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갈비 먹고파 담양을 지르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뭔가 미치도록 먹고 싶은 날. 오늘은 삼겹살이 먹고 파. 시원한 야외에서 맥주 한 잔 들이켰으면. 얼큰한 막국수 캬. 싱싱한 조개의 짭쪼롬한 맛. 그런 날엔 꼭 달려줘야 한다. 인생 뭐 있나. 먹고 싶은 건 먹어줘야지. 그리고 이번엔 떡갈비다.


회사 창립 5주년을 맞아, 2주에 한 번씩 주말마다 번개가 열린다(사실은 가서 일도 한다). 강제는 아니고, 가고 싶은 사람만 가는데, 그래봐야 이제 겨우 두 번 한 거라(분위기를 보아 하니 앞으로 두 번은 더 할 듯!) 딱히 자랑할 만한 건 아니다. 지난 번엔 속초의 생선구이집과 오징어 순대를 찾았고 이번엔 담양의 떡갈비다. 떡갈비라니, 말만 들어도 침이 고이지 않는가.

담양이란 이름을 들으면, 먹으로 그려낸 수채화 같은 느낌이 든다. 키 큰 나무들이 만들어 낸 그늘에서 은은히 쉬다갈 수 있는 조용한 고장. 거기에 맛난 떡갈비와 죽통밥이 같이 떠오르면, 이건 도저히 멈출 수 없는 유혹이다. 그래서 달렸다.

금요일 오후, 번개 참석 팀은 한 시간 정도 일찍 사무실을 떠난다. 이번 참석자는 다섯 명. 005호 헨드릭스군은 중국 출장 중이고 004호 편집장군은 시골에서 부모님이 올라오시는 관계로 참석을 못했다. 안타깝다. 여섯 명이 가면 버스 전용 차선 탈 수 있는데 다섯 명이라니. ㅜㅜ 게다가 저 두 명. 우리 사무실에서 1종을 운전할 수 있는 멤버들이다. 젠장, 오며 가며 운전은 다 내 몫이다.

그래도 소풍 가는 마냥 기분은 들떴다. 운전도 못하는 006 피버군, 007 호련양(본인은 봉고를 몰았다고 주장하나, 검증할 수 없음), 008호 모노마토군은 복불복 삼매경이다. 복불복에서 진 한 사람에게는 휴게소에서 감자, 오뎅, 핫도그 등등을 잔뜩 먹여 떡갈비를 못 먹게 하기로 한 모양. 호련양이 걸렸는데, 독하다. 휴게소에서 쉬지 말고 가잔다. 떡갈비를 향한 저 집념이란.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천안 지나서 천안논산고속도로로 올라섰다. 이 도로 덕분에 충남, 전라 지방으로 가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으니 고마운 일이다. 얌전, 점잖 운전의 대명사 001호 사장님과 달리 002호 나는 사실 속도를 좀 내는 편이다. 운전 중 아는 분이 전화를 걸길래 전화만 받고 사장님께 넘겼다. “저 사람은 140km 정도로 가야 차 안 막힌다고 하는 사람이에요.”라고 내 흉을 본다. 마음이나 그렇지 요즘 그렇게 달리긴 쉽지 않다. 카메라가 워낙 많아서.

휴게소 한 곳을 들러(이 곳에서 결국 우리 브레인들은 감자통구이와 오징어를 샀으나 호련의 강력한 반발에 못이겨 서로 나누어 먹었다. 운전하는 내 입에도 커다란 감자 하나를 우겨 넣는 호련! 애야, 그거 하나 먹었드니 배부르더라!) 담양으로 출발하면서 현지 식당 운영 여부를 확인하기로 했다. 지난 번 속초 번개 때 음식점마다 거의 삼사십분씩 기다렸던 탓이다. 그런데 웬걸. 무한도전에 나왔다던 모 식당은 8시 30분에 문을 닫고(!) 1박2일에 나왔다던 식당은 9시 반에 문을 닫는단다. 지금 계산으론 아무리 빨리 가도 아홉시 전에 도착하긴 힘들 듯. 식당이라면 당연히 밤 10시 정도까지는 하겠지, 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이 실수였다.

마음이 급해졌다. 떡갈비 먹으러 담양으로 지르는 중인데 떡갈비 식당이 문을 닫는다니. 게다가 밤이 되면서 진입한 호남고속도로는 익숙하지 않은 길인데다가, 어둡다. 속도를 낼래야 낼 수 없는 상황이란 말씀. 게다가 왠 트럭은 그리 많던지. 속도를 내지 말라는 신의 계시로 알고 그저 급한 마음을 달래며 달릴 수 밖에.

