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열풍, 우리는 좀 더 냉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저는 맥북을 씁니다. 맥북을 쓴 지는 2년 쯤 됐고, 지금은 인터넷 뱅킹과 쇼핑 등 어쩔 수 없이 윈도XP를 써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작업을 맥북에서 합니다. 솔직히 윈도XP보다 훨씬 더 편하고, 속도가 느려지는 일도 별로 없고, 시스템이 죽는 일도 적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맥 OSX에 아주 잘 적응한 건 아닙니다. 파일 시스템의 차이를 몰라 폴더를 통으로 날린 적도 있고, 윈도XP에선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작업들도 억지로 맥으로 하려다 보니 시간이 더 걸린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작업도 윈도XP에서 하는 것보다 더 빠르고 편리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맥북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러다 보니 애플의 다른 제품들에도 호감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모양새 하나 끝내주는 마이티 마우스, 보는 사람마다 부러워하는 애플 키보드는 기본이고, 무선 인터넷 공유기 겸 백업 장치로 타임캡슐을 쓰기 시작하면서 소위 말하는 애플빠가 되어 갔습니다. 당연히 저도 아이폰을 기다립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에서 나온 폰들은 맥북과 연결해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맥을 지원하지 않으니까요. 휴대폰이 맥을 지원하면 얼마나 편할까 그런 생각 수도 없이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저 외장형 저장장치 정도로나 인식하지 주소록 저장, 스케줄 관리 같은 기능은 꿈도 못 꿉니다. 휴대폰에 연결해 쓰자고 불편한 윈도XP를 다시 쓸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요즘 아이폰이나 통신 서비스에 대해 이래 저래 말씀하는 분들을 보면, 무척 많은 분들이 아이폰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글들이 애플과 아이폰의 정책은 다 옳고, 그걸 못 쓰게 만드는 우리나라 통신사나 방통위 등등은 죄다 나쁜 넘이라는 식입니다.

저는 국내 통신사를 편들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저도 불만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애플도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것처럼 착한 기업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아이폰을 들여오기 위해 애플은 엄청난 양의 기본 물량과 보조금을 통신사에 요구한다고 합니다. 그 부담이 과연 통신사에게서 끝날까요? 아닙니다. 그 부담은 반드시 소비자에게 돌아옵니다. 시장 구조상 통신사들은 소비자들의 돈을 모아 애플에게 갖다 주겠지요.

제가 애플 제품을 즐겨 사용하긴 합니다만 모든 제품이 다 맥북처럼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마이티 마우스는 A/S가 된다고 해도 1년 이상 쓰는 건 불가능했고 휠에 먼지가 자주 끼어 걸핏하면 휠이 말을 듣지 않아 진작에 MS 마우스로 바꿨습니다. 또한 저는 해당 없지만 애플 키보드는 손톱 긴 여자 분들은 타이핑하기 쉽지 않은 모델입니다. 타임캡슐은 초기 세팅 잡기가 쉽지 않고, 게다가 매뉴얼도 그리 친절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일단 A/S가 발생하면 좀 골치 아파집니다. 기본적으로 대체 품목을 주지 않기 때문에 짧게는 1주일, 길면 2, 3주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 동안 어떡합니까? 마우스가 A/S 들어가면 할 수 없이 새 마우스를 사야하고 노트북이 A/S 들어가면 다른 컴퓨터로 작업을 해야 합니다. 한 번은 타임캡슐이 고장났는데, 저희는 이게 없으면 무선 인터넷은 물론 데이터 저장 및 공유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교환 제품을 안 주면 안된다고 거의 전화로 한 시간을 싸워 교환 제품을 먼저 받기도 했습니다(이 얘기를 들은 어떤 애플 사용자는, 저에게 정말 대단하다고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는!). 그러나 저는 정말 절박했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만 했었을 뿐입니다. 

