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이야기 - 몇 번씩 읽어야 밝혀지는 숨은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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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를 처음 만난 건, 로마인 이야기가 한길사에서 한글판으로 번역되어 나오던 1995년, 바로 그 해였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서점에 들었을 때 왜 로마인 이야기를 샀었는지 그 기억은 가물 가물 하지만 - 표지에서 매력을 느꼈던 것일까 아니면 출판사의 광고 문구에 현혹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 - 어쨌거나 나는 로마인 이야기 1권을 사들고 서점을 나오게 되었다.

집에 와서 로마인 이야기를 읽다가 결국에 나는 버티지 못하고 책을 내려 놓아야만 했다. 로마인 이야기의 서론 격에 해당하는 제 1권은 그야 말로 단순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풀이에 지나지 않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아무리 참고 읽으려 해도 시오노 나나미의 작가적 상상력을 찾아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어쩜 이렇게 지루한 책을 내가 뭐하러 샀을까, 그런 후회가 들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로마인 이야기 1권은 고이 책장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내가 산 책 중에서 지루한 책들만 모아 놓은 그 어느 구석으로 말이다.

세월이 지나 난 우연찮게 로마인 이야기를 다시 접하게 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꼬박 오십분을 가야 하는 직장에 다니면서 였을 테다. 때마침 집 근처 지하철 역은 종점에 가까운 관계로 아침엔 100% 앉아갈 수 있었고, 저녁 퇴근할 때도 자리를 잡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갈아타지도 않는 노선이었던 탓에 마음 놓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여러 권 책을 읽어대다가 결국은 더 읽을 책이 없어서 다시 로마인 이야기를 잡았을 지도 모르겠다.

1권은 역시 지루했다. 그래도 시작한 거 2권에 도전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1권과 달리 2권부터는 시오노 나나미의 작가적 상상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것이 아닌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시오노 나나미의 상상력이 덧붙여 있으니 나는 내가 역사서를 읽는 것인지 소설을 읽는 것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로마인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었다.

스키피오와 한니발이 등장하는 포에니 전쟁의 시대를 거쳐 카이사르가 등장하면서 로마인 이야기의 재미는 극치에 달한다. 카이사르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확인이라도 하듯 시오노 나나미는 스스로 그의 '팬'을 자처하면서 몇 권의 분량을 모두 카이사르에 할애하는데, 이 부분에 도달해서는 거의 숨쉴 틈도 없이 읽어대야만 했다. 아니, 내 손이 그렇게 책장을 넘겨가고 있었다.

카이사르 이후에 로마인 이야기는 또다시 약간 지루해진다. 하긴 카이사르 만큼 극적으로 살았던 사람이 또 있었을까. 로마 황제 그 누구라도 카이사르 만큼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소재를 제공할 수 있었을까.

옛날 사람들 얘기를 주욱 읽다 보면 똑같은 책을 몇십번씩 읽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중국의 고사들을 살펴봐도 사서삼경을 몇 번 읽었네 주역은 어쨌네, 손자병법을 달달 외웠네 머 그런 얘기들이 나온다. 처음에 난, 책이 없던 시절이고 그런 거 밖에 없으니 자주 읽을 수 밖에 없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로마인 이야기를 다시 읽으면서 좋은 책은 몇 번씩 읽어야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난 로마인 이야기를 두 번 읽었다. 정확히 말하면 1권부터 8권까지는 두 번, 9권부터 13권까지는 1번씩 읽었다. 몇 번을 더 읽고 나서 이런 말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두 번째 읽었을 때가 첫 번째 읽었을 때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었다. 그 오랜 역사와 수많은 사람과 사건들, 심지어는 지명들 조차 한 번 읽을 때는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는데 두번째 읽으니 아, 이런 일이었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겨우 두번 정도 읽은 탓에 난 아직도 로마인 이야기를 다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대강의 시대적 배경과 지역, 인물에 대한 희미한 틀 정도는 잡아낼 수 있게 되었다. 아마 다음 책이 나오기 전에 난 앞 부분의 책들은 세 번, 뒷부분은 두 번 정도를 더 읽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역사는 당연히 주관적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다. 시오노 나나미는 책 중간 중간에 스스로 밝힐 정도로 로마의 팬이며 그에 의해 쓰여진 로마 이야기는 로마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칭송하는 이야기가 될 터이다. 이 점을 이해하고 로마인 이야기를 접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다른 사람이 쓴 로마 역사를 참조해도 좋을 터이다. 참고로 네루가 쓴 세계사 편력에서는 로마를 전쟁에 미친 호전적 야만족으로 표현하고 있다.

현재 13권까지 출간된 로마인 이야기는 15권까지 출간될 예정이라 한다. 한글판을 기준으로 해도 1995년에 1권이 나왔으니 벌써 10년을 훌쩍 넘기고 있는 셈이다. 그 안에 담겨있는 방대한 사실과 이야기와 작가의 노력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이다.

15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로마인 이야기에는 평점을 줄 수 있다. 별 다섯개 모두를 줘도 아깝지 않을 명작이다. 한 번 읽으면 그 명작의 가치를 느낄 수 없다. 읽으면 읽을 수록, 그만큼 로마에 해박해지면 해박해 질수록 로마인 이야기의 가치는 빛을 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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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5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한길사

그리고 어느새 로마인 이야기 15권이 나왔다. 15년간 공들인 역작인 까닭에 사람들의 관심도 높고, 좋은 얘기도 많이 듣는다. 솔직히, 로마인이야기를 읽다보면 1권은 지루하고 2권부터 서서히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다가 9권 현제의 세기를 지나면서 또 다시 지루한 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방대한 책을 한 번 읽고 지루하네 안하네 말할 수는 없는 일. 하긴, 앞으로 나는 얼마나 더 로마인이야기를 읽어야 이 책의 재미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될까.

  • ^^ 2007.06.01 09:2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한 번 읽고는 절대 내 책이 될 수 없는...ㅋㅋ
    나오는 인물 이름도 헤깔린다는 바로 그 책 로마인 이야기^^
    새삼 다시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06.01 18:01 신고 수정/삭제

      네, 정말 여러번 읽어야 가치가 됩니다 ^^ 꼭 도전 성공하세요

  • Favicon of http://gillian2.tistory.com BlogIcon 열심히 2007.06.01 12:2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와 이걸 두번씩 읽으셨다니~~ 저도 카이사르 편 (4-5권)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손에서 뗄 수가 없더라구요.
    로마인 이야기 처음 접하시는 분들께는 1권부터가 아니라 꼭 4권부터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니까요~~ ^^
    15권 완간되었다고 하니 저도 다시 도전해보고 싶네요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06.01 18:02 신고 수정/삭제

      앞 부분은 세번째 읽고 있는 걸요 ^^ 그러니까 조금 감이 오더라구요... ^^ 2권 한니발 나오고 카이사르 나올 때까지는 정말 책을 놓을 수 없을 정도에요.. 그쵸?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7.06.02 00:2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난.. 시오노나나미의 역사 인식이 맘에 안들어... ㅜ.ㅜ
    읽으면 읽을수록 싫어지니... 내가 마음이 좁은게 맞겠지..?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06.02 09:07 신고 수정/삭제

      아무래도 일본인이라 그런지, 기독교를 비꼬는(!) 듯한 표현이 군데 군데 숨어 있지요? ^^

  • 무브온21(커서) 2007.11.28 00:5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이제 1권 읽었습니다. 찬찬히 읽고 있습니다. 15권까지의 먼 길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