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내시경을 하다

지난 주부터 갑자기, 음식을 삼키기가 어려워졌다. 식도가 무엇으로 막힌 듯이 음식이 잘 내려가지 않았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통증이 생겼다. 게다가 간간히 올라오는 신물과 헛구역질까지. 음식 먹기가 쉽지 않았다. 먹는 걸 정말 좋아하는 나에게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다는 건 큰 고역이다. 부랴 부랴 병원을 찾았고, 이런 저런 상담 끝에 결국 수면 내시경을 하기로 결정했다.


미리 예약해둔 내시경 센터에 올라가 예약증을 내고 잠시 기다리는 그 시간. 사실 이런 시간이 더 무섭고 힘든 시간일지도 모른다. 조그만 액체 한 봉을 입에 털어넣고 기다리면서 쓸데 없는 상상을 한다. 마치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누워 있는 내 옆으로 사람들이 분주히 다녀가는 영상이 머리 위에 떠오른다.

이름이 불리고, 침상에 누웠다. 목 마취를 한다면서 입 안에 뿌린 역한 스프레이. 잠시 후 혀와 목이 마비되고 침을 삼기는 것 조차 어려웠다. 손등에 주사 바늘을 꽂으며 간호사는 이제 곧 약이 들어갈텐데 눈을 뜨고 있다가 눈이 감기면 그대로 자면 된단다. 당연한 얘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눈이 감기는 것 조차도 깨닫지 못했는데,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뜨고 말았다. 내시경실에 들어간 지 벌써 한 시간 반이 지나 있었다.

그 와중에도 그렇게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렸고, 이제 그만 자고 일어나라고 재촉하는 말소리가 나를 깨웠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깨우는 소리. 누군지 모를 그는 벌써 네 시간째 자다 깨다 그러고 있는 모양이다. 아차, 해야 할 일이 있었지.

침상에서 일어나는데 순간 현기증이 돌았다. 젠장, 모르겠다 하고는 도로 누운지 십 분만에 다시 일어나, 마치 약에 취해 헤메는 영화 속 그 누구처럼 내시경실 복도를 왔다 갔다 하다 간호사에게 들켰다. 아, 저기 잠시만 앉아 계세요… 잠시 후 의사가 나를 부른다. 특별한 이상은 없고요, 별 건 아닌 듯 한데 작은 혹이 있어 조직검사를 했습니다… 그럼 저는 왜 아픈가요? 스트레스가 원인일 것 같네요. 뭔가 더 물어야 할텐데, 정신을 못 차린 나는 드문 드문 질문을 하는 듯 마는 듯, 그러다가 다음 주에 다시 오라는 얘기를 듣고 수납을 하고 병원을 나섰다.

비가 내렸다. 멍한 상태에서 비를 맞아야 할지, 택시를 타야 할지, 우산을 써야 할지 판단을 못하고 있다가 무작정 보이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우산 하나. 5,500원을 내고 자동으로 펼쳐지는 플라스틱 우산을 하나 샀다. 계산대에 섰는데 약봉지를 봤는지, 비닐 봉투에 담아주겠다는 편의점 직원의 마음씨가 그냥 고맙다.

우산을 펴고, 비 오는 거리를 걸었다. 몽롱한 상태에서 걷는 길과 비와 사람의 모습이 평소와 달랐다. 주사 자국이 아프게 느껴졌다. 흰색 플라스틱 우산 아래, 약봉지를 옆에 끼고, 비실 비실 걷는 모습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뭐, 복잡하게 생각할 건 없잖아. 그냥 이렇게 흐물 흐물 걷는 것도 재미있잖아. 내가 들어가야 할 지하도 입구가 보이는데 비는 조금씩 멎기 시작했다. 우산 값이 아까와오는 걸 보니, 이제 슬슬 정신이 되돌아 오는가보다.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8.09.25 06:2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고생했소이다.. ^^ 근데 스트레스라면.. 음.. 내가 없는 동안 그리 무리를 했소? 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9.25 07:09 신고 수정/삭제

      책임 지세요 ㅋㅋㅋ

    • Favicon of http://blog.empas.com/diabloti BlogIcon 정현아범 2008.09.25 09:16 신고 수정/삭제

      "안 계신 동안 더 신나게 놀아야지"라는
      강박관념이 스트레스로..^^

  • Favicon of http://blog.empas.com/diabloti BlogIcon 정현아범 2008.09.25 09:1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전 별 생각없이 건강검진 때 수면내시경 받았는데..
    십이지장궤양이래요..ㅠㅠ
    진정 스트레스라면 궤양 정도는 하나 있어야 한다는..흠냐

  • Favicon of http://www.rabbicat.com BlogIcon 토양이 2008.09.25 09:2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ㅠㅠ 말썽 그만 피울게요 ㅠㅠ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9.25 18:52 신고 수정/삭제

      정말? 약속한 거야~ ㅋㅋㅋㅋ (정말로 말썽 피우게 된 토양이!!)

  • Favicon of http://www.neoearly.net BlogIcon 라디오키즈 2008.09.25 15:0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도 종합검진 받으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시경을 해야 하는데...
    @_@;; 저도 4시간씩 자면 어쩌죠?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9.25 18:52 신고 수정/삭제

      아유, 걱정 마시고, 푹 주무세요~ ㅋㅋ

  • Favicon of http://www.krlai.com BlogIcon 시앙라이 2008.09.26 06:2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별 탈 없다니깐 다행이네요~^^
    저도 한몫한것 같아 죄송~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9.26 11:16 신고 수정/삭제

      흐음 그대가 해 준거는 별로 읎는디? ㅋㅋ

  • 손통 2008.09.26 09:2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우리나이때는 몸에서 하나,둘씩 고쳐야 할것들이 생기는가봐. 딱고,조여써야지 어쩌겄어? 그러려니 해야지. / 한마디로 뽕맞았네. ㅎㅎ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9.26 11:16 신고 수정/삭제

      형님 나이하고 제 나이는 다릅니다!!! ㅎㅎㅎ

  • Favicon of http://www.sunblogged.com BlogIcon easysun 2008.09.30 19:1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와.. 그 와중에 사진을 찍어 블로깅 하시다니.. 역쉬 파블의 포스가 다릅니다! ^^ 조직검사한 사람들끼리 동호회 만들어서 술한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9.30 18:44 신고 수정/삭제

      웬지 들이대야 겠다는 압박감에 ㅋㅋㅋ

  • Favicon of http://dogguli.net BlogIcon 도꾸리 2008.10.01 11:0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별 일 아닌것 같아 다행이네요~
    저도 가끔 내시경 할 때마다 호스가 들어가는 그 당혹감이란...
    수면 내시경 해봐야 할듯

    좋은 하루되세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10.06 23:32 신고 수정/삭제

      아주 어릴적에 그런 경험이 한 번 있어서, 두번씩은 해보고 싶지 않다는 ㅋㅋㅋ

  • Favicon of http://sepial.net BlogIcon sepial 2008.10.02 15:2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몸이...."나 좀 쉴래." 그랬군요...
    우리 나이가 되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아요....잘 모시고 사세요~~~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10.06 23:32 신고 수정/삭제

      뭐 한 게 있다고 쉬나요~ ㅋㅋㅋ 잘 지내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