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는 대화, 아침을 깨우는 십 분 마사지

딸 아이는 저를 닮아 잠이 많습니다. 하긴 꼭 저를 닮아서겠습니까? 아이들은 다 잠이 많습니다. 잠이 많다는 건, 그만큼 잠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한참 성장할 이 무렵, 잠을 충분히 자야 키도 크는 법이니까요. 그런데 현실은 아이들이 넉넉하게 잠을 자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중학생, 아니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아이들은 잠잘 시간을 줄여 숙제해야 합니다. 낮엔 학원 때문에 힘들고 밤엔 학원에서 내 준 숙제 때문에 힘듭니다. 딸 아이도 꽤 유명한 영어학원에 다녔는데 숙제가 하도 많아서 매일 늦게까지 영어 숙제 하느라 잠을 못 잤습니다. 잠만 못자면 다행이지요. 숙제를 하지 않으면 수업도 제대로 듣지 못한다고 투덜대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던지. 당장 그만 두라고, 싫으면 숙제하지 말라고 아빠는 하기 좋은 말만 할 뿐, 딱히 어떤 해답을 주지 못합니다. 물론 지금은 그 학원 그만 뒀습니다만, 이젠 중학생이 되어 공부거리가 더 많아졌네요. 그래서 딸 아이는 여전히 잠을 충분히 잘 수 없습니다.

아침마다 이런데서 마사지해 줄 순 없지만 ㅋ (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hotelcasavelas/)

그러다 보니 아침이 꽤 힘듭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아이가 빨리 일어나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아이는 아이대로 힘들다고 인상씁니다. 아침부터 얼굴 찌푸리면 그 날 하루 기분 좋기는 다 틀린 일입니다. 그렇다고 저까지 가운데 끼어서 화를 낼 수는 없는 일이고.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마사지로 잠을 깨우는 것입니다.

일어날 시간이 되면 팔부터 주무릅니다. 아침인데 저도 바쁘고 오래 주무를 시간도 없습니다. 그저 오른팔부터 주물 주물, 서른 번 주무릅니다. 팔을 주물렀으면 깍지를 끼고 손을 주물러 주고요 손가락도 하나씩 당겨 줍니다. 이제 다리. 허벅지 서른 번, 종아리 서른 번씩 주무르고 가볍게 발도 서른 번 꼭꼭 눌러 줍니다. 발가락도 당겨주고 발바닥을 주먹으로 서른 번 쳐 줍니다(중국에서 발마사지 받을 때 배운 거 써먹습니다 ㅋㅋ).

이렇게 하면 오 분에서 칠 분, 조금 더 열심히 하면 십 분 정도 걸립니다. 이때까진 굳이 깨우지 않습니다. 스스로 몸을 배배 꼬면서 잠에서 깨니까요. 마지막으로 발목을 잡고 주욱 당겨 손을 위로 뻗으라고 합니다. 웬만하면 딸 아이도 팔을 뻗어 따라합니다. 저도 나름 시원하겠지요. 이제 아이를 깨워 앉게 하곤 목과 어깨를 살살 주물러 줍니다. 이제 아빠가 할 일은 끝. 딸 아이는 알아서 침대에서 내려 옵니다.

아이에게 충분히 잠잘 수 없게 만든 이 환경에 저는 화가 납니다. 정말 일어나기 어려워 할 땐 학교고 학원이고 다 때려치우라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빠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렇게 아이를 달래 깨우는 것 밖에 없네요. 그나마 다행인 건, 이렇게 깨우면 대부분 별 탈 없이 일어납니다. 아침을 인상 쓰면서 보내지 않아도 좋고, 시간에 서둘러 쫓기지 않아도 되지요. 단, 아빠는 십 분 정도 서둘러야 합니다.

아이를 주무르다 보면, 아이를 유심히 관찰하게 됩니다. 지난 번에 넘어져 다친덴 어찌 됐는지, 손톱 부러진 건 어찌 됐는지, 다이어트 한다고 운동하는데 살은 좀 빠졌는지…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을 눈과 손으로 알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하루에 십 분, 아니 오 분이라도 내 아이를 유심히 들여다 본 적이 별로 없었던 듯 싶습니다. 아이가 크고 나서는 더 그렇지요. 아빠는 아이를 주무르면서 아이를 보고, 아이는 비록 비몽사몽일지라도 아빠를 가까이 느낄테니, 이것 역시 좋은 대화 방법일 겁니다. 하루 십 분 마사지, 아빠는 참 많은 걸 얻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 FIN

  • Favicon of http://ritachang.tistory.com BlogIcon Rita 2011.06.29 18:5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자상한 아버지, 현명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글을 읽는 내내 미소지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1.06.30 08:33 신고 수정/삭제

      아이고, 고맙습니다 ^^
      잘 못하니까, 그냥 이런 글이라도 씁니다 ^^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 Favicon of http://blog.daum.net/bouquetdor BlogIcon 풍류대장 2011.07.02 08:4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도 아이를 충분히 잠재우지 못하는 이 환경에
    화가 나 죽겠어요..아무래도 한 잔 해야겠어요..빨랑 벙개 때려주세요..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1.07.03 11:58 신고 수정/삭제

      그러시지여. 제가 다다음주에
      잠깐동안 기러기 아빠가 되니~ ㅋㅋ
      찐하게 한 번 때리겠습니당 ㅋㅋ

  • Favicon of http://wipen.net BlogIcon 하늘높이 2011.07.21 08:4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예비 딸 아빠인데 좋은 공부 하게 되었네요 잘 읽고 다녀갑니다

  • BlogIcon catnn 2015.09.08 21:1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감동적이라서 댓글남깁니다
    너무 자상하시네요ㅎㅎ
    제가 아침에 일어나는것이 무척이나 힘들어서 검색하다 이글을 보았는데 저희 부모님도 이랬더라면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