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을 깨고 세상을 다르게 보렴

요즘 세상에서 가장 돈 잘 버는 능력이 뭔지 아세요? 사기 치는 거 말고, 로또 잘 사는 거 말고, 이벤트 당첨되는 거 말고요. ^^ 저는 그 능력이 ‘창의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과 다르게 보는 관점,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 창의력으로 대박 난 인물이 바로 스티브 잡스 아닐까요. 똑같은 서비스, 똑같은 상품을 남들과 전혀 다르게 만들어냈으니까요. 

창의력이 중요하다는 사실,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학교에서도 잘 압니다. 그런데 학교 현실은 이렇습니다. 

머리 모양은 파마를 해서는 안 되고 길이는 가슴에 찬 이름표까지. 머리띠를 하더라도 컬러는 안 되고 검은색 위주. 추울 때 교복 위에 있는 점퍼도 화려한 컬러가 있으면 안 됨. 겨울 치마엔 검정 스타킹을 신고 양말을 덧대어 신는다. 

무슨 소리냐고요? 저희 딸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 복장 규정입니다. 제가 지어낸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온 가정통지문에 이런 식으로 쓰여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우리 딸 아이 학교가 좀 유별나긴 한 모양입니다만, 어쨌든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려는 건, 이 학교나 저 학교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네, 제가 무슨 얘기 하려는지 눈치채셨지요? 아이들을 똑같이 만들면서, 똑같이 생각하게 틀 안에 가두면서 어떻게 창의력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저런 규정들은 놀랍게도 제가 중학교 다닐 때도 있었던 규정들입니다. 중학생이 자라 대학생이 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는데도 학교의 규제는 똑같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여전히 아이들을 똑같이 생각하게 가르치고 있고요. 

그래도 아빠보다는 나아서 창의력DNA 없는데도 이딴 걸 다 만들고 ㅜㅜ

솔직히 저는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남들처럼 엉뚱한 생각도 못하고, 그냥 남들이 하는 정도만 따라 하는 그런 수준입니다. 저만 그러면 좋겠는데 딸 아이도 비슷합니다. 사물에 이름을 붙여 봐도, 그림 같은 걸 그려도, 선물을 사도 그냥 그만 그만한 것들을 삽니다. 아주 평범한 거지요. 딸 아이가 그렇게 평범한 대답을 내놓을 때마다 제가 말합니다. ‘이런 저주받은 크리에이티브 떨어지는 DNA 같으니라고.’ 물론 웃자는 얘깁니다. 
 

창의력 떨어지는 DNA를 제공한 아빠가 딸에게 창의력을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관점은 가르칠 수 있지요. 그래서 저는 딸 아이에게 언제나 ‘틀을 깨라, 룰을 깨라.’하고 말합니다. 평소에 하던 대로 하지 말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해 보라고 권하는 거지요. 예를 들어 외식을 하자고 하면, 이번엔 전혀 엉뚱한 걸 먹어 보자고 제안하는 겁니다. 실패할 때도 있지만 날마다 하는 그 흔한 외식 말고 특별한 걸 하면 훨씬 재미있거든요. 

수학 숙제로 고민하는 녀석에게 숙제 같은 거 하지 말라고 합니다. 안 하면 되지 뭐. 숙제 안하면 혼난다고 할 때, 가끔 혼도 나보고 그래야지. 그럼 아내가 옆에서 그러지요. ‘자알 가르친다아~’ 하지만 뭐 어때요. 숙제 같은 거 안해도 인생 사는 데 별 지장 없답니다. 혼나는 거야 어쩔 수 없는 대가겠지만요. ㅋ 

어른도 그렇지만 아이들도 가끔 보면 스스로 룰을 정해 놓고 그 안에 가두는 일이 많습니다. 어, 이런 이렇게 하면 안되는데? 그렇게 생각하지요. 하지만 안될 것이 뭐 있겠습니까? 그 안된다는 생각을 깨주는 것이 아빠가 할 일입니다. 비록 아내와 부부싸움(!)을 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요. 

하지만 말은 이렇게 해도 진짜 딸 아이가 룰을 깨면 덜컥 겁이 나는 건 창의력 없는 DNA 때문인가 봅니다. 어느 날 딸 아이가 간식 사 먹으러 학교 밖으로 나갔다 길래, 너 수업 중에 학교 밖 나가면 안되잖아? 그랬더니 이 녀석 당장 하는 말이, ‘아빠가 룰을 깨라며?’ 하더라고요. 뭐, 먹는 게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간식 사 먹을 매점을 없앤 학교가 죄겠지요. 

다른 사람보다 영어나 수학을 잘하는 능력도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볼 줄 아는 관점입니다. 관점이 달라지면 인생이 더 행복해지는 거, 이미 다 아는 사실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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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게를 나눠 지는 법

아빠는 짐꾼이자 운전기사입니다. 장을 보든, 놀러 가든, 아빠는 언제나 두 손 가득 짐을 듭니다. 딸 아이에게 어떤 무거운 것도 들게 하고 싶지 않은 건. 세상 모든 아빠가 다 똑같을 겁니다. 괜찮아, 아빠가 다 들 수 있어. 때론 양손에 든 짐이 조금 무거워 힘겨울 때도 있고. 손가락이 끊어질 듯 아프기도 하지만, 괜찮습니다. 딸에게 아빠는 언제나 힘세고 튼튼한 존재니까요.
 
딸 아이와 둘이서 딸 아이가 좋아하는 스파게티와 피자를 먹고 남은 피자를 싸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이 녀석이 난데없이 아빠 손에 있는 피자 봉투를 뺏어갑니다. “왜, 아빠가 들게.” 무겁지도 않고 그저 좀 귀찮을 뿐이었으니 굳이 아이에게 맡길 이유가 없었지요. 하지만 이 녀석 끝내 고집을 부리며 자기가 들고 가겠다는 겁니다. 그래? 고마워. 그렇게 한 번 맡겨 봤습니다.
 
이런 저런 수다도 떨고 장난도 치고, 그렇게 걸어오다가 문득 이 녀석이 저만치 먼저 달려갑니다. 한 손엔 조그만 피자 봉투를 들고. 문득 제 손을 내려다봅니다. 아이에게 피자 봉투를 맡기고 나니 제 손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 딸은 아닙니다 ㅋ 플리커에서 찾았는데 정말 이쁘네요(자료 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mujitra/)

나이가 들수록 내 손에 있는 짐들이 하나씩 없어지겠지. 대신 저 녀석은 자랄 수록 손에 많은 짐을 들테고. 아빠가 들어야 할 삶의 무게는 점점 가벼워질텐데, 네가 들어야 할 삶의 무게는 계속 늘어나겠구나. 아빠가 어떻게든 나누고 싶지만, 아빠가 나눠질 수 있는 건 한계가 있고 결국은 네가 져야 할텐데, 아빠는 그 짐이 가볍기만을 바랄게.

 
마냥 아기 같은 딸 아이가 짊어질 삶의 무게가 얼마나 될까 생각하니, 벌써부터 괜히 걱정도 되고, 마음도 먹먹했습니다만, 그런 게 인생인 걸요. 어차피 삶의 무게를 짊어져야 할텐데. 기왕이면 좀 더 가볍게 지는 방법을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제까지나 아빠가 대신 들어줄 순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솔직히, 어떻게 해야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할 수 있을지, 아빠는 아직 그 방법을 모릅니다. 그저 인생을 즐겁게 사는 몇 가지 방법을 알려줄 뿐.

