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음주 편력기 #7 - 벤처기업편

배경 좋고 든든한 회사를 그만 뒀던 건, 벤처 엑소더스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1999년의 흐름을 탔기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 잘 아시겠지만 1999년부터 2000년 사이, 스타 벤처 기업이 등장하고 코스닥 등을 업은 벤처 기업의 성공 사례가 숱하게 쏟아져 나오면서 대기업은 물론 일반 직장에서 잘 근무하던 젊은 사람들이 대거 벤처 기업으로 이동하는 ‘벤처 엑소더스’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저 역시 다름 아니었습니다. 때 마침 코스닥에 등록한 회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 회사 들어가게 된 것도 아주 웃깁니다. ^^ 제가 회사를 옮겼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걸 알고 있는, 이 회사에 먼저 들어가 있던 후배가 어느 날 저녁 저를 부르더군요. 자기네 회사 이사님하고 술 한 잔 하자는 겁니다. 저야 뭐 거부할 이유가 있습니까? 좋다고 쫓아갔죠.

삽겸살 집에서 소주가 두 병 정도 돌았습니다. 이 날 처음 뵈었지만, 그 뒤로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게 된 이 이사님은 소주는 별로 안 드시더군요. 그래서 술을 별로 안 드시나 보다, 생각하고, 적당히 먹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하면서요. 그러다가 2차를 가자고 하시네요. 맥주집으로 옮겼습니다.

헉~ 이 이사님은 저하고 영 반대이신 분입니다. 소주는 안 드시고, 오로지 맥주파시더라구요. 어떻게 그 많은 맥주를 끊임없이 드시던지… 맥주를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했던 저는 억지로 억지로 따라가기에 바빴습니다. 그 많은 맥주를 다 처리하고, 소주 때문이든, 맥주 때문이든 얼큰하게 취한 후, 곧바로 3차로 이어집니다.

조그만 단란 주점이었습니다. 들어가자 마자 바로 폭탄주가 돕니다. 폭탄주 일배 돌고 난 후에, 이사님이 자기하고 일하고 싶은 생각 없냐고 물어봅니다. 저도 딱 한 가지만 물어봤습니다. 제가 마음에 드십니까? 이렇게요. 군더더기 없이 그래~.. 이런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또 술 먹고~ 일주일 후에 저 그 회사 출근했습니다. ^^

벤처기업에서는 이렇게 일해야 돼~ 하는 생각으로 좀 오버 했습니다. 매일 같은 야근, 저녁식사 때마다 이어지는 반주 – 그런데 인당 소주 1병이 넘어가면 이건 반주라고 하기에는 좀 지나친거죠? ^^ - 들어와서 또 일하고, 열한시쯤 나가서 호프집에서 또 맥주 먹고, 2시쯤 사무실 들어와서 밤 새고…

매일 음주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정말로 그 기간 동안 일도 열심히 했고, 술도 많이 먹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계속해서 술을 먹기 시작했던, 화려하고 무모한 음주 시대였습니다. 평일에는 술을 쉬어 본 날이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벤처기업에서 일하는 열정으로 가득 찬 직원들과 시끄러운 호프집에서의 난상토론, 협력하고자 하는 제휴 업체 사람들과의 만남…, 회사 임원 분들과의 뜨거운 논쟁… 하루도 술이 없이는 되지 않았던 그런 날들이었지요. 제가 살아오면서 그 때 만큼 열심히 일을 했고, 정열을 가졌던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그 회사를 떠나 있지만, 아직도 그 회사가 제 친정 같고, 사랑스러운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하루는 그 회사에 새로 높은 분이 오셔서 회식자리가 있었습니다. 경영 부문을 총괄하기 위해 외부에서 모신 분인데, 성품 좋으시고, 제가 개인적으로 무척 존경하게 된 분입니다. 이 분 환영 자리에 팀장들이 죽 앉았었는데, 잔 도는 것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장님의 작전이었는지, 파도타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주종은 바로 악명 높은 고량주였습니다.

중국집에서 고량주 파도타기라… 파도타기 아시죠? 처음 시작한 사람이 원샷 하면 줄줄이 이어서 원샷을 이어가는 그런 술 마시기 말입니다. 저는 고량주를 그렇게 먹어 본 적이 없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11명 이서 고량주 24병을 먹었더군요. 파도타기를 하면 중간에 빠질 수가 없으니까 인당 두 병 정도씩 먹었다고 해야 겠죠… 그리고 나서 단란으로 옮겨 폭탄에, 노래에… 11시 반에 완전 전사했었습니다.

파도타기나 폭탄주 같은 문화가 직급 높은 사람들에게 좋은 거라는 사실을 이 때 알았습니다. 왜, 우리나라는 잔 돌리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이게 직급 높은 사람한테 몰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똑같이 빨리 먹고, 빨리 가면, 아무래도 한 사람한테 잔이 집중되는 걸 막을 수 있겠지요.

매일 같이 먹기도 했지만, 다양하게 먹기도 한 탓에 많은 테크닉을 배웠습니다. 파도타기는 기본이고, 지난 번 폭탄주 얘기 때도 썼지만 메론주 같은 것들도 이 즈음 배운 것이지요. 배운 것은 또 바로 써 먹는다고 ^^ 저희 직원들이 요즘 저한테 이런 걸로 고문을 많이 당하고 있습니다.

