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따라 마시기에요 - 버번 위스키


"여러분 만나서 반가와요." 부인이 목쉰 소리로 인사했다. "커피를 드시겠어요, 아니면 한잔 하시겠어요?" 아내가 자랑스러운 듯, 데이킨의 눈에는 정겨운 빛이 감돌았다. 

"오다 보니 무척 춥던데요." 맥이 주섬주섬 말했다. 

순금 의치들이 반짝였다. "그러실 줄 알았어요. 한잔하면 나아질 거에요."

부인은 위스키 한 병과 칵테일용 컵 하나를 꺼냈다. "각자 따라 마시기에요. 술잔 높이보다 더 따를 수는 없으실 테죠."

술병과 잔이 돌았다. 데이킨 부인은 마지막으로 자기 잔을 단숨에 들이켜고는 술병의 마개를 닫고 도로 작은 찬장에 가져다 두었다. 


- 존 스타인벡, 의심스러운 싸움, 윤희기 옮김, 열린책들 중에서 


존 스타인벡의 의심스러운 싸움. 전 미국 역사를 잘 모르지만 ㅜㅜ 1930년 대 공산주의 운동이 한창인 시기의 이야기입니다. 


착취당하는 노동자를 모아 파업을 일으키려는 맥과 짐이 또 한 무리의 노동자들 지도자인 데이킨을 처음 만나러 갑니다. 때는 찬 바람이 부는 늦가을. 바람은 강하고 차지만 노동자들은 변변한 옷 조차도 없었겠죠. 꽤 추웠을 겁니다. 그때 데이킨 부인이 내놓는 건 위스키. 아마도 버번 위스키일 겁니다. 미국이니까요. 


알아서 취향껏 한잔씩만 따라 마시라고 말하는 데이킨 부인의 센스가 재밌습니다. 한잔씩 돌려 마셨다는 얘기만 읽어도 왠지 몸이 훈훈한 것 같은 느낌이 들지요. 그런데 저는 참, 이해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장면 뿐 아니라 서양 드라마 같은데 보면 남자들이 사무실에서 온더락스 잔에 얼음도 없이, 안주도 없이 쌩으로 위스키 한잔씩 따라 무슨 물이나 주스 마시듯 마시잖아요? 그런 장면이 하도 멋있어서 저도 사무실에서 좀 따라해 봤습니다만! 일단 한잔 드릴까요 하면 손님들이 놀라 까무러치고, 설령 드신다는 손님이 있어 같이 마셔도 그 독한 맛에 콜록 콜록 기침을 하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안주도 없이! 아무리 술을 좋아해도 저는 아직까지 그 경지는 아닌 듯. 그 술 맛있게 마시는 장면은 아무리 생각해도 술 회사들의 로비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저 혼자 생각입니다. ㅋ 


버번 위스키 얘기를 좀 할까요. 위스키는 혹시 뭘로 만드는지 아세요? 술자리에서 제가 이렇게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거의 대답을 잘 못합니다. 원래 위스키는 보리로 만듭니다. 네, 맥주 만드는 그 보리요. 과정이 좀 복잡하긴 합니다만 보리를 발효하면 맥주가 되고, 증류하면 위스키가 됩니다. 그래서 보리로 만든 위스키를 몰트(Malt) 위스키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보리가 없을 때도 있잖아요? 원래는 위스키에 세금을 열 붙이니까 도망가서 보리 말고 다른 곡물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어쨌든 보리 대신 귀리, 호밀 같은 곡물로도 위스키를 만들었답니다. 그걸 그레인(Grain) 위스키라고 부르고요. 그런데 보리 위스키를 먹다 보니 곡물 위스키가 아무래도 좀 맛이 덜한 것 같아서 둘을 섞기 시작했대요. 그랬더니 가격대 성능비가 훌륭한 위스키가 태어났다 아닙니까. 그걸 섞었다고 해서 블렌디드 위스키라고 합니다. 발렌타인, 조니워커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섞은 위스키입니다. 


청교도들이 영국을 벗어나 미국에 딱 왔는데 보리가 있을 턱이 없지요. 가만 보니 옥수수 천국이더라 이겁니다. 말이 먹는 귀리(!)로도 술을 만드는데 옥수수로는 못 만드랴 싶어서 담았더니 아, 이게 또 나름 맛이 괜찮더라 이거지요. 이 술을 처음 만든 켄터키 주 버번 지역 이름을 따서 버번 위스키라 부르기 시작했답니다. 지금은 미국에서 나는 위스키를 그냥 버번 위스키라고 부르는데, 미국 알콜 관련 법에 버번이라고 부르려면 미국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답니다. 



