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이야기, 인생은 돌고 돌아 슬프지만, 그러나...

고전을 다시 본다는 건, 어릴 적 기억 속을 되살려 본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개 고전이란 이름이 붙을 수 있는 것들은 읽는 사람의 나이, 환경 등에 따라서 느낌이 많이 다르니까요. 제가 요즘 헤르만헤세의 데미안, 수레바퀴아래서, 싯다르타 등을 다시 읽는 건 대학생 때 읽었던 느낌과 전혀 다른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고전을 다시 읽는 것도 즐겁지만 그 고전을 새롭게 각색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행운입니다. 고전을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한다는 건 굉장히 신선한 시도니까요.


우연한 기회에 마지막 공연의 VIP 티켓을 받은 건 정말 큰 행운이었습니다. 게다가 공연 장소는 우리나라에서 뮤지컬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몇 안되는 극장 중 하나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마지막 공연이라 배우들의 연기는 물오를 대로 올랐을 테고, 마지막 회라는 특징 답게 평소보다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까지 갖게 되니(그런 까닭에 원래 뮤지컬 마지막 공연들은 항상 매진이 되곤 합니다.)  저로서는 이미 공연을 즐길 준비가 충분히 된 거지요.


뮤지컬 청이야기는 심청전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새롭게 각색한 뮤지컬입니다. 원작은 해피엔딩이지만 안타깝게도 청이야기는 비극이지요. 물론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라는 방대한 주제로 놓고 보자면 우리 인생이란 다 해피엔딩이겠지만, 어쨌든 헐리우드 스타일의 해피엔딩은 아니라서 공연을 다 보고 난 후 어쩐지 무거운 마음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청이야기의 청은, 선원들의 빨래를 해주며 눈먼 아버지와 사는 착한 소녀입니다. 은근히 청이를 사랑하는 덕이와 정이 많은 덕이 엄마를 이웃으로 두고(뺑덕 어미의 재해석이란! ^^) 넉넉하진 않지만 즐겁게 살아갑니다. 마침 청이가 빨래를 담당하던 배는 중앙 정부에서 쫓겨난 왕자님의 배. 당연히 청이와 왕자님은 묘한 관계를 이어갑니다. 그러다가 동네 양아치의 속임수에 빠진 아버지 때문에 청이는 왕자님의 배가 인당수를 지날 때 험한 파도를 잠재울 제물이 되고 결국 인당수로 뛰어드나 왕자님이 청을 구해냅니다. 그리고 왕자는 자기 나라로 돌아가나, 그 곳에서 왕자를 기다리는 건, 험한 정치 싸움, 과연 왕자는 쿠데타를 이겨내고 청이와 사랑을 완성할 수 있을까요(앞에서 비극이라 해 놓고, 이렇게 마무리를 하는 건 무슨 심보일까요. 에휴 ^^).

연출가의 말을 빌리면 심청전은 지극히 동양적이고, 뮤지컬은 지극히 서양적입니다. 동양과 서양의 분위기를 조화롭게 만들고 전혀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고 그런 시도들이 관객들에게 틀림없이 기쁨을 주었을 겁니다. 청이야기 역시 동양과 서양의 느낌을 조화하면서 거기에 현대적인 감각까지 보태야 했으니 쉽지 않은 노력이 들어갔을 테고, 그만큼 관객은 새로운 공연을 즐길 수 있습니다.

쉬는 시간까지 포함해 두시간 삼십분의 공연은 금새 지나갑니다. 화려한 무대, 실감나는 음악과 와이어 액션까지 선보이는 배우들의 연기에 관객은 쉽게 몰입합니다. 젊고 매력적인 배우들의 무대는 그들의 젊음이 마냥 부럽다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이미 몇몇 뮤지컬들을 거치면서 나름대로 내공을 쌓은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모두 박수를 보낼만 합니다.

