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출일기] 거침 없는 심야의 자퇴길

새벽을 향해 달려가는 오전 세 시. 심야의 자퇴길은 언제나 그렇듯 항상 거칠 것이 없다. 볼 사람도 없고, 설령 본다고 해도 알아챌 사람도 없으니, 남 보기에 우스운 헬멧도 꽁꽁 눌러 쓰고, 시골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형광 발목 밴드도 양 쪽 모두 동여맨다. 귀여운 빨간색 꼬리등과 반짝이는 라이트를 켜면 이젠 준비 끝. 나는 마치 전투를 앞에 둔 사람처럼 긴장하며 스트라이다에 올라 탄다.

사무실 출발은 오전 2시 20분. 집까지 오는 5km 퇴근 길은 출근 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사람도 없고, 차도 많지 않다. 인도든 차도든 내 가고 싶은 길로 열심히 달리면 끝. 적당히 신호도 떼 먹으면서, 낮에는 절대로 할 수 없는 대로를 가로지르면서 나는 하루종일 쌓인 심신의 스트레스를 날려 버린다.

심야 자퇴길의 가장 무서운 적은, 나보다 더 거침 없는 자동차들. 석촌호수 옆 횡단보도를 제 신호에 맞게 건너고 있다 보면 맞은 편에서 달려오는 차들의 속도가 무섭다. 혹시라도 저들이 멈추지 않고 그냥 달릴까 두려워 나는 페달에 더 힘을 준다. 그렇게 내 스트라이다는 열심히 달린다.

그다지 힘들 것 없는 고개를 넘다 보면, 이 늦은 시간에도 자전거를 타는 동행을 만나기도 한다. 스트라이다 어떠냐고 묻는 그에게, 난 너무 내 애기만 한 것 같아 지나고 나니 후회스럽다. 그도 참 좋은 자전거를 탔었는데. 나도 꼭 한 번 갖고 싶은 빨간색 스페셜라이즈드. 그 자전거에 대해 묻지 않았음이 안타깝다. 나에게 스트라이다가 좋은 자전거였던 것처럼 그에게도 그 자전거가 좋은 친구였을 터인데.

그렇게 마지막 언덕을 넘다 보면 바로 집 앞. 갑자기 집에 들어가지 말고 한 바퀴 더 타고픈 욕망이 샘솟는다. 하지만 내일을 위해 더 달릴 수도 없는 일. 칭얼대는 자전거를(아니 내 마음을) 달래 꼬리등을 끄고 스트라이다를 접으며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시계를 보니 2시 38분. 출근 시간에라면 도저히 꿈도 꾸지 못할 18분 기록. 이 정도면 더 이상 속도에 욕심낼 일도 아니다.

욕망은 거뒀으되, 아쉬움은 남는다. 내일은 비가 온다니, 스트라이다를 탈 수 없다는 생각에 괜시리 가슴이 답답할 따름이다. / FIN

  • ^^ 2007.05.08 09:0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상상의 새벽길을 함께 퇴근을 해봅니다. 기분 정말 좋네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05.08 11:24 신고 수정/삭제

      늦어서 피곤하긴 하지만 ^^ 정말 기분 좋게 달린 새벽이랍니다

  • 2007.05.08 09:06 ADDR 수정/삭제 답글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7.05.08 10:5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아니.. 삼실에서 뭐하다가 그 시간에 퇴근이야?..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05.08 11:23 신고 수정/삭제

      그러게. 어쩌다 보니 좀 늦었어요~

  • Favicon of http://biog.empas.com/bouquetdor BlogIcon 진주애비 2007.05.08 11:1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멋지십니다...그리고 부럽습니다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05.08 11:23 신고 수정/삭제

      멋지긴요. 웃기는 헬멧 쓰고, 할아버지 바지 모양 하고 낑낑대며 자전거 타는데 멋하고는 거리가 멀죠~ ^^ 자전거, 정말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