요즘도 저는 일주일에 4-5일을 먹게 되는 것 같은데, 운이 좋으면 한 달에 한 주 정도는 쉴 수 있습니다. 묘하게 이런 주가 한 번씩은 있어서 숨통을 틔워주는 것 같더군요. 앞으로는 어떻게 술을 마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요즘은 줄이긴 줄여야 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버티기가 쉽지 않네요.

술이란 참 묘한 존재입니다. 어색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 기도 하고, 부끄러움을 감싸 주기도 하고, 막힌 커뮤니케이션을 이어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술 자리로 갑니다. 혹시 같이 가실렵니까? ^^

나의 음주편력기 End ^^
  • Favicon of http://philomedia.tistory.com BlogIcon 필로스 2008.01.29 19:4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블코인터뷰 보고 들어오게 됐습니다.
    시리즈의 마지막을 제가 장식했군요^^
    저 때는 왜 그렇게 술을 마셨었는지 참..ㅎㅎ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8.01.29 19:45 신고 수정/삭제

      ㅋㅋ 사실 후속편을 이어써야 하는데 그 뒤로 제가 정신이 좀 없었더라는. ㅋㅋ

나의 음주 편력기 #6 - 에피소드 소주편

IMF를 겪으면서 소주와 친해지긴 했습니다만, 사실 소주에 얽힌 몇 가지 일들을 얘기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군요.

첫 직장에서 소주로 엄청난 고문을 당한 탓이라서 그 이후 5-6년 동안 소주의 역겨움을 지우지 못했다고 말씀드렸었죠. 그러나, 엄연한 대한민국 현실 상 소주를 무시하면서 살 수는 없었습니다. 소주야 말로 대한민국 최고의 술이며, 모든 사람들이 즐겨 찾는 술이 아니겠습니까?

에피소드 1. 결혼한지 한 달쯤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내의 사촌 언니 내외가 저를 보고 싶다고, 저하고 같이 술 한 잔 했으면 좋겠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사촌 언니 내외, 우리 내외, 이렇게 4명이 충무로에 있는 고기집에서 만났습니다.

그 형님, 인상도 좋고, 말씀도 편하게 하시고, 참 좋은 분입니다. 그런데다가 제가 붙임성이 좀 있는 편이어서 ^^ 소주 한 잔 받아 먹고 바로 형님, 말씀 편하게 하세요~ 하고 엉겨붙었더니, 아주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소주를 권커니 잣커니, 그러는데 어느 틈에 두 병이 비어버렸습니다. 인당 한 병씩 먹은 셈이죠.

그 때만 해도 제가 술을 많이 먹지 않았었고, 또 소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연애하면서도 아내와 술을 같이 마신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니 아내도 제가 술을 어느 정도 먹는지 잘 몰랐을 터이고, 같이 마주 않은 처형과 형님은 제가 주는 대로 넙죽 넙죽 받아 먹으니까, 당연히 잘 먹는 줄 알았겠죠.

사실 고역이었습니다만, 그 좋은 분위기를 깰 수 있겠습니까? 아마 소주가 한 병씩 더 들어왔던 모양입니다. 소주로 주량을 맞춰 보지 않은 상황이라서 저는 또 주는 대로 넙죽 넙죽… 솔직히 말씀드리면 어떻게 그 식당을 나왔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잠깐 깨 보니 노래방이더군요. 나중에 아내한테 들은 얘기로는 제가 노래방 가자고 우겨서 노래방 갔다는 겁니다. 노래방 가자구 해 놓구, 들어오자마자 저는 쓰러져 자구… 제 주량을 모르고 술을 먹였던 형님은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고… 그러니 노래가 될 리 있겠습니까? 그러다가 제가 깨었던 모양입니다.

형님, 놀아야죠~ 말도 안되는 댄스 해가면서 혼자 노래 부르고, 나머지 세 명은 어쩔 수 없이(!) 분위기 맞춰 노래 부르고 그랬을 겁니다. 그리고는 또 기억이 없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택시를 타고 있었고, 여지없이 창 밖으로 웩웩 거리고 있었죠. 집에 와서 바로 쓰러져 버렸습니다. 젠장, 아내한테 기대서 집에 들어오다니, 이건 또 웬 망신입니까?

그래도 주사는 없었든가 봅니다. 재미있었다고 그랬다는 군요. 아내도 제가 넙죽 넙죽 잘 먹길래 안말렸는데, 그렇게 못 먹는 줄 알았으면 말렸을 거라고 나중에야 얘기하더군요. 가끔 그 형님하고 술 한잔 더 해야지, 그렇게 아내한테 얘기하면, 그 형부는 아직도 당신이 술 못 먹는 줄 알아… 그러더라구요,.

그런데 그 뒤로 제가 급격하게 내공을 쌓아서 지금은 소주 두 병은 끄덕도 없으니, 아마 다음 번 대결은 해 볼 만 할 것 같은데, 아쉽게도 그 형님네 하고는 더 기회가 없었습니다. 아내한테 얘기해서 한 번 기회를 만들어 봐야 겠습니다.