살다보면 참 많은 것들이 우리를 짓누릅니다. 피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겠지요. 언젠가 아이는 스스로 설테고, 그때부터 생각지 못했던 무게가 아이를 누를 겁니다. 그 무게를 덜어줄 수 있다면 좋겠으나 덜어줄 수 없더라도 아빠가 할 일은 하나 뿐인 듯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딸 아이 뒤엔 아빠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거 말입니다. 나는, 아빠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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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monomato.com BlogIcon 모노마토 2011.07.18 17:0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언제나 읽고 있으면 눈가가 촉촉해지는 이사님 글 ㅠㅠ
    오늘도 촉촉해지는군요 ㅠㅠ

말없는 대화, 아침을 깨우는 십 분 마사지

딸 아이는 저를 닮아 잠이 많습니다. 하긴 꼭 저를 닮아서겠습니까? 아이들은 다 잠이 많습니다. 잠이 많다는 건, 그만큼 잠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한참 성장할 이 무렵, 잠을 충분히 자야 키도 크는 법이니까요. 그런데 현실은 아이들이 넉넉하게 잠을 자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중학생, 아니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아이들은 잠잘 시간을 줄여 숙제해야 합니다. 낮엔 학원 때문에 힘들고 밤엔 학원에서 내 준 숙제 때문에 힘듭니다. 딸 아이도 꽤 유명한 영어학원에 다녔는데 숙제가 하도 많아서 매일 늦게까지 영어 숙제 하느라 잠을 못 잤습니다. 잠만 못자면 다행이지요. 숙제를 하지 않으면 수업도 제대로 듣지 못한다고 투덜대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던지. 당장 그만 두라고, 싫으면 숙제하지 말라고 아빠는 하기 좋은 말만 할 뿐, 딱히 어떤 해답을 주지 못합니다. 물론 지금은 그 학원 그만 뒀습니다만, 이젠 중학생이 되어 공부거리가 더 많아졌네요. 그래서 딸 아이는 여전히 잠을 충분히 잘 수 없습니다.

아침마다 이런데서 마사지해 줄 순 없지만 ㅋ (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hotelcasavelas/)

그러다 보니 아침이 꽤 힘듭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아이가 빨리 일어나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아이는 아이대로 힘들다고 인상씁니다. 아침부터 얼굴 찌푸리면 그 날 하루 기분 좋기는 다 틀린 일입니다. 그렇다고 저까지 가운데 끼어서 화를 낼 수는 없는 일이고.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마사지로 잠을 깨우는 것입니다.

일어날 시간이 되면 팔부터 주무릅니다. 아침인데 저도 바쁘고 오래 주무를 시간도 없습니다. 그저 오른팔부터 주물 주물, 서른 번 주무릅니다. 팔을 주물렀으면 깍지를 끼고 손을 주물러 주고요 손가락도 하나씩 당겨 줍니다. 이제 다리. 허벅지 서른 번, 종아리 서른 번씩 주무르고 가볍게 발도 서른 번 꼭꼭 눌러 줍니다. 발가락도 당겨주고 발바닥을 주먹으로 서른 번 쳐 줍니다(중국에서 발마사지 받을 때 배운 거 써먹습니다 ㅋㅋ).

이렇게 하면 오 분에서 칠 분, 조금 더 열심히 하면 십 분 정도 걸립니다. 이때까진 굳이 깨우지 않습니다. 스스로 몸을 배배 꼬면서 잠에서 깨니까요. 마지막으로 발목을 잡고 주욱 당겨 손을 위로 뻗으라고 합니다. 웬만하면 딸 아이도 팔을 뻗어 따라합니다. 저도 나름 시원하겠지요. 이제 아이를 깨워 앉게 하곤 목과 어깨를 살살 주물러 줍니다. 이제 아빠가 할 일은 끝. 딸 아이는 알아서 침대에서 내려 옵니다.

아이에게 충분히 잠잘 수 없게 만든 이 환경에 저는 화가 납니다. 정말 일어나기 어려워 할 땐 학교고 학원이고 다 때려치우라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빠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렇게 아이를 달래 깨우는 것 밖에 없네요. 그나마 다행인 건, 이렇게 깨우면 대부분 별 탈 없이 일어납니다. 아침을 인상 쓰면서 보내지 않아도 좋고, 시간에 서둘러 쫓기지 않아도 되지요. 단, 아빠는 십 분 정도 서둘러야 합니다.

아이를 주무르다 보면, 아이를 유심히 관찰하게 됩니다. 지난 번에 넘어져 다친덴 어찌 됐는지, 손톱 부러진 건 어찌 됐는지, 다이어트 한다고 운동하는데 살은 좀 빠졌는지…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을 눈과 손으로 알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하루에 십 분, 아니 오 분이라도 내 아이를 유심히 들여다 본 적이 별로 없었던 듯 싶습니다. 아이가 크고 나서는 더 그렇지요. 아빠는 아이를 주무르면서 아이를 보고, 아이는 비록 비몽사몽일지라도 아빠를 가까이 느낄테니, 이것 역시 좋은 대화 방법일 겁니다. 하루 십 분 마사지, 아빠는 참 많은 걸 얻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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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ritachang.tistory.com BlogIcon Rita 2011.06.29 18:5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자상한 아버지, 현명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글을 읽는 내내 미소지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1.06.30 08:33 신고 수정/삭제

      아이고, 고맙습니다 ^^
      잘 못하니까, 그냥 이런 글이라도 씁니다 ^^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 Favicon of http://blog.daum.net/bouquetdor BlogIcon 풍류대장 2011.07.02 08:4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도 아이를 충분히 잠재우지 못하는 이 환경에
    화가 나 죽겠어요..아무래도 한 잔 해야겠어요..빨랑 벙개 때려주세요..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1.07.03 11:58 신고 수정/삭제

      그러시지여. 제가 다다음주에
      잠깐동안 기러기 아빠가 되니~ ㅋㅋ
      찐하게 한 번 때리겠습니당 ㅋㅋ

  • Favicon of http://wipen.net BlogIcon 하늘높이 2011.07.21 08:4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예비 딸 아빠인데 좋은 공부 하게 되었네요 잘 읽고 다녀갑니다

  • BlogIcon catnn 2015.09.08 21:1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감동적이라서 댓글남깁니다
    너무 자상하시네요ㅎㅎ
    제가 아침에 일어나는것이 무척이나 힘들어서 검색하다 이글을 보았는데 저희 부모님도 이랬더라면ㅜㅜ

집안 일은 도와주는 게 아니야, 같이 하는 거지

솔직히 고백합니다. 저는 이런 글 쓰면서 무척 가정에 충실한 남편인척 하지만, 절대 아닙니다. 집에선 거의 손 하나 까딱 안하고 같이 맞벌이 하는 아내가 집안 일을 더 많이 합니다. 물론 아내는 오후에 출근하느라 오전에 좀 여유가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좀 불공평할 정돕니다. 일단 이런 거에요. 

식구들 밥 챙기기, 빨래, 장보기, 재테크, 경조사, 관리비 납부… 라고 하나씩 꼽으면서 생각해 보니, 저는 월급만 다 갖다 줄 뿐 뭐 하는 게 없고 집안 경영이랄 수 있는 일은 죄다 아내가 합니다. 물론 이런 저런 일이 있을 때 상의는 합니다만 그 때도 대부분 ‘자기가 알아서 해’라고 합니다. 쓰다보니 이거 영 쓸데없는 남편이로군요.

하지만 100%는 아니어도 90% 정도는 제가 하는 일이 있는데, 바로 설거지와 청소입니다. 어, 그런데 하나씩 따져보니 제가 하는 일도 좀 있긴 하네요. 집안에 디지털 기기 사고 유지 보수 하는 일, 못질하기, 전등갈기, 가구 옮기기… 와, 은근히 하는 일이 꽤 있네요(이렇게 해서라도 면피를 ㅜㅜ). 어쨌든 가끔 하는 저런 일 말고 제가 맡아서 하는 일은 설거지와 청소, 딱 두 개입니다.

