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선물

열 살 되던 날 아침은 아무런 기억이 없고, 스무 살 되던 날 아침은 해방감에 가득차 있었다. 서른 살 되던 날 아침은 죽기보다 눈 뜨기 싫었고, 마흔 살 되던 날 아침엔 그냥 죽은 듯 누워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마흔 하나. 숫자만 놓고 보면 정말 생각하기도 끔찍한 나이가 됐다. ^^

얼마 전에 휴대폰을 바꾸면서 2년 약정을 맺었다. 그 논리로 따지면 나는 2년마다 휴대폰을 새로 바꾸게 될 테니, 여든 살까지 내가 쓸 수 있는 핸드폰은 겨우 스무 개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에 태어나는 그 많은 핸드폰 중에 내가 쓸 수 있는 건 겨우 스무개라니. 살 때마다 무조건 제일 마음에 드는 핸드폰을 사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난 앞으로 겨우 스무 개 밖에 더 못 산다는 말이다!

숫자로 따지면 참 마음이 아프지만, 여전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마음이 뿌듯할 데가 없다. 그것이 다 나이를 먹어왔기 때문에, 지금 이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면, 나이 먹는 일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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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딸 아이가 직접 만들어준 마우스용 손목 받침대. 비록 저작권 위반인데다가, 군데 군데 서툰 바느질이 삐져 나와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이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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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트로 만들어준 미니 쿠션. 가위에 베고 바늘에 찔린 작은 상처들이 손가락에 있길래, 뭘 유난스레 만들다가 저랬을꼬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빠 선물 만드느라 그랬다는 걸 알고는 가슴이 먹먹해서 잠시 동안은 멍하니 있어야 했다. 게다가 덩치만 컸지, 아직은 천상 애다. 꼭 회사 가져가서 쓰라고, 문자까지 날리는 걸 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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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최고의 파트너인 짠이아빠님 직접 골라온 워터맨. 남들은 몽블랑을 더 좋아한다지만, 사실 나는 다소 거만하게 느껴지는 몽블랑의 디자인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얄싸하면서도 세련미가 넘치는 워터맨의 느낌이란. 애지중지하턴 워터맨을 잃어버리고 한 동안 만년필 없이 살아오던 내게 가슴 짜릿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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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함께 일하는 식구들이 불붙여준 케이크. 한 살이라도 줄여주려는 사무실 막내 토양이님의 마음씨가 고맙다. 게다가 초 하나는 쑥 눌러 마치 서른 하나처럼 보이게 만들어준 편집장님의 센스엔 저절로 환호가! 퇴근 무렵 나눠 먹은 블루베리 치즈 케이크가 생각보다 너무 부드러워 남김 없이 먹었더니, 저녁에 밥이 반 공기 밖에 안 들어가더라.

이 외에 미처 사진을 찍지 못헀지만, 주일학교 학생들이 붙여준 케이크도 있었다. 소리 소리 지르며 노래를 불러 선생님을 창피하게 만들었지만, 나는 이 녀석들이 새삼 자랑스럽다. 그리고 현금으로 후원한 우리 가족들. ^^ 그리고 또.

마흔 하나의 생일. 마음으로 축하를 보내준 모든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Favicon of http://blog.empas.com/diabloti BlogIcon 정현아범 2008.08.13 18:2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운동부족의 아빠가 다희를 들어줄 때 손목이랑 허리에서 나는 '뿌드득' 소리를 다희가 들었나보군요..
    절대 부러워서 그러는 거 맞음..부럽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8.19 00:52 신고 수정/삭제

      조만간 공주님이 다 해줄 거이네... 부러워 마시게... 그 때쯤 되면 내가 정현아범을 도로 부러워할테니~ ^^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8.08.14 01:0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와.. 선물 많이 받았구만.. ^^ 다희 많이 컸네.. 뭐..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8.19 00:53 신고 수정/삭제

      네, 아이들이란 정말 부쩍 크더라고요~ ^^ 짠이도요~

  • Favicon of http://www.sunblogged.com BlogIcon easysun 2008.08.18 05:1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와~ 생일 축하드립니다! 사십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숫자가 믿을 수 없을만큼 시간이 빨리 흐릅니다.. 저렇게 이쁜 선물해주는 따님을 두신 것만으로 위안 삼으며 숫자는 잠시 잊으셔도 될듯합니다. 다시 한번 추카추카!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8.19 00:53 신고 수정/삭제

      앗~ 감사합니당~~ 저는 서른 다섯 넘으면서 정말 세월이 총알같이 지나더라고요~ ㅋㅋㅋ

  • Favicon of http://blog.empas.com/bouquetdor BlogIcon 진주애비 2008.08.18 17:0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축!생신..
    따님의 멋진 선물 부러워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8.19 00:53 신고 수정/삭제

      앗 무슨 생신씩이나~ ㅋㅋㅋ 고맙습니당~ ^^

  • 조선얼짱 2008.08.18 20:0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M.B. 여러분들은 나이를 줄여주는 따뜻한 마음씨들이
    계시군요. 토양님의 케잌 촛불 갯수나 ...
    짠이 아빠님의 포스트 중 ... 주례를 부탁 받고 적으신 글 중에
    제목에 적은 자신의 나이를 줄여놓은것 .. 등 등
    사실 전 그 제목의 나이를 보고 완전분개했었습니다.
    나이는 고무줄이 아닌데 ...
    각설, 생일 맞으신줄 몰랐어요. 늦었지만
    고개숙여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짝짝짝~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8.19 00:54 신고 수정/삭제

      ㅋㅋ 그러게요. 왜 나이를 그리 적으셨을까~ 저도 의아했지만~ 뭐 다 깊은 의미가 있으려니 했더라는... ㅎㅎ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 Favicon of http://midorisweb.tistory.com BlogIcon 미도리 2008.08.20 06:4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최고의 파트너를 만났으니 정말 행운이세요~ 게다가 주변 사람들의 그 마음 씀씀이를 깊이 헤아리시는 님도 정말 센스쟁이 ^^ 그나저나 생일 축하합니다.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8.20 17:19 신고 수정/삭제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ㅋㅋ 축하 고맙습니다 ^^

  • 말짜 2008.08.20 20:0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와!! 추카추카..딸래미 있는 사람은 좋겠다..
    얼마나 뿌듯할까..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8.21 14:28 신고 수정/삭제

      ㅋㅋ 머 아들 엄마들은 그 나름대로 재미가 있겄지 머~~ 아니겄어?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