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게티, 페로니, 괜히 느끼한 날엔

그런 날이 있다.

왠지 느끼한 게 먹고 싶은 날.
기름지고, 끈적하고 그러면서도 고소한 맛이 도는
뭐, 그런 게 먹고 싶은 날.
느끼하다는 건, 썩 좋은 뜻은 아닐진대
그 속에도 맛이 들어 있으니 참, 신기한 일이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느끼한 음식은 다르겠으나
이 날 따라 끌린 건 바로 스파게티.
토마토 소스로 매콤하게 볶아낸 스파게티 말고
걸쭉한 크림에 담긴, 크림 소스 스파게티 말이다.

그리고 스파게티 파트너는, 맥주.

‘라거’하면 우리는 맥주 상표를 떠올리지만
사실 라거는 낮은 온도에서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맥주라는 뜻이다.
혹은 하면뱔효 맥주라고도 한다.
하면발효는 글자 그대로, 아래쪽에서 발효하는 맥주다.
그럼 상면발효는, 위에서 발효하는 맥주네? 맞다.
하면뱔효와 상면발효의 차이점은, 효모다.
하면뱔효 맥주 효모는 발효가 끝나면 가라앉고
상면발효 맥주 효모는 발효가 끝나면 떠오른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가라앉거나 뜨는 효모가 다른 점은 발효 온도다.
하면발효 맥주는 낮은 온도에서 발효하기 때문에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있고
상면발효 맥주는 높은 온도에서 발효하기 때문에 걸죽하고 묵직한 맛이 있다.
맥주가 처음 태어날 땐 다 상면발효 맥주였다.
왜? 그땐 냉장 시설이 없었으니까.

스파게티엔 와인 아냐?
누군가 이렇게 말할 법도 싶지만, 와인을 썩 좋아하지 않는 나는
당당하게 맥주를 주문한다. 아무래도 걸쭉한 상면발효 맥주보다는
시원하고 톡 쏘는 하면발효 맥주가 좋겠지. 이 집엔, ‘페로니’가 있다.

페로니는 이탈리아 맥주다. 어쩐지 스파게티와 정말 잘 어울릴 듯 하지 않은가?
마치 삼겹살엔 우리 맥주가 잘 어울리는 것처럼!

오징어 먹물을 넣은 스파게티와 맥주.
맥주는, 한입에 시원하게 털어 넣는 것이 제맛이라지만
가끔은 반주로 입을 적시고
느끼한 맛을 덜어주는데도 그만이다.

살다 보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느끼한 사람, 느끼한 일을 만나, 속이 더부룩할 때가 있다.
그럴 땐, 그저 시원한 맥주 한 잔. 그렇게 털어버릴 뿐. 

이런 게 사는 거다. ㅋ

스파소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93-2
02-3445-8422

가장 맛있었던 스파게티에 대한 기억

요즘 스파게티는 참 흔한 음식이 됐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 보면 스파게티 전문점을 쉽게 찾을 수 있고 유행처럼 생기는 부페 식당에도 스파게티는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스파게티를 쉽게 먹을 수 있게 됐는데, 정말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었다는 기억이 별로 없다. 게다가 부페에서 내 주는 스파게티, 이건 정말 최악이다.

지난 금요일 저녁은 삼성동 세븐스프링스에서 먹었다. 면 릴레이 한다면서 부페 식당이나 찾아 다니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이건 면 릴레이 차원에서 간 것이 아니라 조용히 식사를 할 곳을 찾다가 갔고, 거기 나온 스파게티를 보다가 자연스레 면 릴레이를 떠 올렸다. 언젠가는 스파게티 얘기도 쓰긴 할텐데, 정말 제대로 된 스파게티, 아니 어떤 게 제대로 된 것인지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으니까 ^^ 내 기억 속에서 가장 맛있는 스파게티가 무엇이었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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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스프링스에서 먹은 크림 스파게티. 특별한 맛이 있다기 보다는 브로콜리가 많아 좋았다


바로 위에서 '부페 식당의 스파게티는 최악'이라는 평을 내렸지만 우습게도 내 기억 속에 가장 맛있게 먹었던 스파게티는 바로 부페 식당에서 먹었던 스파게티였다. 이 무슨 아이러니란 말인가.

지금부터 십 년도 더 넘은 옛날, 우연찮게 찾아간 조선호텔 1층의 부페 식당. 아마 누군가가 쿠폰 같은 걸 줘서 갔었던 기억이 난다. 그 자리가 여전히 부페 식당일까. 하여튼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다른 부페처럼 여전히 음식 사냥(!)을 다니던 내 눈에 뜨인 것은, 즉석 스파게티를 해 주는 요리사였다. 스파게티 면과 소스를 고르면 그 자리에서 직접 스파게티를 해 주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고, 호텔이니까 그런가 보다, 그런 생각도 했다. 지금에야 이런 서비스들이 흔하고 하다 못해 요즘들어 점점 맛없어진다고 평을 받는 빕스에서도 스파게티를 직접 해주기는 하지만, 그때야 어디 흔한 일이었을까. 신기한 마음에 나는 평소에는 잘 먹지 않던 크림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마침 부페 식당에 그리 사람이 많지 않아 여유있게 즐길 수 있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잠시 후 김이 모락 모락 나는 스파게티가 나왔다. 따뜻한 면, 부드러운 크림의 조화... 크림 스파게티가 이런 맛이구나 저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특별히 고급스런 재료가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어쩌면 이런 맛이 날까. 그저 나는 감탄할 수 밖에 없었고 챙피를 무릅쓰고 세 번을 가져다 먹었었다. 그 뒤로도 나는 그 식당엘 세 번 인가 더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단지 스파게티를 먹으러.