응? 뭐야? 아빠가 딸에게 설거지를 가르치라는 얘기야?

아닙니다. 솔직히 저는 우리 딸은 설거지 같은 거 안 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손에 물 묻히지 않고 마님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건 말도 안되는 소망이지요. 제가 일부러 더 설거지를 하는 건, 남자들도 집안 일을 나워 해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집안 일 할 때 절대로 ‘도와준다’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아빠가 ‘한다’고 하지요. 집안 일은 누가 하고 누가 돕는 문제가 아닙니다. 식구들이 다 같이 해야 하는 일이거든요.


덕분에 딸 아이는 설거지와 청소는 으레 아빠가 하는 일인 줄 압니다(하긴 그나마도 아빠가 주말에 집에 있을 때나 하는 거지만요). 주말에 제가 가끔 꾀가 나서 가위 바위 보로 설거지 하자고 하면 쌩~하고 도망갑니다. 용돈으로 꼬셔도 꿈쩍 안 합니다. 그래도 아빠가 자꾸 조르면 이렇게 받아칩니다. ‘평일 저녁엔 내가 설거지 하거든?’ 아빠는 꼬리를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현실은 이렇습니다. 아내는 집에서 점심까지 먹고 출근합니다만, 가끔 시간에 쫓기다 보면 점심 설거지를 못하고 갑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 아이가 어느 날 부턴가 이걸 치우기 시작했던 거지요. 꿍얼거릴 법도 한데, 아무 소리 안하고 깨끗이 치워 놓는 아이를 보니 그저 대견할 따름입니다. 무엇보다도 대견한 건 이 녀석이 설거지를 ‘엄마’일이 아니라 집안 일이라고 생각해서 치웠다는 겁니다.

아빠들은 설거지, 청소 뿐 아니라 집안 일 좀 더 해야 합니다(솔직히 저도 반성 많이 합니다). 특히 아들 있는 아빠들은 더 열심히 하세요 ^^. 아들들이 집안 일을 ‘여자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우리 일’이라고 생각할 때 딸들이 더 행복해집니다. 아들만 있는 아빠들은 시키지 말아야지 라고 마음 먹으셨겠으나 ^^ 아마도 다 아실 겁니다. 딸이, 엄마가, 아내가, 며느리가 행복해야 그 집안이 더 행복하다는 걸요. 아빠가 설거지를 해야 하는 이유,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요?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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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네모 2011.03.04 01:3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도 돕는다는 말을 참 싫어합니다. 돕는다... 남의 일에 힘을 보탠다는 말이죠. '남의 일'이라는 말, 나와 남을 구분하는 건 언제나 참 차갑고 매정한 말입니다. 돕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거죠. 저와 비슷한 생각이 나타난 글을 읽고 묘한 느낌을 받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latinamericastory.com BlogIcon juanpsh 2011.03.06 03:3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그래서 참 많이 다퉜답니다.
    지금은 저두 설걷이와 청소는 제가 할 때가 많아졌습니다.
    빨래 너는것과 거두는 것, 그리고 접어서 수납공간에 정리하는 것도 제 몫일 때가 많구요.
    그래도 꿋꿋이 음식하는 것 만큼은 철저하게 와이프를 부려먹습니다. ㅋ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1.03.06 15:57 신고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 블로그 참 멋있게 꾸며두셨네요~ ^^

  • Favicon of http://greendayslog.com BlogIcon 그린데이 2011.09.11 09:0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제가 이 글을 왜 지금 봤을까요. ^^
    저도 레이님처럼 바른 부모가 되어야 할텐데... 항상 많이 배웁니다.

    벌써 내일이 추석이네요. 가족과 함께 즐거운 명절 보내시고~
    곧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

또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방법

아빠가 딸에게 가르쳐야 할 인생을 즐겁게 사는 방법 15
비행기, 또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방법

- 항공사 카운터서 보딩 패스를 받아야 해. 요즘 같은 성수기엔 사람이 많으니까 좀 서둘러야 하고. 자, 아빠를 따라와.

항공사 카운터를 찾아 줄을 서고, 기다리고, 드디어 카운터 앞에 섰습니다. 짐을 올려주고 아이에게 말합니다.

- 언니한테 e티켓 주고, 이젠 니가 설명 들어.

아무리 중학생이라도 어린 여자애 혼자 가니까 직원이 이거 저거 좀 챙겨주는 분위깁니다. 아마 원하는 좌석을 물어보는 듯.

- 아빠, 자리는 창가, 복도 어디에 앉을까?
- 창가가 좋을 듯 하지만 아무래도 움직이기 편한데는 복도 쪽이 좋을 텐데. 이번엔 창가에 앉고 올 때는 복도 쪽에 앉으렴.

그렇게 짐을 붙이고, 티켓을 받고 출국장 입구에 섰습니다. 비행기가 처음은 아니지만, 혼자 외국 나가는 건 처음이니까 아무래도 걱정입니다. 아이도 다 아는 거지만 몇 번씩 설명합니다.

- 여기 나가면 가방 검사하는 데가 있고, 거기 지나면 아저씨가 박스에 앉아서 여권 보는 데가 있지?
- 아빠, 다 알어. 걱정 마세요. 나 들어갈테니.

아빠를 안심시키려는 듯, 딸 아이는 아빠를 한 번 안아주고는 씩씩하게 출국장으로 들어갑니다. 가끔 열리는 문 틈으로 아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빼꼼 쳐다 봅니다. 가방을 검사대에 올려 놓고 소지품도 올려 놓고 아이가 게이트를 통과합니다. 어느 틈에 아이가 보이질 않습니다.

더 해 줄 것이 없는 줄 알면서도 출국장 문 앞을 떠나지 못합니다. 혹시라도 아빠를 부르며 다시 나오면 어쩌나 쓸데없는 걱정을 버리지 못합니다. 빼꼼 열린 문 틈을 아무리 들여 봐도 딸 아이의 노란 옷은 이제 흔적도 없습니다.

- 밥이나 먹자.

새벽 같이 집에서 나서느라  밥도 못 먹은 아내를 붙들고 식당으로 갑니다. 딸 아이도 밥을 먹여 보냈어야 했는데 출입국 심사대에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어 먼저 들여보낸 것이 계속 마음에 걸립니다. 아빠를 닮아 혼자 뭐 먹기 싫어하는 주변머리라서 틀림없이 그냥 버틸텐데, 이럴 땐 진짜 DNA가 원망스럽습니다.

공항 4층 식당에 앉으니 출국장 안쪽 면세점이 보입니다. 언제쯤 들어가려나 머리를 삐죽 내밀고 있는데 삐릭 문자가 옵니다. 아빠 나 면세점 있는데 왔어. 응? 벌써?

이렇게 빨리 들어갈 줄 알았으면 밥 먹여 보낼 걸. 다시 후회가 밀려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있습니까. 전화를 걸어 식당에서 보이는 게이트 쪽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십여분 지나 쫄래 쫄래 걷는 아이가 보입니다. 전화를 또 겁니다.

- 앞으로 조금 더 와. 거기 시계 파는 면세점 앞으로 말이야
- 아빠 어딨는데 내가 보여?
- ㅋㅋ 고개 들어봐. 더 위로, 위로~
- 아! ㅋㅋㅋ”

신나게 손을 흔드는 녀석과 수다를 떱니다. 심사는 잘 했냐, 머리는 안 아프냐, 게이트 번호 확인했냐, 가다가 뭐 먹는데 나오면 사 먹고 약 챙겨 먹어라

다 아는 잔소리를 또 한 번 하고는 비행기 탈 게이트 쪽으로 보냅니다. 몇 걸음 가던 아이가 고개를 돌리고 손을 흔듭니다. 어여 가라고 손짓을 하면 또 가다가 고개를 돌리고, 또, 또, 또... 그렇게 다섯 번을 돌아보고 나서야 녀석은 뒷 모습을 보입니다.

