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의 갑, 국수전골

국수는 누구나 부담없이 즐기는 음식, 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국수에도 비싼 넘이 있다. 흔히 하는 말로 '갑'이 있단 말이다. 나는 그 갑을 국수전골이라 생각한다. 맛있지만 아무 때나 먹을 수 없는, 어린 시절엔 누군가 사줘야 하고, 나이든 지금은 누군가 귀한 손님이 와야만 같이 먹는 그 국수전골. 


월요일은 우리 사무실 사십대 아저씨 셋이서 점심 먹는 날이다. 뭐 다른 날도 같이 먹긴 하지만, 월요일 만큼은 꼭 먹자, 그렇게 정해서 먹는 날이다. 그러다 보니 은근 메뉴에 신경 쓰인다. 그래봐야 순대국을 제일 많이 먹긴 하지만. 


오늘은 부산국밥 먹자, 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사장님이 말했다. 난 싫었다. 하지만 보스가 말하는데 바로 토를 다는 건 아랫 사람이 할 일이 아닌게지. 그래서 그냥 실실 웃기만 했다. 내 눈치가 이상했는지 아님 다른 거 뭐? 하시길래 오늘은 특별하게 국수전골 먹어요, 했다. 아 좋지, 그런데 어디?


사무실이 잠실에 있을 땐 롯데백화점 11층에 있는 한우리 국수전골을 자주 갔다. 1인분에 만오천 원. 고기는 호주산. 좀 비싸지만 꽤 깔끔하고 고급스럽다. 직원 수가 많지 않을 땐 회식도 했다. 최고 인기 메뉴였지. 



그런데 지금 사무실 근처에선 국수전골을 먹은 적이 없다. 아마 국수전골하면 그저 한우리가 최고니까 거기가서 먹어야지,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문득 국수전골이 먹고 싶어서 사실 아침에 슬쩍 한 군데를 찾아놨다.


양대창 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집에서 점심 메뉴로 국수전골을 하고 있었다. 일인분에 만육천 원. 강남이라 비싸긴 비싸고마, 머 그런 생각을 했지만, 어쩌랴. 먹고 싶은 날은 먹어야지. 들어가자마자 다른 메뉴는 보지도 않고 국수전골을 주문했는데, 어라, 끓여 나온단다. 



음식이란 맛도 중요하고, 가격도 중요하지만 보이는 것도 꽤 중요한데… 아무래도 점심 시간에 서빙하기가 너무 번잡스러워 그런가 보다 생각하면서도 왠지 손해보는 느낌이 들었다. 보글 보글 끓는 국수전골을 바라보고 흐뭇하게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 아, 상상만 해도 짜릿한데. 



여튼 다 끓여 대접에 담아 나온 국수전골을 보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소주 한 병을 불렀다. 이런 국물 음식에 소주가 없다는 건 범죄야 범죄… 혼자 궁시렁 거리며 시켰는데, 오후에 미팅이 있는 사장님은 한 잔도 입에 안 대시고, 또 한 아저씨는 아예 술도 못 마시고… 결국 나 혼자 반 병 꺾고 말았다. 


국물도 진했고 고기도 고소했고 국수도 잘 익었다. 하지만 왠지 한우리보다는 살짝 모자란 느낌이랄까. 이래서 첫사랑이 무서운게다. ㅋ 하지만 굳이 잠실까지 가서 먹느니, 여기서 먹는게 시간이나 뭐 그런 면에선 더 나은 게지. 역시 남자는 먼 첫사랑보다 가까운 여자를... (뭔 소리다냐 ㅉㅉ)


원래 맛집 글을 쓸 땐 적어도 세 번은 가보고 쓴다는 원칙이 있어서 식당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그래도 대충 조합해서 검색하면 어딘지 나오겠지만. ㅋ 다음엔 직원들 데리고 가서 낮술 한 잔 먹여야겠다. / Fin


[송파맛집] 국수전골 끌리는 날, 잠실 한우리

백화점 식당가는 나에게 항상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벌써 십 년도 넘었던 어느 날, 소공동 롯데백화점 식당가의 멕시코 음식 전문점에서 누군가와 맥주를 곁들인 간단한 식사를 했는데, 맥주 안주로 괜찮을 만한 식사 두 개를 주문했다. 그런데 이런 황당한 일이. 그릇 모양만 다르지 안에 든 내용물은 완전 똑같았다. 요즘 말로, 이게 뭥미~다…

한 번은 메밀 전문점엘 갔었다. 메밀 한 판을 먹고 좀 모자라서 사리를 추가시켰다(그 때만 해도 정말 한창 먹을 때이므로!). 그런데 한참을 걸려 나온 건 사리 추가가 아니라 새로 메밀 한 판. 값도 한 판 그대로를 다 받았다. 상식적으로 사리 추가란, 적은 비용으로 사리만 더 내어주는 것일 텐데, 그냥 한 판이 새로 나오니 좀 황당스럽기도 했고, 새로 한 판을 주려면 우리 집엔 사리 추가가 없다. 드시고 싶으면 한 판 새로 주문해야 한다, 라고 말을 해주는 것이 상식일텐데 그냥 덜컹 나오니 먹으면서도 기분이 살짝 상해버렸던 것.

이런 구체적인 경험들 외에도, 항상 사람이 많았고, 음식은 별로 였고, 그러면서도 값은 절대 싸지 않았다는 기억이 백화점 식당가에 대한 내 감상이었다.

