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기적 같은 샷이 있는 법

우리나라에선 한 번도 100을 깨보지 못한 진짜 완전 순정 백돌이지만(태국에서 96을 기록했으나 남쪽은 공이 더 잘 날아간다고 안 쳐준다고 하기에 ㅜㅜ), 그런 저에게도 믿기 어려운 기적 같은 샷이 있습니다. 그런 기적 같은 샷에 대한 희망이 있기에 골프가 더 재미있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2002년인가 3년인가 그랬을 겁니다. 골프에 막 재미를 붙여 틈만 나면 치러 다녔던 때였죠. 때는 마치 햇볕이 때리는 듯한 뜨거운 8월. 지금보다 훨씬 골프장 부킹이 어려웠던 시절이었는데도 낮 시간 부킹을 할 수 있었던 건, 엄청 엄청 더웠다는 얘기지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그땐 그렇게라도 치고 싶었으니까요. 

Let
사진 출처 : 플리커 R'eyes : 이 사진은 글과 아무 상관 없습니다 ㅜㅜ 

하도 오래된 얘기라 그저 여주 CC라는 것만 기억납니다. 혹시 코스가 생각날까 싶어 홈페이지에 가봤는데, 직접 가보면 몰라도 그렇게 해선 알 수가 없겠더라고요. 

어떤 코스인지, 몇 번 홀인지도 기억이 안나지만 어쨌든 동반자들은 대부분 그린 주변에 가 있고, 저는 90미터 피칭 샷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뛰어서 온 몸은 땀 투성이가 되었을 테고, 얼굴은 후끈 달아올랐겠죠. 제 손에 피칭을 건네준 캐디 언니는 카트를 몰고 그린에 올라가 깃대 옆에서 제게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 방향으로 치란 얘기였겠죠.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클럽은 피칭입니다. 잘 치지는 못해도, 괜히 듬직한 그런 채 하나는 다 있는 법이잖아요. 가쁜 숨을 고르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휘둘렀습니다. 어, 근데 맞는 그 느낌이 정말 짜릿했어요. 

하늘로 높이 올라간 볼이 그린으로 향합니다. 캐디 언니 쪽으로 방향이 아주 잘 들어갔죠. 백돌이 온 그린 하겠네, 라고 생각하는데 그린에 떨어진 공이 통통 구르더니 홀컵으로 그냥 들어가 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정말 희한한 건 90미터나 떨어져서 잘 안 보일거라 생각했는데 홀컵으로 들어가는 제 공이 진짜로 축구공만해 보이는 거 있죠. 

캐디 언니도 놀라고 저는 채를 집어 던지고 그 자리에 드러누웠습니다. 같이 치던 형님들도 난리가 나서 이게 무슨 일이야 시끌벅적했지요. 일어나서 정신없이 채를 들고 그린으로 달렸습니다. 하이파이브 하고, 뭐 신났지요. 

그래서 뭐야? 버디야, 이글이야? 다들 말이 많은데 정작 스코어 카드를 적는 캐디 언니는 웃기만 했고 저는 실토했습니다. 따블이야(더블도 아니고, 이럴 땐 따블이라고 발음해야 하는 거죠 ㅜㅜ).

얼핏 기억하기로 그 홀은 티잉 그라운드 바로 앞이 러프였습니다. 티잉 그라운드가 조금 높았고, 그래서 최소한 저 러프는 넘겨야지, 라고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갔었지요. 당연히 드라이버는 쪼로가 나서 러프에 떨어졌고 아이언을 들고 삽질을 반복하며 버벅이는 사이 동반자들은 벌써 그린 주변까지 올라가 버린 겁니다. 사실 그 피칭샷이 들어가지 않았으면 양파는 따놓은 홀이었던 거죠. 

