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놈놈, 다음 번엔 더 좋은 놈이 나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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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놈놈에 대한 얘기를 풀기 전에 몇 가지 고백할 것이 있다.

무엇보다도 놈놈놈에 대한 기대가 엄청 컸다. 만주에서 벌어지는 웨스턴 무비라니. 특별한 상상을 소재로 한 영화는 뭐든 좋아하는 나에게 놈놈놈은 올 여름 가장 재미있는 영화일거라는 선입견을 갖게 했다. 거기에 정우성. 밧줄을 타고 날며 한 손으로 장총을 쏘아 대고, 말을 타고 달리면서 장총을 돌려 재 장전 하는 모습. 이건 뭐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는 멋진 액션이었다. 이 장면만 보고서도 나는 놈놈놈을 봐야겠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바쁘다는 게 핑계긴 하지만, 영화를 보자면 정말 심야 시간 밖에는 시간을 낼 수 없었다. 그래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심야 시간을 선택해 놈놈놈을 봤다. 피곤함이 영화에 빠져드는데 절대 방해가 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미 이전에 봤던 핸콕이나 적벽대전 모두 심야 영화로 졸지 않고 봤다는 점을 감안하면, 몸을 좀 혹사시킨다 해도 별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 멋진, 놈놈놈이 아니었던가.

영화 초반. 기대했던 것처럼 영화는 박진감 넘쳤다. 열차를 터는 송강호. 폭탄을 터뜨리는 이병헌. 열차에 타고 기회를 노리는 정우성. 꽉 짜인 스토리대로 영화는 진행됐고 전반 내내 영화에 빠져들다가 정우성이 밧줄을 잡고 나르는 장면에서는 정말 일어나서 박수를 치고 싶었다. 이 얼마나 멋진 장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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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를 떠나, 영화 내내 정우성이 제일 멋있다는 건 인정해야겠다


그런데 이게 웬걸.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지도가 다시 어떻게 송강호에게 넘어갔는지, 그리고 만주 벌판을 달리는 송강호를, 지도도 없는 모든 무리들이 어떻게 알고 쫓아왔는지 중간 얘기는 잘라 먹고 만다. 영화 중간에 난데 없이 등장한 아편 소굴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고생하면서 촬영했기 때문일까. 만주 벌판을 달리는 장면은 왜 그렇게 달리는지 특별한 설명도 없이 그냥 지루하게만 이어진다. 그 지루한 장면을 살리는 유일한 볼 거리는 정우성의 장총 돌리기. 그러나 그 멋진 연기로 때우기에 달리기 장면은 너무 길었다. 그리고, 또 다시 연결 고리를 찾기 어려운 세 놈의 결투 장면. 움직이는 바퀴 벌레를 칼로 꽂고 그 칼의 손잡이를 총으로 쏴 맞혀 못 박아 버리는 놀라운 총 솜씨의 이병헌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없다. 솔직히, 영화를 보다가 후반부에는 그만 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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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총 돌리며 달리는 정우성... 그 장면 하나로도 모든 걸 다 용서할 수 있을까...


결국 졸면서 놈놈놈을 보고 나온 나로서는 실망이 클 수 밖에 없었다. 잘만 하면 쉬리 이후 최고로 재미있는 한국 영화가 될 뻔 했는데, 막말로 김만 새고 말았다. 영화를 보면서, 순간 순간 졸면서도 배우들 참 고생 많았겠다는 생각은 했다. 영화 한 편 찍다 보면 어디 배우들만 고생할 것인가. 스탭들도 고생하고 감독도 고생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들의 고생에는 정말 기립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막강한 자본도 없이, 이 만큼의 영화를 만들어 냈다는 건, 가능성이 보인다는 말 한 마디로 칭찬해 줄만 하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관객은, 아니, 나라는 관객은 얄밉다. 고생한 것이 눈에 보여도 영화가 재미 없으면 그걸로 끝이다. 줄거리 없어도, 얘기가 없어도 되는 영화는 오로지 포르노 하나뿐이다. 모름지기 영화란 관객들에게 감독의 생각을 들려주고, 그에 대한 반응을 기대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멋진 장면 찍었으니 이걸로 끝내자. 이건 옳지 않다. 그리고 관객은, 아니 나는 그 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지금까지 본 영화 중에서 최고의 한국 영화로 내가 꼽는 ‘쉬리’가 재미있었던 건, 탄탄한 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화려하고 번뜩이는 액션이 있다 하더라도 스토리가 없으면 그건 재미있는 영화가 될 수 없다. 그렇게 고생했고, 그렇게 멋진 장면을 만들었는데, 그 고생과 장면을 마음에 와 닿게 할 스토리가 없다는 사실이 나는 참으로 안타깝다.