미국 하면 떠오르는 위스키 중 하나가 잭다니엘입니다. 짙은 갈색에 초콜릿 향을 뿌리는 이 술을, 저도 30대 초반엔 엄청 마셨습니다. 미국 술이니까 잭다니엘도 버번이라고 부르면 되겠거니 하지만, 잭다니엘은 테네시 위스키라고 합니다. 테네시 주에서 만들어서 그렀다는 건데요, 큰 차이는… 증류한 술을 사탕단풍나무를 태워 만든 숯으로 한 번 걸러낸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콜릿 같은 진한 향과 맛이 나는 거라고요.  


데이킨 부인이 내놓은 위스키를 버번일 거라고 추측한 건, 가난한 노동자들이 물건너온 비싼 스카치 위스키를 마시진 못했을 거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어쨌든 미국인들이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잘 견디도록 버번 위스키도 나름 한 몫하지 않았을까요? 미국이 버번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건,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소주를, 엄청 구박하면서도, 여전히 사랑하는 것처럼요. / Fin

슬픈 날엔 라프로익

괜히 그런 날이 있어. 

정말 슬픈 날. 


사람으로도, 

다른 어떤 무엇으로도 위로 받을 수 없고 

그저 혼자 마음 속으로 꾹꾹 

치미는 슬픔을 눌러야 하는 날. 


맥주거품처럼 밀고 오르는 슬픔을 

더는 누르기 힘들어 누군가를 불러내고 말았다. 

혼자선 더 이상 이겨낼 자신이 없었으므로. 


이런 날엔 술만큼 도움되는 것도 없다. 


잘 아는 바에 앉아

가장 슬픈 날엔 뭘 마시면 좋겠냐 

되도 않는 청승을 떨다 

라프로익을 시켰다. 


많이 드실래요?

아니요. 한 잔만요. 


바텐더는 라프로익 쿼터 캐스크를 권했다. 

작은 통에서 숙성해 맛이 더 진하다는 설명과 함께. 


라프로익 쿼터 캐스크 

싱글몰트

스코틀랜드 아일라 

48도 

온더락 대신 스트레이트로. 


라프로익. 

흔히들 스모키 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소독약 같다 하고 

더 심한 누군가는 락스 같다지만 

이 날 만큼은, 제단에 피운 향 같았다. 



잔을 들어 빙빙 돌리면 올라오는 향기가 

목구멍이 켁, 하도록 스며드는 그 향기가 

슬플 땐 더 울어도 된다고 

그렇게 나를 다독이는 듯 싶었다. 


울진 않았다.

대신 취했다.  


이런 게 사는 거다. 

  • Favicon of http://philomedia.tistory.com BlogIcon 필로스 2012.11.21 15:3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분위기가 전해 오는군.. 레이토피아에 글이 다시 올라오니 반갑구려...

  • 2013.02.26 06:10 ADDR 수정/삭제 답글

    비밀댓글입니다

잭다니엘 싱글배럴 이야기

제가 쓴 잭다니엘 이야기는 전부 두 가지입니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올드넘버 세븐하고 이번에 옮겨오는 싱글배럴하고 총 두 가지인데요, 이 두 가지 정도는 알아야 잭다니엘 마니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오래 전 이 글도 다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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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썼던 잭다니엘 이야기를 혹시 기억하실라나요? ^^ 국내에 수입되는 잭다니엘은 크게 3가지가 있는데, 잭다니엘 올드 넘버 세븐 - 흔히 잭다니엘로 알려진 바로 그 넘 -, 선물용으로 나온 1리터짜리 잭다니엘 크래들, 17년산 위스키에 비교할 수 있는 잭다니엘 싱글 배럴이 그 주인공이지요. 잭 매니아로서 싱글 배럴을 꼭 먹고 싶었었는데, 어제 드디어 그 소원을 이루었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들이 3명 있습니다. 물론, 그 때부터 지금까지 만나는 친구들이 몇 명 있기는 하지만, 이 넘들 하고 만나는 것처럼 끈끈하게 만나는 넘들은 없습니다.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하게 자라더니, 이제는 각 분야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어릴 때부터 같이 컸던 성장기에 대한 공유와 기독교라는 공통 분모가 우리를 묶어주는 것 같습니다. 술 얘기를 하면서 신앙의 기반을 언급하자니, 쫌 쪽팔리기도 합니다만, 관계의 끈끈함을 묘사할라면 할 수 없이 치러야 할 희생이라 생각됩니다(쓰면서도, 참 내 별 쌩 난리 부르스를 떨고 있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쩝).