기적 같이 90미터 샷 넣어놓고도 따블되는 바람에 뭐 생색도 못내고, 그땐 볼도 아무 거나 막 쓰던 때여서 기념으로 간직한다고 백에 넣어두었다가 어느 틈엔가 잃어버리고 말았지요. 그래도 그 샷에 대한 기억 만큼은 남아 있어, 여전히 피칭을 들면 근거 없는 자신감만 가득합니다. 언젠간 또 그런 샷을 한 번 더 날릴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요.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번엔 진짜 기적같은 퍼팅 얘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하긴 뭐 그래봐야 10미터 넘는 거 퍼팅으로 넣었어요, 겠지만서두. / FIN

  • Favicon of http://www.iloveuk.kr BlogIcon 행복한꼬나 2010.09.02 23:3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우아...캠브릿지에 친구 보러 놀러갔다가, 골프연습장에 따라갔는데 회원권이 있으면 3파운드 정도밖에 안하더라고요. :) 그래서 간 김에,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배웠던 골프연습자세를 기억해내며 열심히 쳐봤는데!! 헛스윙만 백번...ㅠㅠ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9.03 08:52 신고 수정/삭제

      난 지금도 헛스윙 한다네 ㅜㅜ ㅋㅋ

  • wessay 2010.09.05 02:3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ㅋㅋ. 전 수시로형님께 처음 머리올리러 가서 이리저리 뛰당기던 기억만 남았지 뭐 휘둘렀던 기억이 없네요.. 이게 티비에서 보는 골프와 현실의 차이를 알때쯤.. 골프에서 손끊었다가.. 최근 스크린에서 대파당한후.. 다시 연습시작중입니다..ㅋㅋ

  • 넘버텐 2011.02.11 15:1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평상시 같으면 이글인데....아까워요.

    올해는 순정 깨백 되길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아멘~

    뭐 이정도로 간절히 기원한다는거죠 ^^

  • Favicon of http://story.golfzon.com/ BlogIcon 골프존 2011.09.16 11:3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공감가는 글입니다! 누구에게나 기적같은 샷이 한번쯤은 오는거 같아요^^ 에피소드가 정말 재밌네요 ~ 하나하나 잘 보고 갑니다 +ㅁ+

어설피 아는 게 병이 되고만 어느 날의 스윙

오년 만에 다시 잡은 골프채가 손에 익도록 실내 연습장에서 슬슬 몸을 풀기도 어느덧 스무 날 정도 됐다. 한참 쉬었어도 배운 게 있긴 있다고 아주 삽질을 한 건 아니지만, 솔직히 말하면 실외 연습장 가서 확인하는 게 두렵다.  

뒷 땅도 치고 생크도 나고 예전 나쁜 버릇들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나름 열심히 연습한 탓에 요즘은 7번 아이언 맞는 느낌이 꽤 좋았다. 예전에 선배들이 공 잘 맞을 땐 따귀 맞는(!) 소리가 난다 했던 기억이 있는데 가끔 그런 소리와 느낌도 있었다. 어우, 이제 슬슬 실외로 나갈 때가 되었나 보다 그런 생각이 들 무렵, 실내연습장에 있는 스윙 분석기가 눈에 보였다. 


카메라 앞에서 볼을 치면 스윙 동작을 보여주고 볼의 거리 정도를 간단히 알려주는 분석기다. 솔직히 처음에도 저거 한 번 해볼까 하다가 볼도 안 맞고 사람들 눈도 있고 해서 - 말도 안되는 폼으로 스윙 분석기 앞에서 휘두르기란 얼마나 챙피한지 - 한 번도 안 써 봤는데 그 날 따라 마침 연습장에 사람도 없고, 아이언도 잘 맞고 해서 욕심을 내 올라가 봤다. 

카메라로 찍은 내 모습, 그럼 그렇지. 아저씨 스윙은 아니어도 이건 여전히 골프 폼이라고 할 수가 없을 정도다. 백스윙은 너무 낮게 올라가고 피니시는 어정쩡하다. 7번 아이언으로 맘 먹고 친 건 겨우 100미터 나갔다고 나오고. 이럴 줄 알았지만 실제 결과를 확인하니 더 참담하다. 