에피소드 2. 지금은 연세도 많으시고 해서, 술을 별로 안 드시지만, 장인 어른은 애주가셨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장인 어른들이 그렇듯이 사위만 오면 그렇게 술을 내서, 같이 즐기기를 좋아 하십니다. 저희 아버지도 저랑 술 먹자는 말씀은 잘 안 하면서 사위만 오면 집에 감춰둔 좋은 술 다 꺼내십니다. 장인 어른도 아들이 둘이나 있으셔도 아들하고 먹는 술은 재미가 없는지, 아니면 사위는 백년 손님이라 무조건 대접해야 된다고 생각하시는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저만 가면 무조건 술상이 나옵니다. ^^

장인 어른하고 대작을 하면, 우선 썬키스트 오렌지 주스 잔에 소주를 따르십니다. 병권을 완벽하게 쥐고 똑같이 따르십니다. 역시 한 잔에 반 병씩 들어갑니다. 그걸 원샷 하는 건 아니구요, 천천히 먹기는 합니다만, 장인 어른하고 똑같이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때는 제가 어느 정도 술에 내공이 받혀 있어서 뭐 별 무리 없이 다 쫓아 갑니다. 기분도 맞춰 드리고… 좋습니다.

문제는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김서방, 반주 해야지… 하시면서 아침 식사 반주로 똑같이 썬키스트 오렌지 주스 잔에 부으십니다. 휴~ 새벽 서너시까지 쉼 없이 술을 먹어본 적은 있지만, 아침 식전부터 소주 반병을 먹어 본 적은 없습니다. 도저히 못 먹겠더군요. 그래도, 다 먹었습니다. 그걸 먹고 속이 편하게 느껴지는 이른바 해장술의 맛을 느끼려는 경지에 가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거 먹고 아침부터 알딸딸해서 헤롱대는 걸 본 아내가 장인 어른한테 잔소리 하는 걸 옆 귀로 들으면서 잠들어 버렸습니다.

아내한테 잔소리를 많이 들으셨던 장인 어른은 그 뒤로는 아침 반주로 그렇게 많은 소주를 주시지는 않습니다. ^^ 장인 어른 건강이 어서 좋아지셔서, 저하고 가볍게 반주라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내는 비록 잔소리를 하겠지만요.

나의 음주 편력기 #5 - IMF편

97년 10월, 미국에 출장을 갔던 적이 있습니다. 매년 1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컴퓨터 쇼인, 컴덱스 쇼 관람을 위해서였습니다. 컴덱스 쇼 잘 보고, 라스베이거스에 가면 남들 다 보는 그렇고 그런 쇼(!)도 보고, 잘 놀다가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왔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조그맣고 깔끔한 인(아마, 미야코 인인가 그렇습니다)에 이틀 정도 여유가 있어서 묶었답니다. 낮에는 놀러 다니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미국 맥주라도 먹고 가야지, 하면서 슈퍼에서 미켈럽 하고 버드 같은 맥주를 몇 병 샀던 것 같습니다. 호텔로 가지고 와서 마른 안주 몇 개 까 놓고 먹기 시작했습니다. 참, 한국에서 가져간 사발면 그 때 같이 먹었습니다.

미켈럽 캔을 4개 정도 먹었을 겁니다. 그러고 기분 좋게 잠이 들었는데, 밤중에 너무 속이 안 좋아서 일어났고, 느닷없이 되새김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변기를 끌어 안고 웩웩 거리다 보니,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고, 탈진 상태가 다 되더군요. 그 다음날 저는 하루종일 호텔방에서 끙끙 앓았습니다. 남들은 다 놀러 나간 그 호텔방에서 혼자 끙끙 앓다가… 선배가 한국 수퍼에서 샀다고 가져다 준 사발면 하나, 국물 받아 먹고서는 그제야 속을 좀 차렸습니다.

그 뒤로 미켈럽이나 버드 같은 맥주는 쳐다 보지도 않습니다. 무엇 때문인지 너무 고생을 했었거든요. 아마 맥주와의 이별 ^^은 이 때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 와중에 한국에 IMF가 터졌습니다. 현지 신문과 뉴스를 보면 한국이 부도 나서 다 망했다 라는 분위기였는데, 얼마나 살벌했겠습니까? 무슨 전쟁 난 것 처럼 호들갑을 떠는 언론 때문에, 걱정이 말도 아니었습니다.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여~ 어수선하게 있다가 귀국 길에 올랐죠.

열흘 만에 귀국이었는데, 남겨 온 달러 환전하면서 돈 벌기는 아마 그 때가 처음이었고, 앞으로도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여튼, 한국은 진짜로 난리가 났었고, 계속해서 그 뒤로 좋지 않은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구조조정이라는 말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거죠. 우리도 부서 하나가 통으로 날라가고, 그 때까지 지원해 주었던 핸드폰 등 각종 복지 서비스가 없어지고, 연봉 협상 때는 전직원 5% 급여를 삭감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그래도 우리 회사는 거의 손 안 댄 편이더군요. 주변에 다른 회사들 망가지는 것, 다른 사람들 회사 떠나는 것에 비하면 아주 얌전한 편이었습니다.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그 때는 차마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너 별 일 없니? 라고 물어보기조차 겁나던 그런 때였습니다.

