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말 바로 잡기 -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람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것은 글이 말과는 다르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을 글자로 적어 놓은 것이 글일 터인데, 글이 말에서 멀어져 말과는 아주 다른 질서를 가진다는 것은 매우 좋지 못한 현상이다. 더구나 말을 소리나는 대로 적게 되어 있는 한글로 쓰는 우리 글이 우리 말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 있다면 아주 크게 잘못된 일이다.

이렇게 된 가장 뿌리 깊은 원인은 우리 조상들이 한문 글자를 써서 생각을 나타내고 한문이나 한자말을 써야 행세를 하도록 하는 사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오덕. 우리글 바로 쓰기 1.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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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말 바로 잡기를 쓰다 보면, '한자말도 우리 말인데 왜 쓰지 말자고 하는 것이냐'라고 얘기하는 분들이 있다. 그 분들에게 '왜 세상을 흑과 백으로만 보는가'라고 묻고 싶다. 이 책을 쓰신 이오덕 선생님은 물론 여기에 다시 풀어 쓰는 나도, 한자말을 쓰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한자말 중에 이미 우리 생활에 널리 쓰여 우리말로 된 낱말이 많이 있다. 그런 것들을 우리 말로 다시 고쳐 쓰는 것은 현실에도 맞지 않고 실제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어려운 한자말로 쓰지 않아도 되는 말들이 우리 주변엔 너무나 많다. 뜻도 알기 어렵고 한자로 쓰지 못하고 발음 하기도 어려운 그런 말을 대신할 좋은 우리 말이 얼마든지 있는데, 그 말을 쓰지 않고 한자말을 쓰는 것은 우리 말과 글을 스스로 포기하는 꼴이다. 그러니 어려운 한자말 대신 누구나 알고 있는 쉬운 우리 말로 쓰자는 것이다. 정말 부탁이건데, 매사를 흑과 백으로만 나눠 단정짓지 말고, 글에서 말하는 속뜻을 잘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한자말의 또 다른 문제점은 같은 말을 뱅뱅 돌려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오늘 살펴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이다.

또 그동안 침묵해왔던 중도파 초.재선 그룹도 집단행동을 하거나 아니면 각자의 판단에 따라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조선일보 2007년 5월 27일

이 문장은 아주 간단하게 고칠 수 있다.

또 그동안 침묵해왔던 중도파 초.재선 그룹도 집단행동을 하거나 아니면 각자의 판단에 따라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될 가능성도 있다.

혹은 이렇게 고쳐 보면 어떨까?

또 그동안 침묵해왔던 중도파 초.재선 그룹도 집단행동을 하거나 아니면 각자의 판단에 따라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될 수도 있다.

말을 뱅뱅 돌려서 어렵게 꼬아 놓은 한자말과 달리 얼마나 쉽고 간단한가. 물론 그럴 수도 있다는 얘기를 강조하기 위해서 한자말을 썼다고 말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강조하려면 '가능성이 높다'라고 표현하면 되지 굳이 배제라는 한자말을 쓸 이유는 없다고 생각되며 사실 이 말 자체가 강조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배제란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배제 -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물리쳐 제외함

이 뜻을 적용한다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말은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물리쳐 제외함'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이 무슨 복잡한 한자말 장난인가. 소위 말하는 이중부정일텐데, 이렇게 풀어 쓰는 나도 헷갈리기 시작할 정도다. 쉬운 우리 말이 있는데 왜 그리 한자말을 고집하는 것일까.

이래서 우리는 불행하게도 우리 말과는 다른 한자말 체계의 문장에 갇혀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옛날부터 글깨나 쓰는 사람들이 '문자 쓴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요즘도 이 문자 쓰는 글이 얼마나 많은가. 아니, 거의 모든 지식인, 학자, 문필가들의 글이 문자 쓰는 글로 되어 있다.

이오덕. 우리글 바로 쓰기 1. 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