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

아무리 바빠도 주말에는 딸 아이와 함께 보내려 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아빠의 일에 충실하고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딸 아이와 꼭 놀아주겠다고 그렇게 마음 속으로 약속했었습니다. 딸 아이가 어리고, 저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땐 주말이 아무리 힘들어도 어떻게든 외출할 거리를 만들고, 같이 놀아주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 토요일엔 혼자 집에 있는 저를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딸 아이가 자라면서 토요일마다 해야 할 다른 일들이 생기고, 친구들과 약속도 생기고 그러면서 이젠 아빠가 굳이 같이 놀아주지 않아도 될 때가 된 것입니다. 아침마다 아빠가 학교에 데려다 주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던 녀석이, 토요일이면 아빠가 학교 앞에서 기다려주는 것을 바라던 녀석이, 이젠 친구들과 가겠다고 아빠를 수고스럽게 하지 않습니다.

아빠의 마음 속에 있는 아이와 달리 현실의 아이는 이미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자라버렸습니다. 처음엔, 이런 상황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마음 속엔 항상 어린 아이로 남아 있는 녀석이 벌써 컸다고 아빠에게 기대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아빠의 역할이 어디까지인가, 이제 아빠는 어떤 존재로 남아야 하는가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뭐 딱히 결론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그저 딸 아이가 언제든 힘들 때,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문제들에 부딪혔을 때, 아빠는 항상 옆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수 밖에요. 그리고 우연히 발견한 이 책.

‘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는 딸 입장에서 보면 이유지만, 아빠 입장에서는 아빠가 딸에게 해줘야 할 100가지 행동 지침과 같은 겁니다. 주절 주절 설명할 것도 없이 100가지 이유를 짧은 문장으로 담았고, 세피아 톤의 사진으로 더 많은 말을 담았습니다. 짧은 문장인 만큼 원문을 함께 실어 원작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책 읽기 싫어하는 분들도 10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 하지만 10분이 지나면 다시 한 번 들고 처음 부터 끝까지 다시 돌려 읽는 책. 곁에 두었다가 아이와 관계가 힘들어지면 다시 읽을 책, 이라고 이 책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전 이 책을 몇 권 더 구입해 딸 가진 아빠들에게 꼭 선물할 생각까지 해버렸습니다.

책 속에 소개된 100가지 행동 지침들은, 어떤 것들은 너무 추상적이고, 어떤 것들은 너무 지키기 어려운 것들인지 모릅니다. 모든 것을 다 지킬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이 중 하나 만이라도 확실하게 지켜줄 수 있다면, 딸 아이에게 아빠란 존재는 정말 특별한 존재일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 만큼은 꼭 지킬 수 있겠더군요.

“딸에게는 업어달라면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업어주는 아빠가 필요하다"

책을 다 읽고, 저자 후기를 읽다가 저자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딸에게는 가족을 온전히 지켜주는 아빠가 필요하다"라고 써 놓고 정작 저자 본인은 이혼을 했다니. 물론 이혼에 대한 생각이 우리와 많이 다르겠지만 처음엔 뭐야? 이런 생각도 들었더랬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지킬 수 있는 아빠란 어쩌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든, 이 책을 읽는 아빠든 어쨌든 사람일 뿐이니까요. 덕분에 완벽한 아빠의 강박 관념에서 해방될 수 있었을 겁니다. ^^ 저자도 다 못했는데 뭐, 나라고 다할 수 있겠어. 최소한, 업어주기라도 잘 하자고!

  • ^^ 2009.08.24 13:3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딸이 놀아 달라 하면 아무 이유없이 놀아 줘야 하는 엄마도 있습니다^^
    이유인즉, 아빠랑 놀면 재미 없다고...

    그런 아빠가 아니시니 아직은 상상속의 아빠는 아니신듯여~~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8.24 13:45 신고 수정/삭제

      아빠랑 노는 거랑, 엄마랑 노는 거랑은 질이 좀 다른 법인데요 ㅋㅋ

어쩜 이런 것까지 닮았을까 ^^

얼마 전, 제 생일이었습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생일에는 둔감해지는 법인지, 별 감흥 없이 그냥 식사나 하고 말 일이었는데 난데없이 딸 아이가 포장된 선물을 들이밉니다. 어버이날이든, 무슨 날이든 종이접기 하나 하고 '사랑해요'가 가득 들어 있는 편지를 남발하던 녀석이기에 사실 별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선물의 내용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뭔가를 들이민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스프링 노트와 펜 3자루. 노트 위에 있는 펜이 제가 좋아하는 회사 거지요. 하긴 제가 펜을 좀 좋아하기는 해요.