그렇게 술 잘 사 주던, 선배들, 높은 양반들이 이제는 술 사 줄 생각을 안 합니다. ^^ 예전에는 그런 걸 본 기억이 별로 없었는데, 회사 앞 간이 분식점 – 튀김과 떡볶이, 오뎅 이런 것 팔던 그런 분식점 – 앞에서 튀김과 떡볶이를 앞에 놓고 소주를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술은 먹고 싶고, 주머니는 가볍고, 아마 그렇기 때문에 생겨난 일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연스레 2차, 3차 술자리는 드물어졌습니다.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도 그냥 일차에서 소주 먹고 헤어지는 그런 형국이었으니까요. 그러면서 저는 삼겹살과 소주, 그리고 된장찌개의 환상적인 맛에 조금씩 길들어져 갔습니다.

어느 날이었든가, 몹시 우울한 날이었습니다. 후배들 몇과 같이 광화문, 평소에 점심 먹으러 자주 가던 N식당에 갔습니다. 이 집은 점심은 별로 맛이 없지만, 저녁에 구워 먹는 생 삽겹살이 아주 괜찮은 집입니다. 값도 부담 없고 ^^ 모처럼 후배들과의 자리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소주 잔이 도는데, 아~ 마치 소주가 사이다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원하고 톡 쏘는 사이다 같은 소주 맛에 급격하게 빠진 건 바로 그 때 부터 였습니다. 후배들과의 일차 술자리에서 그 사이다 같은 소주를 원샷, 원샷 그렇게 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빨리 취해버렸던 것 같습니다. 4명이서 열 병 정도의 소주를 마셨던 것 같고, 그날 따라 빨리 취해버린 저를 후배들이 택시에 태워 보냈습니다.

밀렸던 것을 한꺼번에 다 해결하려 그랬었을까요. 그 다음 날, 그 다음 날 이렇게 보름인가를 주말만 빼고 매일 소주를 마셨습니다. 매번 그 식당 그 삽겸살에 그 소주… 얼마나 그 식당을 열심히 다녔든지, 그 식당 사장님은 제가 그 회사를 그만 둘 때 모였던 회식 자리에서, 저하고 같이 소주 들이키다가 저를 붙들고 울기까지 했답니다. 서운하다고 ^^

그렇게 소주와 친해지면서 맥주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이를 먹어서인지 장이 맥주에 거부감을 일으키더군요. 맥주만 먹으면 설사가 나기 시작한 것도 아마 이 때를 지나면서부터 였습니다. 그렇게 맥주와는 멀어지고, 소주와는 점점 더 깊은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음주 편력기 #4 - 신문사편

96년 말, 저는 인생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을 맡게 됩니다. 6년 동안 일하던 분야에서 떠나 새로운 직장에서, 인터넷 관련 일을 하게 된 것이지요. 물론 그 전에 하던 일도 소위 말하는 IT 관련 일이었지만, 더 큰 직장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일, 바로 신문사의 인터넷 비즈니스를 기획하는 일이었습니다.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신문사라서, 회사에 대한 기대감도 꽤 컸고, 일에 대한 자신감도 넘쳤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를 긴장되게 만들었던 건, 바로 신문사의 음주 문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신문사는 술 많이 먹는다지, 낮술도 많이 먹고, 걸핏하면 폭탄주라는데… 하여튼 별 희한한 소문 다 듣고 갔습니다. 처음 출근하던 날은 그냥 인사만 했고, 하룬가 이틀이 지나서, 팀에서 회식을 해 주겠답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신문사 술 쎄다는 거 알지? 나 어쩌면 오늘 못 올지도 몰라… 어머나, 그럼 어떡해, 술 조심하고, 늦더라도 택시 타고 와~ 이렇게 잔뜩 긴장을 하고 그렇게 출근했고, 일도 했고, 어느덧 회식 자리가 되었습니다.

예전에 겪었던 회식은 1차에서 고기 먹고, 2차에서 맥주 먹고, 뭐 그렇게 정해진 코스였습니다만, 아예 맥주집으로 가는군요. 흐음, 이젠 죽었다~ 각오를 단단히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맥주 몇 병을 시키고, 골뱅이와 계란말이 – 계란말이가 이렇게 맛있는 안주라는 걸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 - 가 나왔습니다.

맥주 잔이 돕니다. 여섯 혹은 일곱 명 정도가 같이 있었을 겁니다. 경력으로 옮긴 거라서, 선배도 있고 후배도 있습니다. 한 두어 병 적도 먹은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하고 시간도 두어 시간 흘렀습니다. 팀장님이 얘기합니다. 이제 그만 일어서지… 아, 드디어 다음 차로 가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나와 보니, 그냥 빠이빠이 하는 분위기입니다. 어랏? 이게 도대체 무슨 현상이지? 다들 약속이 있다고, 내일 보자고 악수하고 그냥 사라집니다. 팀장님이 그러고 가니까, 뭐 다른 사람들이야 별 수 있겠습니까? 그냥 헤어졌습니다. 출근한지 얼마 안 되어 친한 사람도 없으니 잡을 수도 없고, 그냥 멍~ 했었습니다.

