 기억 속을 되살려 본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개 고전이란 이름이 붙을 수 있는 것들은 읽는 사람의 나이, 환경 등에 따라서 느낌이 많이 다르니까요. 제가 요즘 헤르만헤세의 데미안, 수레바퀴아래서, 싯다르타 등을 다시 읽는 건 대학생 때 읽었던 느낌과 전혀 다른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고전을 다시 읽는 것도 즐겁지만 그 고전을 새롭게 각색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행운입니다. 고전을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한다는 건 굉장히 신선한 시도니까요.


우연한 기회에 마지막 공연의 VIP 티켓을 받은 건 정말 큰 행운이었습니다. 게다가 공연 장소는 우리나라에서 뮤지컬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몇 안되는 극장 중 하나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마지막 공연이라 배우들의 연기는 물오를 대로 올랐을 테고, 마지막 회라는 특징 답게 평소보다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까지 갖게 되니(그런 까닭에 원래 뮤지컬 마지막 공연들은 항상 매진이 되곤 합니다.)  저로서는 이미 공연을 즐길 준비가 충분히 된 거지요.


뮤지컬 청이야기는 심청전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새롭게 각색한 뮤지컬입니다. 원작은 해피엔딩이지만 안타깝게도 청이야기는 비극이지요. 물론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라는 방대한 주제로 놓고 보자면 우리 인생이란 다 해피엔딩이겠지만, 어쨌든 헐리우드 스타일의 해피엔딩은 아니라서 공연을 다 보고 난 후 어쩐지 무거운 마음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청이야기의 청은, 선원들의 빨래를 해주며 눈먼 아버지와 사는 착한 소녀입니다. 은근히 청이를 사랑하는 덕이와 정이 많은 덕이 엄마를 이웃으로 두고(뺑덕 어미의 재해석이란! ^^) 넉넉하진 않지만 즐겁게 살아갑니다. 마침 청이가 빨래를 담당하던 배는 중앙 정부에서 쫓겨난 왕자님의 배. 당연히 청이와 왕자님은 묘한 관계를 이어갑니다. 그러다가 동네 양아치의 속임수에 빠진 아버지 때문에 청이는 왕자님의 배가 인당수를 지날 때 험한 파도를 잠재울 제물이 되고 결국 인당수로 뛰어드나 왕자님이 청을 구해냅니다. 그리고 왕자는 자기 나라로 돌아가나, 그 곳에서 왕자를 기다리는 건, 험한 정치 싸움, 과연 왕자는 쿠데타를 이겨내고 청이와 사랑을 완성할 수 있을까요(앞에서 비극이라 해 놓고, 이렇게 마무리를 하는 건 무슨 심보일까요. 에휴 ^^).

연출가의 말을 빌리면 심청전은 지극히 동양적이고, 뮤지컬은 지극히 서양적입니다. 동양과 서양의 분위기를 조화롭게 만들고 전혀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고 그런 시도들이 관객들에게 틀림없이 기쁨을 주었을 겁니다. 청이야기 역시 동양과 서양의 느낌을 조화하면서 거기에 현대적인 감각까지 보태야 했으니 쉽지 않은 노력이 들어갔을 테고, 그만큼 관객은 새로운 공연을 즐길 수 있습니다.

쉬는 시간까지 포함해 두시간 삼십분의 공연은 금새 지나갑니다. 화려한 무대, 실감나는 음악과 와이어 액션까지 선보이는 배우들의 연기에 관객은 쉽게 몰입합니다. 젊고 매력적인 배우들의 무대는 그들의 젊음이 마냥 부럽다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이미 몇몇 뮤지컬들을 거치면서 나름대로 내공을 쌓은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모두 박수를 보낼만 합니다.

비극은 감정의 카타르시스라고 하지만(사실 청이야기의 마지막 주제가 인생은 돌고 도는 것, 이어서 딱히 눈물을 흘릴 비극이라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 공연을 마친 배우들에게는 좀 손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커튼콜이 시작되고 배우들이 인사를 하지만 여전히 기립 박수에 어색한 우리 관중들은 그저 앉아서 박수를 보낼 뿐입니다. 만일 희극이었고 관객들이 웃는데 익숙해져있다면 모두들 일어섰을 지도 모르니까요.

제가 본 것이 마지막 공연이라 청이야기가 언제 다시 무대에 올려질까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청이야기가 다시 무대에 올랐을 때, 나도 뮤지컬 좀 보고 싶은데 뭘 봐얄지 모르겠어 라고 생각하신다면 청이야기를 고려해보실만 합니다. 배우, 무대, 음악 모두 아깝지 않은 공연이니까요.

PS> VIP 좌석은 비쌉니다. 그러나 비싼 만큼 제 값을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좋은 공연을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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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gosu1218.tistory.com BlogIcon gosu1218 2009.11.26 12:5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고전의 새로운 해석이군요~~
    앞서 비극이라 얘기하셔서;;
    결말 역시 새롭게 구성되었나보군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11.26 15:49 신고 수정/삭제

      그렇죠. 미리 다 말씀드리면 재미없을까봐서요 ^^

      새로운 결말의 심청전도 꽤 괜찮았습니다 ^^
      좀, 가라앉아서 그렇죠 ㅋ

  • Favicon of http://cafe.daum.net/shinjinju BlogIcon 진주애비 2009.11.27 12:5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레이님 잘 지내시죠..
    이달말까지 논현에서의 생활이 정리가 됩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다시 한번 서로 접신(변기신)의 기회를 가져야겠죠..^^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11.28 23:31 신고 수정/삭제

      아, 저런. 드디어 새로운 방향을 정하신건가요.

      이달 말이면 내일 모레인데...
      어쨌거나 송년회는 진하게 함 하시지요 ^^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09.11.27 14:3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참..
    아다리가 안 맞네요..ㅠㅠ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11.28 23:30 신고 수정/삭제

      그대가 인기가 많아서 그런 걸 우짜노~ ^^

위장전입, 전형적인 소탐대실이라고요?

내년이면 딸 아이를 중학교에 보내야 합니다. 항상 애기같은 아이가 벌써 중학교에 간다고 하니 아빠 마음이 좀 싱숭생숭합니다. 이러다 보면 딸 아이가 지금 아빠를 놀려먹는 아이템 중 하나도 금새 이뤄지겠더군요. “나 대학 가면 아빤 오십이다!” 으, 아주 미칩니다. ㅋ

중학교 배정을 앞두고 가정 통신문이 왔습니다. 그야 말로 실소를 금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위장 전입은 전형적인 소탐대실의 경우로서 귀한 자녀에게 편법과 불법으로 세상을 살아가라고 가르치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당당히 밑줄까지 그어왔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겠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이가 학교에서 오더니, 가정통신문에 부모님 사인을 받아오랬다는 겁니다. 참고로 가정통신문엔 부모님 사인 란이 별도로 없습니다. 그냥 옆에다가 사인을 받아오랬답니다.

좀 웃기더군요. 이 나라 최고지도자부터 행정부의 수장들까지 수 많은 사람이 버젓이 위장전입을 했고, 심지어는 위장 전입을 했다는 사실이 업무를 수행하는데는 별로 흠이 되지 않으므로(!) 당당히 임명되기까지 했는데 초등학교에서는 위장 전입을 “전형적인 소탐대실”이며 “귀한 자녀에게 편법과 불법으로 세상을 살아가라고 가르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다가 학부모 사인까지 받아오라니 말입니다. 게다가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위장 전입이 폐혜를 낱낱이 설명하면서 최악의 경우엔 선생님과 학생과 부모님이 교육청에 끌려갈 수도 있다(!)라고 하셨답니다.

생각해보니 저런 법들은 그저 돈없고 힘없는 서민들만 철썩 같이 지키야 하는 것들입니다. 위장 전입으로 자녀들을 좋은 데로 빼 돌린(!) 분들은 그 귀한 자녀들에게 이 나라에서 좀 더 편리하게 살아가는 편법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사실 편법을 가르치지 못한 부모들이 무능력한 현실이 되버린 것이지요.

지도자의 도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꺠닫게 됩니다. 소위 말하는 지도층 인사들이 지키지 않은 법을 서민들은 지켜야 하니, 당연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능력만 있다면 도덕성은 별로 문제될 것 없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도덕에 둔감한 사람들이 갖춘 능력이란 것이 정말 선한 능력일까요? 사람의 능력은 도덕에 기반을 두어야 그 가치를 발휘하는 법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능력은 자기만을 위해 쓰여지는 것이 대부분일테니까요.

도덕성이야 말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능력이라는 점, 이젠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어쨌든 저는 이 나라에서 위장 전입이 더 이상 불법이 아닌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닌 모양입니다. 그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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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blog.daum.net/bouquetdor BlogIcon 풍류대장 2009.10.27 21:4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위장전입쯤은 괜찮습니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말 한 마디면 다 끝납니다
    대통령이하 장관 나부랭이들이 즐겨 쓰던 말 아니던가요..

지나치게 잘 포장된 책 - 창조 바이러스 H2C

집에 돌아오니, 책상 위에 책 한 권이 놓여 있었습니다. 친분이 있는 딸 아이의 친구 아빠께서 읽다가 너무 감명 받았다고 같이 한 번 읽었으면 좋겠다고 쪽지가 한 장 얹혀 있는 책이었습니다. 같이 여행을 가기도 했고, 가끔 술 한 잔 하기도 하는 사이였지만, 이렇게 책을 선물 받으니 기분이 또 묘하더군요. 저도 뭔가 답례로 책을 하나 보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선물은, 아마 이래서 더 아름다운가 봅니다. 받으면, 무언가 다른 책을 보내야 하겠기에.

사실 저는 문학이나 역사, 철학 같은 책은 책에는 손이 많이 가는데 경제 경영, 처세 이런 류의 책에는 손이 잘 안 가는 편입니다. 그래서 이런 쪽 책을 선물 받으면 더 기분이 좋죠. 제가 잘 고르지 않는 분야의 책을 접하게 만들어 주니까요. 이번에 선물 받은 책은 홈플러스 이승한 회장님이 쓴 창조 바이러스 H2C 라는 책입니다.


책 내용은 어렵지 않습니다. 활자도 크고 페이지도 잘 넘어 갑니다. 한 시간, 길어도 두 시간 정도면 읽어 내릴 수 있습니다. 한국에 홈플러스라는 유통점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저자의 인생을 마치 자서전처럼 풀어 낸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어린 시절의 가정 형편 부터 삼성이라는 대기업에 취직해 일을 하는 과정들, 어려웠던 시간들과 영광의 시간들을 에피소드 중심으로 풀어내면서 저자가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결론부터 말하면, 저는 그닥 감동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처음엔 이거 뭐, 돈 많고 성공한 분의 자기 자랑인가 보다, 그런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신입사원 시절 복사만 6개월 했다는 얘기는, 뭐든 남보다 두드러지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얘기로 들리지만, 현실에선 100% 적용되는 얘기가 아니므로 신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려웠던 시절 선비였고 엘리트였던 부모님을 두지 못했고, 국내 최고 학부에 다니는 형제들을 두지 못했으며, 대기업에 입사해보지 못했던 이 땅의 훨씬 더 많은 보통 사람들에게, (물론 저자는 정말 피나는 노력을 했고 그래서 성공했겠습니다만) 나는 이렇게 했고 저렇게 해서 성공했다는 얘기가 얼마나 설득력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홈플러스라는 기업이 입점 업체에게 부리고 있는 횡포(비록 이 바닥에 있는 업체들이 다 그렇게 하는, 관행이라는 말로 두리뭉실 넘어 가고 있지만)에 대해 중소기업 사장님으로 부터 들은 얘기가 있는 저로서는 책에 나와 있는 좋은 얘기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더욱이 책 중간에 우리나라에 나와 있는 상이란 상은 다 받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다 받았다는 얘기에선 실소까지 나왔습니다. 다 그런 건 아니겠습니다만 일부 언론사에서 주관하는 소비자 대상 등등이 사실은 돈 내고 사는 광고라는 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기 때문입니다.

선물해 주신 분께는 좀 미안할 정도로, 비판적인 관점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웠던 시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힘을 많이 얻으셨다는 친구 아빠의 소감은 나중에 술 자리에서 따로 한 번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저도 무언가 답례를 보내면서 이런 자리를 만들게 되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책이 주는 메시지까지 무시해서는 안되겠지요. 비록 지나치게 잘 포장된 개인의 성공담이긴 하겠습니다만, 벽에 붙여 놓으면 좋은 문구들이 꼭 있거든요. 우리가 모르진 않지만, 가끔씩 스스로에게 경각심을 줄만한 그런 문구들을 다시 한 번 되새겨 읽게 했다는 점은 틀림없이 이 책이 주는 좋은 점이니까요. ^^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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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blog.daum.net/bouquetdor BlogIcon 풍류대장 2009.09.14 20:3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맵씨나는 레이님의 글쓰기 솜씨로
    누군가의 자서전을 써 주시다면
    그 분의 일생은 또 얼마나 아름답게 보일런지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9.14 23:56 신고 수정/삭제

      뭐, 남의 이야기를 쓰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 전에 제 얘기를 먼저 써 보고 싶어요. ㅋㅋ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09.09.15 22:4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제가 좀 아는데요..
    책 안 읽어봐도 많이 맞아 떨어지지는 않을 듯..^^;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9.16 08:56 신고 수정/삭제

      ㅎㅎ 자기가 읽다간 아마 집어 던졌을(!) 지도 모를 일~ ㅋㅋ

논쟁? 사랑이란 원래 다 그런 거잖아?!

“당신을 영원히 사랑해요”

하지만, 우린 압니다. 이것이 너무나도 지키기 힘든 약속이라는 걸. 사랑에 빠진 사람은 너무도 쉽게 많은 것을 약속하고, 많은 것을 장담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약속과 장담은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변하고 사랑받는 사람도 변하며, 그들을 둘러 싸고 있는 모든 것들도 변하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부터 격리 되어 온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납니다. 그들은 서로의 모습에 반응하고 호감을 가지며, 곧 사랑에 빠집니다. 그런 그들에게 나타난 또 한 쌍의 남녀. 에덴동산에서처럼 단 둘이서만 존재하던 그들의 관계에 새로운 존재가 등장한 것입니다. 남자와 남자는 친구가 되고, 여자와 여자는 적이 되며, 남자와 여자는… 친구이면서 적인, 오묘한 관계로 변해 갑니다. 과연, 그들에게 남아 있는 건, 어떤 관계일까요.

사랑에 대한 논쟁이란, 참으로 진부하기 그지 없는 소재입니다. 그러나 이것처럼 흥미진진한 논쟁도 드문 법이지요. 결국 사랑이란 영원하기 힘든데, 그 까닭이 다 저마다 각각이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솔직히 논쟁이란 연극을 보게 된 건, 사랑에 대한 논쟁이 궁금해서는 아닙니다.

네 명의 배우가 한 시간 동안 완전한 나체로 공연을 한다는 것은, 장안의 화제가 되고도 남을 일입니다. 설마, 조금은 가리겠지, 라는 생각은 첫 배우가 등장함과 동시에 숨이 막혀 오며 어디론가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나 어느 틈에 관객은, 배우의 몸 대신 배우의 연기를 보게 됩니다. 언뜻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 논쟁의 이미지였으나 때론 가볍게, 때론 적당히 무겁게 스토리가 흐릅니다. 어느 틈에 관객은 그들이 옷을 벗고 있다는 사실을 잊습니다. 잊는다기 보다는, 익숙해졌다고 해야 하겠지요. 그리고 씁쓸한 사랑의 결말에 안타까운 웃음을 짓습니다. 솔직히 저는 작품성을 평가할 수준은 못됩니다. 그러나 연극 내내 관심을 가진 건, 그들의 나체가 아닌, 그들의 공연이었습니다. 뭐, 솔직히 군살 하나 없는 남자 배우들의 몸이 부럽기는 하더이다. 비록 그저 꿈꾸기만 할 정도일지라도.

연극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나, 극장은 그렇지 못합니다. 소극장이라고 해서 앞 뒤 객석 사이에 다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봐야 하고, 밀려드는 관객 때문인지 통로에까지 손님을 앉힌 보조석 때문에 정작 자리에 앉은 사람마저 더 불편하게 공연을 봐야 합니다. 가뜩이나 다닥 다닥 붙어 앉아 낯선 옆 사람의 체온 때문에 불편한데 에어콘은 들어오는지 마는지, 끈끈한 땀을 흘리며 봐야 합니다. 논쟁을 제대로 즐기시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맨 앞 줄을 예매하시길.

다시, 돌아와서. 사랑은 영원하지 않지만, 한 편으론 또 영원합니다. 옮겨 다니기 때문이라고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사람이 변하는 것처럼, 환경이 변하는 것처럼 사랑도 함께 변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 때는 뜨거운 불이었다면, 한 때는 잔잔한 물이 되고, 코를 찌르는 강렬한 향수였다면, 바람 결에 실려 전해오는 은은한 꽃 향기도 필요한 법입니다. 사랑한다면,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언제나 남아 있는, 가장 강렬하면서도 끈기 있는  마지막 사랑일지도 모릅니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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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딸에게 전하는 12가지 부의 비법

연달아 계속 딸과 아빠의 관계에 대한 책을 읽은 건, 그저 우연이었습니다. 사실은 이 앞에 쓴 글의 소재인 ‘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라는 책을 사려고 Yes24를 뒤지다가 이 책 ‘딸에게 전하는 12가지 부의 비법'도 같이 걸린 거였거든요. 딱히 딸에게 ‘부’를 줄 방법이 없는 저로서는 ‘부의 비법'을 준다니까 오호, 이게 뭘까 그런 호기심이 발동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 펀드라는 걸 만든 짐 로저스라는 사람이 썼답니다. 이 분은 퀀텀 펀드로 떼돈을 번 후 37살 나이에 은퇴해서 전 세계를 오토바이로 돌아다녔다는데 무엇보다도 37살에 은퇴했다는 사실이 정말 정말 부럽더군요. 저도 원래 목표는 마흔 살에 은퇴하는 거였는데! ^^


여튼 돈을 많이 번 이 분이 딸에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아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한 가문 대대로 물려줄 비급(!) 같은 것일까요. 하긴, 비급이라면 이렇게 책으로 내지는 않았겠지만요.

제목처럼 12가지 섹션으로 나뉘어 딸에게 주는 충고가 이 책의 주요 내용입니다. 아빠가 딸에게 마치 편지로 말하듯 그렇게 쓰여졌는데요,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지 마라, 네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라, 세계로 나가 넓은 세상을 보아라… 등 12가지 제목만 읽어보면 사실 좀 뻔한 이야기입니다.하지만, 원래 이런 책들이란 다 이렇게 누구나 알 법한 내용들인거고, 그걸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 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솔직히 ‘기획’해서 만들어낸 냄새도 좀 납니다.