한달 반 전쯤에 장인어른이 돌아가셨을 때, 먼 데까지 찾아와 저를 문상해 준 친구들이어서 - 하긴 다른 넘들은 안 와도 이 넘들은 안 오면 안되는 분위기겠지만서두 - 이번엔 내가 한 번 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더랬습니다. 원래는 1차를 거하게 쏘고 2차를 싸게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한 넘이 늦게 온 데다가, 1차로 가기로 한 킹크랩 집에 사람이 너무 많은 관계로 - 절라 비싼 집이라 예약 안 해도 될 줄 알았더니, 미어 터지드만여… - 낙지 볶음으로 때우고, 늦게 온 한 넘을 만나 잘 가는 바 - 클럽하우스, 이 집 얘기도 한 번 쓴 적이 있습니다 ^^ - 로 직행한 것이지요.

가면서 부터 별렀지요. 내 오늘은 기필코 '싱글 배럴'을~ 하고 말입니다. 클럽하우스로 가면서, 그리고 술을 주문할 때까지도, 그리고 그 뒤에 술을 마시면서도, 우리 넷 중 가장 변태스러운 넘이 와인을 먹자고 칭얼댔지만, 이것이 지가 쏠 것도 아님서~ 하는 속말을 무쟈게 되내이면서 그냥 씹었습니다. 내 오늘 벼르고 있는 술이 있는데 와인은 뭔 와인…

술을 주문하기에 앞서, 한 마디 했지요. 내 오늘은 아주 특별한 넘을 쏜다. 내가 평소에 무쟈게 먹고 싶었던 넘인데, 느네들하고 처음으로 먹는 것이니 영광으로 알아라, 뭐 저는 이런 뜻으로 말했습니다만,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습니다. 평소에 벼르고 별러서~ 어쩌구 했지만, 머러 그런 걸 먹냐? 라는 식의 반응이 돌아올 때, 말은 안 했지만 폭탄을 만들어 이것들을 다 주금으로 인도하리? 하는 악마의 유혹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잭다니엘 싱글 배럴… 드디어 그 홀쭉하지는 않지만 야리야리한 네모난 병이 제 앞에 왔습니다. 플라스틱 뚜껑에 검은 비닐^^로 성의 없이(!) 쌓인 잭다니엘 올드 넘버 세븐과 달리 이 넘은 병 마개부터 뽀다구 나게 생긴 데다가 코르크 마개더군요… 오예~ 같이 앉은 넘들도 첨 보는 술이라며 희한해 하고, 일단 그 은은한 색깔에 감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잔을 앞에 받아 두고, 한참을 향을 맡았습니다. 올드 넘버 세븐이 좀 거친 향이라면, 확실히 부드럽고 은은한 향이 오르더군요. 잭다니엘 특유의 초콜릿 향은 다소 약한 듯 싶었지만, 그 뒤에 받쳐오는 위스키 특유의 향이 단지 향기 만으로 취하게 만드는 듯 했습니다.

첫 잔을 절대로 꺾지 않는 습성상(!) 일단 톡 털어 넣었습니다. 오예~ 가슴을 내지르듯 타오르는 기분 좋은 통증과 함께 온 몸에 퍼져오는 짜릿함… 이래서 내가 잭다니엘을 좋아한다니까, 하는 감탄을 절로 일으키게 했습니다.

같이 간 친구 넘 하나는, 이 좋은 술을 머러 콜라에 타 먹냐며, 계속 스트레이트를 고집하더군요. 야, 이건 47돈데? 그랬더니 잠깐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서두, 여전히 스트레이트로 승부를 걸더군요. 이 넘아, 나도 늦게 왔으면 너처럼 스트레이트로 승부 걸 수 있으~ 속으로만 한마디 야리고는 잭콕을 만들어 홀짝 홀짝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싱글 배럴이라는 이름처럼 이 넘은 하나의 통에서 나온 넘으로 만들었다는군요. 이 통 저 통의 원액을 섞어서 만든 게 아니라, 한 통에서 나온 넘으로만 만들었다는 뜻이니까, 통마다 특성이 다를 경우 맛도 조금씩 다르겠거니 라고 생각이 되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그 통마다의 차이를 느낄 정도로 미세한 감각을 지니지는 못했구요… 어쨌거나 각 병마다 집어넣은 날짜, 통 번호 같은 것들이 써 있다고 하는데, 어제는 그냥 처음 먹는 기분에 너무 좋아서 그런 걸 확인하지 못했네요. 남겨 뒀으니 다음에 가면 꼭 확인 해야지…