편의점에 들어가서 사발면 하나 물 부어 놓고, 허탈하게 창 밖을 쳐다 보았던 그 황당한 기억,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사발면 먹고, 지하철 타고, 천천히 집에 들어갔습니다. 열한시 좀 넘었더군요. 어머? 못 들어온다더니? 완전히 아내 앞에서 바보 됐습니다. 몰라야~ 그러고 그냥 자 버렸습니다. 술을 먹기는 뭘 먹어~ 꿍얼꿍얼~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전초전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몇일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삼일 지난 후에 같이 일하던 선배와 저녁을 먹게 되었습니다. 삼겹살에 소주, 역겨웠던 소주를 조금씩 이라도 입에 대게 된 건 이 때부터였지요. 약간의 소주와 분위기에 흥이 겨웠던 선배, 오늘은 내가 사야지… 하면서 맥주집으로 데려 갑니다.

아실 겁니다. 광화문에 가면 라이브 카페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허름한 집에 맥주도 팔고 가끔 피아노와 기타도 치는 그런 카페들이 많이 있습니다. 참 많이 갔었던 집들이지요. 그 중에 한 곳으로 싹 들어 갑니다. 가자 마자, 양주와 맥주가 묻지도 않았는데 바로 나옵니다. ^^

저의 폭탄주 기행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계절의 이름을 땄던 그 어두운 카페, 오래된 나무 테이블, 팝콘과 마른 안주… 그렇게 시작된 폭탄주를 네 잔까지 먹고, 그 선배와 헤어졌습니다. 정말 신기한 건, 폭탄주의 맛이었습니다. 독하지도 않고, 시원한 맥주의 맛과 함께 속에 불을 지르는 듯 타오르는 양주의 맛… 맥주잔 속에 양주잔을 그대로 퐁 빠뜨려 먹는 오리지널 폭탄주의 맛을 알게 된 것은 바로 그 때 부터였습니다.

때 마침 회사를 옮긴 때가 12월 이었습니다. 연말 모임, 무척이나 많을 때였죠. 그렇게 선배님들, 높으신 양반들을 따라다니면서 먹기 시작한 폭탄주.. 하루 저녁에 일곱잔은 보통이었습니다. 아마 그 해 12월, 제가 마신 폭탄주가 아마 70잔은 넉넉히 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게 폭탄주와 양주를 먹으면서 단란주점이라는 곳을 가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 전에도 갈 기회가 있기는 했지만 술을 잘 먹지도 못했고 심지어는 도망 나오기 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거짓말이라구요? 아, 그 때 저의 모습을 아는 분들이 요즘 저를 보면 놀라 나자빠집니다. 제 친구 중 한 녀석은 신문사가 사람 다 망쳤다고, 그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

참, 술이란게 무섭게 빨리 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술 자리에서 맥주 두 병 이상은 먹지 않았던 저였는데, 이제는 맥주는 맥주 대로, 폭탄주는 폭탄주 대로… 순식간에 술은 늘어만 갔습니다. 젊었던 탓인지, 폭탄주 일곱잔을 먹어도, 전혀 되새김도 없이 ^^ 멀쩡하게 집에 들어갔었습니다. 아내도, 제가 그 정도로 먹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 전보다 술을 많이 먹는다고 불평하기는 했지만요.

그러나 그 때까지만 해도 저는 소주는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았습니다. 그냥 일차에서 분위기 띄우는 정도… 오로지 2차에서의 맥주와 3차에서의 폭탄주에 저는 그만 폭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죽하면 폭탄은 먹어도 소주는 안 먹어~ 라고 얘기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지독하고 대단한 음주 이력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소주, 이제는 최고의 술은 소주라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로 소주와 친해진 건, 빌어먹을 IMF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음주 편력기 #3 - 첫직장편

어머니의 강력한 태클에 걸려 술 맛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대학 생활을 마쳤습니다. 그나마 졸업식 마친 후 아버지로부터 한 잔 술을 얻어 마실 수 있었던 건, 바로 첫 직장 때문이었습니다.

운이 좋아서, 4학년 일학기 마치고, 여름 방학 중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냥 작은 회사였는데, 한 달에 한 번 무척이나 바쁜 그런 일이었죠. ^^ 8월 12일에 첫 출근을 했고, 그 날은 어영부영 보냈던 것 같습니다.

저하고 동갑내기 여자 친구, 이렇게 둘이 입사 했었습니다. 동갑인데다가 동기라, 거기에다가 그 친구가 또 예쁘게 생겼던 탓에 – 하여튼 ^^ - 첫 날부터 마음이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냥 아무 일 없이 집에 갔으니까요.

13일. 운명의 날이죠. 12일에는 선배들이 바빠서 회식을 못 해주었고, 다음 날 회식을 하기로 했던 겁니다. 삼겹살을 파는 집이었던 것 같구요, 우리 팀 여덟명 정도가 참석했던 것 같습니다.

참, 얼마나 설레였겠습니까? 취직도 잘 안되는 과였는데 여름방학 마치고 떡 하니 취직도 됐고, 이렇게 선배들하고 회식이라는 것도 해 보고… 가기 전에 각오 했냐? 라고 물어보던 한 선배의 얄궂은 미소가 무얼 의미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하여튼 설레이는 자리였습니다.

