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고 말하는 건 약한 게 아니란다

아빠가 딸에게 가르쳐야 할 인생을 즐겁게 사는 방법 13
미인하다고 말하는 법

Never say you’re sorry. It’s a sign of weakness. 제가 즐겨보는 미드 NCIS의 보스 깁스는, 종종 팀원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미안하다고 말하지마, 그건 약하다는 뜻이니까. 뭐 이 정도쯤 될까요. 하지만 깁스는, 미안한 걸 꼭 말로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어떻게든 팀원들이 그걸 느끼게 할 따름이지요. 그건 깁스의 방식일테지요.

또 다른 방식도 있습니다. 역시 미드 중 하나인 카일XY. 이 드라마에 나오는 카일의 양아버지 스티븐 트레저를 보면서 저는 아빠란 저래야 하는 거야, 라는 생각을 몇 번이고 했습니다. 스티븐은 가족을 정말 사랑하고, 거짓말 하지 않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멋진 사람입니다만, 제가 그를 부러워한 건 단 하나, 그가 정말 멋있게 사과할 줄 안다는 거였습니다. 자기 자식들에게 말이지요.

카일XY의 멋진 아빠 스티븐 트레저 역의 브루스 토마스

사실 부모 입장에서 아이들에게 사과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모의 권위, 자존심 뭐 그런 것 떄문일까요.부모가 무언가 약한 모습(깁스의 표현에 따르면 ^^)을 보이면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가르친다는 게 꼭 권위에 의존하는 건 아닐 겁니다.

습하고 더운 토요일, 모처럼 딸 아이와 외출했습니다. 둘이서 잘 놀고, 책도 잘 사고 그렇게 돌아왔는데 돌아오는 길에 무슨 일이 생겨 아빠가 살짝 짜증이 났습니다(딸 아이 떄문이 아니고 다른 일 때문에요). 짜증 나는 마음을 억누르고 집에 와서 짐을 정리하곤 배가 고파 빵 한 쪽 먹으려고 하는데 이 녀석이 “아빠 다이어트 한다면서 빵 먹어?”라고 잔소리를 합니다. 순간 울컥해서는, “아빠 빵 먹는데 니가 보태준거 있어?” 라며 받아 쳤습니다. 분위기 순간 싸해졌죠. 금새 눈치를 챈 녀석의 표정이 급 우울합니다.

가만 있어야 하는데, 한 번 짜증이 나면 여기서 멈추질 못하죠. “아빠가 뭐 잘못했어? 왜 넌 아빠한테 잔소리가 많아?” 이렇게 아빠가 몰아치면 아이는 말을 못합니다. 말해 놓고도 순간 속으로 미안해서 잠시 뜸을 들인 후 목소리를 낮추어, “넌 빵 안 먹을꺼야?” 그랬는데 대답을 안 합니다. 아마 고개를 끄떡인 모양인데 아빠가 못 본 거죠. 불똥이 한 번 더 튑니다. “아빠가 물어보면 대답을 해얄 거 아냐”? 하며 결국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뭐, 그림 뻔하죠. 아이는 울고, 대답을 해야지 어쩌구 궁시렁 거리면서 아빠는 화를 내고 있고. 하지만 사실 아빠는 아이한테 화난 게 아니라 자신한테 화난 거였는데 애꿎은 애한테 소리를 지르고 있었던 겁니다. 문제는 그걸 알면서도 아이한테 계속 화를 낸다는 거죠.

솔직히 아이한테 야단칠 때 아이가 정말 잘못한 경우도 있지만, 아빠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 입장에선 당황스럽겠죠. 아빠가 평소엔 안 그러는데 이번엔 왜 화를 내는 걸까.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그걸 몰아 붙이면, 틈이 멀어지는 걸테지요.

아빠가 가르쳐야 할 사과가 이 사과는 아니겠지요 ^^ 출처 : Codexian by Flickr

미안해, 라고 한 마디만 하면 됐는데, 그런 말 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요. 그런다고 아이가 아빠를 무시할 것도 아니고, 아빠의 자존심이 형편없이 구겨지는 것도 아닌데요.

“미안해, 너한테 화난 게 아닌데 아빠가 소리를 질렀구나.”
“응.. 아빠가 갑자기 소리 질러서 놀랬어요.”

여기서 끝. 소리 지른 일이 무색할 정도로, 금새 분위기는 달라졌습니다. ‘니가 대답 안해서 아빠가 화 났어’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잖아요. 만일 그렇게 말했다면, 아이는 다른 대답을 했을지도 모르고, 2차전이 벌어졌을 지도 모르지요. 다른 일 때문에 화가 난 건데, 그 책임을 아이에게 돌려선 안되는 겁니다.

사람들은 꼭 싸웁니다. 내가 잘못했을 수도 있고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억울한 경우엔 끝까지 밝혀야죠. 하지만 잘못한 게 맞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할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한 법입니다.

내 아이가 누군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걸 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먼저 잘못했다면,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고, 그게 관계를 바꿔준다는 사실을 아이는 알아야 합니다. 그게, 행복한 문제 해결 방법이니까요. /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