비극은 감정의 카타르시스라고 하지만(사실 청이야기의 마지막 주제가 인생은 돌고 도는 것, 이어서 딱히 눈물을 흘릴 비극이라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 공연을 마친 배우들에게는 좀 손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커튼콜이 시작되고 배우들이 인사를 하지만 여전히 기립 박수에 어색한 우리 관중들은 그저 앉아서 박수를 보낼 뿐입니다. 만일 희극이었고 관객들이 웃는데 익숙해져있다면 모두들 일어섰을 지도 모르니까요.

제가 본 것이 마지막 공연이라 청이야기가 언제 다시 무대에 올려질까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청이야기가 다시 무대에 올랐을 때, 나도 뮤지컬 좀 보고 싶은데 뭘 봐얄지 모르겠어 라고 생각하신다면 청이야기를 고려해보실만 합니다. 배우, 무대, 음악 모두 아깝지 않은 공연이니까요.

PS> VIP 좌석은 비쌉니다. 그러나 비싼 만큼 제 값을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좋은 공연을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 Favicon of http://gosu1218.tistory.com BlogIcon gosu1218 2009.11.26 12:5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고전의 새로운 해석이군요~~
    앞서 비극이라 얘기하셔서;;
    결말 역시 새롭게 구성되었나보군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11.26 15:49 신고 수정/삭제

      그렇죠. 미리 다 말씀드리면 재미없을까봐서요 ^^

      새로운 결말의 심청전도 꽤 괜찮았습니다 ^^
      좀, 가라앉아서 그렇죠 ㅋ

  • Favicon of http://cafe.daum.net/shinjinju BlogIcon 진주애비 2009.11.27 12:5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레이님 잘 지내시죠..
    이달말까지 논현에서의 생활이 정리가 됩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다시 한번 서로 접신(변기신)의 기회를 가져야겠죠..^^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11.28 23:31 신고 수정/삭제

      아, 저런. 드디어 새로운 방향을 정하신건가요.

      이달 말이면 내일 모레인데...
      어쨌거나 송년회는 진하게 함 하시지요 ^^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09.11.27 14:3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참..
    아다리가 안 맞네요..ㅠㅠ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11.28 23:30 신고 수정/삭제

      그대가 인기가 많아서 그런 걸 우짜노~ ^^

[뮤지컬]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맘마미아'

누구나 마음 속에 품어 둔 목표가 하나쯤은 있을 게다. 길게 본 목표도 있고, 짧게 본 목표도 있고... 그런데 재미있기로만 따지면, 기간을 짧게 둔 목표를 세우는 게 더 현명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게 있어 그 중 하나는 바로 '맘마미아 MammaMia' 였다. 그것도 아무 좌석이 아닌 VIP 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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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마미아 포스터는 왜 우리 배우를 쓰지 않았던 것일까 ^^

뮤지컬 공연 VIP 좌석에 앉아 보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목표까지 삼았느냐 묻는다면, 그냥 웃고 말아야 겠다. 그런데 한 번쯤 힘든 일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게다. 예를 들면 '내가 지금 이 고비만 넘기면 최신형 질레트 면도기를 사야지' 뭐 이런 거다. 당시에는 하기 어려운 일종의 '사치'를 고비를 넘긴 후에는 꼭 해보고 싶다고 마음을 먹는 것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뮤지컬 VIP 좌석은 좀 고급스런 사치다.

하여튼, 단기 목표를 이루고 나, 아니 우리는 당당히 뮤지컬 맘마미아의 VIP 티켓을 구입했다. 때마침 할인 행사도 한단다. 배우들의 눈짓 하나 하나가 보이고, 숨소리까지 들리는 VIP 좌석 티켓을 거머쥔 것이다.