아무래도 성공한 아빠여서 그런지, 이 분의 충고는 냉정하고 날카롭습니다. 감성적인 충고 보다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충고가 많습니다. 앞서 읽은 ‘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가 감성적인 면을 가르치라는 조언을 하고 있다면 이 책은 그 반대의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이런 겁니다. ‘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에서난 아빠가 다른 남성들의 귀감이 되고, 다른 남성들과 인간적으로 교류할 것을 조언하는 반면 이 책에서 남성은 아빠가 경고를 해 줘야 할 대상입니다. ^^ 하긴 같은 남성이더라도 딸 앞에 얼쩡 거리는 남성을 어느 아빠가 좋게 볼 수 있겠습니까마는!

어쨌거나 저 개인적으로 되게 와 닿는 충고는 바로 이 것이었습니다.

‘철학을 배우고, 생각하는 법을 깨우쳐라'


사실 우리 교육 환경을 돌아보면, 생각하기 전에 먼저 외우라고 가르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왜 그런지 따지지 말고 일단 시키는 대로 외워서 공부하고, 그렇게 해서 좋은 대학 간 다음에 생각은 니가 하든 말든 맘대로 해라, 뭐 이런 분위기겠지요. 이런 교육 환경에서 철학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학교에선 정작 그렇게 배웠는데 취직을 할려니 기업은 창의적인 사람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사회에선 창의적인 사람을 필요로 하면서 정작 학교에선 획일화된 것을 가르치고 있으니 이것도 또 말이 안되는 것일테고요.

안타깝게도 이 아빠는, 현재의 교육 현실에 저항할만한 용기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저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남들 가는 대학(뭐 당연히 좋은 대학이기를 바라는 마음!) 탈없이 갈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런 교육 환경에서 늦게까지 영어나 수학 문제 푸느라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만, 대한민국에선 누구나 겪어야 하는 일이라고 위안하기도 합니다.

아빠가 딸에게 가르쳐야 할 것들이 어디 이뿐이겠습니까마는 막상 가르치자면 또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빠는 내 딸 만큼은 최고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주춧돌을 놓기 위해 오늘도 아빠는 스스로를 갈고 닦아야 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아빠 스스로 철학하지 않으면서 아이에게 철학하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일테니까요.

PS> 앞서 읽은 ‘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는 꼭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고, 이 책은 시간 나시면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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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9.08.17 11:3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요즘 딸 시리즈로 인기를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8.17 14:21 신고 수정/삭제

      흐흐 겨우 두 권 읽었는데요 뭐~ ㅋ
      저도 이런 책 하나 써볼까 봐요~ ㅋ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09.08.17 15:0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마흔 전에 은퇴하기"..
    아 왜 전 그런 생각을 못 해봤을까요..

    "최장수 샐러리맨"..
    요런 쓰잘데기 없는 꿈이라니..ㅋ

  • Favicon of http://wessay.net BlogIcon wessay 2009.08.17 21:1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소로스와 그의 친구는 헤지펀드 만들어서 환률 공격으로 돈을 벌었다는데.. 그거 아주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돈을 목적으로만 가르치는 건 아닐지요.. 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8.18 13:21 신고 수정/삭제

      여튼, 돈 번 사람이라 그런지
      충고하는 것들이 아주 짤 없다니께 ㅋㅋㅋ

      시간 나면 보시라고.
      일부러 보실 필요는 없는 듯! ㅎ

[책] 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

아무리 바빠도 주말에는 딸 아이와 함께 보내려 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아빠의 일에 충실하고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딸 아이와 꼭 놀아주겠다고 그렇게 마음 속으로 약속했었습니다. 딸 아이가 어리고, 저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땐 주말이 아무리 힘들어도 어떻게든 외출할 거리를 만들고, 같이 놀아주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 토요일엔 혼자 집에 있는 저를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딸 아이가 자라면서 토요일마다 해야 할 다른 일들이 생기고, 친구들과 약속도 생기고 그러면서 이젠 아빠가 굳이 같이 놀아주지 않아도 될 때가 된 것입니다. 아침마다 아빠가 학교에 데려다 주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던 녀석이, 토요일이면 아빠가 학교 앞에서 기다려주는 것을 바라던 녀석이, 이젠 친구들과 가겠다고 아빠를 수고스럽게 하지 않습니다.

아빠의 마음 속에 있는 아이와 달리 현실의 아이는 이미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자라버렸습니다. 처음엔, 이런 상황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마음 속엔 항상 어린 아이로 남아 있는 녀석이 벌써 컸다고 아빠에게 기대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아빠의 역할이 어디까지인가, 이제 아빠는 어떤 존재로 남아야 하는가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뭐 딱히 결론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그저 딸 아이가 언제든 힘들 때,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문제들에 부딪혔을 때, 아빠는 항상 옆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수 밖에요. 그리고 우연히 발견한 이 책.

‘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는 딸 입장에서 보면 이유지만, 아빠 입장에서는 아빠가 딸에게 해줘야 할 100가지 행동 지침과 같은 겁니다. 주절 주절 설명할 것도 없이 100가지 이유를 짧은 문장으로 담았고, 세피아 톤의 사진으로 더 많은 말을 담았습니다. 짧은 문장인 만큼 원문을 함께 실어 원작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책 읽기 싫어하는 분들도 10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 하지만 10분이 지나면 다시 한 번 들고 처음 부터 끝까지 다시 돌려 읽는 책. 곁에 두었다가 아이와 관계가 힘들어지면 다시 읽을 책, 이라고 이 책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전 이 책을 몇 권 더 구입해 딸 가진 아빠들에게 꼭 선물할 생각까지 해버렸습니다.

책 속에 소개된 100가지 행동 지침들은, 어떤 것들은 너무 추상적이고, 어떤 것들은 너무 지키기 어려운 것들인지 모릅니다. 모든 것을 다 지킬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이 중 하나 만이라도 확실하게 지켜줄 수 있다면, 딸 아이에게 아빠란 존재는 정말 특별한 존재일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 만큼은 꼭 지킬 수 있겠더군요.

“딸에게는 업어달라면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업어주는 아빠가 필요하다"

책을 다 읽고, 저자 후기를 읽다가 저자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딸에게는 가족을 온전히 지켜주는 아빠가 필요하다"라고 써 놓고 정작 저자 본인은 이혼을 했다니. 물론 이혼에 대한 생각이 우리와 많이 다르겠지만 처음엔 뭐야? 이런 생각도 들었더랬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지킬 수 있는 아빠란 어쩌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든, 이 책을 읽는 아빠든 어쨌든 사람일 뿐이니까요. 덕분에 완벽한 아빠의 강박 관념에서 해방될 수 있었을 겁니다. ^^ 저자도 다 못했는데 뭐, 나라고 다할 수 있겠어. 최소한, 업어주기라도 잘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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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09.08.24 13:3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딸이 놀아 달라 하면 아무 이유없이 놀아 줘야 하는 엄마도 있습니다^^
    이유인즉, 아빠랑 놀면 재미 없다고...

    그런 아빠가 아니시니 아직은 상상속의 아빠는 아니신듯여~~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8.24 13:45 신고 수정/삭제

      아빠랑 노는 거랑, 엄마랑 노는 거랑은 질이 좀 다른 법인데요 ㅋㅋ

시리즈를 읽는 즐거움, 그러나!

요즘처럼 읽을 책이 많이 쏟아져 나올 땐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어떤 책으로 골라 읽어야 한단 말인가. 물론 제일 쉬운 방법은 서점의 베스트 셀러를 참조하거나, 신문의 서평을 보거나, 책으로 유명한 파워 블로거의 리뷰를 보는 것이다. 여기에 내가 즐겨 쓰는 방법 하나를 소개하자면, 시리즈 물을 읽는 거다.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시리즈는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세트와 로마제국쇠망사 시리즈, 황금가지의 밀리언셀러 클럽 시리즈다. 다 읽으면 그냥 내키는 대로 골라서 읽으면 되니, 특별히 고르는 부담이 없어 좋다. 민음사의 두 시리즈가 좀 무거운 편이라면 황금가지의 밀리언셀러 클럽은 가볍게 읽어낼 수 있으니 전체적인 밸런스도 잘 맞는 편이다.

그런데, 시리즈를 읽다 보면 한 가지 단점도 있다. 시리즈의 모든 책이 다 내 맘에 드는 것이 아니라는 게다. 세계문학전집이야 이미 널리 알려진 책들이니 이런 위험이 적지만, 내가 잘 모르는 밀리언셀러 클럽의 시리즈들은 이런 위험이 다분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내 맘에 들지 않는 한 권에 부딪히고 말았다. ‘흑색의 수수께기'라는 단편집이다.

단편집은 장편에 비해 짧은 호흡으로 가볍게 읽어낼 수 있어 머리가 복잡할 때 내가 주로 고르는 책이다. 궁금할 뒷 얘기가 없어 할 일이 많을 때 머리 식히며 읽기에도 좋다. 할 일 많고 바쁠 때 괜히 장편 잡았다가 끝까지 다 읽어버리게 되면, 타격이 좀 크다. 이번 주말이 딱 그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단편집이라는 이유로 고른 '흑색의 수수께끼'에는 총 4편의 소설이 들어 있는데,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네 편이어서 읽고 나니 좀 당황스럽다. 추리 소설이라기 보다는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해야 하나, 기존 밀리언셀러 클럽들의 분위기와는 좀 달랐다. 그러다 보니 읽고 나서, 이게 뭐야? 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이 책에 수록된 ‘화남’과 ‘목소리’는, 추리 소설이라기 보다는 한 사람의 조금 기묘할 뿐인 일상을 다룬 내용이고, ‘저벅저벅’은 딱 일본스러운 결말에 그다지 기분이 개운하지 못했고 아인슈타인의 바이올린을 소재로 한 ‘가을날 바이올린의 한숨’은, 황당한 구성과 결말에 허탈함을 느끼게 했다. 한 마디로, 이 책 좀 재미 없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얘기다.

추리소설에 대한 내 내공이 깊지 못해 이런 류의 소설엔 적응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재미 없는 건, 재미 없다고 해야 할 판. 그렇다고 뭐 무를 수도 없고 ^^. 하긴 요즘 하는 말로 이런 건 시리즈 물을 읽기 때문에 생기는 복불복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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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09.06.29 08:3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전집으로 사믄 좀 쌀랑가요??
    낱권으로 사는 것도 다 못 읽음서..ㅡㅡ;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6.29 09:47 신고 수정/삭제

      안 싸~ ㅋㅋ 그냥 낱권으로 하나씩 사서 읽으셔.
      그게 더 재미있으~ ^^

  • Favicon of http://www.kimdahee.com BlogIcon 다희 2009.07.01 21:3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요즘 밀클 100권 광고 만드느라 손이 안보일 정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ㅋㅋ
    오프라인 교보같은데서 20~30% 할인하고 있긴 해요.
    저 수수께끼 씨리즈는 표지 디자인은 예쁜데 내용은 아쉽다는 평이 많죠.
    번역도 일본어 문체가 많이 묻어 난다고들 하구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7.02 00:14 신고 수정/삭제

      ^^ 밀클 다른 건 괜찮았는데 저 책이 유독 좀... ㅋㅋ

      이쁜 광고 만드세요~ 한 권 실망했다고 해서
      밀클을 버리지는 않을테니! ^^

  • ^^ 2009.07.02 10:1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내 맘에 꼭 드는것만 보고 듣고 느낄수 있나요..... 두루두루 다식하시고 꼭꼭 소화 잘 시키소서~~~~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7.02 13:34 신고 수정/삭제

      하하 사실 저는 좀 잡식성이긴 하지요 ^^

  • Favicon of http://sepial.net BlogIcon sepial 2009.07.04 15:5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어휴....요즘 책바람이 나가지고요....생활에 지장이 많아요...
    새벽 3시에 벌떡 일어나서 책보고....이런다니까요.
    책을 안 읽으면 수전증이 와서 아쉬운대로 도서관에서 빌린 영어책이라도(?) 닥치는대로 읽고 있는데....또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책 고르는 게 까다로와져서, 전엔 한번 잡으면 무조건 끝까지 읽었지만, 요즘은 읽다가 아니다 싶으면 그냥 탁~! 접어 버려요....
    하긴, 요즘은 식당가서도 음식이 아니다 싶으면 웨이터가 왔을 때 이거 원래 이 식당에선 이런 식으로 서빙되는 거 맞냐고 물어 보는 저....왜 이러나 몰라요....

    책도 음식도 잘 만들어 주길 바라고, 저는 또 거기에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피곤하게 산다 싶기도,냐하하하~~~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7.06 11:01 신고 수정/삭제

      하하, 나이들어 간다는 대표적인 증거인데요? ㅋㅋ

[릴레이] 레이의 독서론. 나는 왜 책을 읽는가

거창하게 자신의 독서론에 대해 글을 쓰자니 겁부터 납니다. 따라서 제목은 비록 독서론이 되겠으나, 그저 ‘레이가 책을 읽은 까닭' 정도로만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책 읽기에 대해 논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저 좋아서 읽을 따름인 것을. 그나저나 이 숙제를 떠 넘긴 얌용님은 각오하시길.

칠순을 앞둔 한 어르신께서 언젠가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더랬습니다. ‘독서는 취미가 아니다. 생활이다' 칠순을 넘긴 분의 삶이 오롯이 묻어 나는 그런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팔자 좋은 분이셨던 거죠 ^^.  사실 그 분은 우리네 아버지들처럼, 생계를 위해 일을 했어야만 했던 분은 아니셨을 겁니다. 어릴 때부터 책과 그림을 접하셨던 분이셨으니까요. 그러나 어느새 저도 그 말에 깊이 동감하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건, 밥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고, 그래서 읽지 않으면 허기를 느껴야 하는 법이다. 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걸 한 낱말로 요약하자니 쉽지 않은 일이군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써 보렵니다.

독서란 [딸 아이의 기억에 남고 싶은 아버지의 모습]이다

해가 바뀔 때마다 저는 실현하기 어려운 줄 알면서도 올해는 꼭 200권을 읽겠다 다짐합니다. 솔직히 다 채운 적은 딱 한 번 뿐이었을 겁니다. 그 때는 200권을 목표로 세운 지도 않았을 때인데 마침 앉아서 매일 편도 50분씩 앉아서 지하철로 출퇴근 할 수 있는 직장에 다녔을 때였고, 회사 근처에 큰 서점이 있었을 때였고, 회사에도 책이 많았을 때였고, 요즘처럼 PMP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할 때였거든요. 오로지 지하철만 타면 책을 붙잡았으니 200권도 가능했던 겁니다. 그 뒤로 많이 읽은 해는 80여권 정도까지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올해는 비교적 실적이 좋아서 6월 기준으로 약 30권 정도를 읽은 듯 합니다.

제가 책을 읽는 이유는, 책을 읽는 것이 재미있기도 해서지만(간혹 허기지기도 합니다만!), 사실 딸 아이에게 책 읽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가장 큽니다. 딸 아이가 커서 아빠의 모습을 기억할 때, 책 읽는 아빠였다는 점을 기억해줬으면 하는 것이지요. 다행히도 딸 아이는 아빠를 닮아 책을 좋아하고, 책을 많이 읽습니다(책 값 부지런히 대는 것도 아빠의 역할인 셈이지요^^).

요즘 저는 에드워즈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를 읽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꼭 읽고 싶었던 책인데, 예전에 나온 번역서들은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읽다가 내려 놓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거든요. 올해 초 민음사에서 번역된 이 책은, 번역서의 한계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비교적 읽기 쉬운 편이더군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애독한 분들이라면 역시 비슷한 수준으로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듯 합니다. 게다가, 시오노 나나미와는 로마인의 역사를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아, 이건 그래 그래… 하며 고개를 끄덕일 지도 모릅니다.


이 릴레이는 Inuit님께서 시작하셔서, buckshot님, 고무풍선기린님, 류한석님, mahabaya님, 어찌할가님, 벼리지기님, 바람의 노래님, 모노피스님, 꼬미님, JaeHo Choi님, 감성적 젊은 이상가님, 비전 디자이님, jedimaster, 조현경, 제나두님, 에코님, 철산초속님, 얌용님을 거쳐왔습니다.

자, 이제 이걸 다른 두 분께 넘기는 것이 룰인 듯 싶은데, 참 어렵군요. ^^ 받아주시거나 말거나, 일단 넘기기부터 하면 ^^

한 분은 남아공의 스타이시자, 남 안타까운 일을 절대로 그냥 못 넘기는 샛별님
한 분은 우리나라 유통업계의 빛나는 보석, 정현아범님

이렇게 넘길까 합니다. 샛별님은 워낙 다음에서도 유명한 분이시고, 정현아범님은 재야에 묻혀 있는 분을 이번에 강호로 모시는 셈이 되겠군요.

두 분, 룰은 이렇습니다. 저처럼 제목에 [릴레이] 00의 독서론이라고 쓰시고
독서란 [ ] 이다를 채워주시면 되고
지금까지 릴레이한 분들의 이름을 죽 카피해 넣으시고
릴레이를 받을 두 분을 지정하시면 되겠습니다만
이 릴레이가 6월 20일까지 하기로 한 거니, 두 분 선에서 끝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도!
그리고 부담스러우시겠지만 저처럼 주저리 주저리 쓰지 마시고
그저 한 줄만 딱 써주셔도 될 듯 싶습니다. 정현아범님 평소 스타일처럼 말이에요. ^^

릴레이가 이어져, 책 읽는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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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epial.net BlogIcon 심샛별 2009.06.17 18:2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크헉..."남 안타까운 일 그냥 못 넘기는..." 이라는 레이님..^^;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6.17 21:24 신고 수정/삭제

      ^^ 이거이 어째 막 물고 들어가는 느낌! ㅋ

  • 정현아범 2009.06.17 18:4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 티스토리 잠수탔는데 말이죠..
    하반기 경영전략 시즌이 와서리..ㅡㅡ;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6.17 21:24 신고 수정/삭제

      티스토리 아니라 암때나 쓰셔도 되고마 ^^ 고생하셨네 ^^

  • Favicon of http://www.yamyong.com BlogIcon 얌용 2009.06.18 10:1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딱 이번 한번만 봐주세욤~~ㅜㅜ

  • Favicon of http://bongstudio.tistory.com BlogIcon bong 2009.06.19 08:3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레이님~ 오랜만입니다.ㅎㅎㅎ
    역시 얼굴을 트니 좀더 친근해지는 느낌입니당^^
    요즘 책읽기에 또 소홀해졌는데, 앞으로 한 3일은 또 열심히 매진할 수 있을거 같네용ㅋ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6.19 09:57 신고 수정/삭제

      네, 만나서 반가왔어용~ ^^

      왠지 옛날부터 알던 친근감! ^^

  • Favicon of http://www.kimdahee.com BlogIcon 다희 2009.06.23 21:0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앗! 로마제국 쇠망사네요!
    저거 디자인이 의외로 난항을 겪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무겁지 않게 예쁘게 나온거 같아요.
    지금 5, 6권 진행중이니까 나머지도 곧 나올꺼예요. ^-^
    전 너무 두꺼워서 읽을 엄두를 못내고 있는데
    남자친구한테 선물 줬더니 이미 옛날 오역판;으로 다 읽어봤다고 하더라구요. ㅎㅎ

흐린 날, 첼로가 마음을 적신다

창 넓은 사무실에 앉아 있다 보면, 하늘에 민감하기 마련이다. 눈이 부시도록 맑은 날엔 왠지 활기차게, 가슴 잔잔히 적시는 흐린 날엔 왠지 여유 있게, 세상을 적시는 비 내리는 날엔 차분하게 기분이 맞춰진다. 그 창이 동쪽을 향해 있다면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부터 기분을 조절할 수 있어, 더 행복하다.