포장을 뜯어 보니, 꼭 딸 아이가 좋아할 만한 수첩과 펜이 들어 있더군요. 펜은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알고 있어서, 그걸 딱 사왔고 수첩은, 일곱 빛깔 무지개 색종이로 만든 스프링 노트였습니다. 선물을 알고 나서, 웃음도 나고, 살짝 울컥하는 느낌도 나고, 잠깐 그랬습니다. 그리고 짧은 순간,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야 했습니다.

아마도 삼십 년쯤 전, 제가 딸 아이 나이쯤 되었을 그 때, 엄마 생신이었답니다. 어린 마음에 선물은 사야겠고, 가진 돈은 별로 없고(초등학생들은 다 마찬가지겠지만 ^^), 나름대로 고민을 거듭하다가 학교 앞 문방구에서 수첩 하나, 볼펜 하나를 사 들었습니다. 돈이 좀 남았던 모양인지, 하나를 더 샀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래도 아버지한테 죄송했던 거겠지요. 말로 설명하긴 좀 어렵지만 회색으로 되어 있고 짙은 남색 띠로 제본된 그 얇은 수첩 말입니다. 아마도 M자로 시작하는 회사 제품이지 싶습니다. ^^

난데없이 수첩과 볼펜을 들이미는 저를, 엄마는 물끄러미 바라 보셨습니다. 아들이 선물이라고 사 온 게 기특하기도 하셨을 테고(아마 이게 최초의 생신 선물이 아니었을까 뭐 그런 생각 ^^) 도대체 이 쓰잘데기 없는 걸 뭐 하러 사왔을까 황당한 마음이기도 하셨을 겝니다. 하지만 제가 그 때 일을 아직도 기억하는 건 아마도 두 번째 느낌 때문일 겁니다. 아이구, 애도 참…. 이런 걸 어디다 쓴다고… ^^

삽십 년이 지나, 제가 그랬던 것처럼 딸 아이가 저에게 똑 같은 선물을 들이 밀었답니다. 물론 이제 막 열 살, 열 한 살 나이 때 알고 있는 쇼핑 세상이라는 게 학교 앞 문구점 아니면 동네 수퍼 정도일테니 – 마트는 혼자서는 절대 못가니까 ^^ - 어쩌면 다른 아이들도 똑 같은 걸 선물할 지 모르는데, 그래도 옛 기억이 겹치니, 참 마음이 짠하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화려한 색이 가득한 내지. 일곱빛깔 무지개 색이랍니다. 저하고 같이 일하는 짠이아빠님은 미팅 갈 땐 들고 가지 마라 하십니다 ^^


사실 딸 아이는 저를 참 많이 닮았습니다. 외모도 그렇고 ^^ 솔직히 딸 아이가 아빠를 닮았다고 했을 때 저는 잘 몰랐습니다. 그냥 인사로 하는 말인가 보다 했었지요. 그런데 어느 해인가 수영장에서 둘이 똑같이 수영 모자를 쓰고 찍은 사진을 보고는 저도 그만 크게 웃고 말았습니다. 안경 벗고 수영 모자 쓴 제 얼굴과 딸 아이 얼굴이 여지 없이 닮아 있지 뭡니까. 게다가 그 녀석 성격을 가만 보고 있노라면 저 어릴 적하고 그렇게 똑 같을 수가 없습니다.

부모 입장에서 아이가 부모를 닮는다는 건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지만, 사실 겁이 날 때도 많습니다. 아빠의 좋은 점만 닮아야 할 텐데, 나쁜 점까지도 다 닮아가는 것 같아서 몹시 걱정이 되는 거지요. 그래서 부모의 역할이란 게 반드시 있는 모양입니다. 먼저 살아 온 경험으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구분해서 가르쳐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 날 저녁 잠자는 딸 아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겉으로 할 수 없었던 말을 해야 했거든요.

딸아, 이런 것까지 아빠를 닮아줘서 정말 고맙다. 아빠의 좋은 점만 골라 닮을 수 있도록, 아빠도 꼭 노력할께. 생일 선물, 정말 고마워.

