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마케팅인가?

주제넘게 마케팅에 대해 왈가왈부할 입장은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케팅 담당자들이 범하는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는 고객이 아닌, 마케팅을 위한 마케팅을 하는 것이다. 물론 누구나 다 알다시피 마케팅의 목적은 이익을 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억지로 그 목적을 달성하려 할 필요는 없다. 이익보다는 고객을 위해 마케팅을 하다 보면 그 목적은 자연스레 이뤄지기 때문이다.

모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몇 권 샀는데 두 권이 파본이다. 책 자체는 그리 비싼 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리즈 물로 소장하고픈 책이어서 파본을 그대로 두자니 마음이 아파 고객 센터로 전화를 했다. 물론 언제나처럼 전화를 걸고, 주민번호를 누르고 또 얼마만큼 기다려야 했다.

- 책이 파본났네요.
- 죄송합니다. 구매 내역을 살펴보겠습니다. 네, 고객님 어떤 책이 파본인가요?
- 23번과 26번이 파본입니다.
- 어떻게 파본이 났습니까?
- 23번은 표지가 떨어져 나갔고 26번은 책 안에 10여 페이지 정도가 없습니다.
- 알겠습니다. 오늘이나 내일 새 책을 출고해드리면서 교환해드리겠습니다.
- 네,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상담원과의 대화는 이렇게 끝났다. 어떻게 파본났느냐고 좀 꼬치꼬치 물어서 살짝 짜증이 났지만 어쨌든 별 말 없이 바꿔 준다니까 뭐 그리 기분 나쁠 일도 없었다. 그런데, 전화를 끊자마자 잠시 후에 이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업무상 이메일이 많은 나는 이메일 도착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쓰고 있어 거의 실시간으로 메일을 체크한다. 그런데 일단 제목이 맘에 안든다.

'고객 상담 서비스를 평가해 주십시요'

시절이 어느 땐데 아직도 '주십시요'란 말인가. '주십시오'라고 써야 하는데, 아무리 기계가 보낸 메일이라 해도 제목이 영 맘에 안든다. 물론 제목은 사람이 썼겠지만 ^^. 개인적으로 쓰는 글도 아니고 고객에게 나오는 공식적인 메일에 오자라니. 이때부터 내 투덜거림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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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의 내용은 간단하다. 상담 서비스를 평가해 달라는 거다. 나는 파본난 책의 교환을 요청했고 아직 그 문제는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난데없이 상담 서비스를 평가해 달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적어도 책이 온 다음에 평가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평가지의 내용도 좀 그렇다. 제대로 처리 결과 안내를 받았냐, 대답이 만족스러웠냐, 상담이 전문적이냐, 친절했냐, 신속히 연결됐냐를 물어본다. 어쨌든 친절하게 상담을 잘 했으므로 나는 매우 친절에 표시를 해가면서 이거 지금 내가 뭘하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거다. 상담원이 일을 잘 했나 못했나 나는 그걸 지금 그 쇼핑몰에 신고 혹은 막말하면 고자질하고 있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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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본 난 책 교환 요청하고, 뭐 별 것도 아닌 설문에 답하기 싫었으면 말지 별 걸 다 꼬치 꼬치 따진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럴 수도 있곘지. 근데 난 참 씁쓸했다. 만일 내가 상담원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으면 그걸 얘기할 수 있는 코너를 따로 만들고, 거길 통해 접수된 일을 더 빨리 처리해주면 되지, 굳이 이렇게 확인하는 이유는 뭘까. 이렇게 고객들이 고자질하기 시작하면 상담원들이 더 친절해지는 것일까.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기계적으로 집계된 매우 잘함, 잘함의 애매모호한 등급을 받고 그에 어울리는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일까. 과연 그것이 그들에 대한 정당한 평가일까. 비슷한 사례로 문득 해피콜 오면 대답 좀 잘해주세요 라고 말하던 인터넷 설치 기사들의 목소리도 떠올랐다. 물론 대부분 나는 친절한 서비스를 받았고 아주 잘해주셨다라고 대답을 했지만, 왜 내가 바쁜 시간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그런 대답을 했어야 하는 것일까.

이건 참, 자기들의 감시 업무를 위해 고객을 이용하는 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다. 그 사람이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평가하는 방법들은 또 있을텐데, 굳이 고객의 시간을 허비해 가면서 꼭 이런 방식을 택해야 했나하는 생각이 내내 떠나지 않는 것이다.