하지메 미조구치의 Yours; Tears. 난 사실 잘 모르는 첼리스트였는데 - 첼로라고 하면 요요마 정도나 알 뿐! - 멜론 클래식 부문 차트에 랭크된 걸 보고 한 곡 듣다가 다른 곡도 모두 다운 받아 버렸다. 마침 다운 받은 날이 흐린 날이어서 그랬을까. 잔잔하게 울리는 첼로 소리에 그만 눈물이 날 뻔 했다.


Yours; Tears 앨범에는 모두 열 세 곡이 들어 있다. 전통 클래식이 아닌 우리가 흔히 들었던 팝이나 OST의 유명한 곡들을 첼로로 연주한 것이다. 귀에 익숙한 멜로디여서 그럴까. 느릿 느릿 하면서도 묵직한 첼로의 음색이 말할 수 없이 풍부하게 가슴을 파고 든다. 앨범의 첫 곡은 Yesterday Once More로 시작하고 마지막 곡은 She로 끝난다. She라니! 그 얼마나 오랫 동안 아껴 아껴 듣던 멜로디인가.  

맑은 날에 듣는다 해도 음악이 어디 가겠는가. 또 음악이란 환경에 따라 기분에 따라 들리는 감성이 다른 법일게다. 그러나 맑은 날엔, 맑은 날 대로 들어야 할 음악이 따로 있으니 Yours; Tears는 흐린 날 용으로 아껴둬야 겠다. 오늘처럼 잔잔하게 흐린 날 소중하게 보관했던 LP 앨범을 꺼내듯, 아이튠즈를 열고 플레이를 누른다. 내 맥북에 연결된 하몬카돈의 사운드 스틱이 이런 날일 수록 더 고맙다.

오늘도 난 창 옆에서 광합성을 한다. 오늘 같은 흐린 날에도 나를 넉넉하게 해 줄 영양소는 충분하다. 하지메 미조구치의 첼로는, 넉넉한 영양소와 함께 나를 충분히 적셔줄 물 같은 존재다. 그래, 흐린 날이라고 마냥 흐릴 수는 없는 일. 흐린 날은 흐린 날 대로 즐기는 방법이 다 있는 법이다. 어차피 언젠가 해는 또 떠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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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09.06.02 14:1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첼로를 배우려다 큰 악기를 주체할 수 없어 포기했던.... 지금이라도 첼로 배워 볼까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6.03 10:55 신고 수정/삭제

      하하, 어차피 배움에 있어 늦었다는 건 없을 듯.
      지르세요! ㅋㅋ

  • Favicon of http://blog.naver.com/hyangsdiary BlogIcon Hyang's 2009.06.07 21:2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미조구치 하지메 공연 블로그에서 담아갑니다~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서서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읽다가 나는 문득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를 떠올렸다. 1991년 쯤 나왔을 이 책은, 음란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판금 조치 된데다가 저자인 마광수 교수는 이듬해인가 구속까지 됐다. 운좋게도(!) 판금 되기 전에 책을 구해 놓은 친구 녀석 덕에 난 즐거운 사라를 읽을 수 있었는데, 읽고 난 후 내 소감은 이랬다. 이게 뭐?

팔팔한 이십대 청년에게 그런 정도로 굳이 사람을 잡아 넣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게다. 그러나 사실 내용이 평범한 건 아니었다. 행위 장면을 꽤 구체적으로 표현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으니까. 그러면서 아마 예술과 외설을 구분하는 기준이 뭐냐, 하면서 세상이 참 시끄러웠다. 지금은 판금에서 해제되어 살 수 있을까 하고 인터넷 교보문고를 검색했더니 품절이란다.

즐거운 사라가 예술인지 외설인지 나는 구분할 재주는 없고(솔직히 이런 건 읽는 사람이 구분해야지, 누가 읽어라 마라 할 것인가. 그러나 적어도 아는 것 한 가지는, 즐거운 사라는 사랑에 대한 책은 아니라는 거다), 요즘 읽고 있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읽다가 문득 든 생각은, ‘외설은 행위에 집중하는데 비해 예술은 마음(또는 사랑)에 집중하는 것이 아닐까'였다. 뭐 이런 거다.



포르노나 속칭 야설 같은 것들 대부분이 스토리에는 별 관심이 없고 행위에만 집중하는 반면 명작이라고 부르는 책들은 출판 당시에는 비판을 받았을 지언정 어쨌든 행위 보다는 행위 전후를 중심으로 사람의 심리를 표현하는데 집중한다. 그리고 그 관계를 중심으로 사회상을 묘사하고, 당시의 현실을 비판한다. 사람들은 그 치밀한 심리 묘사에 감동하고, 그 심리를 통해 사회상에 대한 비판이든 애정이든, 글로 표현해낸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명작은 탄생하는 것일 게다. 흔히 우리는 그 심리를 사랑이라고 부른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 나타난 성애 장면 묘사는 꽤 구체적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행위의 묘사가 아닌, 심리의 묘사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작가는 정말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어휘로 표현해낸다. 게다가 내가 읽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 하나인 이 책은 꽤 매끄럽게 번역되어 읽는 도중 어색한 단어가 튀어나와 걸리적 거리는 느낌도 거의 없는 편이다.

오늘 아침 같이 일하는 토양양이 보내준 인터넷 포춘 쿠키를 깨 보니, ‘무한한 사랑만이 인생을 즐겁게 한다'는 메시지가 튀어 나왔다. 어떤 마음이 정말 사랑하는 것일까. 무한한 사랑이란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랑한다는 것으로 인해 우리가 얻을 수 있고 또 버려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제도와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굴레와 사랑의 자유로움은 결국 어디선가 충돌하고 마는 것 아닐까. 반복되는 질문과 대답으로 나는 사랑에 대해 길을 잃는다. 그러나 그 길을 안내할 사랑이 따로 있음을 나는, 여전히 믿고 있다. 코니도 언젠가는 그 길을 찾아낼 것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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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09.06.01 15:2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우야든동 다 봤다는..(ㅡㅡ)v

  • ^^ 2009.06.02 14:1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전후 심리 표현이라.......... 꼭 읽어봐야겠군요 ㅋㅋ

[책] 13계단, 인간은 인간을 심판할 권리가 있는 것일까

요즘 들어 사방에서 추천해 주는 추리 소설을, 마치 늘어나는 몸무게 때문에 먹어서는 안될 달콤한 간식을 몰래 먹듯이 하나씩 빼 먹고 있는 레이. 역시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없듯이, 책도 세계문학만 읽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다. ㅋ 이번에 선택한 책은 13계단. 나름대로 추리 소설 마니아인 우리 사무실의 토양양은, 13계단 읽을 거야, 했더니 오, 죽여요! 라고 강추했다는. 이 책을 처음 추천한 다희양토양양의 강추를 받았으니 기대감은 급상승! 이러다가 재미 없으믄 두 사람한테 책임을 떠 넘겨야지, 라는 못된 생각과 함께 읽어내리기 시작했으나…


처음엔 살짝 지루한 듯 싶다가 - 이건 정말 강력한 추천 때문에 급상승한 기대치의 책임일 듯 - 순식간에 빨려 들게 만드는   작품. 지난 번에 읽었던 천사의 나이프처럼 사법 제도의 모순과 그 안에 감춰진 인간의 욕망을 적절히 풀어내면서 정말 놀라운 반전을 던져 준다. 책을 완전히 읽고 나서야 예상치 못한 결말에, 허탈함을 던질 지도 모를 일. 이렇게 극찬을 해 놓으면, 나 때문에 이 책을 읽을 분들은 또 기대감이 급상승 할 것인데, 그건 내 알바 아니라는 무책임한 발언과 함께 약간의 스토리를 풀어 놓겠다.

한 명의 사형수. 노부부를 잔인하게 살해한 죄로 사형을 언도 받고 집행 일을 기다리는 그는, 정작 자신이 살해한 일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순간적인 기억 상실증으로 판단한 사법부는 그에게 기회를 주는 대신, 가차 없는 사형 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그는, 아침마다 자신의 방 앞을 서성이는 발자국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그렇게 하루 하루를 보낸다.

한 명의 전과자. 본인의 의도와 상관 없이 누군가를 살해하게 된 청년. 사망자가 먼저 공격했고 피하는 과정에서 살인이 일어났음을 감안해 2년 형을 치르고 가석방으로 풀려난다. 돌아와 보니 자신이 저지른 일 때문에 부모는 배상금을 물어주느라 가산을 탕진하고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 그러나 그는 정작 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대해서는 한 올의 미안한 마음도 갖고 있지 않다. 그의 잘못이 아니므로.

한 명의 간수. 이제 막 퇴임을 앞둔 간수. 그에게 사형수의 무죄를 밝혀달라는 익명의 요청이 들어온다. 자신의 과거에 대한 속죄를 하기 위해 기꺼이 일을 떠맡은 그는, 그가 평소 눈여겨 봤던 그 전과자 청년에게 동업을 제안한다. 딱히 할 일도 없고 부모의 재정난을 해결해야만 했던 전과자 청년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다.

사건의 실마리는 사형수의 희미한 기억 하나, 바로 돌계단. 막연한 돌계단에 의지해 간수와 전과자 청년이 사형수의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간다. 과연 사형수는 정말 살인을 한 것일까. 왜 간수는 전과자 청년을 자신의 파트너로 결정한 것일까. 전과자 청년은 정말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이제 와서 사형수의 무죄를 밝히려는 인물은 또 누구일까.

사법 제도의 모순은 애당초 사람을 심판할 권리가 없는 인간이 누군가를 심판하기 때문에 생겨난 어쩔 수 없는 것일 게다. 그러나 사회의 질서를 유지 하기 위해선 비록 모순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누군가 누구에게 판결을 내리고, 집행해야 한다. 이상적인 사법 제도는 이 과정에서 단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막기 위해서라면 범죄자가 풀려나는 것을 개의해서는 안된다고 말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희생되고, 그에 대해선 아무런 댓가도 치러지지 않는다. 독자는, 작가와 함께 이런 갈등의 구조에 빠져 든다. 그리고 우리는 이 모순에 결말을 낼 수 없지만 작가의 결말에 안도하며, 때론 아쉬워하며, 때론 씁스레 한다.

이 책의 저자인 다카노 가즈아키는 영화, TV 등에서 극본을 쓰다가 2001년 13계단을 써서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은 없는 법이라, 그 동안 작가가 수 없는 내공을 쌓아왔겠지만, 첫 방으로 대박을 터뜨린 건에 대해서는 마냥 부럽기만 하다. 이 책에서 13계단은 몇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그건 책을 읽을 사람이 스스로 찾아 볼 일이라 굳이 여기서 말할 거리는 못되는 듯 싶다. 어쨌거나, 재미있는 책이다. 이 작가의 다른 책인 유령 인명 구조대를 또 읽고 싶어질 정도로 말이다.

13계단(밀리언셀러 클럽 29)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다카노 가즈아키 (황금가지, 2005년)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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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www.rabbicat.com BlogIcon 토양이 2009.04.21 09:0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타인을 단죄할 권리 같은 게, 과연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제도 역시 합법적인 폭력일 텐데 말이에요. ㅎㅎ
    저는 요즘 블랙 달리아 읽는 재미에 푹~ 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4.21 12:10 신고 수정/삭제

      단죄할 권리는 없으나
      죄를 지은 사람은 어떻게든 댓가를 치러야 하고...

      여튼 어려운 일일세. ㅋㅋ
      블랙달리아는, 영화 제목 아니었든가?

  • ^^ 2009.04.21 10:5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전 이런 공포 스릴물은 영 땡기지가 않아서요 ㅠㅠ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4.21 12:09 신고 수정/삭제

      공포 스릴러 아니에용~ ㅋㅋㅋ

      우리 딸도 좋아라 하면서 두시간 만에 읽던데요??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09.04.21 12:3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어케 하믄 아이들에게 책을 좀 읽힐 수 있을까요..
    아..아범부터 읽어야겠구나..ㅡㅡ;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4.21 12:52 신고 수정/삭제

      부모가 책을 읽으면
      아이들은 따라 읽는 법이라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젠장, 부모가 책을 못 읽는 걸... ㅋㅋ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9.04.25 23:4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이번에 뉴질랜드갈 때 추리소설 두권가져가야지.. ^^

  • Favicon of http://www.kimdahee.com BlogIcon 다희 2009.04.26 20:4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천사의 나이프와 더불어 13계단도 재밌게 읽으셨다니 기뻐요.
    편집장님 말씀에 의하면 이렇게 책장이 빨리 넘어가면서도
    생각할 여지를 던져주는 추리 소설을 찾기가 참 힘들다니...
    이 두권의 가치가 더 빛을 내는 것 같아요.

    그러고보니 다카노 가즈야키나 야쿠마루 가쿠나 처음 소설을 낸 게 란포상에 수상되다니 대단하죠?
    이번에 6시간 후에 너는 죽는다라고 다카노 가즈야키 단편선도 나왔는데 13계단 보다는 못한 것 같아요. ^-^

    PS | 저번주에 읽은 용의자 X의 헌신도 재밌었어요!

  • 그라프 제플린 2009.04.28 05:0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적어도 쥐를 심판할 권리는 있다고 (엉?)

  • qwr 2009.04.28 19:0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좋은 글 담아갑니다.

    혹시 저랑 책 바궈 읽지 않으실래요?
    제가 이용하고있는 공유도서관에 오시면
    저와 다른 회원들이 공유하는 많은 책이 있습니다.
    보고싶은 책이 나올때마다 모든책을 살수는 없잖아요
    책 사는데 부담 느끼신다면 꼭 방문하시어 책나눔의 즐거움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최신 베스트셀러가 아주 많구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날거예요


    www.book.co.kr/?=a2

  • Favicon of http://afterdigital.tistory.com BlogIcon 조선얼짱 2009.04.29 10:5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제가 갖는 의문도 그 점이에요 ..
    인간이 인간을 심판한다 ..

    법의 심판으로 인해
    누군가를 살해한게 되돌려진다거나
    바다에 쓰레기를 배출하여 오염을 시킨게 원상복구가 된다거나 ..
    하지를 않는다는것이죠.

    인간의 죄는 어떻게 다스려져야 하고 누군가가 심판을 하게 되는건가요 ..
    그렇다면 그런 과정들은 누가 치유를 해주고 되돌려 놓아 주나요?
    레이님의 답변을 기대합니다. 꾸벅~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4.29 11:10 신고 수정/삭제

      저는... 제가 심판하고 싶을 뿐이고...
      저는 심판 받기 싫을 뿐이고...

      지극히 이율배반적인 사람의 심리를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제가 뭐라 답변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

      그런데 한 가지 아는 건... (뭐 다 아시겠지만)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사람으로 인해 치유 받을 수 밖에 없다는...
      (물론 그 사람이 서로 동일한 사람은 아니겠지요)

      그래서 항상 사람이 그리운가 봅니다.
      모 광고처럼, 그래서 항상 사람을 향하는가 봅니다. ^^

[책] 천사의 나이프 - 모순, 책임 그리고 인간의 조건

2년 전 쯤 교통 사고를 당했다. 몇 달 동안의 병원 치료를 겪으며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그러나 가해자는 보험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전화 한 통 없었다. 대신 나는 보험 회사 담당자와 목소리를 높이며 싸워야 했다. 왜 내가, 피해를 입은 내가 싸워야만 보상을 받고, 그 보상으로 위로를 삼아야 하는가. 내 잘못이 아닌데. 교통 사고를 당해 본 사람이라면, 그 처리 방식의 황당함에 화를 내지 않을 수 없다. 피해를 본 나에게 사고 수습의 모든 책임이 던져지기 때문이다.

하다 못해 교통 사고만 해도 이런데, 현대 사법 제도는 개인의 복수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엄청난 아이러니를 갖고 있다. 가해자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신상을 제대로 알 수 없으며 심한 경우 재판에도 참여하지 못한다. 피해자와 가족들은 크나큰 아픔을 간직한 채 힘겹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데 사법제도는 가해자의 삶에만 관심 있을 뿐 피해자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결과적으로 가해자의 삶에 대한 평가만 존재할 뿐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평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수많은 가해자들은 사법의 처벌을 받았다는 이유로 자신은 정당한 댓가를 치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가해자는 사법 제도의 처벌을 받으면 모든 것이 끝난 것일까. 가해자로 인해 인생이 망가져버린 피해자들의 삶은 어떻게 보상 받아야 하며 어떻게 치유 받아야 하는가.


중학생 세 명이 한 여인을 무참히 살해한다. 그러나 이들은 14세 미만의 아이들은 처벌하지 않는다는 사법 제도에 따라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단지 교화 기관에서 교육을 받을 뿐이다. 이들의 정보는 철저히 감춰지고, 여인의 남편은 그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 없다. 남편은 아내를 죽인 중학생들에 분노하고, 그들만을 싸고 도는 사회에 분노하고, 사법 제도에 분노한다. 그리고 일갈한다. “국가가 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제 손으로 직접 범인을 죽이고 싶습니다.”

시간이 흘러 겉으로 보기에 상처가 아물어 갈 무렵, 이젠 십대 후반으로 성장한 아내를 죽인 소년들이 하나씩 죽기 시작했다. 최대의 용의자는 당연히 남편. 경찰은 그를 용의선 상에 올려 놓고 수사망을 좁히기 시작하고 남편은 남편 대로 이 사건의 전모를 다시 캐기 시작한다. 그리고 밝혀지는 사실들. 과연 소년들은 누가 죽이기 시작했으며, 남편의 아내는 어찌해 목숨을 잃어야만 했는가.

야쿠마루 가쿠의 추리소설 천사의 나이프는 미궁에 빠진 사건을 풀어가며 범인을 찾아내는 추리 소설이면서도 사법 제도의 모순과 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작가의 몸부림을 그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작가는 끊임없이 사법 제도의 모순을 생각하게 하고, 그 모순에 항의하게 하고, 결국 분노하게 만든다. 나는 책을 읽으며 작가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주인공의 감정에 동감하고, 행한대로 갚으라는 고대 법률이야말로 최선의 법률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나 그것이 정녕 해답이란 말인가.

