쟝 그르니에, 섬 - 20년전 감성을 찾아 떠나다

책장을 뒤지며 20년된 책을 찾아 꺼낸 건 순전히 샛별님 때문이다… 라고 핑계를 대고 있지만, 만일 누군가 내게 ‘그르니에’라는 말 한 마디만 던졌더라면, 엄마네 집 낡은 책장을 뒤져서라도 나는 이 책을 찾아냈을 게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몇 번의 이사를 거치는 동안 버려지는 운명을 피해 내 방 책장 구석에 얌전히 자리하고 있었다. 낡았지만 익숙한 그 커버를 보는 순간, 나는 한 없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불문학을 전공한 까닭에 나는 프랑스 문학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어왔었지만, 그 중에서 이 만큼 내 마음에 강한 인상을 남긴 책은 흔치 않았다. 물론 대학 2학년,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도서관에서 읽어대던 지드의 소설들은 까뮈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에게 감탄스러움과 동시에 어리둥절함을 남져 준 것'이었고 까뮈의 글들은 내 존재에 대한 헛갈림을 유도하면서 내 인생에 기억나는 책들로 자리잡았으나, 역시 까뮈의 표현을 빌면 쟝 그르니에의 섬은 나에게 ‘아찔하면서도 유효적절한 계시'를 남겨줬다.


도대체 뭔 소리여! 라고 말하는 사람에겐, 그저 쟝 그르니에의 책을 읽어 보라고만 해야 겠다. 사람에 대한 잔잔하고도 깊은 이해, 그리고 젊은 누군가라면 한 번쯤은 고민했을 나 자신에 대한 통찰. 그르니에는 어렵지 않고 잔잔한 문체로 그의 생각을 보여 준다. 마치, 친절하고 따뜻한 어느 인생 선배처럼 그르니에는 자근 자근 그의 생각을 들려주고, 독자는 누군가의 얼굴을 보며 그의 이야기에 푹 빠져드는 것처럼 책장을 넘기게 된다.

외롭다는 말에서 비롯된 섬. 아마도 그르니에는 외로운 섬에서 인간의 모습을 찾아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다양하면서도 본질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없는 인간의 삶에 얽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 주며, 고뇌에 지친 사람들의 머리에 잠깐의 쉼을 선사하는 지도. 만일 누군가 지쳐 힘들고, 그저 마음이 외로울 때라면, 이 책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일게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구할 수 없었던 듯 한데 지금은 민음사에서 쟝그르니에 선집으로 만날 수 있고 원래 이 책을 냈던 청하출판사에서도 다시 발행을 시작한 모양이다. 청하의 책은 내가 가지고 있으니 난 조만간 민음사의 그르니에 선집을 사고 말게 될 듯.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을 만난 이후로 계속해서 민음사 책과 인연이 닿는 것은, 그저 닥치고 읽으라는 신의 계시인가 보다. 게다가 내 그동안 미치도록 읽고 싶었지만, 그 동안 내공이 안되어 읽지 못했던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가 민음사를 통해 또 나와버렸으니, 당분간 민음사 책에 올인할 듯. 이래 저래 읽을 책은 쌓여만 가는데, 시간에 대한 핑계는 여전히 날 부끄럽게 만든다.

 
  • Favicon of http://sepial.net BlogIcon sepial 2009.04.06 02:0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히궁~ 레이님은 "섬" 간직하고 계시네요...제 "섬"은 어디에 놓고 온 것일까요....?
    새 "섬"을 사는 것도 배신같은 이런 기분....처음이예요. ^^;
    인생을 만든 영화.....도 한번 써 보려고 하는데....지난 주말 동안 재즈 페스티발에 다녀와서 그런지.....내 인생의 재즈에 관해 써 볼까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중입니다...완전 좋았어요....지난 번 허마너스 여행처럼 뭔가 모자라지 않았달까......

    아, 정말 레이님이랑 이슬님 일잔....아니....흠흠....밥 한번 먹어야 되겠는데 말이죠.....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4.06 09:09 신고 수정/삭제

      제가 뭐 남아공 가죠 ㅋㅋㅋ

      전 이상하게 재즈하고는 잘 안 맞아서, 재즈에는 별 감동을
      안하게 도더라고요. 영화는 뭐 죄다 두들겨 부시는 거라서리! ㅋ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09.04.06 09:1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이런 포스팅 안 어울리는 거 같으믄서도 은근히 어울리신다능..^^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4.06 09:27 신고 수정/삭제

      헐, 이거이 욕이여 칭찬이여 ㅋㅋ

      수욜에 먹고 죽는게지?? ㅋㅋ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09.04.06 09:51 신고 수정/삭제

      칭찬이구요..
      맛난 고기먹고 죽기는 왜 죽습네까..
      둘이 먹다가 하나 죽자는 말씀이신지..ㅎㅎ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4.06 10:02 신고 수정/삭제

      ㅎㅎ 고기만 먹을 수 있었음 좋겄네! ㅎㅎ

  • Favicon of http://happicialist.tistory.com BlogIcon 에너양 2009.04.06 12:3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불문학을 전공한 소녀로써 그냥 지나칠수 없어 댓글을..^^
    저 속에 있던 뭔가를 자극해 주시는군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4.06 13:41 신고 수정/삭제

      하하, 과거엔 항상 아름다운 것 하나 쯤은 들어있기 마련이죠~ ㅋ

  • Favicon of http://sepial.net BlogIcon sepial 2009.04.06 20:0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트랙백이 잘못갔네요??? 지워주시옵소서.......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