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츠비 스페셜 - 개츠비 따라 마시기


디카프리오는 멋있어. 하지만 왜 개츠비가 위대해? 


하긴 영화 뿐이랴. 원작을 읽는 사람들도 왜 개츠비가 '그레이트' 한지 이상하게 생각한다. 사랑하는 여자를 찾기 위해 돈을 벌고, 마침내 그 여자를 찾았지만 여자는 이미 결혼했고, 결혼한 여자는  그리 행복해 보이지는 않고, 여자의 남편은 바람을 피고, 당연히 개츠비는 여자에게 다시 대시하고, 하지만 누가 봐도 그 여자는 대시할 만한 가치는 없어 보이고. 결국 여자는 사고를 치고, 개츠비는 사고를 대신 짊어지고, 여자의 남편은 비굴한 방법으로 개츠비를… 뭐, 스토리만 보면 이건 완전 막장 드라마다. 그런데도 개츠비는 그레이트하고, 이 소설은 가장 미국적인 소설이라고 한다. 내가 이렇게 쓰면, 누군가는 틀림없이 이렇게 댓글을 달거다. 이런 무식한 놈. 위대한 개츠비를 뭘로 보고. 


어렸을 때 읽은 개츠비는 정말 재미없는 소설이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감이 잘 오지 않는 분위기, 어색한 번역투 문장, 그렇게 버려둔 책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나이들어 다시 읽은 개츠비는, 뭐랄까 개츠비의 치열한 삶에 공감했다고나 할까 새로운 느낌이었다. 물론 번역도 훨씬 좋아졌고.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술 얘기가 툭툭 튀어나오니, 마구 마구 몰입할 밖에. 그래서 디카프리오를 그리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이 영화는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영화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개츠비가 마셨던 술들을 따라 마시는 중이다. 


"하이볼 드릴까요?." 수석 웨이터가 물었다. 

"멋진 레스토랑이군." 울프심 씨가 천장에 그려진 장로교의 요정들을 쳐다 보며 말했다. "하지만 길 건너편이 더 좋아!"

"그래, 하이볼로 줘요." 개츠비가 웨이터에게 말하고 나서 울프심에게 말했다. "거긴 너무 더워요."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 한애경 옮김, 열린책들


더울 떄 마시는 칵테일로 하이볼만한 것도 없다. 



하이볼이 궁금하다면 -> 개츠비와 칵테일 #1 - 하이볼


하이볼은 원래 위스키와 탄산수를 섞는데 이 하이볼은 특별히 진저엘과 잭다니엘로 주문했다. 진저엘의  달달한 맛이 잭의 강한 맛을 가려주니 갈증날 때 시원하게 들이킬 수 있다. 그래, 이런 하이볼이라면 계속해서 열 잔도 마실 수 있겠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바로 그때 톰이 얼음이 가득 들어 찰랑거리는 진리키 넉 잔을 들고 돌아왔다. 

개츠비가 자기 잔을 받아 들었다.

"정말 시원해 보이네요." 개츠비가 눈에 띄게 긴장해서 말했다. 

우리는 게걸스럽게 각자의 잔을 들이켰다.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 한애경 옮김, 열린책들


진리키는 진과 라임주스를 섞는 단순한 칵테일이지만, 그래서 누구나 쉽게 만들어 마시는 칵테일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마신다고 해서 누구나 맛을 낼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은은하고 향긋한 진과 새콤한 라임을 적절히 조화시키는게 중요하다. 


진리키가 궁금하다면? -> 개츠비와 칵테일 #2 - 진리키


보통은 그냥 빌드하지만 진과 라임주스를 셰이크해서 만든 전문가의 진리키. 첫 잔인 하이볼의 달콤함을 순식간에 잊게 할, 상큼하면서도 시원한 맛이다. 