결국 작가는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만이 이러한 모순점을 해결하는 열쇠임을 제시하고, 사법 제도의 모순 뒤에 숨어 자신의 책임은 이미 끝났다고 주장하면서 진심어린 사과를 하기 싫어하는 인간의 지극히 이기적이면서도 비열한 개인주의를 통렬히 비판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중 하나는, 인간이 서로를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일텐데…

35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잡은 순간, 끝을 보지 않고서는 덮기 힘들다. 작가의 문체는 숨막힐 정도로 긴장감이 흐르거나 빨리 전개되는 것은 아니지만, 읽는 내내 사법 제도의 모순에 대해 곰곰히 되씹게 만들면서 지루할 틈 없이 마지막 장을 넘긴다. 예상치 못했던 최후의 조종자를 알게 되고, 인간의 비열함에 화를 내며, 그 사실이 밝혀졌다는 이유로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리고 다시금 반문한다. 사람은 누구나 크던 작던 실수하는 법이고, 그 실수로부터 새롭게 태어날 기회를 얻기 마련이다. 실수로 인해 그 기회를 빼앗는 것도 결코 옳은 일일 수는 없다.  그러나 실수로 인해 누군가 상처를 받았다면, 그 상처를 치유하는 책임도 사람에겐 있는 법일게다. 우리를 사람이라고 부르는 건,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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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www.rabbicat.com BlogIcon 토양이 2009.04.07 11:1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오늘 집에 가자마자 꼭 읽어봐야겠어요! +_+

  • Favicon of http://www.kimdahee.com BlogIcon 다희 2009.04.07 13:2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레이님께서 보는 사람이 혹할만큼 재밌게 써주셨네요. ^-^
    추리소설의 삼박자를 갖추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줘서 더 긴장감있게 읽은듯...
    이책, 불경기 인데도 재밌다는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팔리고 있는 것 같아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4.07 13:27 신고 수정/삭제

      하하, 늦엇지만, 좋은 책을 추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9.04.07 19:2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어,, 잼있겠다.. 근데 언제 읽냐?.. 토양아 .. 너 번역 다 끝났냐?.. 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4.07 19:34 신고 수정/삭제

      ㅎㅎ 사람이 번역만 하고 살 수 있나요. ㅋ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09.04.08 09:2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4월 지나서나 읽어봐야겠네요..
    요즘 회사고 집이고 일이 넘쳐나네요..
    까딱하다가는 잡아 먹히고 말듯..ㅡㅡ;

    ※ 오늘 사무실 이동이 있어서 좀 늦을지도 모르겠는데요..
    고기 남겨주삼..

  • qwr 2009.04.28 18:2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좋은 글 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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쟝 그르니에, 섬 - 20년전 감성을 찾아 떠나다

책장을 뒤지며 20년된 책을 찾아 꺼낸 건 순전히 샛별님 때문이다… 라고 핑계를 대고 있지만, 만일 누군가 내게 ‘그르니에’라는 말 한 마디만 던졌더라면, 엄마네 집 낡은 책장을 뒤져서라도 나는 이 책을 찾아냈을 게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몇 번의 이사를 거치는 동안 버려지는 운명을 피해 내 방 책장 구석에 얌전히 자리하고 있었다. 낡았지만 익숙한 그 커버를 보는 순간, 나는 한 없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불문학을 전공한 까닭에 나는 프랑스 문학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어왔었지만, 그 중에서 이 만큼 내 마음에 강한 인상을 남긴 책은 흔치 않았다. 물론 대학 2학년,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도서관에서 읽어대던 지드의 소설들은 까뮈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에게 감탄스러움과 동시에 어리둥절함을 남져 준 것'이었고 까뮈의 글들은 내 존재에 대한 헛갈림을 유도하면서 내 인생에 기억나는 책들로 자리잡았으나, 역시 까뮈의 표현을 빌면 쟝 그르니에의 섬은 나에게 ‘아찔하면서도 유효적절한 계시'를 남겨줬다.


도대체 뭔 소리여! 라고 말하는 사람에겐, 그저 쟝 그르니에의 책을 읽어 보라고만 해야 겠다. 사람에 대한 잔잔하고도 깊은 이해, 그리고 젊은 누군가라면 한 번쯤은 고민했을 나 자신에 대한 통찰. 그르니에는 어렵지 않고 잔잔한 문체로 그의 생각을 보여 준다. 마치, 친절하고 따뜻한 어느 인생 선배처럼 그르니에는 자근 자근 그의 생각을 들려주고, 독자는 누군가의 얼굴을 보며 그의 이야기에 푹 빠져드는 것처럼 책장을 넘기게 된다.

외롭다는 말에서 비롯된 섬. 아마도 그르니에는 외로운 섬에서 인간의 모습을 찾아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다양하면서도 본질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없는 인간의 삶에 얽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 주며, 고뇌에 지친 사람들의 머리에 잠깐의 쉼을 선사하는 지도. 만일 누군가 지쳐 힘들고, 그저 마음이 외로울 때라면, 이 책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일게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구할 수 없었던 듯 한데 지금은 민음사에서 쟝그르니에 선집으로 만날 수 있고 원래 이 책을 냈던 청하출판사에서도 다시 발행을 시작한 모양이다. 청하의 책은 내가 가지고 있으니 난 조만간 민음사의 그르니에 선집을 사고 말게 될 듯.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을 만난 이후로 계속해서 민음사 책과 인연이 닿는 것은, 그저 닥치고 읽으라는 신의 계시인가 보다. 게다가 내 그동안 미치도록 읽고 싶었지만, 그 동안 내공이 안되어 읽지 못했던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가 민음사를 통해 또 나와버렸으니, 당분간 민음사 책에 올인할 듯. 이래 저래 읽을 책은 쌓여만 가는데, 시간에 대한 핑계는 여전히 날 부끄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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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epial.net BlogIcon sepial 2009.04.06 02:0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히궁~ 레이님은 "섬" 간직하고 계시네요...제 "섬"은 어디에 놓고 온 것일까요....?
    새 "섬"을 사는 것도 배신같은 이런 기분....처음이예요. ^^;
    인생을 만든 영화.....도 한번 써 보려고 하는데....지난 주말 동안 재즈 페스티발에 다녀와서 그런지.....내 인생의 재즈에 관해 써 볼까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중입니다...완전 좋았어요....지난 번 허마너스 여행처럼 뭔가 모자라지 않았달까......

    아, 정말 레이님이랑 이슬님 일잔....아니....흠흠....밥 한번 먹어야 되겠는데 말이죠.....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4.06 09:09 신고 수정/삭제

      제가 뭐 남아공 가죠 ㅋㅋㅋ

      전 이상하게 재즈하고는 잘 안 맞아서, 재즈에는 별 감동을
      안하게 도더라고요. 영화는 뭐 죄다 두들겨 부시는 거라서리! ㅋ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09.04.06 09:1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이런 포스팅 안 어울리는 거 같으믄서도 은근히 어울리신다능..^^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4.06 09:27 신고 수정/삭제

      헐, 이거이 욕이여 칭찬이여 ㅋㅋ

      수욜에 먹고 죽는게지?? ㅋㅋ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09.04.06 09:51 신고 수정/삭제

      칭찬이구요..
      맛난 고기먹고 죽기는 왜 죽습네까..
      둘이 먹다가 하나 죽자는 말씀이신지..ㅎㅎ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4.06 10:02 신고 수정/삭제

      ㅎㅎ 고기만 먹을 수 있었음 좋겄네! ㅎㅎ

  • Favicon of http://happicialist.tistory.com BlogIcon 에너양 2009.04.06 12:3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불문학을 전공한 소녀로써 그냥 지나칠수 없어 댓글을..^^
    저 속에 있던 뭔가를 자극해 주시는군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4.06 13:41 신고 수정/삭제

      하하, 과거엔 항상 아름다운 것 하나 쯤은 들어있기 마련이죠~ ㅋ

  • Favicon of http://sepial.net BlogIcon sepial 2009.04.06 20:0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트랙백이 잘못갔네요??? 지워주시옵소서......._()_

[독서일기] 핫트렌드 2009, 트렌드가 궁금해?

요즘 계속 무거운 책을 읽다 보니, 책 한 권 끝내기가 쉽지 않다. 덕분에 좀 덜 무거운 책들이 순위에서 밀려서 아직도 책상 한 켠에 처박혀 있었는데, 그 중 한 권이 바로 핫 트렌드 2009라는 책이다.


이 책을 알게 된건 얼마 전에 RSS 등록해 둔 에고이즘 님 블로그를 통해서였다. ‘트렌드 세터가 되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이라는 글 속에, 메인으로 소개된 책과 서브로 소개된 책 두 권을 냅다 질렀는데 그 중 서브가 바로 이 책인거다. 사실 책을 사고 나서 삼분의 일쯤 보다가 업무 미팅이 있어서 덮었는데, 잠시 있다가 읽어야지 했던 것이 거의 한 달은 끌은 듯.

주로 소설 등등을 읽기 좋아하는 나는 이런 종류의 책은 잘 읽지 않는데 - 몇 번 겪은 대부분의 책이 앞 부분은 그럴 듯 하지만 뒷 부분으로 갈 수록 내용이 없었다는! -  기대치를 포기하고 읽어서 그런지, 아니면 요즘 무거운 책만 읽어서 그런지 페이지가 쑥쑥 넘어가서 놀랐다는!

간단한 소감만 말하면, 일단 재밌다.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신기술, 서비스, 제품 등을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데, 신기술은 그렇다 쳐도 제품 얘기가 나오면, 어 이거 갖고 싶네라는 생각이 들고 인터넷 서비스를 소개할라치면, 나도 가입해야지 하고 쫓아가게 됐다. 트렌드를 나열하는 방식도 짧게 끊어내기 때문에 읽는데 전혀 부담이 없다. 게다가 일부 알고 있는 현상들에 대한 반가움이란. 숙독하지 않고 가볍게 흘려 읽어내릴 생각으로 잠자리에 들고 들어갔던 책이 그만 끝장을 보고 말았다.

솔직히 트렌드와 별 관계가 없는 나로서 이 책 한 권 읽고 트렌드 세터가 될 리는 없겠지만, 이런 저런 사회 흐름을 이해하는데 그리 나쁘지 않은 책인데다가 누차 강조하지만 지겹지 않다는 점에서 괜찮은 점수를 주고 싶다.

트렌드를 쫓아가는 것과 트렌드를 만드는 것은 분명 큰 차이가 있을 게다. 그러나 트렌드를 알지 않고서 트렌드를 이끌 수는 없는 법이겠지. 물론 전혀 엉뚱한 것이 튀어나와 트렌드를 만들기도 하지만 - 마치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 그건 그 시대의 영웅이나 할 수 있는 문제이고, 대부분은 현재의 트렌드를 반영해 새로운 트렌드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책 한 권에 담긴 트렌드가 세상 전체를 말해 줄 수는 없는 법이지만, 그래도 모르는 것보단 알고 있는 것이 훨씬 즐겁다. 사람들이 그러지 않는가. 인생이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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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09.03.18 10:2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트렌드에 쳐지는 저로서는... ><

  • Favicon of http://ddinne.net BlogIcon ego2sm 2009.05.06 19:0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이 책 읽으셨군요.
    트렌드세터가 되기 위한 입문서로 좋죠?
    피드등록도 감사드려요.
    저도 추가하고 가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5.06 22:37 신고 수정/삭제

      ^^ 제가 피드 등록했는지는 어찌 아셨나요??

      좋은 책 소개 많이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에고이즘님 덕에 책 고르는 부담이 한결 줄었더라는! ^^

[독서일기] 파리대왕, 깊은 의미에 길을 잃다

198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파리대왕. 몇 명의 아이들이 섬에 불시착해 살아가는 이른바 모험 소설이면서도 그 안에 인류의 삶에 대한 깊은 의미를 담고 있어 사실적인 설화 예술의 명쾌함과 현대의 인간 조건을 신비롭게 조명했다는 평가를 받은 소설.


짧은 한 줄로 파리대왕을 소개하기란 힘든 일이지만, 파리대왕 책 뒷 편에 수록된 작품 해설은 이 비슷한 내용으로 시작한다. 게다가 굳이 작품 해설을 빌지 않더라도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타이틀은 괜히 받는게 아니다. 그런데 이런 책을 작품 해설을 먼저 읽어 보고 전체 의미를 이해했다고 설친데다가 십오소년표류기와 비슷한 내용이니까 쉽게 읽을 수 있겠지, 하고 만만히 보고 덤빈게 일단 실수였다. 작품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안 것이 큰 도움이 된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나. 꽉 짜여진 소설 안에서 깊은 의미를 다시금 깨닫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 알다시피 파리대왕의 주인공들은 12세 이하의 소년들이다. 무인도에 불시착한 그들은 처음에는 ‘소라'로 대표되는 나름대로의 규칙을 세워가며 사회성을 발휘하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사냥’으로 대표되는 인간 내면의 야만성을 드러내고 질서를 깨뜨린 후, 힘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질서를 세운다. 질서를 지켰을 때 특별한 혜택이 오지 않으면 그 질서를 쉽게 무너뜨리고 힘의 본능 대로 움직이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까. 어린 소년들도 대표되는 인간의 본성이란 원래 이렇게도 나약하고, 잔인한 것일까. 파리대왕은 인간 본성에 대해 우울하고 서글픈 분위기를 내내 전달하고, 읽는 내내 마음을 가라앉게 만들었다.

번역을 가리켜 또 하나의 창작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번역은 힘든 고통의 작업일 수 밖에 없을 게다. 따라서 이렇게 수고스러운 번역에 대해 왈가왈부할 형편은 되지 못하나, 나름 한 가지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은 말해야겠다. 소설 내내 튀어나오는 낯선 한자말들. 고대, 산정, 권곡, 초호, 화경, 천개, 외경, 겁화, 무연 등등… 도대체 무슨 말인지 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말들이 중간 중간 튀어나와 읽는 리듬을 깨뜨렸다. 원작자가 번역하기 어려운 특별한 글자를 써서 우리로서도 잘 쓰지 않는 한자말로 번역할 수 밖에 없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런 류의 한자말 번역은 ‘오늘날에는 오늘의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오늘의 번역이 필요하다'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발간사와는 거리가 있는 번역이지 싶다.

여튼, 사람의 본성이 정말 악한 것일까.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렇다고 해야 할 듯 싶다. 하긴, 인간에게 있어 선이란 항상 주관적인 가치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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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greendayslog.tistory.com BlogIcon 그린데이 2009.03.16 22:5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요즘 고전명작에 몰두중이신 레이님. 가을이 왔나 했어요~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16 23:48 신고 수정/삭제

      근데 역시 감성이 메말라서 그런가 20대 때 읽는 것과는 또 많이 다르네요. ㅋㅋ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09.03.17 08:4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파리세계의 권력을 향한 암투나..
    파리시의 권력투쟁..을 다룬 게 아닐까 싶었는데 말이죠..

    무식해서 죄송합니다..(--)(__)(--)a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17 10:46 신고 수정/삭제

      글게 제목만 보면, 곤충 세게에서 파리가 대빵인 것 같은디. ㅋㅋ 글타고 무식하실 건 또 뭐 있노. 무쟈게 똑똑한 아빠인거 잘 아는디 ㅋ

  • ^^ 2009.03.18 10:2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여기 오면 자꾸 저도 고전에 도전하고 싶은 충동이...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18 10:28 신고 수정/삭제

      읽어보세요. 옛날에 읽었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랍니다 ㅋ

  • Favicon of http://www.unny.com BlogIcon ftd 2009.03.19 09:5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정말이지 그옛날 15소년 표류기는 그냥 동화였나보네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27 16:37 신고 수정/삭제

      하하 동화에도 깊은 의미가 있는 법이겠지요 ^^

  • Favicon of http://www.photoni.com/blog BlogIcon Photoni 2009.03.27 11:2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예전 사회학시간에 '파리대왕'을 읽고 한달동안 토론수업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책 구하러 헌책방을 뒤지고, 영화도 구해서 보고, 리포트 작성하며 보낸 그 한달간의
    추억을 다시한번 떠올려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소개해주신 덕분에 조만간 서점에 들러 찾아봐야겠네요...
    좋은 책 추천과 아쉬움에 대한 고마움에 대한 첫 인사를 댓글로 대신합니다.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27 16:37 신고 수정/삭제

      네, 방문해 주시고 댓글 주셔서 고맙습니다 ^^

  • Favicon of http://sepial.net BlogIcon sepial 2009.03.28 01:5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는 어린 마음에 파리대왕이 프랑스 파리에 살던 대왕의 화려한 궁중생활을 배경으로한 암투....이런 것으로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이게 다 베르사이유의 장미 탓이야~~~!!!

    그나저나....사람은 점점 악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도...또 얼마간 피를 흘리고는 다시 조금 착한 쪽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그러지 않나요? 레밍떼처럼 절벽에서 마악 뛰어내리고 있는 시점이....지금 같습니다.....그 다음엔 정리될 거예요....이렇게 말하는 제가 무섭네요.
    이번에 한국 가면....고전명작 좀 사와야 겠어요....시집도요....글이 고파서리^^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29 00:02 신고 수정/삭제

      새로 번역된 명작들이 예전하고는 좀 다른 느낌인 듯 해요~ 나이스 트라이! ㅋ

[영화] 지구, 그 안에 담긴 생명에 경외를

‘지구’라는 다큐멘타리 영화를 봤다. 2008년 9월에 개봉한 영화를 이제야 봤으니 극장에서 본 건 아니다. 소위 말해 다운로드 받아 봤다. 그런데 이번 다운로드는, 예전의 다운로드와 개념이 좀 다르다. ^^ 2천원 내고 받은 유료 다운로드였기 때문이다.

유료로 다운로드 했다고 해서 뭐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마는, 다운로드에 대한 개념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고 해야 할까. 요즘 저작권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유료 다운로드 사이트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나도 슬슬 유료 구매하는 횟수가 늘고 있다. 미인도에 이어 두번째. 확실히 쉽게 구매할 수 있어야 사람들이 사는 법이다. 게다가 최근에 구매한 2009년형 엑스캔버스는 USB 메모리에 avi 파일을 복사해 넣기만 하면 TV에서 쉽게 재생할 수 있다. 정말 편리하다. 별도의 Dvix 플레이어가 필요없다는 얘기. 올해부터 Dvix 재생 기능은 TV의 기본 트렌드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다큐멘타리 영화 얘기하면서 서론이 쓸데없이 길었던 듯. 이름에서도 눈치 챘겠지만, 지구는 다큐멘타리 영화다. 온난화로 인한 생태계의 변화, 그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서식처를 옮겨다니는 동물들의 생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쓰러지고 마는 동물들의 아픔을 담았다. 그러니 감동을 기대할 순 있어도 재미를 기대할 수는 없는 영화다.

영화는, 시작부터 가슴 저리다. 동면을 끝내고 나온 어미 북극곰의 등장. 설산의 동굴에서 나온 어미는 몇 개월을 굶었음에도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먹이가 있는 곳을 찾아 내려가야 한다. 새끼들을 돌보는 필사적인 모습. 그러나 그들에게는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 기후 온난화로 얼음이 생각보다 빨리 녹고 있다. 얼음이 녹으면 북극곰의 먹이인 물개를 잡을 방법이 없다.


