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하고 부드러웠던 제주의 아침 식사

패키지로 떠난 여행이 아니라면 아침 찾아 먹기가 쉽지 않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어디든 가야 하다 보면 아침 식사는 거르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모처럼 제주까지 왔는데 아침을 거를 수는 없죠. 아침 식사로 딱 좋은 메뉴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제주에서 맞이한 첫 날 아침 찾은 곳은 서귀포 항 근처에 있는 제주할망뚝배기입니다. 오분작뚝배기가 아주 유명한 집이었든가 봐요. 구수한 된장에 오분작 2개를 비롯해 다양한 해물을 넣어 시원하게 끓여 나옵니다. 가격은 8천원(!). 아침 식사 치고는 좀 세다 싶지만 매일 아침 먹는 것도 아니고, 모처럼 여행(비록 워크샵이란 핑계를 댔지만!) 간거잖아요. 게다가 국물 한 번 먹어 보고 나니, 이 정도면 8천원 낼 만 하겠다 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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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어디, 들어 있는 걸 한 번 볼까요. 오분작 2개, 꽃게, 홍합을 비롯해 이런 저런 조개들, 미더덕… 뚝배기 먹을 때 양은으로 된 빈 그릇을 하나 주는데 이것이 해산물 껍질들로 가득 찹니다. 와, 실하다, 이런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거지요. 시원한 오분작뚝배기에 반해서 해물탕 같은 다른 메뉴들도 먹어보고 싶었지만, 일정이 짧고 갈 곳은 많다 보니 두 번 들르지는 못했습니다. 바다냄새 나는 반찬들도 괜찮았어요. 게다가 사진 찍는 걸 보시고 서비스로 내주는 반찬까지! ^^ 인심 좋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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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아침 메뉴는 비싸서 왠만하면 잘 챙겨 먹지 못하는 전복죽입니다. 몸이 정말 아프거나, 전날 술을 과하게 마신 날, 서울에 있는 죽집에서 전복죽 먹으려면 1만2천원에서 1만5천원 정도는 하잖아요. 그런데! 얼마 전 뉴스에 몇몇 죽집들이 전복이 아닌 소라 등등을 넣었다는 얘기가 있었지요. 젠장, 조그맣게 다지듯 잘라 나오니 이게 전복인지 소라인지 서울 촌놈이 구분할 수가 있어야지요. 그런데 모처럼 제주 왔으니 진짜 전복죽 한 번 먹어보자 이겁니다.

전복죽으로 유명한 집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까 성산포 항 입구에 있는 오조해녀의 집이 걸리더군요. 물론 사무실 막내 토양이님이 검색했지만요~ 성산포로 가는 해안도로를 따라 바다 구경을 하면서 느즈막히 오조해녀의 집을 찾았습니다. 오전 열 시쯤 되는 시간이라 식당엔 그리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식당 분위기는, 딱 단체 관광객 받는 그런 식당 스타일이더라고요. 테이블 쭉쭉 붙여 놓은 것이… 관광객만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라는 느낌이 드니까 살짝 불안하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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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죽 1인분에 1만5백원. 5백원은 또 뭘까, 그러면서 살짝 웃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없어도 시간은 좀 걸리더군요. 십오분에서 이십분 정도 기다렸을까, 드디어 전복죽이 나왔습니다. 어랏, 서울에서 먹던 전복죽은 흰색인데, 짙은 녹색입니다. 이건 뭘까 싶었는데 전복 내장이 들어가서 그런 거랍니다. 그럼 전복은? 하고 죽을 한 번 뒤집자 토막낸 알갱이들이 아니라 진짜 전복 덩어리들이 죽 속에 숨어 있습니다.

전복 내장의 비릿함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고 전복죽 특유의 고급스러운 부드러움이 입 안에 맴 돕니다.  쫄깃한 전복을 씹으며 죽 한 사발 열심히 숫가락직을 하다 보니 어느 틈에 바닥이 보이고, 생각보다 배도 부릅니다. 그런데 솔직히 같이 나온 김치나 반찬은 그리 썩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겠더군요. 전은 너무 식었고, 깍두기는… 좀 적응하기 힘든 묘한 맛이 났습니다. 그래서 아마 죽만 열심 먹은 듯.