하지만 속옷이 축축한 뱁처럼 다리를 휘어 감고 땀방울이 등줄기를 시원하게 가르던 몸의 기억만은 생생하다. 이 생각은 욕실 다섯 개를 빌려 시원하게 냉수욕이나 하자는 데이지의 제안에서 비롯되어 <민트 줄렙을 마실 장소>라는 형태로 좀 더 구체화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다같이 <끝내주는 아이디어>라고 입을 모았다.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 한애경 옮김, 열린책들


설탕과 민트를 으깬 후 잭 다니엘을 부어 만든 민트 줄렙. 개인적으로 제이앤비나 짐빔 같은 미국 술을 몹시 싫어하는 까닭에 죄다 잭 다니엘로 주문. 우리에겐 좀 생소해도 미국에선 되게 자주 마시는 탓인지 메이커스 마크라는 버번 회사에서는 아예 민트 줄렙 버전을 내놓기도 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선 마시기 쉽지 않지만. 


민트 줄렙이 궁금하다면? -> 개츠비와 칵테일 #3 - 민트 줄렙


민트를 으깨고 베이스를 붓는다는 점에서 민트 줄렙이 모히토의 시초가 되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럼에도 탄산수를 넣지 않는 까닭에 생각보다 도수는 세다. 첫 잔과 둘째 잔이 아주 시원했다면 민트 줄렙은 드디어 강한 술을 마실 준비를 시켜주는 셈. 



나는 농담으로 바텐더에게 개츠비 스페셜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되도 않는 주접을 떨었지만, 영화에 힘입어 출판계가 할인을 넘어 땡처리 수준으로 위대한 개츠비를 몰아붙이는 상황에서 술 업계가 좀 묻어가는 것도 괜찮은 생각은 아닐까. 게다가 이 칵테일들은 죄다 여름에 마시기에 정말 좋은 칵테일이 아닌가. 개츠비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개츠비 스페셜을 조금 더 즐겨보리라, 그렇게 마음 먹는다. 개츠비처럼 위대하진 못해도, 누구에게나 사랑할 마음은 있는 법이니까. /  Fin  

개츠비와 칵테일 #3 - 민트 줄렙


"하지만 속옷이 축축한 뱀처럼 다리를 휘어 감고 땀방울이 등줄기를 시원하게 가르던 몸의 기억만은 생생하다. 이 생각은 욕실 다섯 개를 빌려 시원하게 냉수욕이나 하자는 데이지의 제안에서 비롯되어 <민트 줄렙을 마실만한 장소>라는 형태로 좀 더 구체화되었던 것이다."


-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랄드, 한애경 옮김, 열린책들 


찌는 듯이 무더운 어느 날, 데이지가 개츠비를 초대하고 톰은 진리키를 대접합니다. 그러나 더위에 지친 데이지는 자꾸 시내로 나가자고 조르고 그 과정에서 남편인 톰이 보는 앞에서 개츠비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사고를 저지르고 말지요. 


"당신은 멋져요" 데이지가 다시 한 번 말했다. 

데이지는 개츠비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셈이었고 톰 뷰캐넌은 이를 알아차렸다. 그는 충격을 받았다. 


자, 분위기는 슬슬 대형 사고를 치기 직전으로 달아오릅니다. 빈정이 상한 톰은 시내로 나가자며 위스키 한 병을 챙겼고 일행은 차를 나눠 타고 데이지가 추천한대로 민트 줄렙을 마실만한 장소를 고르다가 플라자호텔 스위트룸으로 갑니다. 물론 그 과정에도 복잡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생략. ㅋ 그리고 등장한 술이 민트 줄렙입니다. 


민트 줄렙은 이름처럼 민트를 넣은 칵테일입니다. 미국 남부에서 시작한 칵테일로 버번 위스키와 민트, 설탕으로 만들지요. 



온더락스 만한 잔에 위스키를 15ml 정도 붓고 민트 잎, 설탕 2스푼 정도를 넣은 후 잘 찧어줍니다(뭐, 머들러라는 전문 기구가 있으면 좋겠으나 없으면 나무 젓가락 뒤로 찧어도 됩니다 ^^). 적당히 찧고 설탕도 어느 정도 녹은 듯 하면(다 녹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설탕 가루 남아 있는 게 또 나름 매력이니까요) 얼음으로(기왕이면 잘게 부순 얼음) 잔을 채우고 위스키를 30ml 더 붓습니다. 그리고 잘 저어준 후 민트 잎으로 장식하면 끝. 얼음이 적당히 녹아 시원한 느낌이 들 때까지 저으면 됩니다만, 뭐… 내키는대로 하시면 됩니다. 