먹이를 찾아 3천킬로미터를 횡단하는 순록들. 갓 태어난 새끼들 조차도 쉼없이 뛰어야 한다. 이들을 쫓는 또다른 포식자. 먹으려는 자와 먹히지 않으려는 자의 숨막힌 경주가 시작된다.

북극곰, 흑등고래, 아프리카 코끼리… 먹을 것을 찾아 먼 거리를 이동하는 동물들의 삶이 가슴아프다. 게다가 갓 태어난 새끼들을 돌보는 그들의 모습은 본능이라는 말로 단순화 하기엔 그 행동이 너무 눈물 겹다. 온 몸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맹수들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고, 새끼들이 쫓아올 수 있도록 큰 소리를 내며, 지쳐 쓰러진 새끼를 내버리지 않고 발로 툭툭 쳐 꺠우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들의 행동이 오로지 본능 뿐이라는 말은 믿을 수가 없다. 그들에게도, 사람과 같은 감정, 사랑이 존재한다.

기술의 힘은 놀랍다. 한 마리 동물의 움직임을 가까이에서 잡다가 카메라를 하늘로 들어 올리며 그의 위치를 조망한다. 어미에게 떨어져 나온 아기 코끼리… 어미의 흔적을 쫓으나 카메라가 줌아웃 되면서 우리는 그 코끼리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어찌할까. 누구도 그를 도와줄 방법을 찾을 수는 없으니.

지구 환경의 변화로 동물들의 삶은 점점 더 고달파졌다.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이라는 이름 때문에 지구는 손상됐고, 그 이유를 알 턱이 없는 동물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삶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므로, 그들 역시 결국은 생존할 방법을 찾아내겠지만(찾아내기를 꼭 바라지만), 이젠 우리가 무언가 해야 할 때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영화의 마지막, 이젠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는 슬픈 나레이션이 가슴 찡하다.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직 늦지 않았다는 자막 한 줄을 보며, 조용한 위안을 받는다. 올 봄엔, 자전거를 조금 더 많이 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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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9.03.08 22:0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Planet Earth와 어떻게 다르지?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08 22:48 신고 수정/삭제

      플래닛 얼쓰~ 안 봐서 잘 모르겠지만요, 아마 축약형 정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ㅋ

  • Favicon of http://www.rabbicat.com BlogIcon 토양이 2009.03.08 23:5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이거 무지 보고팠는데.. 눈물샘을 자극할 거 같아서 못 봤지 뭐예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09 00:05 신고 수정/삭제

      난 정서가 메말랐는지, 눈물 나올 정도는 아니었어~ ㅋ

  • ^^ 2009.03.09 09:0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도 우리 꼬맹이랑 함 봐야겠는걸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09 10:22 신고 수정/삭제

      꼬맹이들은 재미 없어 할지도 몰라요 >.< ㅋㅋ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09.03.10 09:5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정당한 다운로드 파일은 아마 p2p 공유가 안 되도록 장치가 되어 있갔지요..
    아해들은 그걸 또 해킹하야 서로 나누어 보려고 할 것이고..흠냐..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10 10:37 신고 수정/삭제

      그럴까? 근데 USB나 하드디스크에 담아서 다른 컴퓨터에서 보는 건 별 지장이 없던 걸??

[독서일기] 고도를 기다리며

대학 때부터 몇 번이고 읽고 싶었던 작품. 그러나 아직까지 진중하게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작품. 올해 세계문학전집을 읽어야 겠다고 마음 먹은 후 가장 먼저 찾았던 작품. '고도를 기다리며'는 내게 그런 작품이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는다고 했더니 우리 사무실의 영문학도 출신 두 명이 이내 아는 체를 한다. 어랏? 이건 프랑스어 작품인데 영문학과 출신이 이걸 어찌 알어? 이런 대답이 나온 건 내 지독한 편견 때문일 게다. 다 알다시피 '고도'는 프랑스식 이름이다. 게다가 이 책의 원어 제목은 En attendant Godot다. 그러니 나는 이게 당연히 프랑스 문학 작품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영문학도 출신 중 한 명인 사장님 왈, 니네 과에서 그거 배워? 우린 연극도 해. 헐. 까먹었는 지도 모르겠지만, 수업시간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배운 적이 없었다. 그리고 불문과에서는 연극을 해도 몰리에르, 라신느 등등을 하지 부조리극을 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작가 이름은 사무엘 베케트 아닌가? 프랑스 식이었다면 '사뮈엘 베께'라고 불렀을 지도 모를 일이다.

사무엘 베케트는 아일랜드 사람이다. 프랑스어에 능숙해 영어와 프랑스어로 번갈아 가며 작품을 냈고 심지어는 영어로 쓰고 프랑스어로 번역하거나, 그 반대의 번역도 꽤 했다고 한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프랑스어로 먼저 썼고 나중에 영어로 번역했다. 그러니 사무엘 베케트에 대해 진중하게 공부를 한 적이 없는 나로서는, '고도를 기다리며'가 프랑스 문학이라는 지독한 편견에 빠져버리게 된 것이었다. 뭐, 결과적으론 내 잘못이지만.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고도를 기다리며'는 참 어려운 책이었다. 두께로 따지면 하루면 충분히 읽어낼 책을 거의 1주일은 붙들고 있었다. 진도도 안 나가고, 생각도 많이 하게 만드는 책이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라는 사람을 기다리며 얘기하고, 싸우고, 때론 침묵한다. 우리 여기서 뭐하는 거지? 이제 그만 갈까? 아니 고도를 기다려야 하잖아. 어떤 행위가 끝나는 지점에서 두 사람은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현실을 뇌까리며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살면서, 이런 행위들을 나는 얼마나 많이 반복하는가.

삶은 참 부조리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주장했다. 심지어 부조리 자체도 부조리하다고 말했다. 넘쳐나는 부조리 속에서 살며 사람들은, 나는 심지어 부조리란 무얼 가리키는지 잊고 말았다. 무엇을 부조리하다고 말하는가? 인생이 이미 넘치도록 부조리해졌는 걸.

번역하신 분의 작품 해설에 따르면 고도가 누구냐?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단다. 하긴 지금까지도 고도가 누구인지에 대해 논문을 쓰시는 분들이 있으니 고도를 기다리며에 열광했던 사람들에게는 고도가 누구인지 당연히 관심이 있었을 게다. 그런데 작가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단다. '고도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거기 썼을 것'이라고 작가가 대답했단다. 그러니 결국 고도는 아무도 몰라, 며느리도 몰라가 된 셈이다.

살다 보면, 때론 기다림에 목표를 두는 것도 한 방법일게다. 그러나 정작 고도를 만나고 난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우리는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 법이다. 내 삶에 고도는 누구, 혹은 무엇일까. 난 누굴, 무엇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저 책을 좋아하는 독자일 뿐이고, 누군가의 책에 대해 비평인 리뷰를 할 형편은 되지 못한다. 게다가 명작에 대해서라면 더더 그렇다. 따라서 독서일기에 쓰는 글들은, 이름 그대로 일기이고, 철저하게 개인적인 소감일 뿐이라는 걸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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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9.03.05 10:1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이게 원래 부조리해서.. 기다리지만.. 막상 아무도 오지 않으니.. 그게 결국 아무것도 기다린 것이 아닌게 되고.. 최종적으로는 기다린 것도 기다리지 않은 것도 아닌게 되는거지.. ㅜ.ㅜ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05 13:36 신고 수정/삭제

      흐음... 그니까 결국 기다리긴 했는데 아무도 안 와서... 뭐이가 우짠거에요.. ㅋㅋ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09.03.05 11:0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출신학과와 관련한 결정적 오타가 있습니다..
    잘 찾아보삼..^^

    신입생 때 연극동아리 공연 보면서..
    "도대체 고도는 언제 나오는거냐" 했던 기억이..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05 13:36 신고 수정/삭제

      머여. 빨리 신고하셔! ㅋ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09.03.05 18:13 신고 수정/삭제

      제가 잘못 봤네요..ㅡㅡ;
      쏘리볼임다..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06 09:35 신고 수정/삭제

      흐음, 그럼 짧은 시간 날 고민하게 만든 죄를 어찌 감당하실껴? ㅋㅋㅋ

[책] 호밀밭의 파수꾼

팔자 좋은 부자집 고딩 녀석이 학교를 때려친다. 학교에도 관심 없고 잘하는 과목이라고 해도 영작문 하나 뿐이니 학교에 잘 적응할 리 없다. 명색이 펜싱팀 주장인데, 펜싱 시합 하러 다른 학교 가는 길에 펜싱 장비를 잃어버리고, 친구들하고도 잘 어울리지 못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라곤, 자기 주위엔 순 얼간이 뿐이란다.

하지만 고딩은 어쩔 수 없는 고딩인 법. 학교 때려치고(정확히 말하면 짤리고) 집에 가서 사실을 실토하기가 두렵다. 몇 일 호텔 방에 묶으며 시간을 죽여 보려 하지만 - 마침 돈은 좀 있었으므로 - 아무도 그와 함께 시간을 죽여주지 않는다. 미치도록 사람이 그리워, 창녀를 사보기도 하지만, 그것도 별 신통찮다. 옛 여친을 다시 만나고, 착한 동생을 찾아 몰래 집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은…


결국은 뭐! 돈 많은 집으로 돌아간다는 얘기지. '호밀밭의 파수꾼'을 사게 된 건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인터파크에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검색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이 책. 나 대학 다닐 때만해도 명작 선집 리스트에 없었던 이 책이 왜 검색 순위 1위인 것일까. 도대체 무슨 내용을 담고 있길래.

그런데 나중에 누군가 들려주는 얘기로는, 이 책이 어떤 방송 프로그램의 소품 비슷하게 쓰였던 모양이다. 내가 가르치는 고등학생 중에서도 읽은 애가 있을 정도니 꽤 알려지긴 했나보다. 물론 이 책 얘기를 했더니 그 녀석은 아우 이 책, 거의 왕짜증이에요, 라는 분위기를 연출했지만서도. 논술 대비해서 읽으라는 책이었던가 본데, 명작을 이렇게 읽으면 나중엔 다시 명작을 쳐다보기도 싫어지는게 뻔한 일 아닐까.

여튼, 이 책은 어른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닌 청소년의 방황을 그린 성장 소설이다. 뭐, 내 식으로 따지면 성장통 소설이라고 해야 겠다. 성장하는 게 꼭 아픈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성장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죄다 뭔가 아픔을 안고 있으니 말이다.

생각해 보니, 난 저렇게 치열한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정말 마음 놓고 얘기할 누군가가 미치도록 그리웠던 적은 있었던 듯 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 입시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한 때는 첫 사랑이었던 그 누구에 대한 그리움으로 길거리를 마냥 쏘다녔었겠지. 그리고, 그런 마음을 달래기엔 결국 마음 맞는 친구가 최고였다는 뻔한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 크던 작던, 그 나이 때를 자라는 사람들에겐 아픔이 있는 법일 게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가 착한 동생인 피비에게 고백하는 미래의 소망이다. 호밀밭을 지키고 있다가 절벽으로 떨어지는 아이들을 잡아주는 일, 그게 그의 소망이다. 학교에서 짤린 녀석 치고는 꿈은 참 선하다. 어쩌면 그 역시 자신의 추락을 잡아주는 누군가를 원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우리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든다. 살아가는 즐거움을 알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데 치열한 삶을 살기 위해 전쟁터에 나간 것처럼 공부를 한다. 기업은 창의적인 인재를 찾는데, 학교는 획일화된 시스템으로 공부 기계만을 만들어 낸다. 그들의 아픔은, ‘대학 가면 다 끝나는 거야'라는 말로 묻혀 버린다. 그들의 아픔을, 우리는 정말 이렇게 묻어버려야만 하는가. 벌써부터 밀려드는 숙제 때문에 11시가 넘어도 책상 앞에 매달려 있는, 이제 6학년이 되는 딸 아이를 보며 대한민국의 아빠가 이렇게 무기력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난 오늘도 마음이 아프다.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할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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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www.rabbicat.com BlogIcon 토양이 2009.03.02 09:2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살인자를 길러낸다는 음모론의 중심에 있는 책이기도 하죠. 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02 09:57 신고 수정/삭제

      흐음, 살인자를 키우기론, 토양이님이 읽으시는 책들이 더 그러할듯 한데?? ㅋㅋ 책 속에 들어 있는 깊은 의미를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우찌 알껴. 그냥 읽고, 느끼고 즐기는 법인게지~ ㅋ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09.03.02 13:16 신고 수정/삭제

      '멜 깁슨'입장이 되신다믄 글케만 말씀하시긴 어려울 듯..ㅎㅎ

    • Favicon of http://www.rabbicat.com BlogIcon 토양이 2009.03.02 18:15 신고 수정/삭제

      아, 컨스피러시 ㅋㅋㅋㅋㅋ

  • Favicon of http://arpagos.tistory.com BlogIcon 아르파고스 2009.03.02 10:3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비틀즈의 존레논을 암살했던 '마크채프먼' 인가 하던 사람이 암살 당시 손에 들고있던 책이라고 들었던 거 같아요. (허위 정보면 곤란한데...;;)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02 13:01 신고 수정/삭제

      아, 그런가요?? 오호~ 음모가 충분히 나올만 하군요! ^^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9.03.02 11:5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어.. 갑자기 토양이 블로그와 헷갈리는데.. 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02 13:02 신고 수정/삭제

      ㅎㅎ 요즘 읽은 책에 대한 흔적이라도 남겨놔야 겠다 싶어서용~ (근데 전 토양양처럼 시니컬(!) 하진 않아요!! ㅋㅋ)

    • Favicon of http://www.rabbicat.com BlogIcon 토양이 2009.03.02 18:16 신고 수정/삭제

      저는 시니컬하지 않은데요0_0;;

  • Favicon of http://blog.daum.net/bouquetdor BlogIcon 진주애비 2009.03.02 20:0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여긴 책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참 유익한 블로그인것 같아요
    댓글 남기는 분들도 모두 훌륭한 것 같고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02 23:28 신고 수정/삭제

      이런 댓글 매우 환영합니다! ㅋㅋㅋ (아 속보여!)

      근데, 갑자기 왜 그르세염~~~

  • Favicon of http://sogmi.com BlogIcon 소금이 2009.03.06 23:5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이 책을 읽었을 때가 군대에 있을때인데, 너무 늦게 이 책을 읽었다고 한동안 후회하던 기억이 생각납니다. 혹 주변에 10대 분이 계시다면, 꼭 한 번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네요.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07 00:01 신고 수정/삭제

      ^^ 저도 늦게 읽긴 마찬가진데요 ^^ 그런데 정작 십대들은 읽으라고 했더니 재미없다고 투덜댄다는. ㅋㅋ

  • Favicon of http://sepial.net BlogIcon sepial 2009.03.21 22:0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도 아마 대학가서 읽었던 것 같아요....보면서 울었다는....ㅠ.ㅠ
    (스타워즈만 봐도 눈물이....으흐흑...)
    대학생이었지만, 그래도 인생의 방향...그런 건 잘 몰랐으니까요.....암튼 무척 기억에 남는 책이고, 오늘날의 저를 만든 책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도 같아요.

    아~ 책 고프당~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22 00:01 신고 수정/삭제

      정작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에 동감하면서 읽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어요.. 지금도 예민하시지만! ^^

  • Favicon of http://www.midorisweb.com BlogIcon 미돌 2009.03.29 03:4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명작 순례라..아주 멋진데요. 이책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본에서 번역해서 내놓기도 했다고 해서 저두 사서 봤는데 끝까지 읽지는 못하고 책장에 꽂혀있어요. 다시 시도해봐야겠군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29 19:52 신고 수정/삭제

      아유 요즘 감성이 옛날 같지 못해서, 진도가 빨리 빨리 안 나가네요~ ㅋㅋ 역시 명작은 괜히 명작이 아닌 듯! ^^

2009 책 읽기의 목표, 명작에 도전하다

행복이란, ‘아무런 걱정도, 부담도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내게 있어 가장 행복한 책 읽기 시절은 대학 다닐 때다. 미래에 대한 염려나 준비에도 신경 쓰지 않았고, 눈 앞에 닥친 수업 시간에도 개의치 않은 채 도서관 가장 후미진 자리에 앉아 앙드레 지드의 전원교향악, 좁은 문 등등을 읽어내려가던 그 때 그 시절만큼 행복하게 책을 읽었던 기억이 없다. 때마침 도서관에서 근로 장학생 자리까지 운좋게 받아낸 나는, 하루에도 몇 권인지 미처 세지도 않으면서 이런 저런 책들을 읽어가며 꽤 몽롱한 정신을 수습하지 못한 채 버스를 타고 집에 가던 기억이 아련하다.

그 때 내가 읽었던 대부분의 책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고등학교 때까지 읽지 못했던 명작 소설들이 대부분이었다. 앙드레 지드, 빅토르 위고, 플로베르, 에밀졸라를 시작으로(이건 당연히 전공하고도 관계가 있다 ^^) 헤르만 헤세, 어니스트 헤밍웨이, 도스토 예프스키, 톨스토이 그리고 조정래까지 나는 닥치는 대로 고전과 명작들을 읽어 냈고 아무래도 그 때의 책 읽기가 지금의 글 쓰기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이를 먹고 어느 날인가, 그렇게 명작을 읽어대던 시절 낱권으로 구입했던 세계문학전집 중 한 권을 꺼낸 나는 채 열 페이지를 읽지도 못한 채 그 책을 덮어야만 했다.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조악한 글씨, 빽빽한 편집과 오래된 맞춤법, 게다가 나를 참을 수 없게 만든 일본식 번역의 흔적들(아쉽게도 우리가 읽은 수많은 명작들은 원작이 아닌 일본 번역서를 다시 번역한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 시대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겠지만)…

생각해보니 내가 읽었던 수많은 명작의 흔적에도 이런 기억들이 남아 있었다. 어릴 땐 모르고 읽었던 책들이 더 큰 활자와 시원한 편집, 깔끔하게 다듬어진 현대식 문체에 익숙해진 나에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존재로 다가온 것이다. 그리고 고전들은, 어릴 때 동화책으로 축약본을 읽거나, 수능 대비해서 어쩔 수 없이 읽는 책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게 명작을 잊고 지내던 얼마전, 눈에 번쩍 띄는 기사를 접했다. 민음사에서 세계문학전집 200권을 간행했다는 뉴스가 그것이다. 200권 발행 기념으로 디자인 에디션을 별도로 발표하기까지 했다는 뉴스를 보며(아, 사고 싶지만, 보관할 때가 없어서 포기했다는..), 당장에라도 서점에 달려 가고픈 욕심을 눌러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잠실의 한 서점에서 그 첫번째 책으로 '호밀밭의 파수꾼'을 골라 들고 있었다. 원래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사고 싶었는데 마침 서가에 없었다. 그래서 대타로 고른 것이 이 책.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된 비교적 최신작이라는 점도 이 책을 고르게 된 동기가 됐다. 아직까지 읽어본 적도 없었고.