마케팅은 고객을 위해 하는 것이고, 고객의 시간을 뺏어서는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가끔 어떤 마케팅 액션을 접하다 보면 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하는 것인지 자기들을 위해 하는 것인지 몹시 헷갈릴 떄가 많다. 혹은 도대체 무슨 목적 때문에 이런 걸 하려는지 그게 의문스럽기도 하다. 아마 예전에 사람들은 그렇게 다 해줬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고객은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익을 명확히 챙기려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쓰다 보니, 난 과연 고객을 위한 마케팅을 하고 있는가, 또 그런 의문이 든다. 그리고 역시, 말하기는 쉽지만 행동하기는 어렵다는 진리를 다시금 뼈저리게 느낀다.  그래도 어쩐 걸. 일단 써 놓고 나면, 생각이라도 다시 해볼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하지 않으면 행동도 하지 못할테니 말이다. / FIN

  • 지나가다 2008.05.16 03:4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인터파크네..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8.05.16 07:5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ㅋㅋ 요즘 확실히 까칠해.. ㅋㅋ
    내가 보니 콜센터는 외주인가보구만.. 그러니 업체에서 평가 데이터를 달라고 했겠지.. 그럼.. 해당 콜센터는 프로세스를 설계했을 것이고.. 그 중 한방법이 이렇게 무식하게 무조건 이메일 날리자였겠지.. ㅋㅋ

    근데 오자는 넘했어.. 하여간 고객 대응 이메일도 전문가들이 다 손을 봐야하는데 아직도 우리 할일이 많은거야..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5.16 11:15 신고 수정/삭제

      ㅋ 제가 요즘 좀 까칠한가요? ㅋㅋ 일 많아서 그런가 ㅋㅋ

  • Favicon of http://egoing.net BlogIcon egoing 2008.05.16 10:1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그렇내요. 마케팅을 위한 마케팅, 기획을 위한 기획, 개발을 위한 개발, 포스팅을 위한 포스팅.... 저 자신도 자주하는 과오내요 _ _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5.16 11:14 신고 수정/삭제

      어우~ 잘 하시는 분인 듯 한데요~ ^^

  • Favicon of http://www.rabbicat.com BlogIcon 토양이 2008.05.16 11:2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음..새겨들어야겠습니다. >_<

  • sepial 2008.06.04 15:5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공감...., egoing님 댓글에도 공감이예요.

쇼핑의 유혹 - 쇼핑은 본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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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의 유혹
토마스 하인(저) / 김종식(역)
세종서적
2003년 12월 / 1만2천원

'쇼핑의 역사와 문화에 얽힌 인간 욕망의 9가지 얼굴'이라는 거창한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건, 솔직히 말하면 쇼핑 비즈니스에 대한 제안서를 준비하던 상황이었음을 고백해야겠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쇼핑 중독자도 아니고, 쇼핑을 즐기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필요한 것 몇 가지를 인터넷 때문에 편리하게 살 수 있게 된 나로서는 이 책을 읽을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

파워, 책임, 발견, 자기표현, 심리적불안, 관심, 소속감, 축하, 편의라는 아홉가지 관점에서 과거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의 쇼핑에 대한 행태를 저널리스트 입장에서 풀어낸 이 책은, 딱딱한 학문적인 용어를 일체 배체한, 그야 말로 쇼핑에 대한 읽을 거리이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쇼핑 노하우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즐겁지 않던 쇼핑이 더 즐거워지는 것도 아니다.

요약하면, 이 책은 부르짖는다. 쇼핑은 자아 실현을 위한 본능이라고. 본능이니까 본능에 충실하라고 말한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어떤 형태였든 어떤 방식이었든 사람들은 자기실현을 위해 쇼핑을 이용해 왔고, 물질적으로 풍부해진 지금은 쇼핑의 본직이 더욱 더 그렇게 흘러갈 거라는 얘기다.

그래서 어쩔 것인가? 본능이니까 본능에 더 충실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본능은 감추고, 이성으로 포장된 그럴 듯한 모습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인가?

쇼핑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읽어볼 만한 책.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교양 수준에서 읽어볼만 한 책. 하지만 관심 없는 사람이 이 책에 손이나 댈까? ^^ 미디어브레인의 평점은 3.5이다. 결국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다시 한 번 정리하고 확인을 주는 책이니 말이다. /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