삼겹살이 익기도 전에 각오했냐고 물어보던 선배, 이 선배가 맥주잔을 청하더군요. 댤걀 2개와 함께. 맥주잔에 달걀 노른자를 까 넣고, 소주를 가득 채웁니다. 맥주 잔에 적당히 채우면 소주 반 병이 들어간다는 사실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두 잔을 만들어서 저와 또 같이 입사한 그 여자 동기한테 한 잔씩 줍니다.

마셔~… 그게 답니다. 그 때 저희를 바라보던 다른 선배들의 눈동자… 지금은 기억이 안 납니다만, 그 뒤에 제가 비슷한 방식으로 후배들을 괴롭히던, 아마 그와 비슷하게 재미있어 하는 모습으로 쳐다 보았겠지요. 저는 차마 먹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냄새만 맡아도 역겹고, 그날 아침 회식 있다고 늦을 거라고 말할 때 어머니가 가르쳐준, 먹지 말고, 그냥 옷에다가 부어라~ 라는 팁을 되새겨 보기도 했습니다만, 순식간에 그 첫 잔을 들이켜 버리던 여자 동기를 보는 순간, 저 역시 맥주잔에 가득 들은 소주와 노른자를 입에 부어 넣고 있었습니다.

그게 한 잔으로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우렁찬 박수와 함께 두 번째 잔이 제조 되었습니다. 첫 잔의 역겨움이 가시기도 전에 두 번째 잔이라니… 노른자는 빼 주세요~ 여자 동기가 말하더군요. 그래서 두 번쨰 잔은 노른자 없이 그냥...

그랬습니다. 그러고 나서 고기를 먹는 둥 마는 둥… 맥주집에도 간 것 같은데, 화장실 쳐다 보던 기억 밖에 안 나고… 신입 둘이서 술 먹고 바로 퍼져 버리는 바람에 그날 회식은 그걸로 쫑이었습니다.

각오했냐고 물어보던, 술 제조의 악역을 담당했던 그 선배가 단지 덩치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저를 집에까지 데려다 주어야 했습니다. 택시 안에서도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억억 거렸던 것 같고, 그 기억에 어떻게 집을 찾아갔는지 모르지만, 그 선배한테 팔을 맡기고 끌려 올라가던 저를, 어머니가 어떻게 쳐다보셨을까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저는 아무런 기억이 안 납니다. 그냥 그대로 방으로 달려가서 쓰러져 잤던 것 같습니다. 데려다 준 선배에게 고맙다는 말도, 그냥 같이 자자는 말도 못했답니다. 그 선배도 많이 취했던 것 같아서 아버지께서 같이 자고 가라고 했다는데, 그냥 갔다고 아침에 그러시더군요. 예상컨대 어머니는 넋이 빠지셨던 것 같습니다.

강력한 태클에 걸려 대학교 다니는 내내 술 냄새도 안 내고 오던 놈이 출근 이틀 만에 떡이 되어 그것도 업혀 들어오니 넋이 나갈 만도 하시겠지요. 아마, 이제 내 태클이 더 이상 말을 듣지 않는 구나 하고 체념하셨을 런지도 모릅니다. 아, 어머니의 태글이 오버였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그 때 어머니 앞에서 혀라도 한 번 내밀어 볼 걸… 그랬나 봅니다.

잠결에도 어머니가 옷을 벗기고 물 수건으로 얼굴과 발을 닦아주셨던 건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아침에 쓰린 속을 붙들고 일어나니, 콩나물 국에 고춧가루 풀어서 주시더군요. 니 아버지 해장국도 안 끓여봤는데, 아들 놈 속 풀으라고 콩나물 국을 다 끓였다고, 투덜투덜 하셨답니다.

그 여파로 저는 97년까지 소주는 입에도 대지 못했습니다. 소주 냄새만 맡으면 올라오는 그 역겨움 때문에 술자리에서는 항상 맥주만을 청해 먹었지요. 제가 경력이 쌓이고 선배가 되고 그러면서 저에게 소주를 먹이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맥주는 많이 먹었냐구요? 아니요. 많이 먹어야 두 병… 그렇게 맥주 두 병의 주량을 지키면서 순진한 생활을 유지해 나갔답니다. ^^

나의 음주 편력기 #2 - 어머니편

어쨌든 어려서부터 저는 술을 접할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고등학교 때 친구들하고 생일날 샴페인 터뜨리는 정도랍니다. 유유상종이라고 친구들도 다 그렇고 그런 순둥이들이어서 그랬는지, 저희는 소주 먹고 뭐 이런 건 별로 못했습니다. 하긴, 다 교회에서 만난 친구들이라서 그럴 일도 없었겠지만요.