민음사 셰계문학전집에 포함된 책들(화면 출처 : 민음사 홈페이지)


나는 새해가 되면 올해는 꼭 200권의 책을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하는데, 사실 1998년 이후로 이 목표는 한 번도 달성한 적이 없다. 적게는 몇 십권, 많게는 백 몇 십권 정도의 책을 읽는 것에 그치고 말았던 것이다. 숫자를 채워 보고 싶어서 맛의 달인 같은 만화책도 살짝 포함시켜 보긴 했지만 그건 왠지 좀 모양새가 안 나는 듯 해 200권에 포함시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맛의 달인이란 책이 우습다는 건 절대 아니다. 방대한 내용과 명쾌한 작가 의식, 진지한 스토리는 맛의 달인 101권을 읽고 그 후속타를 기다리게 만드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여튼, 올해 목표도 여전히 200권. 그런데 올해는 왠지 이 목표를 달성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이 200권이기도 하고, 이렇게 명확하게 한 권씩 사서 읽다 보면 목표가 더 눈에 잘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나는 두 권의 책을 읽었으니 시작이 좋은 편이다.

아련한 기억 속에 간직했던 이야기들, 아직 접해보지 못한 미지의 이야기들이 나를 기다린다. 읽은 책에 대해서는 일일이 독서 일기를 남길 생각이나, 그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닐 듯 해 장담은 못하지 싶다. 게다가 초등학교 6학년인 딸 아이도 한 번 읽어보겠다고 덤비고 있으니 부담도 만만찮다. 그런데, 기분은 참 그럴 듯 하다. 오랫만에 행복한 책 읽기에 빠져들고 있으니 말이다.

ps1> 읽기도 전에 책 200권을 어디다 쌓아두지? 라는 쓸데 없는 생각이 든다.
ps2> 솔직히 말하면 권당 5천원씩만 잡아도 100만원이다, 라는 생각도 빼 놓을 순 없었다.
ps3> 딸 아이가 아빠랑 똑같이 읽으면 컴퓨터(아이맥)를 사주겠다 했는데, 이건 또 어찌 수습할꼬. 여튼 대책없는 아빠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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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09.02.23 08:4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읽고 빌려주신다믄 저도 함 도전해봅지요..음무하하하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2.23 09:22 신고 수정/삭제

      왔다 갔다 물류비가 더 나오겄네~ ㅋ

  • Favicon of http://www.rabbicat.com BlogIcon 토양이 2009.02.23 08:5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200r권 다 읽으시면...파티해요! ㅋㅋ

  • Favicon of http://blog.daum.net/bouquetor BlogIcon 진주애비 2009.02.23 10:4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이백권이면 이틀에 한 권 이상을 읽는 속도인데
    참 대단하세요 오늘부터 팬 할래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2.23 10:59 신고 수정/삭제

      ㅎㅎ 안 그래도 그 계산하다 보면 머리가 아프다니깐요 ㅋㅋ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9.02.23 12:0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와.. 무지 있어보이는구만.. 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2.23 14:26 신고 수정/삭제

      제가 원래 쫌 있어 보여용~ ㅋㅋㅋ (아, 내가 생각해도 재섭써~~ ㅋ)

  • ^^ 2009.02.23 12:3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아무런 걱정도 부담도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할수 있다니... 부럽군요~ 저도 행복해지고자 노력해야겠어요 ㅎㅎ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2.23 14:27 신고 수정/삭제

      아, 그건 옛날에 그랬다고요~ 지금은 머 생각해야 될 거이 많죠. 하다 못해, 이거 읽고 블로깅해야 되잖어, 머 이런 압박도! ㅋ

  • Favicon of http://maggot.prhouse.net BlogIcon 한방블르스 2009.02.23 13:3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200권이면 힘든 여정이겠군요. 고전을 읽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가지는 희망사항인 모양입니다. 저도 그 셍각을 하고 있습니다. 실천으로 옮기기가 힘들어서 그렇지만 해보고 싶은 위시리스트입니다...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2.23 14:28 신고 수정/삭제

      이게 뭐 경제경영서적이거나 그런 거면 힘들텐데, 다들 명작 소설들이라 잡으면 술술 넘어갈테니, 힘든 건 걱정 안하는데요... 문제는 분량이 좀 벅차다는 거죠~ ㅋ

      찾아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

  • Favicon of http://bongstudio.tistory.com BlogIcon bong^^ 2009.02.24 08:4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우와~ 정말 멋지십니다~ 고전이라니 생각만으로도 벌써 머리가 아파오는듯....ㅋ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2.24 11:31 신고 수정/삭제

      하하, 안 그래도 고전을 재미있게 읽는 법, 머 이딴 걸 하나 포스팅 해볼까 생각 중이에요~ ^^

  • Favicon of http://www.kimdahee.com BlogIcon 다희 2009.02.25 09:4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우아... 레이님 멋져 보여요.
    저희 회사 책이지만 저도 레이님같은 목표는 세우기가 힘든데...^-^

    얼마전에 아홉살 차이나는 막내동생이 집에 있는 옛날
    위대한 개츠비를 읽다가 번역이 이상하다고 못 읽겠다고 하더라구요.
    (일어로 번역한걸 다시 국어로 번역해놨으니...)
    그래서 회사에서 나온 걸 갖다 주었더니 번역이 좋아서
    신난다구 금새 읽는거 보고 고전문학에서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체험했었죠.

    회사에서 직원가로 출간 1년 지난 책은 40% 할인해주는데 세계문학전집은
    홈쇼핑에서 파는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고 들었어요.
    계속 사서 읽으실 생각이시면 홈쇼핑에서 묶어 파는 것을
    구입하시는 편이 부담이 덜 할꺼라 생각되어요.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2.25 09:45 신고 수정/삭제

      ㅎㅎ 안 그래도 여기 저기 할인판매하는데가 있기는 한데(민음사 홈피에서도요!) 한꺼번에 사면 놔둘데가 없어요. ㅋ 그래서 그냥 서너권씩 사기로 했다는... 어제 책이 왔어야 하는데, 아직 안오네요~ ㅋ

  • Favicon of http://blog.paran.com/mindlemin BlogIcon 민들레 민 2009.02.25 14:2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책 읽을 고민처럼 행복한 고민이 있을까요. 책 이야기라면 한 번씩 둘러보고 가는 '민들레 민'입니다. ^^ 책 이야기라 덥석 들어와 읽고 갑니다. 꼭 성공하시기를. 독서하는 사이 사이 가족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시기를. 잘 읽고 갑니다.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2.25 14:38 신고 수정/삭제

      네 반갑습니다. 항상 마음은 먹어도 실제로 행동하기 어려운 것이 책 읽기인 듯 합니다. ^^

      고맙습니다!

  • Favicon of http://www.wessay.net BlogIcon 위세이 2009.02.26 14:0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오.. 수능세대셨군요..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2.26 14:50 신고 수정/삭제

      엥? 머땀시 수능 세대라고 하신겨? ㅋ

    • ㄷㄷㄷ 2009.02.26 15:19 신고 수정/삭제

      본문중에 분명 수능때문에 봤었다는 말이 있었는뎅...다시 보니 없네요.. ㅠ.ㅠ

    • ㄷㄷㄷ 2009.02.26 15:20 신고 수정/삭제

      다시 보니 있네요.. 수능대비로 읽었다.. ㅋ.ㅋ

  • Favicon of http://dm4ir.tistory.com BlogIcon park.suhyuk 2009.03.08 23:3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200권을 다 읽으면 맥을 사주신다는.. 후덜덜 정말 멋지십니다.. 짱 멋진 아빠입니다. !!!

    수능세대인데, 맥북을 쓸만한 딸이 있으면 아주 일찍 결혼을 하셔서 아이를 그것도 아주 일찍 가지셨거나 수능세대가 아니신 것 같은데... 으음.... 후자에 한 표!!!

    처음으로 방문해서 글 남깁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08 23:35 신고 수정/삭제

      하하 저 수능 세대 아닙니다. 친분 있는 분이 댓글로 장난친 거에요~ ㅋㅋ 그리고 맥 사주려던 계획을 접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환율 때문에 이번에 새로 나온 뉴아이맥 가격이 엄청나게 올라버렸어요... >.<

  • Favicon of http://sepial.net BlogIcon sepial 2009.03.28 02:0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도 200권 다 읽으면 맥북 사주세.......이건 아니죠?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29 00:03 신고 수정/삭제

      읽다 보니 너무 어려워서 딸 내미는 이미 포기했어요~ ㅋㅋ

      대신 쉬운 거 몇 개만 골라주려고요! ㅎㅎ

[책] 그라운드스웰, 참여하고 즐겨라

그라운드스웰. 형광색 그린이 선명한 표지가 눈에 띄는 이 책을, 나는 클라이언트와의 미팅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이 책 꽤 괜찮던데요? 원래 경제, 경영, 마케팅 이런 분야의 책을 잘 읽지 않는 나지만, 클라이언트의 위력은 대단했다. ^^ 그래요? 그 날 오후 사무실에 들어와서 인터넷 서점을 뒤져 바로 주문했다. 일단 관심이 생겨야 뭐든 눈에 띄는 법일까. 그 뒤에서야 나는 이 책이 요즘 블로그 마케팅 하는 사람들에게 꽤 인기가 있는 책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라운드스웰이 뭐야? 땅에 나는 우물이야? 뭐 혼자 중얼거리면서 책을 펼쳤더니 저자들은 먼 곳의 폭풍에 의해서 생기는 파도라는 뜻의 그라운드스웰을 ‘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난 곳에서 생긴 흐름이 큰 파도가 되어 기업에 밀어 닥치는 현상’이라고 정의했다고 나와 있다. 오호, 이게 그런 뜻일세… 여튼 새로운 용어를 일단 하나 배웠다.


이 책의 부제 - 네티즌을 친구로 만든 기업들 - 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웹 2.0으로 대표되는 인터넷의 흐름을 활용해 비즈니스에 유리하게 만든 기업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그 현상들을 설명한 책이다. 미니홈피, 블로그, 카페를 포함한 다양한 소셜 네트워크 솔루션들과 동영상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 사이트 등등이 소비자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으며 이러 인해 기업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 지를 다룬 책이다.

솔직히 이런 책을 읽을 수 있는 건 어찌 보면 행운이다. BMW, P&G, 야후, 네이버, 유니레버, 델, 베스트바이 같은 커다란 회사들이 많은 비용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경험했던 것들을 단돈 1만8천원에 사서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특히 저자들이 연구한 다양한 데이터와 결과들을 분석한 자료들은 웹 2,0과 소셜 네트워크의 트렌드를 이해하기엔 부족함이 없는 자료이고 이를 바탕으로 정리한 명제들은 하나씩 적어 놓고 따라해 봄직한 일임에 틀림 없다. 따라서 이제 막 기업이 소셜 네트워킹에 참가해 어떤 비즈니스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실무진은 물론 경영진들도 한 번쯤은 읽어볼만한 책이다. 만일 내가 대기업에 근무하는 마케팅 담당자라면, 담당 임원에게 꼭 선물하고픈 책이다. 

몇 가지 이야기들은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그라운드스웰은 일종의 권력 이동이다. 그라운드스웰이 힘을 갖게 되면서 기존의 권력자들은 파워를 잃어가고 이것이 그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무슨 말이냐고? 조중동이 왜 그렇게 블로거를 비아냥거리고 천대하는지를 설명하는 말이다. 콘텐츠를 생산하고 배포하는 것은 그들의 고유 업무였는데 이젠 누구나 생산하고 누구나 배포한다. 정보를 독점하다가 그 독점을 잃어버리면 절대 마음이 편할 수 없는 법. 또 다른 얘기 하나.

흔히 기술에서 시작해 전략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기술은 매우 빨리 발전하고 그것을 일일이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술보다는 그라운드스웰의 핵심, 관게를 맺는 것,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촛점을 맞춰야 한다.

플랫폼이 블로그던 홈페이지던, 카페든, 소셜 네트워크든 그런 건 부차적인 문제라는 얘기다. 굳이 블로그가 아니어도 기업이 콘텐츠를 배포하면서 고객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다는 뜻이다. 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물론 기술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생각할 것이 있다는 얘기다 ^^) 그 안에 무슨 내용을 담고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는 뜻일게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건 이 얘기다. 그라운드스웰은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다. 얼마나 기업들은 자신들의 정보를 컨트롤하고 싶어 했었나. 기업 뿐 아니라 정보를 가진 기관들은 모두 통제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이젠 원칙적으로 통제가 불가능하다. 통제가 불가능하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고객과 함께 즐기는 것일게다. 이거 참 마음에 드는 표현이다.

이렇게 마음에 드는 구석이 많고, 누군가에게 꼭 선물하고픈 책인데도 사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난, 찜찜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물론 책을 쓰다 보면 합당한 사례를 설명해야 하겠지만, 실제로 기업이 블로그든, 카페든, 홈페이지든 인터넷 마케팅 활동을 하다 보면 이론적인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상황들에 부딪히게 된다. 그리고 성공 사례를 분석하다보면 그 뒤에 숨어 있는 몇 가지 팩트들을 간과하게 된다. 그 팩트를 간과하고 성공 사례들을 읽을 땐 누구나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다음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유투브에 멋진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한 기업이 있다. 그 기업은 배포 비용이 하나도 들지 않았고 아주 훌륭한 실적을 거뒀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선 기업들은 ‘멋진 동영상'을 만들야 한다. 말이 쉽지, 멋진 동영상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만들어지나. 적잖은 비용과 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 그렇게 엄청난 노력을 들여서 만든 동영상이 없다면, 배포 비용이 무료라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실제로 유투브에 얼마나 많은 동영상이 올라오는가. 그들 모두 배포비용 무료의 탁월한 혜택을 보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사례들 중에서 컴플레인을 하는 고객들은 그야 말로 정당한 컴플레인을 하는 고객들이다. 그들은 정당한 컴플레인과 함께 합당한 요구사항을 내놓기 때문에 그들을 설득하고 우리 편으로 만드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기업에 그런 고객만 있을 리는 없다. 다음과 같은 경우엔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일까.

백화점 프로모션 기간 중에 상품을 사면서 상품값 만큼 하는 사은품을 받아갔다.그리고 얼마 후 환불을 요청하면서 사은품은 가지고 오지 않았다. 사은품 없이 와서 상품은 손도 안댔으니 환불해 달라고 우기고 매장을 점유하고 있는 고객에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까.

신모델이 나오자마다 구모델에서도 그런 기능이 되게 해달라고 우기는 고객은 또 어떠한가. 내가 산 차에는 없는데 요번에 나온 새 차에는 있으니 내 차에도 그 기능을 넣어줘라, 아주 간단히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왜 안해주나, 라고 들이대는 고객에겐 뭐라 말해야 하는가.

솔직히 말해 이 책의 내용이 우리 기업 현실에 맞다고 할 수는 없겠다. 더더욱 한정된 마케팅 비용과 자산을 가지고 있는 중소기업에는 맞을 리가 없다. 결국 그라운드스웰은 다른 책들보다 훨씬 더 실천적인 방안을 제시했다고는 하지만, 현실에 적용하자면 여전히 원론에 가깝고, 이 책을 필요했기 때문에 읽은 독자들은 자신의 환경에 맞는 새로운 해답을 찾아야 할 게다. 하긴 원래 책이란 다 그런 거 아닌가. 그리고 해답은 있지만 정답은 없기에 비즈니스도 더 짜릿한 법일게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책이 남겨 준 한 마디는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라운드스웰은, 즐기는 것이라는 얘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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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afterdigital.tistory.com BlogIcon 조선얼짱 2009.02.17 18:1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이 책 때문에 완전 난감이 되고 있슴다.
    특히 구진이가 ㅋㅋ
    누군가 자기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자기 논리를 붙여서 막 뭐라구
    하니깐 구진이는 이 책을 추천해 놓구선 맨날 사무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어요. 불쌍한 놈 ..
    글고 그 질문을 던지는 이가 제게도 이 용어는 뭐지? 이건 뭘까요?
    팟캐스트는 왜 어쩌구 ㅡㅡ; 내가 뭐 위키두 아니구 ..
    이 책 아주 문제 입니다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2.18 04:39 신고 수정/삭제

      머, 추천했으면 책임지는 게 인생이잖아요 ㅋㅋ 저한테 추천한 분도 사실은... ㅋㅋ

  • Favicon of http://wessay.tistory.com BlogIcon 위세이 2009.02.18 00:1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아.. 저도 책얘기는 들었는데.. 읽지 못하고 있네요.. 다 읽으셨음.. 빌려주세요...

  • ^^ 2009.02.18 17:2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통제하는것이 아니고 참여하게 만들어라... 으흠... 무엇보다 그걸 다같이 즐겨야 한다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2.18 22:22 신고 수정/삭제

      그런데 막상 이거이 일이 되다 보면 즐거움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진다는! ㅋㅋㅋ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9.02.21 03:1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구진 매니저님.. 울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ㅜ.ㅜ

  • Favicon of http://www.midorisweb.com BlogIcon 미돌 2009.02.21 22:5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런 류의 책을 읽는건 어쩐지 동의를 구하고 싶은 심정이랄까..어떤 케이스도 딱 와닿는건 없지만 이렇게 실증적인 데이터를 갖고 덤빈 소셜 미디어 관련 책은 없지 않나 싶어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2.22 23:21 신고 수정/삭제

      즐기면 되는 거지요~ ^^ 요즘 많이 즐기시잖아요~ ㅋ

  • Favicon of http://greendayslog.tistory.com BlogIcon 그린데이 2009.02.22 04:1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예로 들어주신 몇 가지 사례를 읽으니 당장 오만가지 추가 시나리오가 떠오르면서 머리가 지끈 아프네요. 하지만 딱히 솔루션이 없어도 방법을 찾고, 대화에 참여하려는 태도를 보인다면 궁극적으로 그 자체가 기업 이미지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됩니다.

    요즘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온라인 마케팅이 무슨 돈 안드는 광고의 대체 수단인 것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비용이 덜 드는 만큼 섬세하고 진심이 담긴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정말 좀 아셔야 할 듯.

