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 상상하던 장면을 눈으로 보다

삼국지에서 제일 재미있는 부분을 꼽으라면 누가 뭐래도 적벽대전 일게다. 이제 더 이상 갈 곳 없는 유비, 기필코 싹쓸이하겠다는 조조, 선택에 따라 미래가 바뀌는 손권… 그리고 이들을 움직이는 제갈량과 주유. 절대절명의 상황에서 치열한 전투는 시작되고, 제갈량과 주유, 그리고 감녕, 방통을 비롯한 장수들의 기상천외하고도 눈부신 활약으로 사악한 조조(!)는 치명타를 입고 물러나게 된다. 이후 유비는 힘을 회복하고 삼국의 틀이 본격적으로 잡히게 된다.

이런 역사적 의미와 상상만 해도 화려하기 그지 없을 전투 장면 때문에, 나는 삼국지를 읽을 때마다 적벽대전을 영화로 한 번 봤으면 그런 생각을 했었다. 물론 영상으로 만든 삼국지가 없진 않았으므로 어딘가에서는 적벽대전을 만들어내기도 했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영상으로 만든 삼국지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런 까닭일까. 적벽대전이 영화로 나온다 하니 - 그것도 오우삼 감독이 최대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 나는 이 영화를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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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을 구하는 조자룡

이미지 출처 : http://www.showbox.co.kr/Movie/redcliff/

원작이 있는 모든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는 원작과 비교하면서 보는 것일게다. 글로만 읽고 머리 속에서 상상하던 원작의 장면들이 눈 앞에 펼쳐지고, 때론 원작에 없던 내용들이 들어가기도 하고, 원작과 다른 방향으로 해석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보노라면 영화와 원작에 대한 재미가 배가된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나는 두 시간 동안, 적벽대전에 푹 빠졌다

영화 적벽대전을 제대로 즐기려면, 이미 다 알고 있는 얘기일지라도 삼국지의 연관 부분을 먼저 읽고 가는 게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장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사전에 이해하고 있다면 영화에 빠져들기가 훨씬 쉬우니 말이다. 하긴,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삼국지를 다시 한 번 뒤적였을 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도 비록 만화긴 하지만, 삼국지를 다시 한 번 뒤적거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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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의 아내 소교. 조조가 탐내는 여인으로,

영화에서는 이 여인 때문에 조조가 전쟁을 일으킨 듯한(!) 느낌을 준다
이미지 출처 : http://www.showbox.co.kr/Movie/redcliff/

전체적으로 영화는, 아주 긴박하게 흐르지는 않는다. 러닝 타임이 긴 만큼 호흡을 길게 가지고 있어 영화 관람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한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기대를 많이 했던 장면은 제갈량이 오나라의 대신들을 설득하는 장면이었는데, 사실 그 장면은 좀 밍숭맹숭하게 끝난 감이 없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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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역의 양조위. 멋지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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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지루하지도 않은 건 역시 오우삼이기 때문일까. 오우삼 감독 스타일의 화려하면서도 선명한 액션들에 나는 빠져들었다. 무엇보다도 책에서 항상 궁금해했던 팔괘진의 전투를 눈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고, 극도로 강조된 관우, 장비, 조자룡, 감녕의 개인기(!)에도 박수를 보냈다. 오우삼 영화에 빠지지 않는 흰 비둘기를 보면서 괜히 웃음이 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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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역의 금성무. 역시 흰 비둘기가 빠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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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영화 적벽대전은 이번 한 편으로 끝나지 않았다. 솔직히 나도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동안은 적벽대전이 둘로 나뉘어졌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정작 중요한 전투 장면은 나올 생각도 하지 않자, 얼핏 이 영화가 너무 길어 나누어 개봉한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어렴풋 나기 시작했다. 역시 영화는 투비 컨티뉴드였다.

하긴 반지의 제왕 할 때도 그랬다. 반지원정대에서 프로도와 샘이 오크를 피해 강을 건너 도망가는 장면에서 끝이 났는데 사실 그 전까지는 그렇게 끝나는 영화들이 별로 없어서 관객들이 몹시 당황해했던 기억이 난다. 이거 뭐야~ 라는 식의 반응. 이번에 끝나지 않는 다는 걸 알고 봤다면 좀 덜 황당했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난 영화 재밌게 봤다. 삼국지를 좋아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이 작가, 저 작가의 삼국지를 읽은 기억도 있고 해서 특히 더 빠졌을 수도 있다. 워낙 소재 자체가 유명한 소재 아니었던가. 게다가 남아 있는 장면들은 엄청난 규모의 배를 태우는 화공일테니 상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후편을 기다린다는 건 한 편으로는 짜증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걸 기다린다는 건, 나름대로 재미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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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www.rabbicat.com BlogIcon 토양이 2008.07.15 17:2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재미있으셨나봐요+_+ 그나저나 흰 비둘기가 대체 어디서 나올까 싶었는데 바로 저 장면이로군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7.15 17:32 신고 수정/삭제

      그냥 나오면 안돼지. 멋지게 나는 장면이 따로 있다네 ^^

  • Favicon of http://blog.empas.com/diabloti BlogIcon 정현아범 2008.07.15 17:5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주유가 좀 더 살았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죠..ㅡㅡ)+
    이번 여름에 고우영 만화나 함 더 찾아봐야겠어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7.15 23:13 신고 수정/삭제

      역사란 가정이 없는 법이지만, 그런 상상을 할 때마다 참 재미나기는 해~ ^^

  • Favicon of http://gamsa.net BlogIcon 양깡 2008.07.16 22:2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오홋~ 그렇다면 2편이 나오고 나서 봐야겠습니다.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7.17 10:59 신고 수정/삭제

      ㅋㅋ 한 번에 몰아 보시는 전략도 좋죠~ ^^

  • 진주애비 2008.07.17 21:0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기다림에 약한 성미라
    몰아서 봐야겠습니다
    다시금 삼국지가 땡기는군요
    어떤게 좋을지 추천 좀...ㅎㅎ
    (이문열,전유성 정비석.장정일까정은 봤습니다)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7.18 12:07 신고 수정/삭제

      구라삼국지까지 섭렵하셨으면 삼국지 마니아 충분하시군요. ㅋㅋ 고우영 삼국지는 왜 빼셨대요? ㅋㅋ 일본 만화 번역한 60권짜리 삼국지도 술술 넘어가는 편이긴 하죠~ (애덜이 좋아해요~ ㅋㅋ)

  • Favicon of http://afterdigital.tistory.com BlogIcon 조선얼짱 2008.08.22 16:0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도 ^^ 요코야마 미쓰데루가 그린 60권짜리 만화 전략삼국지 아주 재미나게 봤어요.^^
    적벽대전은 그 만화에서도 중반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죠.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8.22 16:19 신고 수정/삭제

      네! 저도 바로 그 만화 봤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