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순정만화, 사랑은 서두르는 법이 아니다

내가 영화를 고르는 조건은 딱 세 가지다. 확실히 부시던지, 확실히 벗기던지, 확실히 웃겨야 한다. 영화에 대해서 좋고 싫은 것이 분명한 나로서는 이 세 가지 조건을 벗어난 영화는 거의 보지 않는다. 멜로라거나, 휴먼 드라마라거나 뭐 이런 영화들을 내가 안 보는 이유는, 단 하나, 재미없기 때문이다. 내가 빠져들지 못하니 지루하고, 항상 뻔한 결말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이런 경험들이 몇 번씩 쌓이다 보면 왠만해서는 절대로 시도하지 않게 된다.

얼핏 생각나는 몇 가지 영화들은 이런 거다. 타이타닉(진짜 이거 보다가 졸았다!), 마이걸(영화 보는 도중에 앞 좌석 왠 남자가 훌쩍 훌쩍 하는 것이 너무 웃겨서 영화는 기억에도 없다는!), 셰익스피어 인 러브(소재는 호감이 갔는데 영화는 젠장!), 외출(내가 왜 이걸 봤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된다!) 등이 내 기억 속에 있는 최악의 영화들이다.

물론 어쩌다 봤는데 예외인 경우도 많다. 포레스트 검프는 내 스타일이 확실히 아닌 데도 재미있게 봤고(주로 톰 행크스 나온 영화들이 그렇다. 씨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 터미널 등등. 아, 아폴로 13은 재미 없었지만 ^^), 비포 썬라이즈(세상에나!)는 정말 나로서도 예외인 영화다. 최근엔 맘마미아도! 가끔 그렇게 취향을 거스르면서도 재미있는 영화가 있긴 하지만, 실패할 확률이 높으면 도전하지 않는 법 아닌가. 나이를 먹을 수록 더 도전은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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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 솔직히 난 강풀이라는 만화가는 들어는 봤지만, 그의 작품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고(어쩌면 인터넷에서 한 두번 스쳐 지나긴 했겠지만 ^^) 진짜 순정만화 따위는 좋아하지도 않는 타입이라 애초 이 영화에는 관심도 없었다.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이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난데없이 우리 회사 대빵인 짠이아빠님이 이 영화가 보고 싶다고 예매를 하라는 거다. 짠이아빠님 취향이 가끔 독특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예를 들어 청연 같은 영화를 추천하는 걸 보면!) 뜬금없이 순정만화라니. 아우 난 안 봐. 이렇게 잘라 말해놓고 봤는데, 어랏, 다른 직원들이 모두 본다는 거다. 직원 수도 얼마 안되는데 이렇게 되면 소외감이 엄청나게 밀려든다. ‘’따'를 당한다는 건 이래서 두려운 거다.

결국 나도 순정만화를 보는데 끌려(!)갔다. 사실 원작이 어떤 내용인지 잘 모르니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기대할 것도 없었고 사전에 넘겨짚을 것도 없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연상연하 커플이 알콩 달콩 재밌게 살아간다는 거다. 만화가 아니고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물론 살다 보면 이런 사랑을 하는 분들도 많이 있다. 그들의 사랑에 박수를!)을 너무 힘들지 않게, 치열하지 않게 영화는 그려냈다. 전체적으로 느린 대사들, 잔잔한 말투로 영화는 지나치게 가슴 아프기 보다는 애잔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결론은 해피엔딩이다.

그래서 재미있었냐고 어쩌냐고! 따져 묻는 분들에겐 이렇게 말해야 겠다. 솔직히 몰입하진 못했다. 이런 영화 또 보자고 하면, 더 볼 생각은 없다. 잔잔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빠져들고, 그 속에 나를 동화시킬 정도의 감동이나 찡함은 없었다. 그러나 같이 간 사람 중 절반은 정말 재밌었다고 하니 이건 취향의 문제라고 할 수 밖에.

딱 하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다. 나도 한 번쯤은 삶을 다시 시작해 볼 수 있을까. 도저히 존재할 수 없는 만약의 경우이긴 하지만, 그렇다면 참 예쁘게 살 자신은 있는데…. 그런 거다. 엘리베이터에 풍선을 넣고, 여름 하늘에 눈 스프레이를 뿌려대면서 철 없이 예쁘게 살아보는 거. 누군가는 더 나이 먹기 전에 한 번 뿌려 볼만 하지 않겠냐고 하지만, 나이 삽십에 뿌리는 것과 사십에 뿌리는 건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십에 뿌리는 것이 오십에 뿌리는 것보다 낫다고 한다면야… 즐!이다. 젠장.

마지막으로 개콘에 나오는 ‘’독한 것들’’ 흉내나 한 번 내야 겠다. 난, 순정만화 보고 연애하는 것이 부럽다고 생각한 사람들 환상 다 깨 놓을 거야. 연애 시작하고 일 년은 좋지? 영화는 1년만 그리고 그 뒷 얘기는 없지? 그 뒤로 삼십 년은 싸우면서 살 걸? (독해~) 그리고 고등학생 중에 그렇게 예쁜 애들은 절대 없어. 걔네들 공부 잘 하게 냅두고 괜히 집적거리지나 마셔! (웃자는 얘기다 ^^)

  • Favicon of http://greendayslog.tistory.com BlogIcon 그린데이 2008.11.28 07:1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역시... 짠이아빠님과는 애인관계셨군요. ㅎ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11.28 15:13 신고 수정/삭제

      다행스럽게도 제 옆에 앉은 분은.. 짠이아빠님이 아니셨습니다! ㅋㅋ

    • Favicon of http://www.paperon.net BlogIcon 편집장 2008.11.28 16:09 신고 수정/삭제

      미브 단체 관람이었습니다. 근데 레이님 옆자리에 저도 아니었네요. ^^;

  • Favicon of http://www.paperon.net BlogIcon 편집장 2008.11.28 08:4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독하세요. ^^;;

  • ^^ 2008.11.28 12:4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끝까지 보시느라 애쓰셨습니당~ ㅋ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11.28 15:13 신고 수정/삭제

      ㅎㅎ 안 졸은 것이 어딘디요~ ㅋㅋ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8.11.28 15:1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캬.. 당신 입장에서 이 영화 마지막까지 살아 있었다니.. 독해.. !!!