그래도 뭐, 아주 형편없지는 않네, 마음을 달래고 다시 한 번 스윙분석기에 올랐다. 다시 스윙. 스윙분석기는 내 스윙과 프로의 스윙을 비교해서 보여주는데 뭐 요거 요거만 고치면 스윙은 그닥 나쁘지 않겠네(하여튼 혼자 달래고 위로하는 재주는 세계 최고). 

다시 내 타석으로 돌아와서, 천천히 생각해본다. 백스윙은 살짝 높이 들고, 내려오면서 요맘 때서 채를 던지고 피니시는 이렇게. 연습 스윙은 (항상 그렇지만) 좋다. 자, 간다~ 

문제는 그 때부터다. 마음 먹고 잘 쳤는데 생크. 옆 타석에 누가 없었길래 망정이지 있었더라면 미안하다고 고개 한참 숙였을 뻔했다. 어랏? 두번째 스윙도 생크. 세번째도 생크. 뭐여? 슬슬 당황하기 시작하면서 백스윙에 신경 쓰기 시작하니 또 생크, 아니면 뒷땅. 하나가 무너지니 여지없이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다. 

이래서 어설피 알면 더 큰일나는 법이다. 몇 번을 쳐봐도 여전히 생크나서 채를 집어 던진 채 십 분을 멍하니 앉아 있다 올라왔다. 혼자서 맞추는 데만 급급하다 보니 결국 뭔가를 알았다고 해도 그 때문에 줄줄이 망가진 거다. 아무래도 레슨을 받아야 하는데, 예전에 골프 배울 때 겪은 몇 가지 경험 때문에 실내연습장 프로에 대해 끊없는 불신을 갖고 있으니 이도 참 큰일이다. 

그게 지난 주 얘기다. 주말 쉬고 다시 화요일. 내일은 밥이 되든 죽이 되든 다시 한 번 연습장엘 내려가야 할텐데. 그러게 괜히 스윙 분석기엔 올라가가지고 일을 크게 만들었나. 어설피 알면 더 큰일난다는 걸(하긴, 그게 꼭 골프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서도) 다시 한 번 절실히 깨닫는 중이다. / FIN
  • 넘버텐 2011.02.11 15:4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옛말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죠? -적절한 표현인가 써놓고 한참 고민중-

    잘 치지는 못하지만 제가 가진 골프 명심보감(이건 또 뭐징? ㅋㅋ)에 있는

    필수적으로 명심하는게 바로!!!

    무념무상.....공칠때 아무생각하지마세요....걍 스윙~~ 거리 안나가면 뭐

    한번 더 치면 되죠....아항항~

십 년만에 실내연습장엘 가다

십 년 전만 해도 골프를 처음 시작할 땐 대부분 실내연습장에서 두어달 기초 과정을 배우면서 시작했었다. 굳이 십 년 전에 그랬다는 얘기를 꺼낸 건, 요즘 실내연습장 찾기가 쉽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주변에 보이는 건 온통 실내연습장이 아니라 스크린골프장. 스크린골프장이 6천개를 넘었다는 기사도 있던데, 많은 실내연습장이 스크린골프장으로 변신했겠지. 거기서도 똑같이 골프를 가르칠까? 스크린골프장 한 번도 안 가본 나는 알 수가 없다. 솔직히 요즘은 어떻게 시작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 옛날,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처음 삼 개월 동안 집 앞 건물 지하에 있는 타석 열 몇 개 쯤 되는 실내연습장에서 시작했다. 7번 아이언으로 소위 말하는 똑딱볼을 쳤고, 그러다가 스윙 폭이 점점 커지면서 한 달 쯤 지나니 나름 뻥뻥 소리도 냈다. 그 때 그 기분, 처음 시작한 사람들은 다 알거다. 와, 나도 이거 꽤 잘치는데?? 게다가 연습장 티칭 프로는 소리만 크면 굿샷을 외쳐 댔고, 나는 골프 뭐 어려울 거 없네, 그런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게 진실이 아니란 걸, 곧 알게 됐다.