만일 이런 상황에서 아이폰이 들어 왔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것 역시 전자기기인 이상 틀림없이 A/S가 발생할 것인데, 지금의 애플 제품들처럼 A/S가 된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아이폰 특성 상 수리가 안되고 일대일 교환이 되어야 하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확인하는 동안 기다려야 하고, 데이터 백업도 문제가 되고, 그 때 가서 우리나라 회사들이 A/S는 잘해, 뭐 이런 얘기를 하고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을 지도 모릅니다.


추측건데, 아이폰에 대해 환상을 가진 많은 분들은 아마 아이팟 터치는 많이 쓰셨을지 몰라도 실제로 아이폰을 써 본 분믄 많지 않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폰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나 기대 심리는 나중에 부메랑으로 다가와 소비자들의 더 실망에 빠뜨릴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저 아는 몇 몇 분은 아이튠즈로만 데이터를 전송해야 하는 아이팟 터치에 대해 심한 불만을 표하기도 합니다. 윈도XP에서 아이튠즈, 이거 썩 편리한 인터페이스라고 하기 어렵거든요. 아이폰이 들어오면 똑같은 불만들이 반드시 생길 겁니다. XP의 문제든 아이튠즈의 문제든 말입니다.

애플도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입니다. 게다가 한국 시장은 애플에게 그리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라서 애플 입장에선 굳이 몸이 달아야 할 이유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애플과 아이폰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갖게 되고 이러한 환상이 실제 구매로 이어진다면, 그 이후에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피해는 소비자가 고스란히 떠 안게 됩니다. 원래 기대가 크면 실망도 더 큰 법이니까요.

 우리의 통신 서비스 현실 때문에 아이폰 열풍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만(물론 그래서 저도 아이폰을 기다립니다 ^^), 우리는 애플과 아이폰에 대해 좀 더 냉정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폰은 절대 우리의 불만을 한 번에 해결해주지 못할 테니까요.  게다가 들어왔다고 해도 아이폰을 쓰기 위해 우리는 애플이 요구한 과한 비용을 지불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 비용 지불할거면, 차라리 다른 거 쓰겠다, 이런 말씀하시는 분들이 더 많을 지도요. ^^  / FIN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9.09.14 18:2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비슷한 경험으로 공감합니다.. 그 옆에서 똑같이 겪었으므로.. 저도 마이티마우스 결국 로지텍으로 바꿨죠.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9.14 23:57 신고 수정/삭제

      하하, 이건 다 사장님의 멘트에 영감을 받아서 쓴 거죠! ㅋ

  • 모노 2009.09.15 02:4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애플에 대한 이런저런 불만들도 '아이폰이 출시되지 못하는 현실'보다야 덜할거같습니다...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9.09.18 15:59 신고 수정/삭제

      ^^ 저는 아이폰 하나 때문에 우리나라 산업 전반이 가치 절하 되는 것이 더 안타깝던데요?

  • Favicon of http://www.unny.com BlogIcon montreal flower delivery 2009.09.24 01:3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냉정하게 잘 선별하면, 애플이 한국에서는 아주 잘하겟져, 무엇보다도 기존 폰들도 더 잘하려고 노력할거 같아여

  • 히데오 2009.09.24 07:5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애플의 고압적인 A/S 는 전세계가 다아는 사실입니다. 다만, 아이폰을 막고 있는 우리 통신환경 그리고, 다운 스펙으로 나오는 울 나라 핸드폰... 그런 사실들에서 방통위가 욕 먹는 거죠...

  • 박도영 2009.11.02 08:5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냉철한 지적이신 것 같습니다.
    어차피 애플도 기업일 뿐입니다. (고수 레벨의 기업 ^^)
    철학과 디자인이 남다르다고 해도 기업의 기본목적이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애플에 대한 높은 loyalty는 이런 부분들을 상쇄하고도 남는 것 같아요..^^;
    (맥북 1년째 쓰는데, 아직 적응중인 1인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