  • Favicon of http://ㅠblog.empas.com/bouquetdor BlogIcon 진주애비 2008.11.29 11:1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난...
    지난주 큰애 생일을 그냥 보냈을뿐이었고
    그래서 달달 볶였고
    내일 순정만화를 보기로 점찍었을 뿐인데
    레이님은 별로 재미없다고 하시고..

    난 지금 이글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몰라
    계속 쓸뿐이고....아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11.30 16:59 신고 수정/삭제

      아이들하고 보기엔 좋지요! 진주아빠님만 희생하시면 될 듯. 아빠란 원래 그런 것 아니겠어요> ㅋㅋㅋ

  • Favicon of http://www.sunblogged.com BlogIcon easysun 2008.11.29 19:4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타이타닉', '세익스피어 인 러브'는 저의 원 오브 페이버릿인데.. 술취향은 비슷한데.. 어쩜! 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11.30 17:00 신고 수정/삭제

      이지썬님은 여자고, 전 남자니깐요! ㅎㅎ(이것도 뭐 딱히 맞는 대답은 아닌 듯 하지만)

  • Favicon of http://www.midorisweb.com BlogIcon 미돌 2008.11.29 23:1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그냥 가벼운 영화같은데요~ 전 유지태를 무척 좋아하는데 캐릭터가 어쩐지 뜨는듯. ㅎㅎ
    전 영화는 휴먼 스토리 즉 드라마를 주로 보는데요 제가 나중에 실패하지 않는 선택법을 알려드리지요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11.30 17:01 신고 수정/삭제

      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보시는 영화 맞습니다. 관객에게 과한 감정을 요구하지도 않고, 그냥 잔잔히 풀어가니깐요. 누군가는 이게 강풀 만화의 장점이라던데요~

  • Favicon of http://www.kimdahee.com BlogIcon 다희 2008.11.30 22:5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제목 공감해요. ^-^
    닭살스러운 노래를 듣거나 이런 영화를 보게 되면 그래서 얘네들 10년 뒤에는 어떤 모습일까?
    설마 아직도 이벤트하면서 매일매일 사랑을 속삭이고 있진 않겠지이런 생각이 들어요.ㅎㅎㅎ

    그래서 은근하게 사랑을 표현하던 옛날 노래나 고전 영화가 마음에 많이 남는 것 같구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12.01 11:02 신고 수정/삭제

      10년 뒤에도 변치 않으면 좋은 거죠~ ^^

  • Favicon of http://blog.empas.com/diabloti BlogIcon 정현아범 2008.12.01 09:0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강풀 모르셨던 건 좀 거시기하네요..ㅎㅎ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12.01 11:03 신고 수정/삭제

      모르지는 않았어. 알고는 있었는데 만화를 본 적이 없다 이거지... 인터넷으로 만화 보는 건 영 어색해서리... ㅋㅋ

  • Favicon of http://afterdigital.tistory.com BlogIcon 조선얼짱 2008.12.02 16:4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와 영화 고르는 기준이 비슷하시군요.
    전 왕 블록버스터거나.
    왕 흥행기록을 하거나,
    왕 재미나게 웃기거나
    거든요 ..
    과거에는 수준있다 이건 이 장르에서 꼭 봐야 한다 이런걸
    탐닉했지만 ㅋㅋ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단체관람 콘텐츠는 누가 선정한건가요? ㅋㅋ
    전 한국영화에 대한 생각을 바꾼게 쉬리 였어요 .. 그 사이 사이에도
    주옥같은 명작들이 있었지만 쉬리 이후엔 균질화가 되었다는 ..
    아주 옛날엔 한국영화=방화 라고 불렀잖아요 ..
    그 시기엔 정말 방화를 보면 극장에 방화를 저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었는데..
    한국영화^^좋아졌습니다.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12.02 16:47 신고 수정/삭제

      앗! 저도 딱 쉬리를 보고 나서 한국 영화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그런 생각 했었는데요! ㅋㅋ

      단체 관람 콘텐츠는 대빵님의 의지였습니다~ ㅋㅋ 제가 개인적으로 맨날 취향 별나다고 놀리는... ^^

  • Favicon of http://paxxstyle.com BlogIcon PAXX 2008.12.05 15:4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오늘 저는 '눈먼자들의 도시'를 예매했지만, 이 영화도 괜찮을거 같군요!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12.05 16:49 신고 수정/삭제

      아, 그런 영화가 있었군요. 어쩐지 같은 이름의 책이 출간일이 꽤 지났는데도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더라니. ^^

  • 말짜 2008.12.06 16:4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아들넘이 이 영화같이 보러갈 여친 있음 좋겠다고 하던데..그래서 역시 내가 볼껀 아닌갑다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