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선물 - 갓 만든 케이크

아마 작년 가족 중 누구 생일 때 일이었을 게다. 가족들과 외식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래도 생일인데 케이크에 초는 붙여야지, 그런 얘기들이 나왔다. 그럼 케이크는 내가 사오지 머, 그러고는 집 앞 파리바게뜨에 케이크를 사러 갔었다.

얼마 전 또 다른 생일에 먹었던 녹차 케이크인지 고구마 케이크인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여튼 그 케이크를 달라 했더니 직원 왈, '아직 녹지 않아서 드릴 수가 없다'는 거였다. 이게 무슨 아이스크림 케이크도 아닌데, 녹긴 뭘 녹여? 이상하다 싶었지만, 대신 다른 케이크를 사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녹이는 케이크에 대한 진실을 나는 작년 겨울 성탄절 쯤해서 우연히 알게 됐다.

크리스마스케이크에 관한 그들의 진실..

평소 자주 가던 진주아빠님 - 진주아빠님 본인은 '진주애비'라고 닉을 쓰지만, 왠지 나는 진주아빠로 부르는 게 더 편하다 - 블로그에서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몇 달 전에 미리 케이크를 만들고 그걸 냉동했다가 성탄절 시즌에 공급한다는 얘기를 읽게 된 것이다. 아, 그래서 그 때도 케이크를 녹인다고 말을 하는 것이었구나!

아무리 프랜차이즈래도 제과점들은 모두 제빵시설을 갖추고 직접 빵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몹시 황당한 일이었다. '뭐, 냉동했거나 말았거나 몸에 해롭지 않고, 맛있으면 그만 아니냐'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다면 적어도 '갓 구운 빵'이라는 이미지로는 광고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 따뜻하게 금새 만들어 둔 케이크라고 착각하면서 사먹었던 나는 사실 심한 배신감 마저 느꼈다고 해야겠다. 그리고 지금 와서 다시 한 번 검색을 해 보니, 이런 관련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빵값이 싸면 위험하다?

그런 까닭에 매년 성탄절에는 케이크를 샀지만, 작년에는 케이크를 사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몇 번 성탄절 시즌에 케이크를 산 건, 선물 때문이었음도 고백해야 겠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주니까 기왕이면 그 케이크를 안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냉동 케이크를 팔면서!라는 괘씸한 마음이 든 이상,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들의 케이크를 사기란 정말 싫었다. 대신 다른 데서 케이크를 사면 되지 뭐.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직접 케이크를 만들어 파는 빵집을 찾으려 했는데, 우리 집 주변엔 그런 빵집이 없었다(두어달 전에 하나 새로 생기기는 했다 ^^). 집 근처 사방 1km 이내에 파리바게뜨만 서너개 있을 뿐. 그래서 결국 작년 성탄절엔 케이크를 먹지 못했다. 그리고, 애꿎은 진주아빠님 블로그에 올해는 케이크를 사지 못했다고 투덜(!)대는 댓글을 하나 남겼다.

