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장, 그리고 엄마의 솜씨

누가 뭐래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은 ‘엄마가 해 준 밥’입니다. 평생을 자식을 위해 사셨고, 이젠 즐기면서 사셔도 될 그런 연세에도 아직도 자식 일이라면, 엄마는 두 손 걷어붙이고 나서십니다. 그런 엄마가 할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일은, 아마도 자식들에게 밥을 해주는 일일 겝니다.

6개월을 숙성해서 만들었다는 전통장류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그리고 저도 스스로 자식을 키우면서 먹거리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됐는데, 그 대표적인 음식이 김치와 장류로 대표되는 발효 식품입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고추장과 된장이 수입산 밀가루로 만들어졌고, 화학 기술을 이용해 속성으로 숙성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사실 일반 장류를 먹기가 왠지 찜찜했었는데 그러던 찰나에 전통 방식으로 숙성했다는 장류를 선물 받은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장 맛을 구분할 정도의 입 맛은 갖추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엄마가 항상 된장과 고추장을 담아 주셨으니 일반 장류를 먹을 일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니 좋은 장을 선물 받았다고 해도, 제대로 된 맛을 알 방법이 없었던 게지요. 이럴 땐 그냥 엄마에게 가져가야 합니다. ‘엄마, 이거 장 좋은 거라는데, 이걸로 된장찌개나 좀 끓여주세요.’

그 일이 계기가 되서 모처럼 가족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그래봐야 부모님과 저희, 여동생 내외 이렇게 단촐하지만, 마치 명절인 것처럼 시끌 벅적했습니다. 엄마는 커다란 뚝배기에 온 식구가 다 떠 먹고도 남을 만큼 넉넉하게 된장찌개를 끓여 내셨습니다. ‘된장 위에 하얗게 곰팡이가 피었구나, 이런게 진짜 된장인 거지. 살아 있다는 것이니까.’ 찌개를 끓이기 전 된장 옹기 입구 주위에 핀 하얀 곰팡이를 걷어내면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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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와 버섯, 두부, 양파... 소박하게 끓여낸 된장찌개는 끓는 모습만 봐도 군침이 됩니다. 장이 얼마나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자식들 먹이겠다고 모처럼 솜씨를 발휘하시는 엄마의 정성 때문에 절대 맛없을 수 없는 상황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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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붉은 색이 선연하게 도는 전통 고추장은 생각 했던 것보다 매콤했습니다. 달달한 고추장 맛에 길들여 있어서인지, 손가락으로 한 번 찍어 먹고는 어우 맵다를 연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고추장을 활용할 가장 손쉬우면서도 맛있는 식사는 바로 비빔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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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라고 해야 특별히 들어갈 것이 없습니다. 겨울, 제 철을 만난 시금치와 콩나물, 그리고 스크램블한 달걀이 전부입니다. 막 해 낸 뜨거운 밥에 시금치와 콩나물, 달걀을 얹고 고추장을 한 숟가락 떠 넣습니다. 그리고 빼 놓을 수 없는, 시골에서 농사짓는 막내 이모가 보내온 참기름을 한 숟가락씩 뿌립니다. 그리고 슥슥 비벼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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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찬이 없어도 먹을 수 있는 금방 한 밥, 제철이라 달콤한 맛이 도는 시금치, 매콤하고 깔끔한 전통 고추장과 구수한 참기름의 조화, 그리고 도저히 멈출 수 없는 된장찌개의 구수함. 이런 소박함들이 모여 한 끼 훌륭한 저녁 만찬을 만들어 냈습니다. 콜레스테롤을 염려할 필요도 없고, 성분이 의심스런 밀가루를 먹었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는 깔끔하고 든든한 식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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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장이 되었든,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 되었든, 가끔 엄마에게 들고 가야 겠습니다. 그 핑계 대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엄마의 기쁨도 함께 누릴 수 있을 테니까요. / FIN

  • Favicon of http://www.rabbicat.kr BlogIcon 토양이 2007.12.27 06:5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매일 아침에 잠실역에서 김밥 사다가 먹는데..오늘은 왠지 사기 싫어지네요. - ㅜ

  •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 BlogIcon 실비단안개 2007.12.27 08:5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도 아직 장 맛을 모릅니다.짠 것은 간장이요, 매운 맛은 고추장 - ㅎㅎ
    매듭달 마무리 잘 하시길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12.28 15:51 신고 수정/삭제

      네, 고맙습니다. 실비단안개님도 행복한 날들 되세요 ^^

  • Favicon of http://www.kimdahee.com BlogIcon 다희 2007.12.27 09:1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와 진수성찬인데요? ^-^
    된장찌개는 장만 맛있으면 80% 이상은 성공이거든요.
    저희 어머니도 오늘 짱아찌 종류랑 동치미 담그신다는데- 꿀꺽.
    아침 먹고 왔는데도 괜히 배고파져요. -_-;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12.28 15:51 신고 수정/삭제

      엄마가 해 준 건 뭐든 진수성찬이죠. 그걸 너무 늦게 알았어요 ^^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7.12.27 10:4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와.. 비빕밥 정말 맛나 보인다..
    아침 못 먹은 기러기 아빠에게는 죽음이네.. ㅋㅋ

  • Favicon of http://gamsa.net BlogIcon 양깡 2007.12.27 13:2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군침 넘어가는 사진들 잘 봤습니다. ^^

  • Favicon of http://blog.pulmuone.com BlogIcon 풀반장 2008.01.14 14:5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레이님, 안녕하세요.
    풀무원이 공식 블로그를 오픈했답니다.
    레이님 이 포스트 재미있어서 링크 걸었습니다~
    한번 놀러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