주문한 식사가 도착했고 뜨거운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데 괜히 울컥합니다. 겨우 5주 내보내는데 뭐가 그렇게 걱정인지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합니다. 아이는 외려 씩씩하게 잘 가는데 보내는 아빠 마음은 무엇이 그리 걱정이든지요.

San Francisco Airport (1999)
(사진 출처 : 플리커 Hunter-Desportes) 이 사진은 글과 관계 없습니다. ^^

한 시간 쯤 지나 아이는 이제 비행기 탄다고 문자를 보냅니다. 자기 없는 동안 아빠 울지 말라고 농담도 건넵니다. 그렇게 아이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이제 열 세 시간 후에나 연락할 수 있겠지요. 그제서야 이것 저것 또 생각납니다.

입국신고서 쓰는 법 가르쳤어야 하는데... 로밍한 전화기 쓸 줄은 아는 걸까. 사용법 안내문 하나 넣어준 걸로 잘 할 수 있을까... 짐이 무거워서 누군가 도와줘야 할텐데... 면세점에서 저 좋아하는 초콜릿 사먹으라고 할 걸...

- 아우, 난 유학은 못 보내겠다...

마음 속 가득 쓸데없는 걱정을 떨치지 못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혼자말 하듯 툭 뱉은 말을 아내가 물고 늘어집니다.

- 어랏, 왜 마음이 바뀌셨으? 애는 내보내야 한담서? 이 땅에서 가르치기 싫담서?
- 아녀,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 내가 가르칠 것이 많아. 난 아직 내가 아는 것의 십 분의 일도 못 가르쳤다고.
- 피~

하지만, 그건 핑계란 걸 아빠도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아빠는 딸에게 가르칠 것보다 딸을 통해 배울 것이 아직도 남았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아이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 눈 앞에 보이지 않도록 비가 쏟아집니다. 하필이면 이런 날 비가 오나, 괜히 투덜도 대 봅니다. 아마도 열 세 시간, 그리고 5주 기다리기가 힘들어 투덜댄 것이 틀림 없습니다. 아이는 자라는데 아빠는 아직도 아이를 놓을 줄 모르는가 봅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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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www.yamyong.com BlogIcon 얌용 2010.07.21 00:3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떠났군요~? 한동안 적적하시겠어요...

  • Favicon of http://no1salr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10.07.21 09:0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아..보내야만 하는 건가요..ㅠㅠ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7.21 11:42 신고 수정/삭제

      ^^ 그건 결국 부모의 선택인게지 ^^

      부모의 선택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이미
      잘 알고 계시잖는가? ㅋ

  • 2010.10.21 09:27 ADDR 수정/삭제 답글

    비밀댓글입니다

작은 비밀을 만들고 공유하는 법

아빠가 딸에게 가르쳐야 할 인생을 즐겁게 사는 방법 14
작은 비밀을 만들고, 공유하는 법

고등학교 다닐 때였습니다. 그땐 탁구가 꽤 유행이어서,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던 저도  친구들과 탁구장 몇 번 갔었지요. 어느 주말이었을 텐데 탁구 치고 좀 느지막이 집에 왔는데 아버지께서 뭐하고 왔느냐고 물으시기에, 탁구 좀 쳤어요, 대답했었습니다. 제 딴에 아버지는 남자니까, 탁구 친 거 정도는 아셔도 되겠다 싶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문제는 밤에 터졌습니다. 성적표를 보여 드려야 했는데 - 왜, 도장 찍어가야 하잖아요. ㅜㅜ - 성적이 좀 떨어졌던 거죠. 엄마한테 야단맞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한 말씀 하시더군요. “공부 안 하고 탁구나 치러 다니니 성적이 이 모양이지.” 아들이 운동하고 담쌓고 사는 걸 아는 엄마는 “얘가 무슨 탁구를 치러 다녀요.”라고 의아해하셨지요. 그때 아버지 말씀이 저한테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다 알고 하는 소리야.”

그 뒤로 저는 아버지께 제 비밀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버지와 사이가 나빠졌다는 뜻은 아닙니다(아이를 키워야 부모 마음을 안다고 ^^ 요즘은 아버지와 진짜 사이가 좋습니다). ^^ 하지만, 제 딴에는 아버지와 탁구라는 비밀 정도는 공유해도 되겠다고 싶어 말한 건데 그 비밀이 무기가 되어 돌아오니 많이 서운했던 겁니다. 어쩌면 아버진 이 일을 기억도 못하실 테지만, 제겐 잊을 수 없는 작은 상처로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Bert and Ernie: Let me tell you a secret / 20090917.10D.53994.P1 / SML
비밀은 속닥이는 법이지요 ^^ (사진 출처 : Flickr에서 See-ming Lee 李思明 SML님)

그래서일까요. 저는 딸 아이가 제게 한 이야기를 아내에게 거의 하지 않습니다. 학교 얘기, 친구 얘기, 용돈 얘기, 갖고 싶은 것들... 그런 저런 얘기들을 할 때면 저는 그냥 듣고, 조언할 것이 있으면 하고, 엄마 몰래 용돈도 주고, 가능하다면 필요한 것도 사주고 그럽니다. 아이 입장에선 엄마한테 할 얘기가 있고, 아빠한테 할 얘기가 있는 법이지요. 주로 엄마한테 말하기 곤란한 것들을 아빠에게 할 텐데(물론 반대 경우도 있겠지요 ^^) 그걸 아빠가 엄마한테 다 말하면 딸 아이가 아빠에게만 말한 의미가 사라지는 겁니다. 가끔 아내는 둘이서만 속닥댄다고 투덜대지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도 딸하고 비밀 만드셔. 물어보지 않을 테니까”

비밀을 공유한다는 건,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나쁜 비밀을 공유해선 안 되겠지요. 하지만, 그저 소소한 비밀이라도 공유하면 상대가 훨씬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 비밀이 지켜진다는 걸 알면 또 얘기하고 싶은 건 당연한 거겠지요. 딸 아이는 아빠한테 한 얘기는 절대로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걸 압니다. 그러니까 아빠한테는 믿고 말해도 된다는 걸 아는 거지요.

아빠란 존재는 ‘딸 아이가 세상을 살다가 문득 뒤를 돌아볼 때 어김없이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항상 내 뒤엔 아빠가 있어, 라고 든든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 거죠.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든 일을 겪게 마련이고, 때론 눈물도 흘려야 합니다. 때론 좌절하고, 넘어지겠지요. 그때 옆에서 눈물을 닦아주고 일으켜주고 다독거리는 역할은 친구나 애인이나, 다른 가족들이 할 겁니다. 아마도 그들이 아빠보다 훨씬 더 잘 할 테니까요.

하지만, 가끔은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기 어려운 비밀 때문에 힘들 수도 있겠지요. 아빠와 딸이 소소한 비밀을 만들고 지키는 연습을 해야 하는 건 바로 이런 때를 위해섭니다. ‘아빠는 비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라고 딸 아이가 믿으면,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아이는 반드시 뒤를 돌아볼 겁니다. 거기엔 내가 언제 무슨 말을 해도 다 들어줄 아빠가 서 있다는 걸 딸 아이는 잘 알고 있으니까요.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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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me2day.net/cheimonas-/ BlogIcon cheimonas 2010.07.14 13:4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정말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이네요.
    많은 부모님들께서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비단 부모자식간이 아니라 남녀간에도 통용되는 말이로군요.

