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호밀밭의 파수꾼

팔자 좋은 부자집 고딩 녀석이 학교를 때려친다. 학교에도 관심 없고 잘하는 과목이라고 해도 영작문 하나 뿐이니 학교에 잘 적응할 리 없다. 명색이 펜싱팀 주장인데, 펜싱 시합 하러 다른 학교 가는 길에 펜싱 장비를 잃어버리고, 친구들하고도 잘 어울리지 못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라곤, 자기 주위엔 순 얼간이 뿐이란다.

하지만 고딩은 어쩔 수 없는 고딩인 법. 학교 때려치고(정확히 말하면 짤리고) 집에 가서 사실을 실토하기가 두렵다. 몇 일 호텔 방에 묶으며 시간을 죽여 보려 하지만 - 마침 돈은 좀 있었으므로 - 아무도 그와 함께 시간을 죽여주지 않는다. 미치도록 사람이 그리워, 창녀를 사보기도 하지만, 그것도 별 신통찮다. 옛 여친을 다시 만나고, 착한 동생을 찾아 몰래 집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은…


결국은 뭐! 돈 많은 집으로 돌아간다는 얘기지. '호밀밭의 파수꾼'을 사게 된 건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인터파크에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검색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이 책. 나 대학 다닐 때만해도 명작 선집 리스트에 없었던 이 책이 왜 검색 순위 1위인 것일까. 도대체 무슨 내용을 담고 있길래.

그런데 나중에 누군가 들려주는 얘기로는, 이 책이 어떤 방송 프로그램의 소품 비슷하게 쓰였던 모양이다. 내가 가르치는 고등학생 중에서도 읽은 애가 있을 정도니 꽤 알려지긴 했나보다. 물론 이 책 얘기를 했더니 그 녀석은 아우 이 책, 거의 왕짜증이에요, 라는 분위기를 연출했지만서도. 논술 대비해서 읽으라는 책이었던가 본데, 명작을 이렇게 읽으면 나중엔 다시 명작을 쳐다보기도 싫어지는게 뻔한 일 아닐까.

여튼, 이 책은 어른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닌 청소년의 방황을 그린 성장 소설이다. 뭐, 내 식으로 따지면 성장통 소설이라고 해야 겠다. 성장하는 게 꼭 아픈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성장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죄다 뭔가 아픔을 안고 있으니 말이다.

생각해 보니, 난 저렇게 치열한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정말 마음 놓고 얘기할 누군가가 미치도록 그리웠던 적은 있었던 듯 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 입시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한 때는 첫 사랑이었던 그 누구에 대한 그리움으로 길거리를 마냥 쏘다녔었겠지. 그리고, 그런 마음을 달래기엔 결국 마음 맞는 친구가 최고였다는 뻔한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 크던 작던, 그 나이 때를 자라는 사람들에겐 아픔이 있는 법일 게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가 착한 동생인 피비에게 고백하는 미래의 소망이다. 호밀밭을 지키고 있다가 절벽으로 떨어지는 아이들을 잡아주는 일, 그게 그의 소망이다. 학교에서 짤린 녀석 치고는 꿈은 참 선하다. 어쩌면 그 역시 자신의 추락을 잡아주는 누군가를 원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우리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든다. 살아가는 즐거움을 알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데 치열한 삶을 살기 위해 전쟁터에 나간 것처럼 공부를 한다. 기업은 창의적인 인재를 찾는데, 학교는 획일화된 시스템으로 공부 기계만을 만들어 낸다. 그들의 아픔은, ‘대학 가면 다 끝나는 거야'라는 말로 묻혀 버린다. 그들의 아픔을, 우리는 정말 이렇게 묻어버려야만 하는가. 벌써부터 밀려드는 숙제 때문에 11시가 넘어도 책상 앞에 매달려 있는, 이제 6학년이 되는 딸 아이를 보며 대한민국의 아빠가 이렇게 무기력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난 오늘도 마음이 아프다.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할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인가.

  • Favicon of http://www.rabbicat.com BlogIcon 토양이 2009.03.02 09:2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살인자를 길러낸다는 음모론의 중심에 있는 책이기도 하죠. 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02 09:57 신고 수정/삭제

      흐음, 살인자를 키우기론, 토양이님이 읽으시는 책들이 더 그러할듯 한데?? ㅋㅋ 책 속에 들어 있는 깊은 의미를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우찌 알껴. 그냥 읽고, 느끼고 즐기는 법인게지~ ㅋ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09.03.02 13:16 신고 수정/삭제

      '멜 깁슨'입장이 되신다믄 글케만 말씀하시긴 어려울 듯..ㅎㅎ

    • Favicon of http://www.rabbicat.com BlogIcon 토양이 2009.03.02 18:15 신고 수정/삭제

      아, 컨스피러시 ㅋㅋㅋㅋㅋ

  • Favicon of http://arpagos.tistory.com BlogIcon 아르파고스 2009.03.02 10:3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비틀즈의 존레논을 암살했던 '마크채프먼' 인가 하던 사람이 암살 당시 손에 들고있던 책이라고 들었던 거 같아요. (허위 정보면 곤란한데...;;)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02 13:01 신고 수정/삭제

      아, 그런가요?? 오호~ 음모가 충분히 나올만 하군요! ^^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9.03.02 11:5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어.. 갑자기 토양이 블로그와 헷갈리는데.. 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02 13:02 신고 수정/삭제

      ㅎㅎ 요즘 읽은 책에 대한 흔적이라도 남겨놔야 겠다 싶어서용~ (근데 전 토양양처럼 시니컬(!) 하진 않아요!! ㅋㅋ)

    • Favicon of http://www.rabbicat.com BlogIcon 토양이 2009.03.02 18:16 신고 수정/삭제

      저는 시니컬하지 않은데요0_0;;

  • Favicon of http://blog.daum.net/bouquetdor BlogIcon 진주애비 2009.03.02 20:0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여긴 책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참 유익한 블로그인것 같아요
    댓글 남기는 분들도 모두 훌륭한 것 같고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02 23:28 신고 수정/삭제

      이런 댓글 매우 환영합니다! ㅋㅋㅋ (아 속보여!)

      근데, 갑자기 왜 그르세염~~~

  • Favicon of http://sogmi.com BlogIcon 소금이 2009.03.06 23:5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이 책을 읽었을 때가 군대에 있을때인데, 너무 늦게 이 책을 읽었다고 한동안 후회하던 기억이 생각납니다. 혹 주변에 10대 분이 계시다면, 꼭 한 번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네요.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07 00:01 신고 수정/삭제

      ^^ 저도 늦게 읽긴 마찬가진데요 ^^ 그런데 정작 십대들은 읽으라고 했더니 재미없다고 투덜댄다는. ