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할 수 밖에 없어 실망도 큰, 황금나침반

점심 먹다가 사장님이 오늘 꼭 영화를 보겠다고 다짐하는 걸 듣게 됐다. 새로 들어온 발랄한 새 식구가 거기에 맞장을 친다. 뭐, 딱히 영화에 관심 없었지만 나로서는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럼 뭐 볼까. 황금 머시기란다. 그래 그거 보자.

솔직히 점심 먹으면서 제목도 처음 들었다. 그래서 제목도 제대로 기억 못했다. 예매도 하라고 시켜 놨으니 내가 자료를 찾을 일도 없다. 그런데다 이런 저런 일이 바빠서 극장 시간에도 간신히 맞춰 도착했다. 가서 봤더니 영화 제목이 황금나침반이란다. 판타지 영화란다. 아, 그래? 나 이런 거 좋아해. 그리고 극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맨 뒷 좌석이다.

영화가 시작됐다. 데몬이 어쩌구, 더스트가 어쩌구 하고 넘어가는데 뭐야, 뭐야를 속으로 연발하다가 앞 부분이 넘어갔다. 보다 보면 이해되겠지 뭐, 다른 영화들도 다 그렇잖아. 그런 마음이었다. 그리고 사람과 함께 괴상한 동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게 데몬(영화 속에서는 디몬이라고 발음하더만) 이었다. 사람과 일체화된, 사람 곁에 함께 사는 또다른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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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나침반 공식 한글 홈페이지


지금껏 경험에 따르면 방대한 판타지 소설에 근거를 둔 판타지 영화는 책을 보고 나서 영화를 보는 것이 훨씬 이해하기 쉽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난 영화 제목도 오늘 점심에 처음 듣고 봤으니 이 영화에 대한 기초 정보가 하나도 없는 셈이었다. 그러다 보니 영화 내용을 쫓아가기가 좀 힘들었다. 게다가 요즘 좀 피곤하지 않았던가. 사실 좀 졸았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여자가 보였다. 어랏? 누구지? 니콜 키드만이었다. 저 여자 눈이 원래 저렇게 파란색이었던가? 내내 그 생각을 했다. 그리고 듬성 듬성 넘어가는 스토리에 또 다시 나는 지루해졌다. 아머 베어끼리 열나 싸우는 전투씬에서 잠깐 정신을 차렸고 - 시끄러웠다 ^^ - 턱이 날아가는 살벌한 전투신에 잠깐 몰입했다. 그런데 이게 애들 보는 건가? 어른 보는 건가? 어른들 볼만한 살벌함이었는데 애들은 좀 무서워 하겠는 걸? 그런 생각이 들었다.

판타지 영화 답게, 길었고, 다음 편을 위한 여지를 남겨 놨다. 사실, 영화 막판에 또 다른 전쟁이 남아 있음을 암시하는 대사가 나올 때, 설마 그 전투까지 다 보라는 얘기여? 그럼 이거 언제 끝나나? 그런 두려움(!)도 감돌았다.

원래 영화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영화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었던 까닭에 나는 영화를 같이 본 식구들과 달리 살짝 재미있는 부분도 있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중간 중간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졸았다는 점은 - 물론 요즘 내가 좀 피곤했다는 점도 고백하긴 하지만 - 인정해야겠다. 게다가 판타지 영화임인데도 내가 딸 아이를 데리고 가서 다시 이 영화를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심각한 물음표를 던져야 했다.

누군가 이 영화를 보겠다면, 기대를 하지 마라, 스토리에 대한 기본 정보는 얻고 가라고 말을 하고 싶은데, 스토리에 대한 기본 정보를 얻다 보면 이 영화에 대해 기대감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될 것 같다. 화려한 캐스팅 - 니콜 키드만이라니! - 엄청난 제작비, 웅대할 것 같은 컴퓨터 그래픽. 기대 안 할 수가 없는데 기대를 하지 말라니. 이건 또 무슨 말도 안되는 얘기인가. 하긴 원래 판타지란 그런 것 아닌가. 상상력을 극대화한 말도 안되는 얘기. 그 얘기 속에 빠져 만족을 얻고 말고는 개인의 문제이긴 하지만, 모든 걸 개인의 만족으로 돌려버리기에는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 황금나침반은 그런 영화다.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7.12.19 14:0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헐.. 이정도라면 거의 칭찬에 가깝다고 봐야겠구만요..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12.19 14:25 신고 수정/삭제

      ㅋㅋ 이 정도가 칭찬이에요? ㅋㅋㅋ

  • Favicon of http://j4blog.tistory.com BlogIcon moONFLOWer 2007.12.19 14:2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그럼 이거 언제 끝나나? 그런 두려움(!) ㅋㅋㅋ 장난 아니었나보네요.
    하긴 헐리웃에서도 이 영화 재앙급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더군요.
    크윽! 그래도 환타지 영화는 기대되는 환빠입니다.

    재미난 글 잘 읽고 갑니다.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12.19 16:05 신고 수정/삭제

      환타지 팬들이라면 놓치지 않으실 영화겠죠? ^^

  • Favicon of http://www.rabbicat.kr BlogIcon 토양이 2007.12.19 14:4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아. 나는야 발랄한 새식구~ ㅋㅋㅋ

  • Favicon of http://stephan,tistory.com BlogIcon 스테판 2007.12.19 22:3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화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영화 하나로만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을 봐야한다거나, 영화를 본 후에 원작을 봐야만 이해한다거나 하면, 이미 실패인 것이죠. 이 영화가 그렇습니다. 무조건으로 영화 전체 내용을 압축하는 방식을 택한 감독 크리스 웨이츠의 각본은 대실패입니다.

    북미흥행성적이 왜 그런지 그대로 증명하는 영화랄까요.

  • Favicon of http://goldsoul.tistory.com BlogIcon GoldSoul 2007.12.21 10:1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 오늘 보러 가서 일부러 글은 안 읽었어요. 보고 와서 읽을께요.
    그런데 <황금 나침판>에 대한 글들이 거의 다 부정적이네요. 좋은 배우들도 많이 나오던데. ㅠ

  • Favicon of http://jpod.tisory.com BlogIcon j 2008.01.03 17:3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볼 건 곰밖에 없다는 말도 있던데...워낙 곰을 좋아하는지라 그래도 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