  • Favicon of http://no1salr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10.07.14 15:5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근디 이넘의 아들내미는 비밀로 하기로 해놓구 마님한테 몰래 꼰지르고..ㅡㅡ;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7.14 18:45 신고 수정/삭제

      그래서 아빠가 딸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들이라네. 아들들은 안 먹혀 ㅋㅋ

  • Favicon of http://blog.daum.net/bouquetdor BlogIcon 진주애비 2010.07.14 17:3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나이 먹어 좀 빌빌거리는 아빠를 위해 우리딸들이 아빠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전,,,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7.14 18:46 신고 수정/삭제

      하하 모든 아빠들의 꿈인가요 ㅋㅋㅋ

  • Favicon of http://pp19in.egloos.com BlogIcon 뽀다아빠 네모 2010.07.16 11:2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음! 그렇죠...아들은 제가 비밀 얘기를 하면...그걸 빌미삼아 엄마에게 일러바치고 지가 엄마의 신임을 얻습니다....저는 아내에게 혼나고....

    그뒤로 아들에게 제 비밀을 털어 놓지 않습니다만.....

    이 글을 읽으니....아들 비밀은 제가 지켜줘야 겠다는 생각이 확실히 드는 군요....

  • Favicon of http://brucemoon.net BlogIcon bruce 2010.12.23 09:2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비법을 하나 얻어가는 느낌인데요 ^^ 저도 명심하겠습니다

부족한 유전자를 극복하는 법

아빠가 딸에게 가르쳐야 할 인생을 즐겁게 사는 방법 12
부족한 유전자를 극복하는 법

현대 과학이 인체의 비밀을 속속들이 파헤치면서 인체에는 더 이상 신의 영역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동안 풀지 못했던 인체의 비밀이 유전자와 각종 신경, 호르몬 등등(이외에도 수많은!) 때문이라는 걸 밝혀냈으니까요. 엣지 재단의 존 브록만이 편집한 ‘위험한 생각들’이라는 책에는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만을 골라 태어나게 할 수도 있다는 그야 말로 위험한 생각도 나옵니다. 솔직히 할 수 있다면 좋은 유전자만 골라내는 게 더 좋을 지도 모르겠지요. 하지만, 여전히 사람은 유전자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존재 가치가 있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 아이에게 가장 미안한 건 좀 모자란(나쁜 이라는 표현보다는 이게 좀 나을 듯 해서요) 유전자를 전해줬을 때일 겁니다. 아빠를 닮아 눈이 나쁘고, 엄마를 닮아 키가 작고 뭐 이런 것들 말입니다. 신체 뿐이겠습니까.  아빠를 닮아 체육과 미술을 못하는 걸 보면, 진짜 유전자 꺼내서 때려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네, 저는 체육과 미술 진짜 지겹게 못했습니다. ㅜㅜ

이 아이는 제 딸이 아닙니다 ㅜㅜ 사진은 글과 아무 상관 없습니다 ㅜㅜ 출처 : Evoo73 by Flickr


어제 저녁, 딸 아이가 갑자기 축구공을 찾습니다. 창고에서 축구공을 꺼내 온 녀석이 방에 들어가 바닥에 이불을 깔더니 공으로 뭔가를 열심히 연습합니다. 아, 설마? 불현듯 악몽이 떠오릅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체육 시험. 양 발로 축구공을 차 올리던 그 시험. 정말 열심히 연습했는데도 두 개 밖에 차지 못했던 그 시험. 설마  딸 아이도 그 시험을??

불길한 예상은 꼭 맞는 법입니다. 문 틈으로 엿보니 무릎으로 열심히 공을 차올립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한 개 밖에는 못 찹니다. 에휴, 저걸 어쩌나, 속으로 혀만 끌끌 차다가 제 할 일을 하고는 삼사십분 뒤에 다시 방에 가봤더니, 이 녀석이 울고 있는 겁니다. 체육 시험은 내일이고 열 한개를 차야 만점인데 아무리 차도 한 개 밖에 못 차겠다는 겁니다. 이미 벌겋게 변해버린 허벅지가 딸 아이의 악전고투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어쩝니까. 아빠도 정말 못한게 그거 였는데.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고 해서 아이를 밖으로 불러냈습니다.

“자, 아빠가 시범을 보일테니 한 번 보렴”

시범은 보이나 마나였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빠는 겨우 두 개를 찰 뿐이었습니다. 그것도 말도 안되게 웃기는 포즈로 말이지요. 눈물이 비쳤던 아이는 살짝 웃는가 싶었지만 금새 또 시무룩합니다.

“공을 못차는 건 네 잘못이 아니야. 아빠가 못해서 그런 거야. 그래서 진짜 미안해.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잖아? 아빠랑 같이 한 번 해보자”

그렇게 다시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차지는 못해도 볼 줄은 안다고, 가만 보니 딸 아이가 공을 너무 높이 튕깁니다. 게다가 한 번 튕기면 겁이 나서인지 바로 공을 잡아 버리고요.

“공을 너무 높이 튕기지 말고 무릎 바로 위보다는 허벅지 쪽으로 차면 되겠다. 그리고 공은 잡지 말고 찬다고 생각해”

말도 안되는 코치를 했지만 그래도 하다 보니 좀 됩니다. 혼자서는 한 개 밖에 못 차던 녀석이 어느 틈에 두 개를 찹니다.

“좋아 좋아, 두 개까지 차고 세 개 째는 어떻게든 발만 갖다 대. 그럼 세 개는 차겠다”

목표는 세 개. 만점이라는 열 한개에는 택도 없는 일이지만 한 개보다는 나은 거 아닙니까. 옳지 옳지 하면서 토닥 거리는 틈에 세 개도 차고, 어쩌다 네 개도 차고, 세상에.. 여섯 개까지 찼습니다. 아빠는 해도 안되는 걸 딸 아이는 해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 하는 게 있으면 못하는 것도 있는 법입니다. 물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키도 크고, 날씬하고 거기에 예쁘기까지 한 사람도 있습니다. 신의 축복인 걸 어쩝니까. 우리는 우리 대로 신이 준 선물이 있는 거고, 그걸 열심히 개발해 세상에 봉사하는 것이 사람이 할 일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체육 시험 결과가 궁금해서 문자를 했더니 배시시 웃으며 3개를 찼다고 답이 왔습니다. 좀 더 찼으면, 그저 아쉽긴 했습니다만 아무렴 어떻습니까. 부족한 부분은 솔직히 인정하고, 대신 해야 할 땐 최선을 다하기를 가르칠 뿐입니다. 유전자가 좀 모자라면 어떻습니까.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극복할 수 있는 거고 다른 걸 잘 한다는 걸 알면 되는 거지요. 원래 세상은 사람이 하기에 따라서 얼마든 달라지는 거니까요.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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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monomato.com BlogIcon 모노마토 2010.06.16 10:0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같으면 야 그것도 못하냐~ 이러면서 구박했을텐데..
    언제나 보면서 오늘도 큰 감동을 느끼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6.16 10:08 신고 수정/삭제

      ㅋ 감동씩이나! ㅋ

      물론 모노마토군은 안 그럴 거라 생각하지만 ^^
      아이들에게 절대 해서는 안되는 말 중 하나가
      야, 너 그거도 못하니, 일걸? ^^

      땡스!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10.06.16 18:4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역시 멋진 아빠!!!

    ※ 체육과외가 왜 생겼는지 알겠어요..ㅡㅡ;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6.17 09:05 신고 수정/삭제

      ㅎㅎ 하긴 요즘 아들들은 축구하려고해도
      어린이 축구 클럽에 가입해야 한다더만.