이게 민트 줄렙입니다. 줄렙은 쓴 약을 먹은 후 마시는 달콤한 음료를 말하는 아라비아어랍니다(요건 인터넷 검색 ㅜㅜ). 


이름은 한없이 달콤해 보이나 위스키 45ml에 민트 잎과 설탕 밖에 들어가는 것이 없으므로 사실 꽤 독한 술입니다. 그래서 물이나 탄산수나 토닉워터를 부어 마시기도 합니다. 여튼 만만한 술이 아니어서 무더운 날 마시면 훅 올라올 것이 틀림없습니다. 게다가 위대한 개츠비에서는 그저 민트잎과 얼음으로만 만들 것을 암시합니다. 


"웨이터가 노크를 하더니 으깬 민트와 얼음을 들고 들어왔다."


여기서 제 고민은 왜 피츠제랄드가 하고 많은 술 중에 민트 줄렙을 골랐을까 하는 거였습니다. 말도 안되는 억측을 해보자면…


버번 위스키로 만든 민트 줄렙은 가장 미국적인 칵테일 중 하나다, 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고, 데이지를 사이에 두고 톰과 개츠비가 다투는 장면을 자극하기엔 민트 줄렙의 독하면서도 달달한 맛이 잘 어울렸기 때문이겠다 라고도 생각합니다. 경계를 넘어선 사랑이란, 독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달콤할테니까요. 뭐,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  


그러나 결국 주인공들은 민트 줄렙은 입에 대지도 못한 채 파국을 향해 달려 갑니다. 사실 민트 줄렙을 마셨으면 그 비극적인 사고가 음주운전 때문이라고 우길 수도 있었을 텐데, 책에선 '위스키를 따지도 않았다'고 했으니 음주운전은 아니었겠네요. 


참고로 칵테일 레시피를 소개하면서 30ml다 45ml다 뭐 이런 얘기를 하는데, 이걸 어떻게 재서 마시란 말이냐, 하고 따지실 수 있겠습니다. 골치 아플 거 없습니다. 집에 양주잔 하나 정도는 다 있으시지요? 그게 한 잔에 30ml입니다. 그러니 30ml를 넣으려면 한 잔 넣으면 되고 45ml를 넣으려면 한 잔 반 넣으면 됩니다. ^^ / Fin 




개츠비와 칵테일 #1 - 하이볼

"그래, 하이볼로 줘요."


-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랄드, 한애경 옮김, 열린책들 중에서. 


무더운 7월 하순, 개츠비는 닉을 데리고 마이어 울프심을 만나러 갑니다. 키가 작고 납작코인데다가 코털까지 무성한(!) 울프심은, 개츠비가 비록 도박사라고 소개는 하지만, 악명 높은 갱이었지요. 닉은 울프심이 1919년 월드시리즈를 조작했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아찔한' 기분까지 느낍니다. 뭐 어쨌든. 이렇게 무서운 사람을 만날 땐 술 한 잔 마셔야 하지 않을까요. ㅋ 


이 셋이 만난 자리에서 웨이터가 권하는 칵테일이 하이볼입니다. 하이볼은 1자로 쭉 뻗은 긴 잔에 얼음을 채우고 위스키와 탄산수를 섞어 마시는 칵테일인데요, 얼음과 탄산수가 들어 있으니 아주 시원한 칵테일입니다. 여름에 마시기엔 그만인게죠. 얼음이 없던 시절에도 탄산수의 톡 쏘는 맛이 충분히 시원했을 겁니다. 위스키 30 혹은 45ml에 탄산수를 부어 가볍게 섞은 후 레몬 정도를 띄워 마시니까 만들기도 쉽고 위스키나 탄산수 종류에 따라 아주 다양한 맛을 낼 수 있지요. 