그런 까닭에 여기서 나는 또 다른 희망을 갖고 싶다. 김지운 감독과 세 멋진 배우, 그들을 빛낸 다양한 조연들이 다시 한 번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주길 나는 기대한다. 초반의 이 멋진 장면들을 만들어낸 그들이라면, 반드시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드시 그들의 다음 영화는 꼭 찾아 볼 것을, 이 자리를 빌어 약속한다.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8.07.29 03:1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좋은 년, 나쁜 년, 이상한 년은 언제 만드나.. ㅜ.ㅜ

    • 거짓말 2008.07.30 01:43 신고 수정/삭제

      아 이런, 최근 한 달 동안 가장 웃긴 리플이었습니다. 맹구의 순수성, 21세기 에로비디오 제목의 경향성, 황병승식 모자이크가 모두 담긴 훌륭한 리플입니다.

  • Favicon of http://blog.empas.com/diabloti BlogIcon 정현아범 2008.07.29 10:4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영화관 못 가고 씨네21 정기구독이나 하면서 영화냄새나 맡는 저로서는..
    주무시고 나오셨대도..
    그저 부러울 밖에요..ㅡㅡ;

  • sontong 2008.07.29 13:3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우리부부는 일요일낮 12시 영화를 보았는데 끝나고나서 서로 얘기하다보니 같이 졸았다는 웃지못할 사연의 영화 놈놈놈.

  • 공감하는 바 입니다 2008.07.29 16:1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시나리오자체는 정말 흥미거리로 와닿는 신선한 소재로 정말 큰 기대를 했는데,
    위에 적으신대로 중반부 이상부터는 스토리가 흐지부지해져서 연결성이 떨어지더군요
    지도를 향해 모두가 달려가는 씬에서는 어떻게 모두가 지도의위치를 알앗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한번씩 지도를 가졌었기 때문에 그자리를 외웟다? 라고도 생각해 봤지만, 지도를 손에 넣지 못했던 팀 마저도 알아서 잘들달려오더군요.
    분명 놈놈놈은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엄청난 제작비와 그 엄청난 시나리오의 연결과정을 너무 흐지부지하게 감독이 잘 살리지 못한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 음.. 2008.07.29 18:3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조금 내용을 이해를 잘못하신듯 합니다.
    제가 이해하기론 지도의 위치를 향해 뛰어간 것이 아닙니다.
    내용의 연결이 구체적인 인물간의 대화등의 표현없이 이어지긴 했지만
    일본군이 지도가 뺏겼고 그지도가 송강호가 거주하는 시장에서
    거래되고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시장이 있는곳으로 찾아온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버려진 정우성과 놓친 이병현..그리고 나머지 도적무리들 또한
    송강호를 쫓기위해 시장에서 다 모인것이죠.
    송강호는 거주하는 시장의 지점에서부터 도망치기 시작했고
    그렇게 다들 쫓아 간것입니다.
    송강호가 시장의 황량한 모습을 보고 깜작놀래죠...
    그리고 이병현무리가 나타나고 도적잡배무리,일본군이
    순서대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목적지점을 향해
    도망가는 씬이 나오죠.
    전 그렇게 이해했습니다.ㅎㅎ

  • Favicon of http://gamsa.net BlogIcon 양깡 2008.07.29 21:5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영화 후 기억나는 것은 정우성밖에는... 아 참.. 뭘 해도 잘난 남자란 생각에 한 숨이~ ㅋㅋ 그리고 빠삐코 노래가 겹쳐서 귀에 들려요. 요즘 유행입니다. 트랙백 남기기는 민망(?)스러우니 살짝 링크를.. http://gamsa.net/447

    p.s 헬스로그 도서 이벤트 하고 있습니다. http://healthlog.kr/583 미달 사태를 우려하고 있사오니 부디 참여를 ..

    • Favicon of http://www.kimdahee.com BlogIcon 다희 2008.08.05 17:37 신고 수정/삭제

      놈놈놈은 아쉽지만 빠삐놈은 최고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양깡님이 동영상 걸어주셨네요.ㅎㅎ
      근래 본 것 중에 가장 웃겨요.^-^;;;

  • 대나무꽃 2008.07.29 22:5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지도를 다시 찾은게 아니라 삼국파인지 귀시장파인지 창이파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귀시장에 있는 태구 집에 쳐들어 왔을때 지도를 할머니한테 맡겨놓았는데 만길이가 지도를 가져갔죠 돈받고 팔려고 그리고 창이가 와서 공격했었잖아요 그때 태구랑 도원이 구하고 만길 품에 있던 지도를 태구가 꺼내는 장면이 나오죠 전 안졸았답니다.ㅋㅋ 두서없이 써서 알아들으셨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ㅠㅠㅠ 제가 글을 워낙...ㅋㅋㅋ

  • blue 2008.07.30 02:2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도 오늘 봤습니다. 자꾸 총쏘는 거 나오니까 졸고싶은거 꼭참고 봤어요. 기대보다는 약간 실망적이더라구요.. 스토리가 아쉽습니다.