      우리 땐 공만 들고 나가면 아무데서나 찼는데! ^^

  • Favicon of http://www.iloveuk.kr BlogIcon 행복한꼬나 2010.06.17 08:3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너무 자상하세요. :) 아빠가 못해서 그래, 아빠의 유전자거든,라고 말 해주는 아빠. 멋져요.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6.17 09:05 신고 수정/삭제

      그런데 부작용이 있다네.
      이 녀석이 이젠 뭐하다가 안되면 다 아빠 탓을 한다는! ㅜㅜ

      잘 지내지?? ^^

  • Favicon of http://angelboy.tistory.com BlogIcon 천사보이 2010.06.17 12:5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트랙백타고 왔어요.
    '문자해서 3개찼다는 답장'이라는 내용에서
    따뜻함을 느꼈어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6.17 14:18 신고 수정/삭제

      ^^ 어떤 트랙백을 타고 오셨나요? ^^

      고맙습니다

  • 진주애비 2010.06.27 19:3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97번째 이글을 읽으며
    레이님의 공주님사랑에 감명을 받고 있습니다.
    아울러 부족한 자신의 애비노릇에
    깊은 성찰과 후회의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상한 아빠의 표본 레이님..언제나 건강하세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6.28 16:48 신고 수정/삭제

      아마, 새 글 업데이트가 없는데 대한 꾸중이신게죠 ^^

      이번 주엔 꼭 맥주 한잔 하자고요 ^^

  • Favicon of http://macmagazine.kr BlogIcon JMHendrix 2010.06.30 17:0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제 아들, 또는 딸의 새끼손가락이 길기만 바랄 뿐입니다. ㅋ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7.01 08:54 신고 수정/삭제

      손가락이 짧더라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걸세~

      물론, 손가락이 길기를 바라면서! ^^

휴대폰은 즐겁게 살기 위한 도구일 뿐이란다

아빠가 딸에게 가르쳐야 할 인생을 즐겁게 사는 방법 11
휴대폰은 그저 즐겁게 살기 위한 도구일 뿐이란다

어느 날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는데 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내가 심각한 목소리로 빨리 집에 와야 겠다는 겁니다. 왜냐고 물어도 그저 빨리 오라고만 하고 전화를 끊습니다. 이게 도대체 뭔 일이여, 라고 생각하다가 내가 뭘 잘못한 게 있나,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지난 번에 뭐 지른 거 들통 났나? 최근엔 거짓말 한 거도 별로 없는데? 에이 설마 그걸까? 그건 도저히 알 방법이 없는데? 별 오만 잡생각을 하면서 나름대로 이 건은 이렇게, 저 건은 저렇게 대처해야지 작전을 세우면서 집으로 갔습니다.

집안 분위기가 싸늘합니다. 어라, 이거 사태가 심각하네, 라는 생각이 드니까 솔직히 뭐 잘못한 거도 별로 없는데(!) 덜컥 겁이 났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최대한 무게를 잡고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라고 물었습니다. 가시 돋힌 대답이 날라 옵니다. “당신 딸이 나한테 거짓말 했어요”  이럴 땐 꼭 당신 딸이랍니다.

순간 긴장은 풀어지고, 에휴 살았다 싶어서 속으론 웃음이 났습니다만 겉으론 여전히 근엄하게, “도대체 무슨 거짓말을 했는데?” 라고 물었습니다. “얘는 어딨어?” 라며 아이 방을 열어 보니 매로 쓰이는 구두주걱이 널부러져 있고 아이는 한 쪽 구석에 앉아 훌쩍입니다. “자자 흥분하지 말고(ㅎㅎ 저도 좀전까지는 완전 초긴장 상태였으면서도) 살살 얘기해봐...”

결론은 이겁니다. 딸 아이가 진짜 다니기 싫어하는 영어학원을 빼주고 집에서 자습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놔뒀더니 이 녀석이 말로는 공부한다 해 놓고 지난 6개월 동안 공부는 하나도 안 하고 맨날 휴대폰과 닌텐도로 게임하고, 휴대폰으로 인터넷하고 뭐 그랬다는 겁니다. “아니, 공부를 했는지 안했는지는 어떻게 알어?” 라고 물었는데(사실 성적이 떨어진 건 아니거든요) “그건 다 내 방법이 있어”라며 아내는 더 말을 안 합니다. 눈치를 보니 방법은 무슨 방법입니까. 무서운 엄마가 아이를 협박해서 자백을 받아낸(!) 거죠.  엄마가 무슨 검사도 아니고 췟!

데이터 존 프리 요금제 해 줬다고 구박을 받다니


“아빠가 휴대폰에 데이터 요금제 해주는 바람에 애가 저렇게 됐잖아”라는 게 아내의 주장입니다. 그러니까 아빠도 책임이 있으니 알아서 이 사태를 정리하라는 거지요. 이럴 땐 빨리 상황을 정리해야지 방법이 없습니다. 일단 닌텐도와 휴대폰 압수, 집에서 자습은 하기 어려우니 다시 학원 갈 것. 이 문제는 아빠가 더 이상 도와줄 수 없고 모든 권한을 엄마에게 넘기겠다라고 말하니 딸 아이의 울음이 다시 터집니다.

요즘 아이들 제일 무서운 벌이 휴대폰 뺏는 거랍니다. 딸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아빠가 모든 권한을 엄마에게 넘겼으니 백날 말해봐야 소용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지요. 결국 아이는 결국 휴대폰 없이 한 달을 살았습니다. 한 달 살아보니 예상과 달리 아이는 집에 있는 인터넷 전화 쓰면서 잘 버티는데 도리어 어른들이 불편해졌습니다. 아이가 학원이다 어디다 다녀야 하는데 정작 어른들이 연락을 못하니 마음이 급한 거지요. 결국 한 달 반만에 딸 아이는 데이터 요금제는 해지했고 수신만 가능한 상태로 휴대폰을 돌려 받았습니다.

솔직히 저는 아이에게 디지털 기기를 사주는데 인색하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은 디지털 기기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기왕이면 더 빨리 친해지고 더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데이터 존프리 요금제를 해 준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덕분에 아이는 휴대폰으로 검색도 잘 하고, 게임이나 벨 소리도 잘 찾아 받습니다. 게다가 이제 휴대폰 다루는  솜씨는 아빠보다 더 낫습니다. 이거 어떻게 하더라, 고민하고 있노라면 어느 틈에 그 기능을 찾아서 가르쳐 줍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미 오래 전부터 손녀에게 휴대폰 강습을 받았고 잘 가르친다고 소문나서 몇몇 할머니 친구분들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기능과 사용법은 환경만 만들어 주면 딸 아이가 혼자 알아서 잘 익힙니다. 그러나 휴대폰 문화는 아이가 알아서 배우지 못합니다. 아빠는 스스로, 공공 장소에서는 시끄럽게 통화해선 안된다라고 가르쳤음을 자부합니다. 덕분에 딸 아이는 공공장소에서 당연히 이어폰을 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휴대폰을 절제하는 법 만큼은 아직 못 가르쳤습니다. 아이에게 휴대폰의 모든 기능을 다 찾아주는 날(데이터 요금제는 결국 뺐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디지털 기계를 쓰는 이유는, 사람들끼리 더 잘 얘기하고 더 편리하게 살기 위한 거란다. 기계에 빠져 기계만 쳐다 보고 살아선 안되는 거야. 아빠는 네가 필요한 기계를 앞으로도 얼마든지 사주겠지만, 니가 그 기계를 다루길 원하지 그 기계에 빠져 사는 걸 바라진 않는다. 그런 문제가 또 생긴다면 아빠는 또 기계를 빼앗을 수 밖에 없을 거야. "