사진 속 하이볼은 어떤 작은 바에서 주문한 것인데요, 바텐더가 나름 자기만의 비법으로 만들었다고 자랑하던 버번 베이스 하이볼인데... 깜박 이름을 잊었다는 ㅜㅜ 잭다니엘과 꼬엥트로를 섞어서 잭의 독한 맛은 감추고 오렌지의 향긋한 맛을 잘 살렸더군요. 좋았습니다. 


한때 어떤 위스키 브랜드는 하이볼을 더 맛나게 마시는 방법이라며 자기네 위스키를 탄산수와 섞어 마셔라, 뭐 이런 프로모션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류의 칵테일을 왜 하이볼이라 부르냐 하면… 그 칵테일을 담는 길죽한 잔 이름이 하이볼 글래스라서 그렇습니다. 


여튼 더운 여름에 시원하게 마시기엔 딱 좋은 칵테일이 하이볼이지요. 하지만 술을 시원하게 마시려고만 하이볼 같은 칵테일을 만든 건 아닙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인 1920년대는 금주법이 판치는 시대였지요(물론 위대한 개츠비 소설 속에서는 금주법 시대라는 걸 깨닫기 어려울 정도로 술 얘기가 많이 나오지만!). 몰래 술을 마시기에 칵테일은 참 좋은 방법이지요. 마치 물이나 주스를 마시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실제로 미국에서 칵테일이 발달한 까닭이 금주법 때문이었다고들 합니다. / Fin 



  • BlogIcon 핸즈 2013.12.09 10:5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어떤 작은 바'의 사진이 낮이 익은데요? ㅋ 혹시 석촌호수 쪽의 카페루이 아닌가요?? ㅋㅋ

위대한 개츠비 그리고 민트 줄렙

괜히 그런 날이 있어. 

소설 속 주인공이 되고 싶은 날. 

어차피 주인공처럼 멋지진 않으니 

주인공을 따라 술이나 마실 수 밖에. 


위대한 개츠비를 읽다가 

민트 줄렙을 만났어. 


하지만 속옷이 축축한 뱀처럼 다리를 휘어 감고 

땀방울이 등줄기를 시원하게 가르던 몸의 기억만은 생생하다. 

이 생각은 욕실 다섯 개를 빌려 

시원하게 냉수욕이나 하자는 데이지의 제안에서 비롯되어 

<민트 줄렙을 마실만한 장소>라는 형태로 좀 더 구체화되었던 것이다.


소설 속 장면은 멋지지 않아. 

옛 연인인 개츠비와 데이지, 그리고 데이지 남편 톰. 

아슬한 삼각관계가 정면 충돌하기 직전. 

숨막히는 긴장감과 짓누르는 더위 때문인지 

데이지는 민트 줄렙을 마시자고 그러지. 


민트 줄렙 


버번 위스키 45ml

민트

설탕


버번 위스키와 민트 잎, 설탕을 잘 찧고 

얼음으로 잔을 채워 만든 

정말 미국스러운 칵테일. 


날씨가 덥진 않았지만 

왠지 민트 줄렙이 땡겼어. 



가끔 가지만 그닥 좋아하지 않는 바에서 

민트 줄렙을 시켰지. 

강한 버번향, 상큼한 민트

독한 맛 뒤에 묻어나는 설탕의 달콤함. 

그런데 솔직히 맘에 안 들었어. 


어랏? 이게 왜이래? 하고 베이스를 확인했더니 

짐빔 화이트로 만들었다더군. 

짐빔, 어릴 때 몇 번 마셨는데 

그럴 때 마다 아팠거든. 그래서 싫어해. 


베이스를 확인하지 않은 건 내 실수니까 

굳이 따지진 않았고 그냥 조금 남겼어. 

언제나 그렇듯이 

민트 줄렙 만으로 끝나진 않으니까. 


뭐 어때. 

가끔 실수로 싫어하는 술도 마시는 거 

이런 게 사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