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성가 발표회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몇 명이 중창을 하게 되었는데, 많이 떨었죠 ^^ 중창을 지도하던 선배가 어디서 와인 한 병을 구해와서 그걸 여섯 명이서 나눠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괜찮았는데, 두 세 친구는 얼굴이 붉어졌던 것 같았고요, 콩당콩당 하는 마음이 진정이 된건지, 오히려 불을 지른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런 정도가 어릴 적 음주 경험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하나의 탈출구, 아니 전환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대학생이 되는 것이었죠. 뭔가 얽매이지 않을 것 같고, 방종이라고 해도 좋을 자유가 있을 것 같은, 대학 일학년의 마음은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학생이 많은 과였습니다. 남학생은 복학생 한 명을 포함해서 모두 11명. 덕분에 남학생들이 잘 뭉치기는 했죠. 비록 입학하고 몇 달 뿐이었지만 ^^. 처음 만난 날부터 복학생 형 주도로 11명이 의기투합, 소주집에를 갔습니다. 학교 앞 그 허름한 소주집, 간이 테이블에 앉아 김치찌개를 시켜 놓고 소주 잔을 돌렸던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맛보는 소주, 괜히 다른 친구들한테 기죽기 싫어서 아무 소리 않고 원샷, 원샷, 원샷, 그렇게 세 잔을 먹었던 것 같습니다. 어유, 이런 걸 뭐러 먹어…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었지요. 쓰기만 하고, 별로 취하지도 않고. 그렇게 조금씩 술을 먹다가 사고(!)가 터진 건 개강파티 때였습니다.

엄마, 오늘은 개강파티 하느라 늦게 와~ 아침부터 인사를 하고 오는데, 어머니가 느끼기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나 봅니다. 너 술 먹으면 안돼~ 다시 한 번 다짐을 받으십니다. 그 간 조금씩 먹고 들어간 것은 어머니가 눈치를 못 채셨길래, 오늘도 뭐 그렇겠지 하고 자연스럽게 받아 넘긴 거지요.

개강파티, 사실 저는 소주가 맛 없다고 생각되기도 했고, 그래서 술을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분위기에 맞춰 흘러갈 뿐이지요. 개강파티 때도 맥주 두 병 정도 먹었던 것 같습니다. 맥주 먹고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 부르다가 놀고… 그렇게 파티는 끝났습니다. 싱겁죠?

사건은 이제부터입니다. 소주 몇 잔 마신 것도 엄마가 눈치 못 챘는데, 맥주 조금 먹은 걸로 표가 나겠어~ 방심하고 들어섰죠. 들어서자마자 어머니가 물어 봅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너 술 먹었어? 물어 보셨지요. 그 때 안 먹었다고 잡아 뗐어야 했는데, 엉겁결에 응, 맥주 두 잔 정도 먹었는데? 라고 대답을 해 버렸습니다. 그나마도 무서워서 두 병을 두 잔으로 줄였던 거지요.

난리가 났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붙들고 통곡을 하십니다. 아버지 술 마시는 게 그렇게 한 스러워, 내 너한테는 술 먹지 말라고 일렀겄만, 네가 내 말을 안 듣고 벌써부터 술을 마시니, 이 일을 어쩌면 좋겠냐는 거지요. 당시 고등학생이던 제 여동생 놀라서 튀어 나오고, 저는 무릎 꿇고 앉아서 잘못했다고 빌고… 하여튼 난리 났었습니다. 아파트 살 때 였는데, 엄마랑 친한 옆집 아줌마가 무슨 일 있냐고 인터폰하고, 그랬을 정도니까요.

아, 그런데, 그게 어머니의 오버이자, 작전이었다는 걸 안 건,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이젠 술 마시는 일에 대해 어머니가 도저히 시비를 못하게 된, 거의 십여년쯤 지나서였습니다. 장인 장모님이 집에 오셔서 이런 저런 얘기하다가 제가 왜 대학 다닐 때 술을 안 먹었는지 얘기를 막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피식 웃으시더군요. 그 날 사실 술 먹은 것도 몰랐고 넘겨 짚었는데, 제대로 걸렸다는 거였습니다. 그 정도로 우리 어머니의 연기, 리얼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대학 다닐 때 술 냄새를 내면서 집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많이 먹지도 않았지만, 소주 한 두어잔, 맥주 오백 정도 먹고 갈 때마다 뛰기도 했고, 껌도 씹고, 온갖 생쑈를 다했습니다. 어머니의 오버 액션에 완전 맛이 갔던 것입니다.

그렇게 대학 생활은 술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재미없게, 별 얘기 없이 대학 생활을 하다가, 어찌어찌 알던 선배 소개로 첫 직장에 들어가게 된 것이 91년 8월이었습니다.

나의 음주 편력기 #1 - 아버지편

저는 다른 사람보다 술을 빨리, 세게, 그리고 많이 마시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사람 만날 일이 많고, 사람을 만나길 좋아하고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술을 가까이 하게 되는가 봅니다.

누구나 다 그렇지만, 저도 처음부터 그렇게 술을 마시지는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한, 비교적 엄격한 편이었던 어머니는 아들이 술 마시는 걸 절대로 그냥 보아 넘길 분이 아니었습니다. 반면, 지금은 전문직이라고 인정 받는 직업이지만, 예전에는 노가다에 다름 없었던, 그런 직업을 가지셨던 아버지는, 거의 매일 약주를 하셨고, 그런 아버지의 음주에 대한 반감도 나름대로 있었던 모양입니다.