솔직히 딸 아이는 예배 시간이나 수업 시간에 지루하다며 아빠에게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식구들 식사하는 자리에서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기도 하며 잠자기 전 침대에 누워 휴대폰 음악을 듣습니다. 이 아이의 삶에서 휴대폰을 뺀다는 건 사실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휴대폰이 사람을 위한 것이지, 사람이 휴대폰을 위해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을 아이가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아빠는 아이가 이 사실을 잊지 않도록 꾸준히 잔소리를 할 겁니다. 어쨌거나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아빠가 이런 기계를 사주는 물주가 틀림없으니까요. 이 정도면 잔소리할 자격은 충분히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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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0.05.14 13:0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앞으로 물주로서 평생 잔소리 하시려구요??? 아이에게 선물 했으면 그 물건을 쓸 권리도 부여하셨으니 줬다 뺐었다는 하지 말으셔야져 ㅋ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5.14 13:05 신고 수정/삭제

      ㅎㅎ 물건을 쓸 권리는 줬지만
      물건의 노예가 될 권리는 주지 않았습니다! ㅋㅋ

      가끔 잔소리하는 재미도 없으면
      물건 사주는 재미도 없죠~ ㅋㅋ

      고맙습니다!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10.05.14 15:0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정현이는 핸펀 사달라말라 말도 없었는데..
    저희가 애 잃어버릴까봐 하나 붙여줬거든요..
    서연이는 여섯살때부터 어여 핸펀 사내라고 갈굼을..ㅠㅠ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5.14 15:15 신고 수정/삭제

      ㅎㅎ 오빠가 쓰는 걸 보면 서연이도 쓰고 픈게지. ㅋㅋ
      처음엔 다 어른들이 불편해서 사준다네.
      없으면, 여전히 어른들이 불편하고 ㅜㅜ ㅋㅋㅋ

  • Favicon of http://monomato.com BlogIcon 모노마토 2010.05.14 15:2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1년 후에 세현이에게 아이폰을 줘야겠습니다 ㅠㅠ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5.14 16:20 신고 수정/삭제

      아이폰 쓰다 쓰다 고장나면 줘도 되겠네.
      그러나 속 마음을 보니 세현이에게 아이폰 주고
      아빠는 새 폰을 사겠다는 뜻인게지? ㅋㅋ

  • 진주애비 2010.05.21 19:0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왜 애가 혼나는데
    내가 더 혼나는 기분이 드는건지...왜.왜.왜 ㅡㅡ.

책은 말이야, 절대 지루한게 아니야

아빠가 딸에게 가르쳐야 할 인생을 즐겁게 사는 방법 10
독서 - 책을 읽는 즐거움

“아빠,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4권 커튼 다 읽었어?”
“응? 아빠 요즘 바빠서 못 읽었는데?”
“그거 범인이 XXXXXX야 ㅋㅋㅋㅋ”
“야! 그거 얘기하면 아빤 무슨 재미로 읽으라고! 너 진짜~”
“어~ 그럼 나 다 얘기한다~ 15권은...”
“으악! 안 들어, 안 들어!”

요즘 딸 아이가 저를 놀려 먹는 것 중 하나입니다.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 같이 읽을 책을 고민하다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을 조금씩 사주고 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아합니다. 덕분에 아빠도 옛날에 읽었던 오리엔트 특급 살인 같은 명작을 다시 읽고 있지요.

‘책 많이 읽어야 훌륭한 사람 되는 거야’라고 우리는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그래서 어릴 적 부모님들은 아이들 머리 맡에서 책을 읽어주고, 수백만원씩 주고 전집 세트를 사주고, 도서관엘 데리고 다니면서 이런 저런 책을 읽게 해줍니다. 이도 저도 안돼면 책 대여점을 이용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대부분 아이가 어릴 때 뿐입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많은 부모들이 책 읽으라는 말을 안 합니다. 아니 어쩌면 못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학원 다니랴 공부하랴 쫓기는 아이들에게 책 읽으란 말은 어쩌면 사치입니다. 그래놓고 말은 잘 합니다. “책 읽어야 훌륭한 사람 되는 거야.” 하지만 안 읽습니다. 아빠가 안 읽는데 아이보고 책을 읽으라니요.

그래서 쓴 방법이 아이와 같이 책을 읽는 거였습니다. 제일 처음에 같이 읽은 건 이원복 선생님의 먼나라 이웃나라였고요, 60권짜리 만화 삼국지도 같이 읽었습니다. 해리포터 시리즈도 읽었고... 그냥 읽으면 재미 없으니까 중간 중간 퀴즈 내기도 합니다. 제일 쉬운 건 인물 퀴즈입니다. 맹획이 누구냐? 뭐 이런 거지요. 그러다 보면 퀴즈에서 이기려고 진짜 별 얼토당토 않는 인물을 찾아냅니다. 축융부인이 맹획의 아내라는 거, 이젠 절대 안 잊습니다.

한 번은 딸 아이가 제가 읽던 다카노 가즈야키의 추리 소설을 읽어보겠다 하더군요. 특별히 내용에 문제될 것이 없어서 그러라 그랬더니 완전 반응이 뜨거운 겁니다. 어린이용으로 번역한 셜록홈즈, 아르센뤼팽 시리즈를 좋아하던 아이였으니 다카노 가즈야키는 좋아할 수 밖에 없겠지요. 그 뒤로 아이는 제가 읽는 책들 몇 권을 따라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전세가 역전된 거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 천사들의 제국, 신까지 읽고는 아빠가 자기 몰래(!) 재미있는 책만 읽는다는 사실을 눈치챈 겁니다.

이런 책들 보다 의미 있는 책을 읽혀야 하지 않나고 아내는 가끔 얘기합니다. 물론 저도 그러고 싶죠. 그래서 저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사서 읽고는 아이 방에 꽂아 놓습니다. 책이 있으니 언젠가는 읽겠지 라는 생각으로요. 하지만 쳐다 보지도 않는 듯 해서 한 번은 위대한 개츠비 다 읽으면 엄청난 용돈을 주겠다고 꼬셨는데 결국 스무 쪽도 못 읽고 나자빠졌습니다. 어려워서 못 읽겠답니다. 하긴 아빠도 어려운데 아이에게 쉽겠습니까. 덕분에 위대한 개츠비는 이제 딸 아이에게 지루하고 재미없는 책으로 찍혔습니다. 아이는 앞으로 위대한 개츠비는 쳐다 보지도 않을 겁니다.


책이 어려워 읽지 않는 것보단 재미있는 책이라도 읽는 게 훨씬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고른 책이 바로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입니다. 내용도 별 무리 없고 아빠가 읽기에도 재미있고요. 이 녀석, 아빠 보다 읽는 속도가 빨라 먼저 읽고 나서 아빠를 놀려 먹는 재미까지 생긴 겁니다. 다음 번 시리즈 빨리 사오라고 요즘 노래를 부릅니다. 덕분에 아빠는 매달 책 값 대느라 술 값을 줄이고 있을 정도입니다.

