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읽기] 빛의 제국 - 김영하

소설 읽어본 지 참 오래됐다. 요즘 내 주변에서 보이는 책이라곤 죄다 마케팅 책 아니면 흔히 하는 말로 ‘처세’ 책이다. 좀 더 잘 살아보자는(!) 소망이 있어서 그런가 읽는 책이라곤 죄다 그런 류다. 그렇다고 그런 류의 책들이 좋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 책 읽기의 편협함을 말하는 것일 뿐이니.

그나마 소설이라고 읽었던 게 김훈의 남한산성이다. 마케팅 책 여러 권 사면서 눈에 띄길래 같이 샀는데, 남한산성은 역시 ‘김훈스럽다’. 벌써 몇 년 전, 친구 하나가 절제된 문장, 남성적인 문장,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라는 칭찬을 아낌없이 하며 ‘칼의 노래’를 권한 이후 만난 김훈. 칼의 노래든, 남한산성이든 행간에 특별한 의미가 숨어 있는 걸 내 본능이 알아차린 걸까, 아니면 그냥 진도가 안 나가는 걸까. 김훈 소설은 소설이지만, 참 읽기 쉽지 않은 책이다. 칼의 노래처럼 남한산성도 이틀이나 걸려 읽었고, 그리고 머리가 아팠다. 그런데도 왜 김훈일까. 문학수첩에서 김훈, 공지영, 류시화, 무라카미 하루키가 왜 잘 읽히는지 뭐 그런 얘기를 썼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인터넷에 떠돌았다. 갑자기 나도 궁금해졌다. 읽기도 어렵고, 뭐 그렇게 스릴 있지도(!) 않은데, 왜 김훈의 소설을 많이 읽는 것일까.

그러다가 우연히 내 손에 잡힌 책이 김영하의 ‘빛의 제국’이다. 솔직히 난 김영하라는 소설가를 참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 나는 김영하가 나와 동갑이라는 것 외에 그 사람에 대해 어떤 정보도 없는데 왜 그를 좋아하게 된 것일까. 이유는 단 하나, 그의 첫 작품집에 내가 필이 꽂혔기 때문일 것이다.

김영하의 첫 작품집은 ‘호출’이라는 단편 소설집이다. ‘지나가던 여자가 마음에 들면 휴대전화를 던져라’라는 얘기가 있었다. 실제로 광고에서도 사용했던 소재일 게다. 그런데 이 얘기는 휴대전화 훨씬 이전 삐삐 시절부터 나온 얘기다. 마음에 드는 여자(혹은 남자)를 만나면 다짜고짜 삐삐를 던지고 튀어라. 그 사람이 틀림없이 궁금해서 기다릴 테니 삐삐를 치고, 그렇게 꼬셔라. 뭐 이런 얘기다. 김영하의 단편집 ‘호출’에 들어 있는 ‘호출’이라는 단편 소설 역시 이 소재를 사용한 이야기다.

지하철에서 예쁜 여자가 있길래 호출기를 줬다. 그리고 호출기를 준 남자와 호출기를 받은 여자에 대한 얘기가 펼쳐진다. 호출기를 준 남자, 용기를 내서 호출을 했는데, 알고 봤더니 아직도 호출기는 자기 주머니에 있더라 뭐 이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소설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겠지만 '반전'이 없으면 재미가 별로 없는 법이다. 김영하의 소설은 심각하지도 않으면서 톡톡 튀는 '반전'으로 나를 즐겁게 했다. 원래 소설이란 건, 게임이란 건, 영화라는 건 재미있자고 보는 것일 게다. 그걸 읽으면서 역사를 공부하고 싶지도 않을테도, 심각한 주제에 대해 고민하자는 얘기도 아닐테다. 재미있게 읽고 난 다음에, 생각할 게 있으면 더 생각해 보는 것, 그것이 소설이 주는 또 다른 생각의 세상일게다. 그리고 그건 독자가 선택할 문제지 강요할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난 좋은 소설이란 일단 책을 잡으면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정신 없이 몰입할 수 있는 소설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면에서 '빛의 제국'은 참 아리까리한 소설이다. 책의 소재는 참 진부하다. 활동 라인이 끊어진 고정간첩인 남편(헉!)과 이십대 애인과 사랑에 빠진 아내(졸라 대는 철없는 애인 때문에 마지 못해 쓰리썸까지 강행하는!!!), 그리고 언제나 고민 많은 십대 딸. 활동 라인이 끊어진 고정 간첩 아빠에게 북으로 복귀하라는 지령이 내려오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시간 단위 별로 얘기한다. 마치 미국 드라마 24처럼 말이다.

그런데도 끝까지 읽어야 직성이 풀리기는 했다. 그러나 예전처럼 느꼈던 반전의 상큼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읽고 나니 여전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 아쉬움이, 소설에서 마무리 하지 않은(요즘 대부분의 소설이나 영화들이 마무리를 하지 않지만...) 또 다른 장면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져서일까 아니면 예상했던 반전을 만나지 못해서일까.

솔직히 소설이란 두고 두고 읽기 어려운 책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소설 사기를 아까와 하는 지도 모른다. 빛의 제국을 나는 두고 두고 읽을 수 있을까. 하긴, 그렇게 필 받았던 호출도 지금 내 책장 어디에 있는지 나는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포르노'라고 온갖 타박을 받아도 가끔 손에 잡고 마는 '장정일'이 그리워지는 건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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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의 제국 / 김영하 / 2006년 8월 8일 / 문학동네 / 9,800원
* 어쨌든 김영하는 개인적으로 꼭 추천할 만한 작가다. 책을 살 형편이 아니라면, 도서관에서라도 꼭 한 번 접해볼만한 그런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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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daisy.pe.kr BlogIcon Daisy 2007.08.24 11:2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구입한지가 어언 6개월이 되가는데도, 아직, 한글자도 읽지 못한 그 책이군요. ㅡㅡ^
    읽지 못하고 쌓여가는 책들의 리스트가 저를 괴롭히는 와중에도,,
    여전히 사고픈 책의 리스트가 업데이트 되고 있어요. 아이고.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08.24 11:50 신고 수정/삭제

      ^^ 책 무지하게 많이 읽으셔야 할 걸요? 교육 차원에서~ ^^

  • Favicon of http://health.gamsa.net BlogIcon 양깡 2007.08.24 12:2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역시 쉽게 읽히는 책만 읽다보니 조금 생각 많이해야하는 책은 진도가 안나가요. 존경스럽습니다.

    p.s 옆에 베스트블로거 기자 마크 너무 귀여워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08.24 13:09 신고 수정/삭제

      헐~ 매일 쓰시는 기사 수준이 장난이 아닌데, 그런 겸손의 말씀을 하시다니... ^^ 마크 귀여워서 달았어요~ ㅋㅋ

  • Favicon of http://blog.empas.com/diabloti BlogIcon 정현아범 2007.08.27 13:1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도 마케팅책들에 질려서 '책/현의노래' 집어들었다죠..
    김영하가 말을 잘 걸어와요..
    김현은 제 하고 싶은 말 뇌까리는 거랄까요..
    저번주에 현의노래까지 끝냈네요..
    소설이나 좀 읽어볼까봐요..은근재미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08.28 23:36 신고 수정/삭제

      한 달에 소설 한 권 정도는 읽는, 그런 여유로 살아야 할거인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