백양사 IC로 빠지라는 내비의 안내를 따라 국도로 들어섰다. 남은 거리는 약 20km. 새로 생긴 듯한 국도는 넓고 깨끗했으며 차도 별로 없었다. 잘 빠지는 신호를 받아 탄력있게 달리다가 목적지인 덕인관에 도착한 건 8시 33분. 내가 자랑스러웠다. 운전도 못하는(!) 이 인간들에게 오로지 떡갈비를 먹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꾸준히 달려 시간을 맞췄다니! 식당 안에 들어갔더니 왜 9시 반까지만 하는지 이해가 됐다. 이미 그 시간에 식당에 손님이라곤 이제 막 계산하고 나가는 한 테이블 외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 될 듯. 게다가 식당 주변은 넓디 넓은 국도로 다니는 차 조차 많지 않는 상태였다. 서울에서 떡갈비 먹으러 저녁에 출발하시는 분들은 시간을 염두에 두셔야 할 듯.


자리에 앉고 다른 브레인들은 사진 찍기 바빴지만 운전한 나는 얌전히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기다렸다. 식당 안은 생각 보다 넓고 환했다. 무엇보다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가 넉넉한 것이 맘에 들었다. 밥 먹으면서 등 부딪히는 불쾌감이란 밥 맛 달아나게 하는 대표적인 존재다.


먼저 반찬이 나왔다. 반찬이 깔리고 호박전과 도토리묵을 집어 먹으면서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전라도다. 반찬 하나 하나를 씹을 때마다 고유의 맛이 흘러 나온다. 운전하던 피로도 어느 틈에 사라지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딱 한 잔 마신 맥주 한 잔은 온 몸을 짜릿하게 만든다.


그리고 떡갈비. 불판 위에 지글지글 소리를 내는 떡갈비는 보기만 해도 예술이다. 그리고, 맛있다. 달콤하면서 쫄깃하고 구수한 맛이 입안에 가득하다. 공기밥과 함께 떡갈비는 어느 틈에 다 사라졌다. 잘 먹었는데, 뭔가 살짝 아쉽다. 그게 뭘까. 문득 서울에서 먹은 떡갈비가 생각났다. 맛있긴 한데, 이 정도에 이 가격이라면 굳이 여기까지 와서 먹지 않아도 될 듯하다는 소감이 슬슬 밀려온 것이다. 이 아쉬움의 원인을 이 날 저녁 머문 민박집 아주머니가 아주 명쾌하게 풀어줬다. “손님이 많아지면서 음식들이 예전 같지 않아요. 손님들은 떡갈비와 죽통밥을 찾으시지만 우린 잘 안 가요.예전에 먹던 맛이 아니어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열세가지 수수께기 중엔 이런 표현이 나온다. “아무리 좁은 길이라도 일딴 뚫리기만 하면 경치 좋은 마을 치고 살아 남는 곳이 없죠’”

그래도 잘 먹었다. 사실 포장을 해 오라는 주문이 있었지만 포장은 않기로 했다. 전국 택배도 해주고, 조리법까지 넣어준다지만, 여기서 바로 구워 먹는 맛만 못할 터이고, 그러면 서울에서 떡갈비 먹느니만 못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민박집을 찾았고 그렇게 담양의 밤이 깊었다. / FIN

PS> 담양 번개 2탄, 숯불돼지갈비 얘기는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언제 쓸지 모르겠으나~ 투비 컨티뉴드~~ ^^

PS2> 사진이 뭐 이래, 하실 수 있겠으나, 아이폰으로 찍은 거라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해 주시길. 더 좋은 사진을 보고 싶으신 분은 다음 링크를 참조하세용~

담양 덕인관 http://www.zoominsky.com/1286 BY MediaBrain 001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10.05.07 15:2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ㅋㅋ 역시 잼있게 잘 정리했구만.. 생생한데.. 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5.07 15:23 신고 수정/삭제

      ㅍㅎ 사장님께 칭찬을 들으니 몸둘 바를 모르겠다는..
      근데 진짜 요즘 글 쓰기가 너무 겁이나요... ㅜㅜ

  • Favicon of http://greendayslog.com BlogIcon 그린데이 2010.05.10 04:0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숯불갈비편 기대만빵~! 근데 고속도로에서는 정말 속도를 조절하기가 더 힘든 것 같아요. 주변과 속도를 맞추다보면 금방 130Km를 달리고 있다는... (제 차는 140을 밟으면 차체가 심히 떨려서 그땐 좀 느끼긴 합니다. ㅎ) 전 지난주에 통영을 다녀왔는데, 카메라 많기로 유명한 경부고속도로에서 딱지 몇개 날아올까 겁나요. ㅠ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5.10 09:47 신고 수정/삭제

      저 제작년인가 통영 다녀오면서 한 장 끊었더랬죠 ㅜㅜ 그 돈이 진짜 아까운 듯! ㅋㅋ

      통영을 한 번 더 가고픈데, 멀어서 쉽게 엄두가 안 나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