어릴 적,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 쯤이었나, 모처럼 아버지께서 집에 일찍 오셨던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후배 되는 분 – 삼촌이라고 부르라 하셨던 – 이 집에 찾아오셨죠. 나름대로 아버지와 상의할 것도 있고, 그랬었던 것입니다. 그 분과 아버지가 나가시려고 하는데, 어린 제가 잠자다가 나갔습니다. 아버지 가지 마세요 ^^ 결국 아버지는 저 때문에 못 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 별로 불만이 없으셨는데, 단지 그 술 드시는 것에 대해서만은 불만이 많으셨답니다. 그래서 항상 저한테, 넌 술 먹지 마라, 술 먹지 마라 하셨던 거지요. 저희 아버지요?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한동안 끝발 날리셨던 한식, 궁중요리 전문 호텔 요리사 셨습니다. TV나 여성지 인터뷰도 많이 하셨고, 심지어는 국무총리가 우리 아버지가 만든 냉면을 먹고 싶다고 하는 통에, 국무총리 공관에 갔다 오시기까지 하셨답니다. 하루는 모처럼 퇴근 하셔서 쉬시는데 5공 시절 대통령이 왔다고, 불려 나가시기도 했죠. 그 때는 아버지께서 운전을 못 하시던 때라 제가 모셔다 드렸었지요. 그 양반한테 술 한 잔 받아 드셨다는데, 그게 그렇게도 기억에 남으시는가 봅니다.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저는 잘 몰랐습니다. 당신께서는 그 일이 너무 힘드신 탓에 저만 보면, 펜대를 잡아야 해, 펜대를… 그렇게 사무직에 대한 동경도 있으셨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들은 펜대는 놔두고, 하루 종일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일을 하고 있답니다. ^^ 그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건, 대학 들어가면서 아버지가 일하시는 호텔에서 접시닦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았습니다. 대학생이니까 아르바이트 해야지, 그러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마침, 어, 우리도 아르바이트 구하는 모양인데 한 번 해볼래? 해서 덜컥 그러마고 했던 거지요. 접시닦이, 와 그거 장난 아닙니다. 수도 없이 나오는 접시들, 아무리 접시 닦는 기계를 이용한다지만, 기계에 넣기 전에 세제 묻히고, 뜨거운 물로 닦여 나오는 접시를 받아서 다시 마른 수건으로 닦고… 게다가 접시 닦으라고 불러 놓은 아르바이트였지만 접시만 닦는 건 아니었습니다. 주방에서 일어나는 온갖 심부름 다 해야 했습니다. 심지어는 호텔 수영장에서 파는 우동에 곁들이는 단무지 써느라 손톱은 노랗게 물들고 단무지 냄새가 온 몸에 배여 지하철 타기가 창피할 정도였으니까요.

아르바이트가 하는 일은 사실, 거기 소속된 분들이 하는 일과는 또 다릅니다. 아르바이트 하던 저희와 같이 일하시는 분 중에, 요리를 배워 보겠다고, 대학교 일학년인 저보다 한 두살 더 많았던, 형이 있었습니다. 진짜 처음부터 배우는 거지요. 그 형을 보고 있으면, 진짜 저렇게 힘든 일을 어떻게 해낼까 할 정도였습니다. 접시를 비롯해 그 엄청난 설거지를 다 해야 하고, 썰고 깎는 것 다 해야 하고, 음식 재료 들어오면 날라야 하고. 심지어는 막판에 주방 청소까지… 그래서 저는 알았습니다. 왜 유명한 요리사는 남자들인지… 여자들은 요리 연구가라는 이름일 뿐, 왜 호텔에서 일하는 유명한 요리사들이 전부 남자여야 하는지를 그 때 알았습니다. 요리사가 되기 위한 과정이 그렇게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던 거지요. 그 사실을 처음 깨닫는 날, 저는 스팀으로 가득한 접시닦이 기계 앞에서 땀 반, 눈물 반, 그렇게 눈을 적시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힘든 일이라서 아버지는 퇴근 무렵 소주가 그렇게 좋으셨던가 봅니다. 그것도 어디 번듯한 식당에서 드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일하시던 주방 한 켠에, 같이 일하시는 분들과 함께, 간단한 안주 거리 몇 개 놓으시고 맥주 잔에다 소주 받아 드시던 것이었습니다. 보통 아버지들 그렇게 말씀하시잖아요… 아이들이 아빠 또 술 먹었징? 그러면.. 딱 한 잔 했어… 그러시잖아요. 저희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딱 한 잔… 그 한 잔이 맥주잔 한 잔 이라는 걸,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버지 일하시는 옆에서 일하다가 그 때 알게 되었습니다. ^^

그런 아버지셨지만, 어머니가 무서우셨든지, 아들에게는 술 먹지 마라는 말씀 뿐이었습니다. 하다 못해 대학 4년 - 아니 5년이구나 ^^ - 동안 아버지는 아들에게 술 한 잔 사주신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께 첫 잔을 받은 건 졸업식 마치고 였습니다. 운좋게 4학년 1학기 마치고 취직이 되었던 저는, 졸업식 때 직장 선배들이 다 따라와 주었고, 아버지가 일하시던 호텔에서 같이 저녁을 먹는데, 그 자리에서 아버지가 처음으로 저에게 맥주 한 잔 따라 주셨습니다. 그렇게 받은 그 첫 잔, 감히 다 마시지도 못하고 반만 먹고 내려 놓은 그 첫 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요즘은 당뇨기가 약간 있으셔서 술을 드시지 않습니다만, 이번 주말에는 아주 약한 술 한 병이나마, 아버지와 함께 해야 겠습니다. /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