애들도 아닌데, 공연장에 들어가는 날은 괜히 초저녁부터 마음이 설렜다. 사실 맘마미아 공연을 봐야 겠다고 마음 먹은 건, TV에서 보여 준 공연의 일부를 보고 그대로 빠져버렸기 때문이었다. 귀에 익숙한 아바의 음악, 박해미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 나중엔 그 동영상을 구해 몇 번이고 반복해서 봤다. 언젠가는 무대에서 꼭 봐야지. 그리고 드디어 그 날이 온 것이다. 비록 박해미는 아닐지라도.

드디어 무대가 열렸다. 소피의 독백으로 뮤지컬이 시작됐다. 파워풀한 뮤지컬 배우들의 모습을 많이 봐서 그런지, 소피는 조금 여리다는 생각을 했지만, 나는 곧 공연에 빠져들게 됐다. 적당한 유머, 익숙한 음악은 곧 사람을 공연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도나, 김선경이 등장했다.

배우에 대한 호감도는 이럴 때 참 중요한 역할을 할 게다. 만일 내가 김선경을 싫어했다면 뮤지컬에 덜 매료되었을 지도 모를 일.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나는 김선경이라는 배우에 대해 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두어 번인가 그가 나온 방송을 봤고, 노래를 참 잘한다는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만큼 잘했다. 내 마음 속에선 박해미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 은근히 비교가 되었을 법도 한데(이래서 나중에 하면 항상 손해다 ^^) 역시 배우는 배우다.

공연 내내 미소를 띄고, 때로는 크게 웃으며, 마음 속으로 박자를 맞추며 그렇게 맘마미아를 봤다. 요염한 중년(어디서 인터뷰를 봤더니 2008년에야 비로소 중년 연기를 할 나이가 되었다고 전수경이 얘기했더라) 타냐의 전수경은 역시 그 명성에 걸맞은 연기를 펼쳤고, 로지의 정영주 역시 잘 어울리는 배우였다. 내 스스로 맘마미아 베스트라고 뽑을 수 있는 수퍼트루퍼에서 세 여자의 화음이란!  일어나서 박수를 치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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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공연은 아니고, 맘마미아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수퍼 트루퍼 열창 장면
맨 왼쪽 전수경만 같고 다른 멤버들은... 아마 저 도나가 최정원인 듯 ^^

솔직히 말하면 샘을 제외하고(사실 샘의 성기윤은 일찌감치 박해미 도나 시절부터 파트너였기 때문에 많이 익숙해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배우를 시카고에서도 봤고.) 다른 두 배우, 빌과 해리는 조금 아쉽다는 생각을 했지만 - 그건 내가 아마 일종의 선입견이 있었던 때문일게다 - 공연이 부족할 정도는 아니었고 소피와 스카이도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친구들, 앙상블로 표현된 나머지 배우들의 몸짓도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신나는 몸짓이었다. 그렇게 두 시간 사십분은 흘러가 버렸다.


다음TV팟에 소개된 맘마미아 이벤트용 동영상. 이거라도 갖다 붙일 수 밖에 ^^
젠장, 붙여놓고 보니 죄다 광고네 쩝 ^^

500회 공연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5월에 공연이 끝나므로 지금쯤 객석이 꽤 빌 법도 한데, 사람이 앉을 만한 자리는 다 찾으니 명불허전이라는 생각도 했다.

허나, 다 좋았는데 샤롯데극장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해야곘다. 의자가 그게 뭐냐. 뮤지컬 공연 보러면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다 하더라도 두 시간은 앉아 있는 법일텐데 불편하기 짝이 없다. 팔걸이도 좁고, 앞 간격도 좁다. 물 한 모금 마실래도 비싼 물을 돈주고 사야 하고, 공연장 밖에서는 앉아 있을 만한 공간 조차도 별로 없다. 그러니 그 많은 사람들이 공연 시작 전에 우왕좌왕 할 수 밖에. 게다가 주차요금도 따로 받는다니!

공연 다음 날, 그 다음 날까지도 우리들 머리 속에선 맘마미아의 멜로디들이 맴을 돌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OST를 한 장 살 걸 그랬나 보다, 그런 후회도 했다. 대신 아바의 오리지널 곡을 구해 듣는 것으로 감상을 달랠 수 밖에.