  • Favicon of http://www.unny.com BlogIcon 아톰 2008.07.31 14:1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다른 블로그에서 재밌다고 해서 볼려고 했는데 다른 영화평을 봐야 겠네요

  • Favicon of http://dogguli.net BlogIcon 도꾸리 2008.08.07 09:0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못보고 와서 너무 아쉽네요~
    다들 이래저래 반응이 좋은 것 같던데~
    전, 나중을 기약해야 할 것 같아용~

넘버3는 잊어라, 우아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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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송강호가 조폭 영화를 찍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난 자연스럽게 넘버3를 떠올렸다. 비단 나 뿐일까. 송강호를 알고 넘버3를 아는 사람들은 백이면 백, 똑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그래서 난 이 영화가 재미있거나 스릴 있는 조폭 영화일 거라는 선입견을 갖고 영화를 보게 되었다. 게다가 영화를 홍보하는 측에서는 생활 느와르니 어쩌니 하는 문구를 퍼뜨렸고 자연스럽게 넘버3와 송강호를 연결시켰다. 그러니 내가 선입견을 가지고 영화를 보게 된 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 아니다.

어쨌든 이 영화는 조폭 영화가 아닌 가족 영화다. 아버지의 직업을 조폭으로 묘사했을 뿐, 사십대 가장의 힘든 삶을 표현하려 한 가족 영화다. 솔직히 배신이나 칼부림은 조폭의 세계에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버지들이 일하는 비즈니스의 세계, 그 세계에서도 보이지 않는 힘으로 억압하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들이 비수처럼 날아다닌다. 그러니 결국 조폭이든 아니든 이 시대 40대 아버지들은 똑 같은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셈이다.

하긴 40대 아버지의 삶을 소재로 만들었으면 누가 영화를 보겠는가. 여기에 조폭을 결합해서 뭔가 얘깃거리를 만들려 한 것이 감독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체적으로 이 영화에 선입견을 갖고 오게 될 관객들에게 이는 일종의 배신일 뿐이다.

당연히 영화 전체엔 긴장도 없고 스릴도 없다. 간간히 배어나는 웃음의 요소들이 있긴 하지만 관객을 영화에 몰입시키기엔 충분하지 않다. 더욱이 군데 군데 눈에 띄는 엉성함들이란… 시나리오의 전개를 위해 억지로 끼워 맞춘 느낌이 들었다.

조폭 얘기. 이젠 좀 지겹다. 하긴 '비열한 거리'에서 조인성은 영화감독 친구에서 정말 새로운 조폭 영화를 만들어 보라고 권유하지만 결국 잔인함의 강도만 더해질 뿐, 거기에서 느낄 수 있는 신선함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40대 아버지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조폭의 소재를 끌어오다니. 차라리 색다른 직업을 끌어들이는 편이 더 신선하지 않았을까.

영화에 대한 평가는 포기. 드라마를 원해 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볼 만 하겠지만 나처럼 넘버3의 기억을 안고 볼 거면 절대 비추.

마지막으로 성남의 롯데시네마 4관. 극장은 작고 화면은 커서 처음엔 어울렁증이 날 정도이고 푸드코트는 한숨이 날 정도. 왜 사람들이 큰 극장으로만 모이는지 그 이유를 깨달을 수 밖에 없다. 작은 극장이 갖출 수 있는 경쟁력이란 큰 극장 따라하기가 아닌, 자기만의 특성을 개발하는 것 아닐까. / FIN

ps> 사진은 우아한 세계 홈페이지의 포스터 다운로드 서비스를 이용해 받은 것입니다.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7.04.11 08:2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롯데시네마... 아마 다시는 안가겠지?... ㅋㅋ 극장 자체의 설계도 그렇고.. 뭐 사람들과 매표까지는 깔끔하고 좋았는데.. 인프라가 영ㅜ.ㅜ 객석 설계가 왜 그모양이지?...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04.11 09:18 신고 수정/삭제

      그르게요 그 정도 수준이면 차라리 큰데 가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