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4월엔, 레스토랑 위크 & T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엘 가야 한다고, 지금은 영화 감독으로 더 유명한 시인 유하가 그랬다. ‘압구정동에 겨울 나무로부터 봄 나무 에로 라는 카페가 생겼다. 온통 나무, 나무로 인테리어한 나무랄데 없는' 1991년부터 바람 부는 날마다 압구정동을 떠올리게 한 그 시집은, 아직도 내 책장 한 구석에 꽂혀 있다. 그런데 정작 난, 바람 부는 날 압구정동엘 가 본 적이 없다.

뜬금없기는. 그런데 봄 바람 살살 부는 4월의 어느 토요일. 그리 세지도 않은 바람을 맞으며 난 압구정동 옆 청담동을 가야 할 일이 생겼다. 청담동 일대, 오너가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레스토랑들의 모임인 그랜드테이블 협회와 SK텔레콤의 T가 진행하는 레스토랑 위크 & T 행사에 초대 받은 까닭이다. 


레스토랑 위크 & T라니. 청담동 일대 레스토랑들이 일년에 두 번씩, 특정한 일주일을 지정해 레스토랑의 음식을 저렴하게 제공하면서 레스토랑 문화를 퍼뜨리기 위해 시작된 행사란다. 올해로 7년째고, T가 함께 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 그래서 작년까지는 레스토랑 위크였을 테고, 올해는 뒤에 T가 하나 더 붙었단다. T의 힘은 대단하다. T가 아니었으면 나는 이번 행사에 대해서 알지 못했을 것이다. 올해로 벌써 7년이나 되었다는데.

용수산에 전시된 유희정 작가의 작품

레스토랑 위크 & T 기간 동안의 최대 장점은, 점심 2만2천원, 저녁 3만3천원에 특별한 메뉴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한정식으로 유명한 용수산, 수준 높은 라이브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원스인어블루문을 비롯한 청담동 일대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3만3천원으로 저녁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살짝 흥분된다. 게다가 각 레스토랑마다 다양한 예술가들이 참여한 작품들이 전시되니, 멋진 식사와 함께 젊은 작가들의 신선한 작품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까지도 주어졌다.


초대받은 블로거들이 복불복 식으로 레스토랑을 제비 뽑는 이 날, 나는 운좋게도 용수산에서 저녁 식사를 즐길 수 있는 티켓을 뽑아 냈다(이 날은 왠지 한식이 더 땡겼으므로!). 용수산의 저녁 메뉴는, 물김치와 게살죽을 시작으로 청포묵과 개성나물이, 보쌈과 전이 나오고, 모양 만으로 감탄하게 만드는 구절판, 해물꼬치, 버섯향 가득한 신선로를 기본으로 떡국, 불고기, 굴비, 냉면 정식 중 하나의 메인을 선택할 수 있다. 형편이 된다면 와인 한 잔을 곁들여 보면 어떨까.


전반적으로 메뉴는 깔끔했고, 마지막 식사까지 감안하면 양도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사실 마지막 식사에선 꽤 잘 먹는 편인 나도 불고기를 좀 남겼을 정도. 더구나 좀처럼 먹기 힘든 신선로는, 버섯의 그윽한 향이 일품이라고 느껴질 만큼 좋은 점수를 줄만하다.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내가 먹은 불고기 정식이 너무 빨리 식어, 따뜻한 맛을 오래 느끼지 못했다는 정도. 차도 가져가지 않은 토요일 저녁, 은은한 와인 한 잔이 꽤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참고로 식사는 2인분 대접 받았고, 와인 값은 별도로 지불했다).


우리는 레스토랑에서 어떤 느낌을 받는 것일까. 나도 가끔 레스토랑을 찾은 기억이 있다. 아마도 무엇인가를 기념하기 위해서였겠지. 특별한 느낌, 친절한 서비스, 깔끔하게 떨어지는 메뉴들, 그리고 왠지 모를 그 날의 들뜬 기억. 소중하고 귀한 감상으로 레스토랑은 내게 남아 있다. 내가 레스토랑에 머물 그즈음, 누군가는 수줍은 프로포즈를 준비하고 있었을 테고, 누군가는 무엇을 축하했을 테고, 누군가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은은한 감상에 빠져있었겠지. 오늘도 레스토랑에선, 비슷한 일들이 여전히 일어날테고.