이 녀석, 알아 듣는지 못 알아 듣는지, 잠결에 고개를 끄떡끄떡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쳐다 보다가 조용히 책상으로 돌아가 선물을 꺼내 사진을 찍었습니다. 참 행복했습니다. 앞으로 삶을 사는 동안, 이렇게 아름다운 기억만 남기를, 그렇게 간절히 바랄 따름입니다. / FIN

ps> 다 쓰고 나서 보니 정작 낳아준 엄마, 아버지께는 고맙다는 말도 못 한 듯... 이 글을 보실 일이야 없을 테지만, 못다 한 말 여기에다 또 남겨야 할까 봅니다. 엄마, 아버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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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health.gamsa.net BlogIcon 양깡 2007.08.16 21:1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레이님, 따뜻한 이야기 잘 봤습니다.

    저는 애가 아직 어려서 아빠에게 선물을 해준 적은 없지만, 날 닮은 존재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감동을 받고는 합니다.

    그런데 3살이 되고 말이 늘면서 생때도 많이쓰고 동생도 때리고 ^^;;

    요즘은 애키우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구나...란 생각에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계속 반복되겠죠? 부모와 자식간의 이런 느낌은.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자라길~!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08.17 00:08 신고 수정/삭제

      ^^ 아이들은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되죠... 그런데 가면 갈수록 부모 욕심이 커집니다~ ^^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7.08.16 21:5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ㅋㅋ 부러워서 그랬지.. ^^ 또 클라이언트에게 얼마나 자랑하려고..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08.17 00:08 신고 수정/삭제

      아들 키우는 아빠들은 절대 이 재미 모를 걸요~ ^^

  • Favicon of http://happyblog.kr BlogIcon 열심히 2007.08.17 00:5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감동적이네요. 저도 엄마보다는 아빠랑 생김새도 많이 닮고, 성격도 많이 닮았서 그런지
    지금까지도 아빠랑 더 친하답니다. ^^
    울 아부지 은퇴하셔서 요즘 많이 심심해 하시는데.. 이 글을 읽으니 갑자기 친정아버지가 보고 싶네요 ^^
    잘 읽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08.17 01:10 신고 수정/삭제

      아이고 감동까지야 ^^ 아빠들은 딸하고 정말 얘기를 많이 하고 싶어한답니다. 사정이 안되서 그게 잘 안되고, 시간이 쌓이면서 그게 습관이 되고... 그렇게 되어버린다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

  • 2007.08.17 09:2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다찌도 많이 컸겠다...
    에구.. 녀석~~
    보구싶네..

    생일 언질이라도 함 주쥐...
    암튼...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08.17 09:34 신고 수정/삭제

      그람요. 이제 정말 많이 컸어요~ ^^ 생일이야 뭐~ ^^

  • Favicon of http://blog.empas.com/diabloti BlogIcon 정현아범 2007.08.17 16:0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희도 저랑 서연이랑 워낙 붕어빵이죠..ㅋㅋ

    요즘 안약 넣고 있으면, 서연이가 와서 그 참새같은 입을 쫑알거리면서 묻습니다..
    "아빠, 눈 아야아야해?? 눈 아퍼??"
    이뻐 죽습니다..
    기냥 녹아요..

    아들넘은 별 무관심이라죠..ㅡ.,ㅡ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08.17 17:50 신고 수정/삭제

      그럼 그럼... 역시 딸이 최고라니깐~ ㅋㅋ

  • 진주애비 2007.08.18 12:1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지났지만 생일축하합니다^^
    아직은 부모가 세상의 모든거라 여길 나이의 아이들을 키우는 중이라
    많은 부분 공감을 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주인공 딸들을 잘 키워야겠다는 뭐 다소 원론적인 생각도.. ㅎㅎㅎ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08.18 15:19 신고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 머 이젠 축하받기도 쑥스런 나이가 되고 말았더라는... ㅋㅋ

  •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 BlogIcon 실비단안개 2007.08.20 08:4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립니다.
    누군가가 더군다나 내 자식이 나를 닮았다건
    분명 행복한 일이지요 -

    이쁜 따님 - 건강하게 자라시길요 -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08.20 11:55 신고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자꾸 블로그에서 축하 받으니 엄청 쑥스럽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