얼마전, 이런 저런 일이 있어서 진주아빠님이 직접 운영하시는 빵집을 찾았다. 사실은 회사 3주년 기념으로 특별히 케이크를 맞춰달라고 진주아빠님께 부탁했었는데, 그 케이크를 찾으러 간 것이다. 생각보다 너무 공을 들여 만들어 주신 탓에 - 이 케이크에 대한 포스팅은 여길 참조 ^^ - 케이크 값을 내면서도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는데, 세상에, 지난 번 성탄절에 진주아빠님 글을 읽고 케이크를 못 샀다는 내 댓글이 마음에 걸리셨던가 보다. 난데없이 케이크를 하나 더 얹어주면서 딸 아이 가져다 주라 하시는 것이 아닌가. 괜찮다고 사양하는 척(!) 하긴 했지만, 특별히 만든 고구마 케이크라는 말에 더 이상 사양할 수가 없었다. 케이크를 주면서 진주아빠님은 빠른 시일 안에 먹으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정말 정성들여 만든 빵을 손님들이 몇 일씩 묵히거나 심지어 냉동실에 넣어버리는(!) 그런 가슴아픈 일이 종종 있다면서 말이다. 빵이 갓 나왔을 때 그 맛, 그건 사실 어떤 맛과 비교하기가 힘든 법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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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말. 케이크로 가벼운 점심을 했다. 내가 고구마를 그리 즐겨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빵과 어우러지는 맛이 예사롭지 않았다. 물론 내가 마음을 열고 먹은 심리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 대형 프랜차이즈 제과점 빵에서 느끼지 못하는 뭔가 특별함이 있는 것 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를 주려고 특별히 만든 케이크이니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앞에도 썼지만, 냉동된 케이크를 썼던 어쨌던 몸에 해롭지 않고, 맛있는 빵을 만들면 그만이다. 오히려 냉동했다가 해동했는데도 그런 맛을 낸다는 기술력에 감탄을 표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대기업들의 물량 공세와 마케팅 덕분에 집 근처 작은 베이커리들이 - 이걸 윈도 베이커리라고 부른단다. 제빵 시설을 갖추고 매장과 유리(윈도)로 구분해 놓은 그런 베이커리들 말이다 - 사라진다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집 만이 낼 수 있는 고유한 맛, 정말 막 구워 낸 따뜻한 빵을 먹을 수 있는 그런 작은 베이커리들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정말 일년 내내 전국 어디서나 변함없이 똑같은 맛의 빵을 먹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차피 경쟁해야 하는 세상. 규모가 큰 기업들이 덤벼드는 건 비단 제과시장만은 아닐게다. 어느 산업이든 자본이 많은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경쟁은 늘 존재하는 법이다. 그리고 작은 기업은 큰 기업의 자본과 대형 마케팅을 두려워하고 불평하기 전에, 자기만의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작기 때문에 반드시 가능한 부분들이 있을 거라 나는 믿는다. 나 역시 작은 회사에서 작은 회사 만의 장점을 개발하면 일하고 있으므로! 물론 지금도 고유의 맛을 살린 유명한 동네 빵집들이 많이 있기는 하다. 동네 빵집이라고 하기엔 더 커져버린 베이커리들도 지방 마다 독특한 집들이 하나씩 있다는 얘기는 한번쯤 들은 적이 있다.

독특하고 특별하게 맛있는 빵 하나 먹으려는 내 욕심에 말이 길어졌다. 개인적으로 진주아빠님 빵집이 유명해지고, 정말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소중한 맛을 간직한 귀한 빵집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갓 구어낸 구수한 빵의 그윽한 향기가 항상 느껴지는, 그런 빵집이 가까운 곳에 하나 있었으면 정말 정말 좋겠다.

Ps> 진주아빠님 빵집엔, 치즈빵과 누룽지빵이 있었다. 치즈빵은 그냥 먹어도 맛있고 와인과 먹어도 좋다. 실제로 난 맥주에 곁들여 먹은 적이 있는데 그 맛도 짜릿했다. 누룽지빵은 실제 누룽지로 만든 건 아니고 누룽지틱(!)하게 만든 빵인데, 요거 구수한게 그만이었다. 진주아빠님 빵집은, 도산사거리 폭스바겐 매장 건너편, 미니(MINI) 매장 옆쪽 골목으로 조금만 가면 보인다. '부케도르 논현점'이다. / FIN

  • Favicon of http://www.rabbicat.com BlogIcon 토양이 2008.04.28 10:1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아. 누룽지로 만든 게 아니었군요.^^;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8.04.28 17:3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우리 종종 빵 사러갑시다.. 벌써 중독 증상이 생길라고 하네.. ㅋㅋ

  • Favicon of http://blog.empas.com/diabloti BlogIcon 정현아범 2008.04.29 22:5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도 토욜날 함 떠야겠네요..
    엎어지면 코닿을지도 모르는 동네니깐요..

    ※ 저 요즘 잘 드시고 다니는 분들 뵈면 원인모를 분노가..ㅡㅡ+
    며칠째 살뺀답시고 저녁 굶고 있어요..엉엉

  • Favicon of http://dogguli.net BlogIcon 도꾸리 2008.05.01 09:4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진주아빠님의 수더분한 인심이 고대로~~
    케익 좋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