하여튼 기분 좋게 마신 날이었습니다. 싱글 배럴의 부드럽고 인상적인 향과, 제가 너무도 좋아하는 달콤, 시원, 알싸한 치즈의 맛이 기분을 너무 좋게 했구요…

역시 잭다니엘이었습니다! ^^ / FIN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7.05.07 10:1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나원 이 좋은 술을 며칠전에는 쭈꾸미 집에서 숯불에 쭈꾸미 구워 먹으며 플라스틱 물잔에 마셨다는거..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05.07 15:11 신고 수정/삭제

      쭈꾸미라도 괜찮았으면 ㅋㅋ 여튼 진짜 좋은 술이죠?

  • Favicon of http://blog.empas.com/diabloti BlogIcon 정현아범 2007.05.07 11:3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전 왠지 이넘 마시면 쏘주 마시는 듯한 느낌이..
    그래서 그날 쭈꾸미랑 마시면서도 별 이상하지 않더라는..^^
    또 한판 할까요..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05.07 15:11 신고 수정/삭제

      그럼 그럼. 이번엔 제대로 된 집에서 제대로 한 번 해보자구~ ^^

  • Favicon of http://daisy.pe.kr BlogIcon Daisy 2007.05.07 14:3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흠, 싱글배럴사러 면세점에 꼭 들러야겠어요. ㅎㅎㅎ
    (하나 배우고 갑니다. ^__^)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05.07 15:12 신고 수정/삭제

      아마 제 기억엔 면세점에서 70 - 80 달러 사이였던 것 같다는 ^^

  • 픽맨~ 2011.06.23 20:4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지금 네셔널지오그래픽에서 잭다니엘 술에 관한 특집을 방송하네요.
    잭다니엘에게 증류법을 가르쳐 준 사람이 루터교회 덴 콜이라는 목사랍니다.
    당시는 금주법을 시행하고 있던때라 양심이 있어서 자기는 밀주를 관두고 밑에 전도사로 있던 잭 다이엘에게 기술전수를 해 일찍은 나이에 해준거라네요.
    재다니엘 자신도 증류공장을 지어서 남북전쟁 당시 북군에 밀주를 팔아서 상당한 자본을 모았다는 군요.
    뭐 하나같이 그렇고 그렇게 돈을 모았다는 건데~
    잭다니엘 친구전도사가 술 대리점을 했ㄴ느데 여기에 납품함으로 본격적인 기반을 닦았다네요. 7번이란게 여자친구가 7명이라는 말도 있고~ TV에서는 여과를 7번 한다던데~ ㅎㅎㅎ.
    뭐 어쩃든 수익의 상당한 부분을 자선사업과 교회에 헌금으로 내놓고 선교사업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네요.
    교인들이 술 마시면 안된다는 건 한국에만 있는 특별한 교회문화라고 보아집니다.
    마치 새벽기도처름~

    위에 교인이 술마셔서 그렇다는 글을 보고 댓글답니다.
    내 주관은 사람에거 들어가는 건 다 좋은거다. 나오는게 곱지 못해서 문제라고 주장하는 1인 입니다.

잭다니엘 이야기

정말 오래전에 썼던 글. 요즘은 예전처럼 자주 마시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술. 잭다니엘 스토리를 다시 옮겨 옵니다. 옛날 블로거들을 다시 만난 기념이라고 해도 되겠는걸요 ^^


세상에는 많고 많은 술이 있지만, 그리고 저도 개인적으로 참, 이 술 저 술 험한 술 다 마셔봤다고 생각하지만, 그 중에서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위스키는 ‘잭다니엘’입니다. 제일 좋아하는 술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소주’를 꼽겠지요. 싸죠, 뒤끝 없죠, 어디서든 마실 수 있죠… 소주 만큼 좋은 술이 또 어디있겠습니까? 


그래도 사람이 밥만 먹고는 살 수 없다고 – 비교가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 – 다음으로 좋아하는 술을 꼽으라면 저는 서슴없이 잭다니엘을 꼽습니다. 초콜릿 진한 향과 목구멍을 타오르게 하는 그 독특한 맛… 다른 위스키와 비교할 수 없는 잭다니엘 특유의 장점이라 생각하지요.