아빠는 딸에게 지금보다 많은 걸 주고 싶습니다. 여행도 자주 다니고 싶고, 가르쳐야 할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 건 정말 많지 않습니다. 몸도 무겁고(아, 움직이기 싫어하는 이 넘의 디앤에이가 딸에게 유전될 줄이야!) 상황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 가장 좋은 건, 누가 뭐래도 책입니다. 책 속엔, 진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빠가 아이에게 직접 가르칠 수 없는 수많은 보물들이 있습니다. 그 보물을 찾는 눈을 길러주는 것, 아빠로서 이보다 보람찬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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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12 21:44 ADDR 수정/삭제 답글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5.12 23:16 신고 수정/삭제

      앗! 그런 일이! 곧 잘 해결되겠지요!^^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10.05.13 10:2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일단 아빠가 책을 좀 읽어야겠죠..ㅠㅠ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5.13 13:49 신고 수정/삭제

      그거이 뭐 어려운 일이라고~
      그냥 죽죽 읽으시면 됩니다 ㅋㅋ

  • Favicon of http://greendayslog.tistory.com BlogIcon 그린데이 2010.05.17 15:5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제 블로그가 다음에 스팸으로 등록된 모양입니다. --; .com만 들어가면 댓글이고 트랙백이고 아무것도 안되네됴. ㅠㅠ 암튼.. 팬더가 그려진 해문출판사의 전집을 열심히 사모으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얼마전 터키 여행에서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의 배경지를 우연히 가보게 되었는데 감회가 새롭더라구요. 추리소설 좋아하신다면 따님과 함께 가보셔도 좋을 듯. 손트랙백 남깁니다. http://greendayslog.tistory.com/203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5.17 17:30 신고 수정/삭제

      이런 이런. 도대체 왜 그렇게 됐을까요??
      사실 터키는 정말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에요.
      딸이야 지가 크면 알아서 갈테니
      전 애인하고 가보고 싶어요! ㅎㅎㅎ

    • Favicon of http://greendayslog.tistory.com BlogIcon 그린데이 2010.05.18 09:43 신고 수정/삭제

      앗 그 애인은 혹시...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5.18 10:16 신고 수정/삭제

      으응?? 누구 아시는 분 있으세요? ㅋㅋㅋ

  • 하루 2010.05.19 00:4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정겨운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me2day.net/wowpc BlogIcon WOWpc 2010.06.10 10:2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책을 많이 읽은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어휘력에서 차이가 나더군요. 제 딸아이는 이제 고작 4살이긴 한데, 아이 엄마가 극성을 부려 6개월때부터 책을 사서 읽어주곤 했었거든요.
    2달 차이나는 동네 친구랑 이야기 하는걸 비교해보면, 확실히 표현력에서 차이가 납니다.
    책 거의 읽지 않은 그 아이는 일상대화의 말은 참 잘 하는데 감정표현이 제 아이와 차이가 나더라구요~

    책 읽는게 습관이 되다보니 잠자리에 들기전에도 한 대여섯권 동화책을 가져와서 읽어달라고 합니다... 좋아라 하는거라 읽어주긴 하지만, 잠자리에선 다섯권 이상은 잘 읽어주지 않으려고 하고 있네요~

    아직 글자는 모르지만, 엄마 아빠가 읽어주었던 내용을 되뇌이면서 혼자 책 펴놓고 중얼중얼 하고 있는 모습보면 그냥 뿌듯하기만 하네요... ^^

[책] 딸에게 전하는 12가지 부의 비법

연달아 계속 딸과 아빠의 관계에 대한 책을 읽은 건, 그저 우연이었습니다. 사실은 이 앞에 쓴 글의 소재인 ‘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라는 책을 사려고 Yes24를 뒤지다가 이 책 ‘딸에게 전하는 12가지 부의 비법'도 같이 걸린 거였거든요. 딱히 딸에게 ‘부’를 줄 방법이 없는 저로서는 ‘부의 비법'을 준다니까 오호, 이게 뭘까 그런 호기심이 발동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 펀드라는 걸 만든 짐 로저스라는 사람이 썼답니다. 이 분은 퀀텀 펀드로 떼돈을 번 후 37살 나이에 은퇴해서 전 세계를 오토바이로 돌아다녔다는데 무엇보다도 37살에 은퇴했다는 사실이 정말 정말 부럽더군요. 저도 원래 목표는 마흔 살에 은퇴하는 거였는데! ^^


여튼 돈을 많이 번 이 분이 딸에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아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한 가문 대대로 물려줄 비급(!) 같은 것일까요. 하긴, 비급이라면 이렇게 책으로 내지는 않았겠지만요.

제목처럼 12가지 섹션으로 나뉘어 딸에게 주는 충고가 이 책의 주요 내용입니다. 아빠가 딸에게 마치 편지로 말하듯 그렇게 쓰여졌는데요,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지 마라, 네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라, 세계로 나가 넓은 세상을 보아라… 등 12가지 제목만 읽어보면 사실 좀 뻔한 이야기입니다.하지만, 원래 이런 책들이란 다 이렇게 누구나 알 법한 내용들인거고, 그걸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 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솔직히 ‘기획’해서 만들어낸 냄새도 좀 납니다.

아무래도 성공한 아빠여서 그런지, 이 분의 충고는 냉정하고 날카롭습니다. 감성적인 충고 보다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충고가 많습니다. 앞서 읽은 ‘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가 감성적인 면을 가르치라는 조언을 하고 있다면 이 책은 그 반대의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이런 겁니다. ‘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에서난 아빠가 다른 남성들의 귀감이 되고, 다른 남성들과 인간적으로 교류할 것을 조언하는 반면 이 책에서 남성은 아빠가 경고를 해 줘야 할 대상입니다. ^^ 하긴 같은 남성이더라도 딸 앞에 얼쩡 거리는 남성을 어느 아빠가 좋게 볼 수 있겠습니까마는!

어쨌거나 저 개인적으로 되게 와 닿는 충고는 바로 이 것이었습니다.

‘철학을 배우고, 생각하는 법을 깨우쳐라'


사실 우리 교육 환경을 돌아보면, 생각하기 전에 먼저 외우라고 가르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왜 그런지 따지지 말고 일단 시키는 대로 외워서 공부하고, 그렇게 해서 좋은 대학 간 다음에 생각은 니가 하든 말든 맘대로 해라, 뭐 이런 분위기겠지요. 이런 교육 환경에서 철학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학교에선 정작 그렇게 배웠는데 취직을 할려니 기업은 창의적인 사람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사회에선 창의적인 사람을 필요로 하면서 정작 학교에선 획일화된 것을 가르치고 있으니 이것도 또 말이 안되는 것일테고요.

안타깝게도 이 아빠는, 현재의 교육 현실에 저항할만한 용기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저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남들 가는 대학(뭐 당연히 좋은 대학이기를 바라는 마음!) 탈없이 갈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런 교육 환경에서 늦게까지 영어나 수학 문제 푸느라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만, 대한민국에선 누구나 겪어야 하는 일이라고 위안하기도 합니다.

아빠가 딸에게 가르쳐야 할 것들이 어디 이뿐이겠습니까마는 막상 가르치자면 또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빠는 내 딸 만큼은 최고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주춧돌을 놓기 위해 오늘도 아빠는 스스로를 갈고 닦아야 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아빠 스스로 철학하지 않으면서 아이에게 철학하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일테니까요.

PS> 앞서 읽은 ‘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는 꼭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고, 이 책은 시간 나시면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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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9.08.17 11:3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요즘 딸 시리즈로 인기를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8.17 14:21 신고 수정/삭제

      흐흐 겨우 두 권 읽었는데요 뭐~ ㅋ
      저도 이런 책 하나 써볼까 봐요~ ㅋ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09.08.17 15:0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마흔 전에 은퇴하기"..
    아 왜 전 그런 생각을 못 해봤을까요..

    "최장수 샐러리맨"..
    요런 쓰잘데기 없는 꿈이라니..ㅋ

  • Favicon of http://wessay.net BlogIcon wessay 2009.08.17 21:1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소로스와 그의 친구는 헤지펀드 만들어서 환률 공격으로 돈을 벌었다는데.. 그거 아주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돈을 목적으로만 가르치는 건 아닐지요.. 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8.18 13:21 신고 수정/삭제

      여튼, 돈 번 사람이라 그런지
      충고하는 것들이 아주 짤 없다니께 ㅋㅋㅋ

      시간 나면 보시라고.
      일부러 보실 필요는 없는 듯!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