하나의 목표를 달성했으니, 이제 또 다른 목표를 세워야겠다. 아마도 또 다른 공연이 될테지만(물론 공연 외에도 많은 단기 목표들이 있긴 하다 ^^) 맘마미아의 기대치가 높아 다른 공연에 쉬 만족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사실, 오늘 점심 먹으면서 이제 내용은 다 알았으니 맘마미아 오리지널 공연을 봤으면 좋겠다는, 그런 얘기도 나왔다. 그럼 다음엔 오리지널에 도전해볼까? ^^ 아마도 그건 직접 나가서 보게 될 것 같다. ^^

  • Favicon of http://www.rabbicat.com BlogIcon 토양이 2008.04.04 16:4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The winner takes it all 이라는 노래는 사실 이번에 처음 들어본 건데, 맘마미아 보고 완전 빠져버렸어요. >_< 그런데 '샘'은 처음부터 그 배우셨군요. 흐흠...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4.04 17:04 신고 수정/삭제

      '대빵은 다 먹어'가 그리 좋았나요? ㅋ

  • Favicon of http://blog.empas.com/diabloti BlogIcon 정현아범 2008.04.04 18:2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승자독식주의'에서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거로구만요..ㅡㅡ;
    그나저나 문화생활 부러버요~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8.04.04 18:3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그래.. 내가 다 먹는다.. 왜!

  • Favicon of http://diarix.tistory.com BlogIcon 그리스인마틴 2008.04.04 19:1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아.. VIP석.. 이것도 제 버킷리스트에 넣어야겠군요.
    이런 작은 소망은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한번이라도 VIP석에서 관람을 했다면 평생 VIP석에서 관람했었다는
    경험을 말할 수 있게 되는거죠.
    음.. 솔직히 부럽습니다.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4.04 23:23 신고 수정/삭제

      네, 정말 소중한 기억이 될 것 같습니다 ^^

  • 필로스 2008.04.04 22:0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4.04 23:23 신고 수정/삭제

      아니 왜 이르세요~ ㅋ 악플(!)을 다 다시고 ㅋㅋㅋ

  • Favicon of http://ez2web.com/blog/ BlogIcon 뉴크 2008.04.05 23:4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도 오늘 7시 공연 보고 왔는데 캐스팅은 좀 아쉽긴 하지만 괜찮았는데
    정말 샤롯데는 생각외로 꽝이였음. 뮤지컬에 특화된 극장으로 알고 있었는데
    의자도 불편했고 좌석 배치도 맘에 들지 않았음 비싼돈 내고 간 좌석인데...
    정작 무대가 잘 안보이는 요상한 구조..;; 짜증 짜증.
    그리고 뒤에서 흥에 겨우셨는지 발을 구르시는데.. (아 완전 짜증 노 매너..)
    암튼 그 발구름이 의자 전체를 흔들정도(여자분 이었음)로 울려서 영 집중이 안되더란..ㅡ.ㅡ++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4.06 07:37 신고 수정/삭제

      공연 보는데 누가 뒤에서 발 구르면 진짜 짜증나죠... 그건 기본 매너인데, 그런 공중도덕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니... 많이 화나셨겠어요. 그럴 땐 서로 얼굴 붉히더라도 한 마디 해야 겠더라고요. 에유...

  • ^^ 2008.04.06 00:2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아... 저도 사치(!)스런 목표를 세워야겠어요.. 그럼 고비 하나 넘어 갔단 소리겠져?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4.06 07:37 신고 수정/삭제

      고비마다 목표 하나~ 이거 좋아요~ ^^

  • Favicon of http://dogguli.net BlogIcon 도꾸리 2008.04.06 12:2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아~
    당분간은 여행을 자제하고 문화생활에~
    여행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아내가 반가워할 소식이네요.