    야밤에 블로깅을 하다보니 신문 오는 소리도 듣는군요 (방금 문앞에 신문 떨어지는 소리...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2.22 23:22 신고 수정/삭제

      그러게요. 블로깅 시간이... 이 시간까지 도체 멀 하시느라~ ^^

  • Favicon of http://maggot.prhouse.net BlogIcon 한방블르스 2009.03.04 15:1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크게 감동적인 내용은 없지만 개요서로서는 만족합니다. 대행(? 컨설팅)업체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라 새겨서 들을 필요는 있어보입니다. 이 책을 보면서 오길비의 책이 자꾸 떠오르더군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04 23:29 신고 수정/삭제

      워낙 대기업 위주의 통계와 사례라서 저도 딱히 와 닿는 건 없었지만 ^^ 개요서니까요 ^^

[책] 용의자 X의 헌신 - 히가시노 게이고

의미없는 삶을 마감하기 직전에 우연히 만난 한 사람. 단지 그 만남과 그 때 느낀 감정만으로도 그 한 사람을 그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물론 소설이니까 가능하겠지. 하지만 소설이란 원래 있을 법한 이야기를 하는 거라 하지 않았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 용의자 X의 헌신은, ‘헌신'이라는 제목의 낱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추리에 관한 소설이기도 하지만, 또한 한 남자의 굳게 닫힌 사랑에 관한 소설이다.


이혼 후 도시락 집에서 일하며 혼자 딸을 키우는 야스코에게 전 남편 신지가 나타난다. 클럽에서 일하다가 그럴듯한 신지의 모습에 반해 결혼했지만 사기꾼이자 폭력배인 그의 모습에 지쳐 도망치듯 이혼했음에도 신지는 끊임없이 야스코를 찾아 괴롭힌다. 그 날도 직장에 이어 집까지 쫓아와 야스코를 괴롭히던 신지. 그러나 딸 아이의 순간적인 행동으로 신지는 천벌을 받은 듯 죽게 되고 두 모녀는 살인을 저질렀다는 엄청난 현실 앞에 두려워한다.

이 때 문을 두드린 옆 방의 이시가미. 남 몰래 야스코를 좋아해왔던 이 수학 선생은 야스코 모녀를 대신해 시체를 처리하기로 하고 모녀에게 행동 지침을 준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 달리 시체는 금새 발견되고 시체의 신원을 확인한 형사 구사나기는 야스코를 용의자로 점찍고 집요하게 추궁해 진실을 캐려 한다. 그러나 야스코의 알리바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하고, 구사나기는 용의자를 치고 들어가면 갈수록 완벽한 알라바이에 막혀 더 이상 수사의 방향을 찾지 못한다. 그게게 남은 건 직감 뿐. 

이런 와중에 난데없이 등장한 야스코의 마음을 흔들리게 만드는 또 다른 남자. 야스코를 대신해 시체를 느낀 이시가미는 배신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이사가미의 대학 동기이자 천재 물리학자인 유가와는 이 살인에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음을 깨닫고 하나씩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추리 소설들이 반전에 그 묘미가 있는 법이긴 하겠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도대체 그 반전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소설을 끝까지 읽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다. 처음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을 풀어 놓고, 독자가 순간 방심하게 만드는 것도 그의 수법(!)이다. 용의자 X의 헌신에서도 독자는 이미 범인이 누군지 다 알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살인을 저지른 착한 주인공과 그를 돕는 남자. 그리고 그 사실을 직감으로 알고 있는 형사와 물리학자. 그들의 행적이 서로 얽히고 설키면서 눈 앞에 있는 명확한 사실은 드러날 듯 말 듯, 독자의 애간장을 태운다. 그러다 밝혀진 또 다른 진실.

역시, 한 번 손에 들면 놓기 쉽지 않은 책이다. 재미있기도 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에 혀를 내두른다. 아무래도 당분간 이 작가의 작품 몇 권은 더 읽게 될 것 같다.

PS>이 작가를 소개해준 토양이님은 용의자 X의 헌신을 꼭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나 역시 지금 그 말에 절대 동감하게 됐다. 일본에서는 이 책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데, 자막이 없이 볼 수 없는 나로서는 토양이님이 일본 가서 구해와 자막까지 씌워(!) 보여주기를 기대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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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9.02.10 14:5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빠져듭니다.. 자. 들어갑니다.. ^^ ㅋㅋ
    특히, 이 친구 책은 장거리 여행할때 딱입니다..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2.10 15:32 신고 수정/삭제

      장거리 여행 할 일은 없고 ㅋㅋ 여튼 더, 더, 더 사고파요~ ㅋ

  • Favicon of http://www.rabbicat.com BlogIcon 토양이 2009.02.10 15:1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어떻게든 영화를 구하고야 말 테야요! (활활)

  • 자유이전 2009.02.10 17:1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물리학자 유가와씨를 소재로하는 일본드라마도 있었요.
    개인적으로 재밌있음.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2.10 17:19 신고 수정/삭제

      아하 그런가요? ^^ 제가 일본 쪽 문화에는 좀 취약해서리~ ^^ 고맙습니다~

  • ^^ 2009.02.11 09:0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추리소설은 취미가 없었던지라... 이책은 읽어 봐야 겠다는 생각이 팍팍 드는걸요~ ㅎㅎ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2.11 10:02 신고 수정/삭제

      저도 어릴 때 읽곤 안 읽었는데, 요즘 이 작가 때문에 또 필 받았어요 ㅋㅋ

  • 레드 2009.03.08 20:0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4월 9일에 개봉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전 영화를 봤지만 정말.. 소설을 제대로 잘 살려놨더군요~!!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08 20:44 신고 수정/삭제

      ^^ 주변에서 보신 분들이 꽤 계시네요

[책] 옛날에 내가 죽은 집 - 히가시노 게이고

“너 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어"

한 때 연인이었던 여자가 어느 날 문득 연락해 이렇게 말했다면,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남자가 몇이나 될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새 추리소설, ‘옛날에 내가 살았던 집’은 1인칭 화자인 나에게 지금은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예전의 애인이 이런 뜬금없는 부탁을 하면서 시작된다. 오호라, 이거 시작부터 묘한 걸??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 때문에 추리 소설의 내용이 너무 뻔할 것 아닌가 예측할 필요는 없다. 둘의 현재 위치와 관계는 이 소설에서 그리 중요한 의미가 아니므로.


이렇게 단정해 버리면 이 책에는 인류 최대의 스토리 텔링 주제인 ‘남녀상열지사’가 나오지 않는다고 공표해 버린 셈이 되니, 벌써부터 흥미가 반감되는 사람들도 있을 게다. 그러나 어디 인생사 남녀상열지사가 전부는 아닐터. 남녀상열지사를 일으킬 것도 아니면서 도대체 왜 이 여자는 자기가 냉정하게 떠나온 남자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일까. 그런데 남자 주인공은 의외로 솔직하다. 은근한 기대를 갖고 있다고 스스로 밝혔으니 말이다.

하지만, 얘기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다. 그녀는 얼마전 돌아가신 그녀 아버지의 유품 중에 나와 있는 허름한 열쇠와 지도 한 장을 가지고 나타난 것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하나도 없는 자기에게 이 열쇠와 지도가 틀림없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기억을 찾기 위해 동행해 주기를 요청하는 그녀에게 주인공인 나는 기대도 꺠진 데다(이래서 남자들이란 참… ^^) 기분도 썩 좋지 않아 좋게 사양하려 한다. 하지만 그 때 눈에 띈 그녀 팔목의 상처. 무슨 사연이 있으리라 짐작한 나는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그녀와 함께 열쇠의 비밀을 캐러 떠난다.

이 부분, 열쇠의 집을 찾아가는 묘사를 읽으면서 나는 우습게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떠올랐다. 왜 그 첫 장면, 이사가는 부모와 함께 길을 잃고 헤메는 모습 말이다. 길이라고 믿기 어려운 비포장 도로를 헤메며 어딘가를 찾는 그 모습. 그렇게 비스무레한 숲 속을 헤쳐 결국은 지도에 있는 집을 찾게 되고, 그 열쇠가 지하실의 출입문을 여는 열쇠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렇게 들어간 별장 같은 집은 뭔가 이상하다. 현관은 아예 폐쇄되어 있어 지하실로 출입할 수 밖에 없고, 모든 시계는 11시 10분에 맞춰져 있으며 23년 전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고스란 하지만, 뭔가 빠진 것 같은 그 어색함… 그 집에서 두 사람은 그녀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집안 구석 구석을 뒤지지만 좀처럼 도움이 되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한 일기장. 일기장을 통해 그들은 그 집의 비밀과 그녀의 기억을 하나씩 찾아가는데…

뭐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결론은 다 밝혀진다. 그것이 해피엔딩인지 아닌지는 읽는 사람 스스로 판단할 문제다.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소설 ‘악의'처럼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은 누가 범인이냐라는 목적보다는 왜 그렇게 되었을까 라는 이유에 더 촛점을 맞춘다. 그리고 그 이유란 것이 항상, 도저히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의 반전이다.

이야기를 풀어 가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단 두 명이다. 어쩌다 등장하는 엑스트라 같은 인물을 빼고 이 책은 두 사람이 수수께끼 같은 집 안에서 모든 문제를 풀어간다. 연극으로 치면, 최소한의 배우가 최소한의 공간에서 연기를 펼치는 단막극 같은 셈이다. 단 두 명, 그 좁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자칫하면 지루한 이야기로 흐를 수 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지루할 틈 없이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고 독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에 맞닥뜨린다.

이 책을 포함해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총 두 편 읽었다. 하나는 당연히 이 책일테고 또 하나는 앞서 언급한 ‘악의’다. 냉정하게 비교하자면 솔직히 이 책보다는 ‘악의’가 좀 더 재미있긴 하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토양이님은 이 작가의 다른 소설 ‘용의자 X의 헌신’을 꼭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니 아마 그 책이 더 재미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이미 추리소설 마니아들에게 히가시노 게이고는 충분히 명성이 있는 작가일테지만, 나처럼 일본 문학이나 추리 문학을 많이 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히가시노 게이고는 꼭 한 번 접해 볼 만한 작가라 권유할 만하다. 뭐, 항상 주장하는 바이지만, 소설이나 영화나, 일단 재미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일단 읽으면 손에서 떼지 않고 끝장을 봐야 하는 책. 이 책 역시 그 중에 이름을 올릴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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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echoya.com BlogIcon 에코 2009.02.08 18:3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오~ 이거 레이님 후기 읽고 급땡김이에요^^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2.08 19:55 신고 수정/삭제

      이 작가에게 제가 요즘 빠져 있어서요~ ㅋㅋ

  • Favicon of http://blog.daum.net/bouquetdor BlogIcon 진주애비 2009.02.08 21:1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그러고 보니 요즘 제가 읽는 소설들의 제목에
    집이라는 글자가 많이 들어 있네요
    ..뭐 빵집은 없지만요 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2.08 22:09 신고 수정/삭제

      흐음, 빵집이 들어간 소설은 뭐가 있을까요~ ^^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9.02.09 10:5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 이 작가는 중독성이 강하다니까.. ^^ 그나저나 언제 읽냐..나는.. ㅜ.ㅜ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2.09 11:02 신고 수정/삭제

      토양이가 읽고 난 뒤에요~ ㅋㅋㅋ (뭐, 하루 저녁이면 그냥 읽어낼 듯)

  • Favicon of http://bongstudio.tistory.com BlogIcon bong 2009.02.10 09:1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완전 궁금해지는 결말~ㅋㅋ저도 읽을래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2.10 09:56 신고 수정/삭제

      이거 말고요 ^^ 같은 작가가 쓴 용의자X의 헌신, 악의 이거 두 권을 먼저 보세요. 정말 죽여요~ ㅋㅋ

  • 필로스 2009.02.12 20:3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토양이님 짠이아빠님 다음은 저요~~
    추리소설 급땡김..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2.12 23:06 신고 수정/삭제

      헐, 보스는 사서 읽으세요~ 책 왔다갔다하는 물류비도 안 나옴! ㅋㅋ 엠유 식구들 같이 돌려 읽으심 되겄네요~ ㅎㅎ

  • Favicon of http://midorisweb.com BlogIcon 미도리 2009.02.13 19:4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다들 책 좀 사서 보세욧~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2.13 23:48 신고 수정/삭제

      ㅎㅎ 그러게요. 책 많이 사서 보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 ㅋㅋㅋ

  • 룰루룰루 2009.03.02 23:1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이분의 광팬이라면 광팬인데 이 소설은 좀 제 취향이 아니더라구요 ㅎ 앉은자리에서 다 읽어버릴정도로 엄청난 흡입력은 여전하지만 너무 정적이랄까요.. 결말도 사실 보면서 대충 예상해버려서 김도 새버렸고... 근데 히가시노 게이고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친구는 아주 재미나게 읽던.. 흠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02 23:28 신고 수정/삭제

      네, 확실히 전작들에 비하면 좀 정적인 면이 있죠 ^^

[영화] 쌍화점, 질투와 광기에 묻힌 러브스토리

틀림없이 세기의 커플 중 하나였을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이혼한 데는 제3자가 도저히 알 수 없는 백만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부부가 동반 출연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 니콜 키드먼이 다른 남자와 뜨거운 정사 씬을 벌인 이후 둘의 관계가 멀어졌기 때문이라고들 했다. 아무리 배우이고 아무리 연기지만,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벌이는 애정 행각을 절대 좋게 볼 수는 없을 것이라는 추측일 게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면 그저 배우로서의 일이지만, 이게 한 번 질투라는 감정으로 포장되면, 그 결과는 뻔한 일이다(톰 크루즈 조금 있으면 한국 온다는데… 설마 내 글을 보시지는 않겠지 ^^).

엉뚱한 예를 들긴 했지만 모름지기 질투란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사람의 심리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쌍화점은, 질투에 이은 광기, 그리고 결국엔 아무도 행복하지 못한 파국에 이르는 전형적인 멜로물이다. 문제는, 파국이 날 걸 예상하긴 하는데 도대체 어떤 식으로 날 것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예측하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영화를 이끌어 가는 요소가 질투에 빠진 사람의 행동이었으므로, 어쩌면 그런 전개는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결말을 예측할 수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솔직히 이 영화를 보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야하다(!)는 세간의 평가 때문이다. 미인도는 보지 못했지만, 미인도보다 수위가 높다고 했다. 수위가 높다라니. 이 정도면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 이 영화 야해!라고 홍보하기 시작한 건 일단 먹힌 셈이다. 야하다는 평을 듣고 영화를 보러 온 사람이 나 한 명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초반부터 야한 장면이 들이닥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게다가 야하다는 선입견 때문에 화면의 품질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왠걸. 어유, 예상 외로 화면 고급스러운데? 그런 느낌이 확 들어왔다(사실 이래서 처음 기대치가 높고 낮은 것에 따라 평가는 극과 극이 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드디어 등장한 두 남자의 성애 씬. 남자와 남자의 성애 장면이 쇼킹했다는 건 인정해야 겠다. 오죽하면 뒤이어 나오는 홍림과 왕후의 정사씬은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게 느껴졌을 정도니까. 첫 부분에 나온 장면이 쇼킹하면 아무래도 뒤로 갈수록 충격이 덜해지는 건 당연한 일일 게다. 물론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다른 데서 보기 힘든 장면이 스치듯 지나니, 수위가 높다는 건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솔직히 내가 제일 야하게 봤던 서양 영화를 꼽으라면 마돈나와 윌리엄 디포가 나왔던 육체의 증거를, 두번째론 샤론스톤의 원초적 본능을 꼽을 수 있다. 한국 영화를 꼽으라면, 이건 두 말할 것 없이 무릎과 무릎 사이다. 이들 영화들의 대부분이 노출의 수위가 높아서가 아니라(어느 정도 수위가 있기는 하지만 ^^) 당시에 내가 받는 심리적인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수위 보다는 심리적인 쇼킹 강도가 더 영향을 미친다는 걸 얘기하기 위해 별 쓸데 없는 얘기를 다 했다 ^^).

쌍화점은 야하다. 그러나 야한 걸로 승부하지 않는다는데서 난 이 영화가 더 마음에 들었다. 어쨌거나 영화든, 소설이든 재미있어야 하고, 재미있으면 그만 아닌가. 홍보를 통해 익히 알려진 찐한 정사 씬과 적절한 타이밍에 섞어 넣은 액션 씬,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꽉 차여 진행되는 스토리는 영화가 상영되는 두 시간 동안 관객의 시선을 끌어 모은다.

감정을 이입하는 대신 대사의 깊은 곳(!)까지 이해하는 관객들이 중간 중간 실소를 흘리기는 하지만(이건,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직접 영화를 봐야 알 뿐!) 멜로와 스릴러가 적절히 결합한 듯한 느낌이 꽤 짜릿하다. 여럿이 가서 두루 두루 보기는 좀 그렇겠지만 말이다. ^^

PS> 조인성, 진짜 드럽게(!) 잘 생겼다.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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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www.rabbicat.com BlogIcon 토양이 2009.01.08 12:1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아아- 저도 기필코 보고 말 테야요! ㅠㅠ (아.. 그런데 참 이 영화 같이 보러 가자고 할 사람이 별로 없다는...;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1.08 13:32 신고 수정/삭제

      없긴 왜 없으.. 줄 서지 않을까? ㅋㅋ

    • ^^ 2009.01.08 18:07 신고 수정/삭제

      저랑 같이 보셔야져... ㅎㅎ

  • 황유원 2009.01.08 13:2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약간 웃음이 나온 부분..
    "내일 자시에 오겠다" 이부분이 아닐까 싶네요..ㅎㅎ
    그나저나 조성모 주진모씬은 남자가 보기에 너무 좀 그런 장면같았어요..
    고개를 돌려보니 남자들중 고개를 돌린사람이 많았다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1.08 13:33 신고 수정/삭제

      ㅎㅎ 거기도 그렇고요... 또 마지막 부분에 한백이가.. (어유, 이런 거 다 말하면... 안 본 분들 재미 없어져요~ ^^)

  • 펄럭 2009.01.08 14:0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원래 관객평은 재밌다와 재미없다로 갈려지는데, 통속적인 걸로만 따진다면 분명 수작은 아닌 거 같네요. 대체로 양 극단으로 나뉘어지는건 분명 재미없는 요소가 다분하다는 거고요. 물론 보는 사람의 주관적 측면에서 재밌다고 하시고 뭐 느낀다는 표현이 있다면야 뭐 할 수없지만서도요. 영화에 대해 긍적적인 평을 내놓으시는 분들 대다수가 이 영화는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 생각하는 영화라고 강조하는데 참 아이러니한게 야하다는 평으로 보러 간가고 그건 곧 비쥬얼쪽으로 상상을 하면서 보러간것임에도 결론은 여러 이성장치를 동원하게끔 유도한다는 거죠.. 님 글도 그런 경향이 짙어요..^^

  • Favicon of http://blog.empas.com/diabloti BlogIcon 정현아범 2009.01.08 14:0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지속적으로 고객의 기대수준을 다운시킬 수 있다믄 정말 훌륭한 마케터겠죠..쩝
    그나저나 저 잘난 녀석들은..에잇!!!

  • Favicon of http://blog.daum.net/yama1417 BlogIcon skin science 2009.01.08 15:4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아직도 볼까 말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쌍화점의 경우 의견이 너무 분분하네요^^
    한번 보는 쪽으로 살짝이 기울어지고 갑니다.
    행복하세요.