잭다니엘을 처음 접한 건, 1999년 말, 홍대 앞의 한 카페에서였습니다. 마치 미국의 서부 시대 같은 인테리어를 한 카페였는데… 거기에 잭다니엘이 불을 밝히고 있었던 거죠. 정확히 말하면 잭다니엘 빈 병에 화려한 색깔의 액체 연료를 부어 놓고 병 입구에 심지를 붙여 놓은… 간단히 말하면 양초 대용으로 테이블마다 하나씩 올려 놓았던 겁니다. 거 참 병 희한하게 생겼네, 하고 네모난 병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잭다니엘이란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얼마 후, 역삼동의 한 카페에서 저만큼 잭다니엘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선배로부터 본격적으로 잭다니엘을 전수(!)받게 되었습니다. 아, 이거 예전에 홍대서 봤던 거네, 하면서 반가운 마음에 잔을 받았고, 마시기 전 올라오는 진한 초콜릿 향이 정신을 혼미하게 하였답니다. 혼미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첫 잔은 절대로 꺾지 않는다’라는 소신을 가지고 있는 저는, 조심성 없이 첫 잔을 그대로 들이 부었고, 목구멍을 지지는 듯한 기분 좋은 통증을 느끼게 되었었지요. 오~ 이거 장난 아닌데~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술이었습니다.

잭다니엘을 입문 시킨 그 선배는 잭다니엘 스트레이트 보다는 콜라와 섞은 잭콕을 더 좋아했는데, 스트레이트 잔으로 잭다니엘 1에 콜라 2… 이렇게 섞는 것이 제일 맛있다! 라고 강조하곤 했었지요. 저도 그 뒤로 첫 잔은 스트레이트로 마셔도, 둘째 잔 부터는 이 비율을 지키려 애를 많이 쓴답니다. 서너 잔 지나면, 대충 부어 먹지만서두요.

그렇게 잭다니엘을 먹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잭매니아들이 주변에 꽤 여러분 계시더군요.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 그 독특한 향기를 좋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저는 다른 위스키나 와인의 맛을 구분할 정도로 세련된 입맛은 가지지 못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스카치 위스키들은 이 넘을 먹어도 그 맛, 저 넘을 먹어도 그 맛… 다 그렇더라구요. 그래서 스카치를 먹어야 되는데 가면, 일단 젤로 싼, 딤플이나 임페리얼을 먹고, 잭다니엘이 있는 곳에 가면 잭다니엘을 먹습니다. 세련되지 않는 제 입맛으로도 잭다니엘 만큼은 정확히 구분해 낼 수 있으니까요.

잭다니엘은 물론 위스키입니다만, 테네시 지역에서 생산되는 까닭에 테네시 위스키라고도 합니다. 병에도 테네시 위스키 라고 당당하니 적혀 있구요 ^^ 흔히 미국산 위스키를 버번이라고 하는데, 버번 위스키는 옥수수를 51% 이상 사용한다는 군요. 사실 맥아를 사용하는 스카치 위스키와 방법은 비슷한데, 지역적인 특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 지역에서 잘 나는 곡물을 이용해서 증류했다 이거지요…

잭다니엘이라는 이름은 역시 만든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겠죠. 재스퍼 뉴튼 다니엘(Jasper Newton Daniel)이 본명이라고 하구요, 1850년대에 13명의 자녀 중 10번째로 태어났답니다. 미국에서 흔히 그렇듯이 이름을 줄여 잭이라고 불렸던 바로 그 잭은, 댄 콜(Dan Call)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위스키 제조법을 배워 어린 나이에 증류소 주인이 되었다는 군요. 1866년에 미국 정부에 최초로 증류소를 등록했다고 하니까, 1850년에 태어났다고 해도 16살에 증류소 사장이 된 셈이네요. 정말 어린 나이군요 ^^ 위스키 전시회에서 열심히 상을 받으면서 유명해 졌다고 그러네요. 명칭에 대한 이 부분은 잭다니엘 홈페이지에서 슬쩍 인용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잭다니엘이 만들어지는 테네시주의 무어 카운티는 드라이 카운티라고… 음주가 금지된 지역이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술을 만드는 건 가능해도 팔거나 먹는 건 금지되어 있답니다. 1995년에 법이 살짝 바뀌어서리, 증류소에서는 팔 수 있다고 하네요.