    짠이아빠님에 이은 레이님의 맘마미아 포스팅이 절 이렇게 만들었어요~~
    다음에 꼭 봐야징~~

    즐거운 주말 되세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4.07 11:08 신고 수정/삭제

      여행 만큼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한 번씩은 누릴만 하지요~ ^^

뮤지컬 시카고, 그리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

람마다 달리 알겠지만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시카고’는 뮤지컬 보다 영화로 더 유명했을 게다. 벨마 켈리 역의 캐서린 제타 존스와 록시 하트 역의 르네 젤위거는 어두운 분위기와 끈적 끈적한 스토리, 늘어지는 재즈를 적당히 잘 소화해 낸 캐스팅이라 나는 생각한다. 비록 내가 그 영화를 보면서 졸았을 지라도. 그래도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런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한 것도 아니고, 재즈를 즐기는 것도 아니었으니. 솔직히 말하면 캐서린 제타 존스 때문에 봤다고 해도 될 판이다(톰 행크스 나오는 터미널에서 이 아줌마가 예쁘다는 생각을 처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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쨌거나, 감동은 없었다 해도 기억에 남았다면 어쨌든 내겐 그건 그리 나쁘지 않은 작품이었을 게다. 그런 시카고가 지난 9월인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했었다. 했다는 얘기만 들었지 별로 관심은 없었다. 내용은 다 아는 거고 무엇보다도 티켓 값이 너무 비쌌다. ^^

동 역 근처에 가면 ‘서울열린극장’이라는 텐트 극장이 하나 있다. 텐트라고 해서 대충 쳐 놓은 건 아니고 나름대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극장이다. 그런데 여기서 1020, 21일 뮤지컬 시카고 공연을 한다고 아내가 표를 끊어 놨다. 21일 오후 3시 공연. 21일 공연에는 록시 하트 역으로 옥주현이 나온단다. 아무래도 텐트 극장이라 그런지 관람료가 쌌다. VIP석은 5만원, 이런 저런 할인을 받으니 한 사람에 37천원이 되었단다. 37천원에 시카고를? 그것도 세종문화회관 공연 멤버 그대로? 그렇다면 충분히 구미가 당길 만 한 일이었다. 적어도 옥주현을 볼 수 있다지 않은가(요즘 삼사십대 아저씨들에게 원더걸스가 엄청난 인기를 몰고 있다지만 원더걸스는 누군지 몰라도 옥주현은 알고 있으니 이 정도면 훌륭하지 않은가? ^^)

간에 맞춰 공연장에 도착했다. 조금 일찍 가서 주차도 편하게 했고 - 주차 요금도 없다, 아예 주차 티켓을 발행하지 않는다 - 표를 받은 후 공연장을 둘러 봤다. ~ 텐트 공연장이지만 괜찮다. 무엇보다도 깔끔하고 커다란(!) 화장실이라니. 최근 들어 그렇게 큰 화장실은 별로 본 기억이 없다.

간이 되어 공연장에 입장했다. 예매가 좀 늦은 탓이어서 그리 좋은 자리는 잡지 못했단다. 어랏, 그런데 이게 웬일. 거짓말 조금 보태면 의자가, 의자가 완전 야구장 의자였다. 등 반 정도까지 올라오는 간이 등받이가 있는 그런 의자 말이다. , 저 자리에 앉아 어떻게 두 시간 반을 버티지? 그런 생각이 퍼뜩 들었다. 게다가 야구 경기장과는 달리 일단 앉으면 꼼짝 없이 움직이지 않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가뜩이나 난, 전날 밤 밀린 일 하나 처리하느라 거의 세 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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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없었을 뿐더러 공연장에서는 사진을 못 찍으니, 아쉽지만 팸플릿으로 자료사진을 대신할 수 밖에. >.<