음식 맛을 잘 모르던 그 때와 달리 이제 나이를 먹어 음식 맛을 조금은 안다고 생각하는 지금 다시 돌이켜 보면, 금방 만든 음식치고 맛 없는 음식이 어디 있으며, 흔하지 않던 음식을 먹었을 때 놀랐을 미각을 고려해 볼 때 스파게티의 실제 맛보다 과장되어 기억에 남았을 수도 있을 게다. 그러나 누구의 노래처럼 '처음은 하나 뿐인 거니까' 어쨌든 그 스파게티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맛있는 스파게티로 남을 것은 틀림없는 일일 게다.

면을 유난히 좋아하는 까닭에 그 뒤로도 나는 참 많은 스파게티를 먹었다. 크림 스파게티에 대한 강한 기억 때문에 아마 토마토 소스 게열의 스파게티 보다는 크림 스파게티를 훨씬 더 많이 먹었는데, 나름대로 유명한 집들을 꽤 다녔음에도 예전과 같은 맛을 느끼기는 쉽지 않았다.

면 릴레이를 위해서라도 조만간 스파게티 집을 찾아가게 될 텐데, 어떤 스파게티 집이 좋을지 심히 고민스럽다. 이럴 때 누군가 딱 하나 추천해주면 좋으려만 ^^ 댓글에 좋은 추천이 달리기를 은근 슬쩍 기대해 본다. / FIN



  • Favicon of http://www.rabbicat.kr BlogIcon 토양이 2008.01.07 13:3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여의도 있을 적에 'Ola'를 갔었어야 하는 건데! >_<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1.07 15:39 신고 수정/삭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다네. 마음의 거리는 물리적인 거리와 별반 다르지 않으니. ^^

  • Favicon of http://happicialist.tistory.com BlogIcon Energizer Jinmi 2008.01.07 17:2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 전 강남역 로리타 스파게티를 좋아해요~
    특히 치킨 크림 스파게티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1.08 11:06 신고 수정/삭제

      으아 내공이 대단하셔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ㅋㅋ

  • Favicon of http://isanghee.com BlogIcon isanghee 2008.01.08 14:3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비슷한 면식수행자를 만나게 되어서 새삼 반가운걸요? ^^
    값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일 치프리아니, 안나비니, 본 뽀스또, 일폰테 다 괜찮은 곳이죠.
    저도 놀리타가 좋더라구요. 프라텔리도 괜찮구요. 위의 곳을 제 돈 주고는 못가니까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1.08 15:43 신고 수정/삭제

      말씀하신 집들은 형편 좀 좋아지면 가야 할 듯 ㅋㅋㅋ

  • 신동혁 2008.01.23 03:4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ㅎㅎ 4호선노원역 9번출구로 나오면 더페이스샵이 보이는데요 그 골목으로 들어오면 파리 바게트가 있어요 파리바게트 2층에 스파냐라고 있는데요~크림 스파게티 맛있다고들 마니 하는데 님은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 sikh 2009.03.09 16:3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늦게 보았지만 추천을... 신천역에서 5분 거리에 알루메라는 스파게티집이 있는데 참 맛있답니다 ^^ 특히 크림소스가 맘에 들었어요. 하지만 오리엔탈 소스나 토마토 소스도 참 맛있더군요. 소렌토 같은 곳보다는 아주 약간 비싸지만; 그래도 싼 가격이 장점이에요~

두 남자의 면 사랑, 면 릴레이 #8 : 집에서 만든 스파게티

두 남자의 면 사랑 이야기 - 면 릴레이

면을 너무 좋아한 두 남자가 점심, 저녁 식사를 면으로 하겠다고 나선
재미있는 이야기, 면 릴레이.

그 여덟번째 릴레이가 시작됩니다.

여덟번째 릴레이 : 홈메이드 스파게티
날짜 : 5월 24일 저녁 식사

면 릴레이를 시작하면서 집에서 먹는 식사에까지 면을 고집하지는 말자는 원칙을 세웠는데, 쉬는 날인 이 날 저녁식사는 우연찮게 스파게티가 되었습니다(물론 집에서는 제가 면 릴레이 따위(!)를 하는지 모릅니다 ^^).  코스트코에서 산 스파게티 면과 소스에 새우, 소라, 조개, 오징어 등 해물 재료를 넣고 열심히 볶아 내기만 하면 되거든요. 물론 스파게티 면은 삶은 후 올리브 오일에 볶았지요. 그리고 스파게티로만은 좀 허전했던지 샐러드가 한 접시 올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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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특별히 할 얘기는 없어서 그냥 사진으로 때우렵니다. 사실 예쁘게 연출해서(!) 찍을 만한 시간 여유도 없었고, 그렇게 뭐라 할 만큼 거창한 메뉴도 아니었거든요. 그냥 집에서 별식으로 만들어 먹기에는 괜찮은 방법입니다. 이번 주말에 집에서 스파게티 한 번 도전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