실내연습장에서 두 달인가 치고 난 후 난생 처음 친구와 함께 실외연습장엘 갔다. 그 친구는 나보다 먼저 시작했고 이미 필드 경험도 많았다. 오랫만에 만나서 저녁 먹다가 골프 얘기가 나왔는데 2차 가는 대신 연습이나 하러 가자 뭐 그렇게 됐던 거다. 사실 난 속으로 좀 자신이 있었다. 내겐 뻥뻥 소리가 있잖았던가!

하지만 막상 실외연습장 타석에 들어서고 5분도 못 되서 내 자신감은 어디론가 도망가고 말았다. 대부분 탑볼이나 뒷땅이었고 뻥뻥 소리가 나도록 잘 맞았다고 생각했던 볼 조차도 이삼십 미터 앞에 떨어지는게 아닌가. 식은 땀이 흐르고 몸은 점점 더 긴장하기 시작했다. 큰 소리까진 치지 않았어도 자신은 있었는데, 드디어 현실을 알고 만 것이다. 실내연습장에서 난 그 뻥뻥 소리가 진실이 아니로구나 하는 걸 깨달은 순간, 나는 도망가고 싶었다. 그리고 세 달 예정으로 끊었던 실내연습장을 그 뒤론 가지 않았다.

한 손으로 채 잡고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 구리다 ㅜㅜ

골프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마음 먹은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먼지 앉은 캐디백을 다시 꺼낸 것이었고, 두번째로는 실내연습장을 찾은 거다. 다행히 우리 사무실 지하에는 사무실 입주민들이 쓸 수 있는 실내연습장이 있어 특별한 부담 없이 스윙 연습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동안 뭐 했냐고?? 미인이 옆에 있어도 내 마음이 안 내키면 아무 쓸데 없는 법이다.

7번과 피칭을 들고 연습장엘 내려갔다. 솔직히 골프 스윙을 마지막으로 한 건 2006년 11월, 미국에서였다. 이런 저런 일로 미국 간 김에 골프나 치자는 친구 따라 골프장 두 군데를 돌았던 것이다. 드라이버는 개판이었고 그나마 아이언은 볼을 간신히 띄우는 수준이었던 듯. 여전히 백 몇 개를 기록했었지, 아마.

가볍게 스윙하면서 몸을 풀었다. 먼저 피칭으로 짧게 툭. 그럼 그렇지. 볼 대가리를 때리거나, 매트 바닥을 치거나. 형편 없었다. 어차피 형편 없을 거 예상했으니 충격도 없었고, 마음을 비운 채 몇 번 더 스윙을 했다. 그래도 나름 구력(!)이 있다고 슬슬 볼이 맞는 느낌이 들었다. 오호, 이거 되네~

7번으로 바꿨다. 7번으로 칠 땐 볼을 가운데 놓는 거지? 옛날 선배들이 가르쳐주던 몇 가지 얘기들이 생각났다. 볼 위치, 팔을 쭉 뻗고, 머리를 움직이지 말아야지, 체중은 안정감 있게 살짝 뒤쪽으로 싣고... 가만 보니 공만 잘 쳐다봐도 뻥뻥 소리는 났다. 그렇게 몇 번 채를 휘두르다 보니 사람 마음이란 참 간사해서 아유, 필드 나가고파, 이런 생각도 든다.

아, 하지만 나 이 기분 안다. 실내에서 뻥뻥 소리 내던 그 기분. 그리고 현실은 그게 아니었던 기억도 떠오른다. 웃음이 났다. 그저 몸이나 풀고 스윙하는 감이나 잡자. 조만간 실외연습장에 나가서 진짜 어느 정도까지 망가졌는지 확인해 보자. 어쨌든 감은 잡고 가야할 거 아닌가.

사실 레슨을 다시 시작해얄지 말아얄지 이건 좀 고민이다. 실내연습장 티칭 프로에 대해선 이미 오래전에 신뢰를 잃었는데, 그래도 다시 받아야 할지 어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시작은 반이라 하지 않았나. 십 년이나 지났는데도 뻥뻥 소리라도 나주니, 나는 마냥 고마울 따름이다. / FIN

  • 넘버텐 2011.02.11 15:3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초심으로....
    뭐든지 처음 마음만 같다면 좋을텐데요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