사무실 근처 잠실 롯데 백화점 11층 식당가. 일년전쯤인가 이 식당가가 대폭 리뉴얼을 하더니, 확 달라졌다. 물론 음식 값 비싼 건 여전하다. ^^ 그러나 몇몇 음식점들은 서비스가 확연히 달라졌고 음식 맛도 꽤 깔끔해졌다. 그러다 보니 손님 오시거나, 특별한 날에는 종종 가게 되고 다들 괜찮은데? 하는 반응을 보이며 내려오곤 했다.

그 중에서 제일 맘에 드는 집 한 집을 꼽으라면, 한우리를 꼽겠다. 흔히 한정식 집으로 알려진 한우리지만, 잠실 롯데백화점 11층에서만큼은 국수전골과 샤브샤브 전문점이다(전통적인 한우리가 메뉴 개편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튼 이 집엔 한정식은 없다). 그리고 내가 즐겨먹는 건 국수전골이다.

보통 국수전골 하는 집엘 가보면 육수가 끓고 나서 버섯이나 채소 같은 것들을 와르르 넣고 고기를 넣은 후 국수를 넣는데, 이 집은 그 반대다. 테이블에서 육수가 끓기 시작하면 국수를 먼저 넣는다. 처음엔, 어랏?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가만 생각하면 이 순서가 맞다. 국수가 익는데 더 시간이 많이 걸리니 국수를 먼저 넣는 게 당연한 거다. 그럼 다른 집은?? 에이, 모르겠다. 그건 그 집 문제고.

여튼 국수를 넣고, 채소와 얇게 썰은 고기를 넣어 5분 넘게 끓이면 끝. 먹기 좋게 알아서 잘 담아주니 기다리면 된다. 맛은 뭐, 괜찮은 국수전골 맛이다. 직접 뽑아냈다는 면은 은근히 쫄깃쫄깃하고, 국물도 얼큰해 해장하기에도 좋다. 함께 들어가는 채소들도 꽤 신선하다. 게다가 기본으로 나오는 반찬들이 깔끔해 자꾸 젓가락이 간다. 반찬 떨어지면 알아서 채워주는 센스도 훌륭하다.

개인 별로 담아준 국수전골. 저 앞의 냄비에 끓여 나눠준다

일단 가격은 좀 세다. 국수전골 1인분에 1만4천원. 추가로 주문하는 죽은 3천원. 보통 두 명이 가면 죽 하나 추가해서 먹으니 3만 1천원 되시겠다. 이거 외에 2만원짜리 국수전골 세트가 있는데, 로스편채와 죽이 포함되어 있으니 약간 무리해도 된다 싶은 날에는 세트를 먹는 편이 외려 나을 수도 있다.

세트에 포함되는 로스편채. 고기에 채소를 싸 먹는다

가격은 비싸지만, 일단 편안하게 먹을 수 있고 서비스가 좋다. 반찬 떨어지면 알아서 잘 채워주고(사람 많을 땐 좀 속도가 느려지긴 한다) 될 수 있으면 손님 비위에 맞추려고 서빙하는 직원들이 애를 많이 쓴다. 그러니 외부에서 손님 왔을 때 점심 한 끼 하러 가기엔 딱 좋은 곳이다. 잠실역 근처에서 손님하고 갈 만한데 없을까? 라고 고민하는 분들에게 딱 골라주고 싶은 음식점이란 얘기다. 생일이나 이런 특별한 날 가도 괜찮겠고.

그러나 식사가 아닌, 저녁에 가서 소주 한 잔 먹기에 그닥 적합하지 않다. 술 자리란 안주가 끊임없이 나와야 하는 법인데 국수전골은 그렇게 끊임없이 끓이면서 먹을 수는 없는 음식이니 말이다. 가볍게 반주로, 맥주 한 잔 하는 건 괜찮지만, 오늘은 우리 한 번 달려보세~ 이렇게 먹을 수는 없는 집이다. 안주 거리도 별로 없고.

바삭바삭 구수한 도토리전!

아, 도토리전이 하나 있는데, 이거 바삭한 거이 꽤 예술이다. 국수전골 먹기 전에 누군가를 기다린다면 맥주 한 잔과 함께 즐겨보는 것도 괜찮다. 가격은 아마 7천원쯤.

  • Favicon of http://afterdigital.tistory.com BlogIcon 조선얼짱 2009.03.06 01:0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아 .. 아트 입니다. 저 음식들 .. 저녁 굶었는데
    가혹한 형벌이군요.
    이 포스트는 .. 한우리는 어디나 균질화된 그 맛이 ^^
    좋은것 같아요. 음식을 다루는 체인이지만 그만큼 시스템 경영이
    자리 잡았다는 뜻 아닐까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06 09:34 신고 수정/삭제

      아니 왜 저녁을 굶으셨대요~ ㅋㅋ 전 어제도 배터지게!(이 무슨 매너없는 염장 댓글 같으니라고!) ㅋ

    • Favicon of http://afterdigital.tistory.com BlogIcon 조선얼짱 2009.03.06 09:40 신고 수정/삭제

      저를 두번 죽이시는군요 ㅡㅡ;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9.03.06 14:1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도토리전 정말 괜찮더만.. ^^

  • Favicon of http://bongstudio.tistory.com BlogIcon bong 2009.03.06 14:2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흠흠.....사진이 너무 먹음직스러운걸요....오늘 저녁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메뉴인걸요.....호호호 배고파라~~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06 15:54 신고 수정/삭제

      ㅎㅎ 이제 슬슬 배고플 시간이 오는가봐요. 저도 살짝!

  • ^^ 2009.03.09 08:5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우와~~~ 도토리전도 있었군요 ㅋ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09 10:22 신고 수정/삭제

      나중에 한 번 드시져~ 맥주 안주로다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