캘리포니아 산 메리디안 샤르도네. 달지도 텁텁하지도 않아 식사에 딱 좋았다는!(와인은 별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포용하기에, 그냥 보통 사람들의 지갑은 안타까울 정도로 얇을 뿐이다. 그저 일 년에 한 두번, 정말 큰 마음을 먹고 찾아가야 하는 곳. 하긴, 너무 자주 가면 그 감상이 덜할지 모르겠으나, 그건 자주 다녀 본 후에나 알 일이니, 레스토랑의 문화라는 것이 우리에겐 그저 생경할 따름이다. 이런 까닭에 레스토랑 위크 & T가 더욱 반갑다.  


물론 3만원의 가치에 대해선, 저마다 할 얘기가 다를 수 있다. 혼자 가는 사람은 없으니 둘이 간다 해도 최소 6만원의 비용은 들어야 할테니, 사실 이것도 편한 가격은 아니겠다. 요즘 같은 불경기엔 더 그렇다. 하지만 어디 가서 3만원으로 그 만큼의 문화를 살 수 있을까. 마치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모처럼 시끄럽지 않고 은은한 곳에서 누군가와 함께 수줍은 프로포즈, 속삭이는 밀어, 가볍게 부딪히는 와인 한 잔을 나누는 즐거움을 살 수 있다면, 한 번쯤은 질러볼 만 하지 않은가. 레스토랑이란 곳이, 그저 밥만 먹고 일어나는 그런 공간은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 4월의 넷째 주, 나는 바람을 맞으러 청담동에 한 두번쯤 더, 나들이를 가야 겠다는 생각을(비록 생각 뿐일지라도!) 지우지 않고 있다.

레스토랑 위크 & T는 4월 20일부터 26일까지, 청담동 일대와 그외 몇 군데 레스토랑에서 열린다. 참여하는 레스토랑에 대한 정보는 여기를 눌러 참조하시길 ^^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09.04.20 08:3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3만원이었다면 평가가 좀 달라질 지 모르겠지만..
    흠..용수산은 좀 아니라고 봐요..ㅡㅡ;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4.20 09:02 신고 수정/삭제

      ㅋㅋ 용수산은 레스토랑별로 편차가 좀 있는 듯 하더군.
      여튼 3만원이 중요한 것이제~ ㅋㅋㅋ

      우째, 청담동 한 번 뜨실 생각이 있으신겨? ㅋ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09.04.20 10:55 신고 수정/삭제

      저 청담에서 6만원짜리 점심 먹었자녀요..ㅠㅠ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4.20 10:59 신고 수정/삭제

      하하, 속 아프실만 하시겄네.
      그래서 이런 행사를 하는 갑만. ㅋㅋㅋ
      (어유, 근데 점심 6만원... 쎼다이... ㅋㅋ)

  • Favicon of http://www.rabbicat.com BlogIcon 토양이 2009.04.20 09:2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헉, 용수산;; (가보진 못함)
    아침부터 마구 부러워지는 토양이;;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4.20 10:20 신고 수정/삭제

      우리 이번 주에 워커힐 취재 가야 혀. 부러울 거 없다네. ㅋ

  • ^^ 2009.04.20 09:3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석촌동에도 용수산 있었는디... 안좋은 추억이 ㅋㅋ 결국 문 닫았습니당~
    그래도 3만원이면^^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4.20 10:21 신고 수정/삭제

      하하, 그 집 얘기는 저도 들은 듯 합니다 ^^
      (머, 지금은 없어졌으니) ㅋ

  • Favicon of http://wipen.net BlogIcon 하늘높이 2009.04.20 12:4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깔끔하고 좋아보이는데요? ㅋㅋㅋ 침이 꿀꺽!!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4.20 12:48 신고 수정/삭제

      모처럼 한 번! 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죠.

      이런 건 식사시간에 보심 안되는디. 웬지 죄송! ㅋ

    • Favicon of http://wipen.net BlogIcon 하늘높이 2009.04.20 14:04 신고 수정/삭제

      다행히 밥 먹고 와서 봤습니다.^^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4.20 14:17 신고 수정/삭제

      하하, 전 점심 먹었는데도 벌써 배가 고파질라 해요! ㅋㅋ

      댓글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