  • 오즈의마법사 2009.01.08 16:0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볼만한 영화같아요..어제보고왔는데 야한씬이 생각보다 많아서 쪼금 놀랐지만,,
    보고난뒤에 야한 영화다라는 느낌보다는 슬프고 가슴한켠이 지릿한 잔잔한 여운이 남아서 좋았어요...

  • Favicon of http://happicialist.tistory.com BlogIcon 에너양 2009.01.08 18:4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와우! 오늘 레이님 방문자 넘 신나는걸요 @,@
    쌍화점.. 저도 봐야되는데..
    주변 친구들 사이에선 인기가 많더라구요 ;;;
    낭군님 친구들 사이에선 인기가 없다던데;;
    조인성 효과인가;;

  • 모과 2009.01.08 19:3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예전에 개봉한 김혜수의 전라 누드가 나온다는 [얼굴 없는 미녀]가 남자들의 호기심으로 기다렸고 남자들끼리 5~6명씩 관람하는 진풍경이 있었던 적이 있는데 ,흫행은 저조했지요.
    벗은 김혜수 보다 옷을 입은 김혜수가 더 섹시한 것 을 느꼈습니다.
    [쌍화점]을 보면서 저는 이상의 시 [오감도]에 나오는 69 가 고등학교때 성의 체위임을 몰랐던 기억이 났습니다.
    시인인 유하 감독의 작품에는 순고한 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있지요.
    [색즉 시공2]에서도 과감한 노출을 하지않았던 송지효가 전라의 섹스씬을 찍은 것은 감독에 대한 신뢰 때문인듯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주진모와 송지효의 옛노래 씬에서 웃음이 터졌다고 했는데 대전의 관객들은 아무도 웃지 않았습니다.
    궁중에서 고립 된 섬같은 왕후가 홍림과 왕의 명령으로 잠자리를 한 후에 사랑으로 변한 것은 이해가 됩니다.
    홍림이 욕정에서 애정으로 변한 것도 이해가 됐구요.
    질투가 왕과 홍림을 죽음으로 몰지만 ....
    [쌍화점]은 여성 관객들의 조인성의 벗은 몸에 대한 동경과 ,주진모,송지효의 표정연기와 조인성의 수려한 외모와 [비열한 거리]에서 주연상을 탔던 기억을 하면 그리 못하는 연기는 아닙니다.

    남자들의 조인성에 대한 질투는 여자들이 여배우에 대한 질투 못지 않게 큰 것 같습니다.
    화면의 화려함과 이조시대보다 편하고 아름다운 의상, 조연배우들까지 잘 생긴 배우들....

    2시간 가량 몰두하면서 볼만 한 좋은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우동]이란 영화는 역사에 단 한 줄 자유연애를 햇던 어우동이란 여자를 대중이 보는 앞에서 사지를 찢어 죽였다는 것을 모티브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영화를 하도 많이 봐서 좀 헷갈리네요.^^

  • Favicon of http://japanplaza.tistory.com/entry/쌍화점동성애와-양성애와-불륜은-좋게-끝나지-않는다 BlogIcon JNine 2009.01.08 20:2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중간중간 실소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싸이코패스 조인성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_- JNine을 누지르면 관련 동영상 및 원본 링크가 있습니다. 웃기지 않은 장면에서의 몇몇 실소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쿨럭

  • Favicon of http://lino.partyon.kr BlogIcon LINO_kr 2009.01.12 08:2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도 볼까 말까 고민중인데...흐음... 어떻게 될런지.,..
    동성애 자체는 제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서
    자꾸 멀리하게 되더군요...ㅡㅠ

  • 말짜 2009.01.16 20:1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오늘 날짜쯤이면 위에 못보셨던분들 다 보셨겠지?
    난 왕후와 홍림의 첫날밤 왕후의 낮고 굵직한 첫대사 "내가 벗겠다..." 에서
    혼자 웃었다는 ㅠㅠ (가끔 남편한테 써먹음 ㅎㅎ)

  • Favicon of http://wessay.tistory.com BlogIcon 위세이 2009.01.23 02:5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꼭 보겠다.. 질투를 일삼자와... 왜 질투할까? 난 절대 안한다. 몹쓸 질투..

[책] 천사들의 제국, 내게도 수호천사가 있을까

사람은 죽으면 6단계의 과정을 거쳐 세 명의 천사 앞에서 마지막 심사를 받는다. 사는 동안 세상에서 선을 베풀어 600점을 얻으면 천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고, 600점이 안되면 다시 사람이나 동물, 식물 등으로 환생해 점수를 채워야 한다. 점수를 채울 때까지 사람은 몇 번의 생을 계속해서 살아야 한다. 게다가 새로운 생을 선택할 수 있다. 문제는, 이전 생의 평가 결과에 따라서 선택할 새로운 생의 범위가 결정된다는 것. 과거의 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과거의 생과 연결되는 또 다른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600점을 채울 때까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천사들의 제국’은 타나토노트의 속편이다. 타나토노트에서는 사람들이 죽음 뒤의 세계를 탐험하는 이야기였다면, 이번엔 죽음 뒤의 세계에서 사람의 세계를 관리하는 천사의 이야기다. 타나토노트의 주인공 미카엘 팽송이 여기서도 주인공을 맡았다. 감히 인간이 사후세계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신들의 분노를 사 죽게 된 미카엘 팽송이 이번엔 천사가 되어 사람들을 관리하게 된다는 뭐 그런 얘기다.

누차 강조하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은 몹시 황당하면서도 아 그럴 수 있겠다 싶은데 매력이 있다. 이것은 그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단순한 상상에 따른 것이 아니라 풍부한 과학적, 철학적 지식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에 대한 지식은 이미 정평이 나 있는 데다가 각종 신화의 내용을 분석하고 그 사이의 연관 관계를 만들어낸 그의 창작력은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미카엘 팽송은 원래 600점을 채우지 못해 다시 인간으로 환생해야 하나, 미카엘의 수호 천사인 에밀 졸라의 강력한 말빨에 힘입어 천사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그는 자신의 가이드 천사로 에드몽 웰즈를 만나게 되고, 그가 괸리해야 할 세 명의 사람을 배정 받는다. 그 세 명의 출생에서부터 성장, 살아가는 과정에 끊임없이 개입하고 그들이 600점을 채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미카엘의 미션. 그들 중 누군가가 600점을 채우면 미카엘에게도 뭔가 보상이 생긴다니, 구미 당기는 미션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미션으로만 끝나면 좀 심심한 법. 여기에 다시 천사로 환생한 라울을 만난 팽송은 천사 세계의 마지막 장벽인 제7장벽 이후에 관심을 갖게 되고 금지된 영역을 찾아 탐험을 나서는 한편, 자신이 관리해야 할 세 명의 사람들을 관리하는데 열정을 기울인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어 천사가 그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것도 그리 쉽지는 않은 일. 게다가 라울의 끊임 없는 유혹으로 그는 결국 천사들의 세계 저 너머를 탐험하는데 참여하게 된다.

결국, 미카엘은 그 너머에 있는 뭔가를 발견하게 되지만 세 명 중 한 명의 죽음을 방치하게 되고 그 사람의 영혼과 맞부딪혀 싸우기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미카엘은 과연 호기심과 미션을 다 만족시키면서 또 다른 상급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까. 뭐, 결론부터 말하면 상급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그 상급 세계의 이야기가 다음 편 소설인 ‘신'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짜임새 있는 내용과 기발한 상상력 때문에 이 책 역시 손에서 놓기 힘들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들의 이름이 등장하고, 또 다른 역사적 인물들이 사후 세계에서 특별한 미션을 받아 수행하고 있다는 소재들도 흥미를 더하는 부분이다. 거기에 비록 천사의 관리를 받고 있지만 자유 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변해가는 과정도 꽤 재미있다.

신 때문에 타나토노트와 천사들의 제국을 읽긴 했는데, 오랫만에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읽어낸 소설들을 찾았다는 생각에 꽤 흐뭇하다. 그런데다가 처음엔 좀 데면데면했던 신을 이제 다시 읽을 생각을 하니 은근한 기대감도 쌓인다. 오직 바라는 건, 신의 후속편들이 빨리 나와주기를! / FIN

2008/12/26 - [미디어 다시 보기] - [책] 신 - 나도 언젠가는 신이 될 수 있을까
2009/01/06 - [미디어 다시 보기] - [책] 타나토노트, 죽음 뒤엔 어떤 세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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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www.rabbicat.com BlogIcon 토양이 2009.01.07 14:1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마구 드는데요? 0_0;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1.07 17:45 신고 수정/삭제

      딴 사람은 몰라도 토양이님은 좋아할 듯! ^^

  • Favicon of http://blog.daum.net/bouquetdor BlogIcon 진주애비 2009.01.09 13:4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올핸 맘 먹고
    소설을 좀 읽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새해첫날 서점에 들렀습죠 이것저것 골라 계산했는데 가격이 끝내줬어요..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1.09 13:52 신고 수정/삭제

      ㅎㅎ 술 한 번 찐하게 마셨다 생각하시죠 머~ ㅋㅋ

[책] 타나토노트, 죽음 뒤엔 어떤 세계가 있을까

사람의 죽음 뒤엔 어떤 일이 있을까? 저마다 주장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종교에서는 반드시 내세가 있고, 그 내세를 통해 인간은 심판 받는다고 말한다. 과연 내세는 존재할까? 심판은 존재할까? 죽음 뒤에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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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는, 죽음 뒤에 있는 또 다른 세상을 이야기로 풀어낸 이른바 베르나르 베르베르식 사후세계를 다룬 소설이다. 게다가 이 사후세계를 산 자들이 직접 탐험한다는(책 제목인 타나토노트는 이렇게 사후세계를 탐험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조어다) 아주 솔깃한 소재를 그럴 듯한 논리로 풀어낸다. 황당하면서도, 이거 꽤 말이 되는 걸?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뭐 요약하면 책은 이런 내용이다.

프랑스의 대통령이 죽음 직전에 다시 살아났다. 죽음 직전에서 되살아난 대통령은 사후세계의 일면을 보았고, 자기가 죽음 직전에서 다시 돌아온 것처럼 이런 세계를 탐험할 방법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장관 한 명을 족쳐(!) 이 연구를 시작하게 했고, 여기에 라울과 미카엘 팽송이라는 두 주인공이 참여하게 된다. 두 사람과 그들의 조수인 미모의 간호사, 그리고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자원한 사형수들은 죽음의 세계에서 다시 돌아오는 방법을 연구하게 되고 모든 소설이 다 그렇듯이 몇 번의 실패 끝에 결국 성공하게 된다. 이 성공을 계기로 전 세계는 사후세계의 탐험에 경쟁적으로 돌입하게 되고 자연스레 사후세계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난다.

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한 까닭에 사후세계가 블랙홀 안 쪽, 우주 은하계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낸 라울과 미카엘. 몇 겹의 장막으로 이루어진 사후세계의 비밀이 밝혀지면 밝혀질 수록 사후세계는 점점 더 어지러진다. 사후세계가 관광지가 되고, 장사꾼들이 들끓으며, 결국엔 이 세계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이 일어나기까지 한다. 인간의 탐욕은 사후세계 마저도 소유하고, 망가뜨리려한다. 이를 지켜보는 신들, 멈추지 못하는 인간들의 호기심에 그들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결말을 예상할 수 없는 채로, 책장은 빠른 속도로 넘어간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가리켜 천재 작가라고들 한다. 이 책에서 그가 얘기를 풀어내는 방식을 지켜 보고 있노라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고, 어떻게 밝혀진 사실과 그 생각들을 엮어나가는지를 읽다보면, 정말 그가 천재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이미 몇 명의 성인들이 신들의 세계를 탐험했고 그것들을 얘기해줬는데 왜 인간들은 믿지 않는지, 라고 말해주는 신들의 얘기를 읽다 보면, 이것이 소설인 것 조차도 까먹은 채로 아하~ 그런 감탄사가 나올 정도니 말이다.

타나토노트 초판은 1994년에 발행됐다. 그러니 이 책은 신간이라기 보다는 이미 오래 전에 나온 책이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팬이라면 이미 몇 번씩 읽었음직한 소설이다. 그런데 난데 없이 이리 오래된 소설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 소설이 최근 그의 신작 ‘신'의 최초 연작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신’에는 타나토노트와 그 후속편인 천사들의 제국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그대로 등장하고, 작가 역시 ‘얘네들 잘 알지?’라는 식으로 얘기를 풀어가기 때문에 전작에 대한 정보가 빈약한 상태에서는 ‘신’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 ‘신'을 제대로 읽으려면 타나토노트 정도는 읽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타나토노트를 읽으니 자연스레 이 책의 후속편인 천사들의 제국을 찾게 됐고, 천사들의 제국까지 다 읽은 후에는 신을 한 번 더 읽게 될 것이다. 모름지기 사람에겐 아는 만큼 더 보이는 법이다. 신을 지금 보다 두 배 더 재미있게 보려면, 타나토노트 정도는 꼭 한 번 읽어볼만 하다. 신이 아니면 또 어떠랴.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북 리스트에 담아둘만한 그런 소설이다.

PS> 눈치채셨겠지만, 다음 번 책 리뷰는, 천사들의 제국이 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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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www.rabbicat.com BlogIcon 토양이 2009.01.06 09:2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앗, 예약할래요!! >_<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1.06 09:40 신고 수정/삭제

      이미 다른 분이 빌려가셨으니, 조금만 기둘리시게~ ^^

  • ^^ 2009.01.08 09:0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는 이책을 언제쯤 다 읽을까요... 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1.08 09:35 신고 수정/삭제

      원래 소설이란 거이 필 받으믄 금새 갑니다~ ㅎㅎ

[공연] 마리오네트, 애잔함 위에 피어난 열정

마리오네트란 공연을 보러 가자길래, 수퍼마리오나 마리오파티와 무슨 관계가 있냐는 썰렁한 질문을 했다가 본전도 못 건졌다. 명동 유네스코 회관 건물에 자리한 명동아트센터. 옛날엔 펑키 어쩌구 전용 극장이었던 듯 한데, 새롭게 개보수를 하고 공연 전문 소극장으로 탈바꿈한 듯 하다. 누군가에게서 선물 받은 티켓으로 펑키 어쩌구를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공연 제목은 생각 안 나는데, 정성한인가, 연출자 이름은 생각난다. 컬트 트리플 출신이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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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모르고 갔는데, 비보이 공연이란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저주 받은 몸치인 나는, 춤 잘 추는 사람들이 마냥 부러울 수 밖에 없지만, 그 부러움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춤 공연 같은 건 아예 보러 갈 생각을 안 했다. 그러다 엉겁결에 보러 간 마리오네트가 비보이 공연이라니. 별로 머뜩찮은 표정을 하고 공연장에 들어갔다. 눈치를 보니, 주변은 죄다 파릇파릇한 이십대 커플들이다. 얼핏 봐도 내가 나이가 제일 많은 듯(요즘 들어 이런 경우가 종종 늘어나니, 젠장 가슴아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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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시작됐다. 처음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렇게 익숙하면서도 자연스런 모습은, 역사가 짧은 공연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다. 자연스럽게 박수를 유도하고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물론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이십대라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관객들은 서서히 공연에 몰입한다. 관객이 빨리 공연에 몰입할 수록, 관객도 즐겁고 배우도 즐거운 법이다.

간간이 유머를 던지며 춤으로 공연은 진행됐다. 묘기에 가까운 춤 솜씨를 보이는 배우들에게 찬사를. 중간 중간 삽화를 보여주며 스토리를 설명하는 방식도 불편하지 않았고 신나는 춤 사위에 박수를 치며 공연을 즐겼다. 사람들에게 사랑 받기 시작한 인형들, 소녀를 사랑하기 시작한 인형. 1부와 2부의 막이 어느 틈에 흘러가고 3부 마법사의 공연이 시작됐다. 온통 검은 무대 위엔 흰 옷 차림의 마법사. 그의 손이 펼쳐지면서 마스크들이 춤을 춘다. 아, 이 공연 나 TV에서 봤는데!!



검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현란한 형광 마스크의 춤은 감탄을 금하기 힘들다. 자전거를 만들고, ET를 만들어 내는 그들의 유머에 웃고 박수치며 환호할 수 밖에. 게다가 더 기특한(!) 건, 그들은 고고한척 하며 형광 마스크의 비밀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갑자기 켜지는 환한 무대, 그와 동시에 드러나는 형광 마스크의 비밀. 관객은 배를 잡고 웃는다.


손풍금의 애절한 멜로디에 맞춰 인형들이 춤을 춘다. 힘차면서도 절제된 모션으로 애잔한 느낌을 주는 그들의 춤. 공연의 시놉시스는 결코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그들은 모두 춤을 출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는 듯 뜨거운 열정을 무대에 쏟아낸다. 그들의 열정에 관객들은 박수와 환호 밖에 보낼 것이 없다.

실제 공연 시간은 약 70분 정도 될까. 나머지 20분은 관객과 함께 즐기는 그들의 잔치다. 공연 중에 보여주지 못했던 신나는 춤들을 몸을 던져 보이고, 신기에 가까운 비트박스로 흥을 돋군다. 관객 모두 일어서 박수를 치고 마무리를 즐기니, 이건 파티다. 그리고 젊은 배우들만의 특별한 서비스. 공연을 마치고 나가는 관객들에게 포토 타임을 제공한다. 왜 좀 유명한 배우들은 이런 서비스 안 해주는 것일까 ^^

재미있다. 춤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도 박수를 치고 즐길만하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듯. 초등학교 5학년 딸 아이도 한참을 웃으며 같이 봤다. 이만한 비용으로 이만한 공연을 보기란 그리 쉽지 않을 듯. 공연을 보는 중간 중간,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비슷한 비용에 재미있게 봤던 점프가 생각났다. 역시 뭐든 하나 독특한 볼 거리가 있는 공연은 절대 손해본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법이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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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ilovenecely.tistory.com BlogIcon 러브네슬리 2008.12.29 19:3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이런건 직접가서 봐야하는데...
    영상으로만 봐도 정말 재밌는데 ㅠㅠㅋ
    아쉽네요 ㅠㅠ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12.29 19:50 신고 수정/삭제

      그쵸. 이런 건 가서 봐야지요~ ㅋㅋ 저 유튜브 영상은 제작자가 직접 공개했다고 하던데, 아무리 영상으로 봐도 가서 보는 것 만은 절대 못하니까 그렇게 했겠지요~ ^^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8.12.29 20:3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간만에 따님과 좋은 추억 만드셨구만.. ㅋㅋ

  • Favicon of http://www.paperon.net BlogIcon 편집장 2008.12.29 20:4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우리나라 비보이 들이 댄스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치를 높여놓아서
    지난번 알레그리아 공연에서 일부 프로그램들은 관객들의 기대치에 미치치 못하는 부분들이 있더라구요. ^^
    마리오네트, 기회가 되면 꼭 보러가야겠네요. ^^

  • Favicon of http://www.rabbicat.com BlogIcon 토양이 2008.12.29 23:1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다찌랑 데이트하셨군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