제가 알기로 잭다니엘은 국내에서 대량 3가지 정도가 유통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잭다니엘 주세요, 하면 나오는 750ml짜리 네모난 잭다니엘(350, 500짜리 병도 있습니다 ^^)이 있고, - 이 넘의 정확한 이름은 잭다니엘 블랙 레이블 올드 넘버 세븐인가 먼가 그렇습니다 - 보기 드물지만 1,750ml 짜리 병을 손수레에 얹어 나오는 잭다니엘 크래들이라는 모델이 있습니다. 물론 이 넘은 술집에서는 구경하기 어렵구요, 선물용이나 뭐 개인 소장용 등으로 파는 넘이지요.


마지막으로 잭다니엘 싱글 배럴이라는 넘이 있는데, 이건 저도 이름만 들어봤지 실제로는 보지도 못했습니다. 보통 잭다니엘이 43도인데, 이 넘은 47도라는군요. 잭다니엘 17년산, 뭐 이렇게 이해를 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할인마트나 주류판매점 등에서 잭다니엘 750ml는 5만원 전후로 해서 판매되는 것 같더군요. 그런데 호프집이나 바에서는… 싼 데가 11만원, 비싼 데는 20만원까지 받는 걸 봤으니, 가격도 참 천차만별입니다. 가격 그렇게 다 알면서 어떻게 먹냐구요? 진짜로 위스키 원가 다 아시는 분들은 이것만 봐도 기절할 판이랍니다.

어느 술이나 그렇지만 과하게 먹으면 다음 날 힘든 건 당연한 것이지요. 잭다니엘도 그렇겠지만, 사실 독한 느낌을 주어서 그런지 둘이서 한 병을 먹으면, 그 다음날 거의 죽음이라고 봐야 합니다. 둘이서 반 병 정도 먹고 키핑을 해 두는게 가장 적절한 양인 것 같구요.. 슬쩍 적용하면 넷이서 한 병 먹으면 딱 적합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잭을 좋아하는 건, 강렬한 그 향취 때문일 겁니다. 그렇게 변하지 않는 강렬하면서도 은은한 향취를 가진 사람이 되고픈지도 모르겠습니다. ^^ / FIN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7.05.07 10:1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책임지쇼... 나도 당신한테 배운거니...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05.07 15:52 신고 수정/삭제

      그래서 지난 번 미국 갔을 때 큰 넘 사왔잖아요~ ㅋㅋ 집에 있는 넘도 가지고 올까부당...

  • Favicon of http://daisy.pe.kr BlogIcon Daisy 2007.05.07 14:3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도 잭다니엘 좋아라 합니다.
    물론 잭콕으로 마셔주지요.
    강남 어디더라@@ 쇼부 잘치면 8만원에 주는곳이 있었는데;;; 가물;;;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05.07 15:52 신고 수정/삭제

      오호, 데이지님도 잭다니엘 좋아하시는군요~ ^^ 잭콕... 많이 마시면 다음 날 좀 머리 아파요~ ㅋㅋ

      그나저나 8만원이면 싸게 주는 걸요? 설마 500m 짜리는 아니겠죠?

    • Favicon of http://daisy.pe.kr BlogIcon Daisy 2007.05.07 17:32 신고 수정/삭제

      머리아픈거,, 휴우,, 데낄라 따라갈까요??
      750ml죠 당근. ㅎㅎㅎ
      참, 데낄라도 같은가격이었는데,, 2년전 가격인데, 요즘 좀 올랐을까나요?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7.05.07 21:35 신고 수정/삭제

      우와.. 데이지님.. 대단하시네요..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05.08 02:58 신고 수정/삭제

      데이지님> 2년 전이면... 흐음, 강호를 떠나신지 오래되신 듯 ^^

    • Favicon of http://daisy.pe.kr BlogIcon Daisy 2007.05.08 09:42 신고 수정/삭제

      네, 맞습니다. 이제 은둔고수(ㅡ_ㅡ)로 살아갈까 하옵니다. 후후후

  • 카파 아저씨 2007.05.09 13:5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아니...김형...저 선배라는 사람이 나를 지칭하는 것 아닌가...으...쪽팔리게시리...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05.09 17:29 신고 수정/삭제

      ㅋ 이 글 무지하게 오래된 걸 꺼내놨는데, 하필이면 딱 맞춰 보셨습니까 ㅋㅋ 그리고 사람들은 누군지 모르는데 쪽팔릴건 없으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