연이 시작됐고 예상은 들어 맞았다. 공연 30분이 지났을까 도저히 앉아 있기 힘든 상태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고 공연 중에 몸을 이리 저리 흔들 수도 없으니 꾹 눌러 참고 앉아 있을 수 밖에. 그러다 보니 공연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게다가 뮤지컬 대부분을 차지하는 재즈의 지루한(!) 선율은 나를 졸리게 까지 만들었다. 세상에, 옥주현이 시커먼 스타킹만 신고 다리를 다 드러내 놓고 다니는데, 그 와중에 졸다니(!). 아무리 아니라 해도 아저씨가 다 되었구나, 그런 두려운 마음(!)이 울컥 올라오고 말았다. 그 두려운 마음 덕에 잠시 정신을 차렸고 때마침 1막 중에서 제일 신나는 장면인 록시 하트와 빌리 플린의 인형 놀이 쇼가 시작됐다. 아마 시카고 공연 중에서 제일 멋진 장면 중 하나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그런 멋진 장면이었다. 빌리 플린 역의 성기윤과 록시 하트의 옥주현에게 박수를.

20
분 간의 휴식 시간. 아이고 살았다 싶었다. 일어나 몸을 추스리고 나름대로 스트레칭도 하면서 몸을 풀었다. 피곤한 탓도 있었겠지만, 정말 왜 그리 힘들던지. 이래서 나이는 못 속이나 보다 그런 허망한(!) 생각도 들었다.

2
. 벨마 켈리 역의 최정원이 끈적한 목소리로 ‘잘 쉬었다 왔냐’고 물으면서 공연은 시작됐다. 내용을 모르고 봤다면 아무래도 흥미 진진하게 매달렸을 거지만 결과를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엔 공연에 빠져드는데 방해가 된 듯. 아무래도 이건 재즈를 싫어하는 내 스타일과 무관하지 않다. 음악에 집중하지 못하고 내용은 다 알고 있으니 아무래도 흥미가 떨어질 수 밖에.

미 공연을 잘 마친 배우들 답게 그리고 내가 알기로 요즘 한국 뮤지컬에서 제일 잘 나가는 배우인 성기윤과 최정원 답게 공연의 완성도는 높았다. 아이다로 뮤지컬 시장에 입문했던(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렇다) 옥주현도 어설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잘했다. 주인공들보다 훨씬 더 섹시한(!) 의상을 차려 입은 조연들의 춤과 노래에도 박수를 보내기에 충분하다. 잠을 좀 더 잔 상태에서 의자가 편안했다면 훨씬 더 공연에 몰두할 수 있었을 텐데... 졸아 버린 것에 대한 핑계를 애꿎은 의자 탓으로 돌린다.

상 느끼지만 배우들이 직접 눈 앞에서 움직이는 공연은 내가 얼마나 마음을 열고 공연에 몰입하느냐에 따라 재미가 달라진다. 아무리 재미있는 공연이라도 내가 보고 싶지 않고 피곤한 상태라면 빠져 들지 못할 것이고 아무리 좁아 터진 소극장에서 하는 공연이라도 내가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다가가면 그 재미는 배가된다. 게다가 이번에 느낀 건, 공연을 제대로 보려면 나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잠도 좀 자두고, 몸도 좀 풀어둬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렇게 말하려고 해도, 창동 열린극장의 의자는 좀 타박해야겠다. 어떻게 그런 의자에 앉아 두시간 반 공연을 움직이지 말고 보라는 것인가. 하긴, 공연장을 꽉 매운 사람들은 말 없이 잘 보는데, 너만 왜 그러냐고 하면 사실 나도 할 말은 없다. ^^

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반도 안 되는 값에 좋은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장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게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걸까. 반도 안 되는 그 값에 더 편한 의자로 볼 수는 없는 것일까. ^^ / FIN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7.10.23 23:0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역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키보드...마우스...그리고 의자?..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10.28 00:39 신고 수정/삭제

      휴먼 인터페이스 장비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