힘든 여행 일정에 입 맛 잃기 쉬운데 부드러운 전복죽으로 입 맛 살리고 나니 또 다시 여행할 힘을 얻습니다. 한 번 다녀와서 다시 이 집을 검색해 봤더니, 사람이 몰릴 때는 그 식당이 다 차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양이더군요.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몰리다 보면 불친절해지고, 음식 제 때 나오지 못하고 그런 일이 생기니까 불만족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밖에요. 여유가 있다면 식사 시간을 살짝 피해 느즈막히 가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사실 이 집들은 다 유명한 집들이라 굳이 맛집으로 소개할만한 건 아니겠더군요. 하지만, 유명세 만큼 한 번쯤은 가 볼 만한 집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어쨌거나 제주의 아침들, 넉넉하니 배부르게 잘 먹은 기억만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 FIN

  • Favicon of http://lexa.tistory.com BlogIcon 하늘봐 2008.11.13 12:2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얼큰한 찌게와 걸죽하고 구수해 보이는 전복죽이 입가에 침흘리게 하네요. 허허..ㅡ.ㅡ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11.13 12:29 신고 수정/삭제

      네, 가뜩이나 또 점심시간이잖아요 ^^ 댓글 고맙습니다 ^^

  • Favicon of http://www.rabbicat.com BlogIcon 토양이 2008.11.13 13:2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사진기를 들이대니, 달려오셔서 세팅을 해주시던 아주머니가 인상적이었어요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11.13 20:02 신고 수정/삭제

      할머니가 인터넷의 무서움을 알았든갑지... ㅋㅋ

  • Favicon of http://archvista.net/ BlogIcon 아크몬드 2008.11.13 15:4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우오... 침이 꿀꺽.

  • Favicon of http://blog.empas.com/diabloti BlogIcon 정현아범 2008.11.13 16:3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 갔을 땐 불친절했던 거 같은디..
    저희 식구가 만만하게 보였던가 보네요..쩝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11.13 20:01 신고 수정/삭제

      아니 도대체 어떤 집에서 우리 정현아범네를 구박했단 말여!!! ^^

    • Favicon of http://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8.11.13 22:19 신고 수정/삭제

      음.. 사진기를 큰 놈으로 준비했어야지.. ㅋㅋ

    • Favicon of http://blog.empas.com/diabloti BlogIcon 정현아범 2008.11.14 11:08 신고 수정/삭제

      아 좀 헷갈릴 수도 있겠네요..
      불친절했던 집은 해녀의 집이었다죠..ㅡㅡ;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11.14 11:10 신고 수정/삭제

      아, 그르셨군. 해녀의 집은 워낙 관광객 대상으로 하는 집인 듯 해서 친절, 불친절의 느낌 조차 아예 없었던 듯 ^^

  • ^^ 2008.11.14 13:0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점심은 먹은듯 한데 또 배가 고픈건 사진때문만은 아니겠지요... ^^ 뚝배기에서 향기가 나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11.14 13:49 신고 수정/삭제

      향기^^까지는 아니어도, 뭐 맛있었지요~ ^^

  • Favicon of http://greendayslog.tistory.com BlogIcon 그린데이 2008.11.17 18:5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엇. 댓글을 달았던것 같은데...; 저는 오조 해녀의 집에서 첨으로 전복회라는 것을 먹어봤는데 너무 비렸던 기억이... 할머니께 좀 익혀달라고 부탁했더니 참기름과 참깨를 듬뿍 넣고 짭쪼름하게 볶아 주셔서 맛나게 먹었지만요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11.18 12:43 신고 수정/삭제

      네, 저도 뭐, 이 집에서 먹어본 건 아니지만 전복회는 비려서 잘 못 먹겠더라고요(하긴 뭐 회 종류를 잘 안 먹기도 하지만 ㅋㅋ). 그저 살짝 데쳐 먹는게 좋더라고요 ㅋㅋ

  • Favicon of http://www.paperon.net BlogIcon 편집장 2008.11.21 13:0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서울에서 먹는 전복죽의 대부분은 사실 전복맛 '소라'죽이라고 하더라구요.
    아침에 속이 매우 불편해서 전복죽을 먹을 수 있을까 했는데...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나니까 속이 든든해졌어요. ㅎㅎ

  • Favicon of http://www.unny.com BlogIcon ftd 2009.04.13 12:4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진짜 전복죽이었군요. 색깔은 맛있어보이는 색깔은 아닌데, 내장으로도 맛을 내다니 대단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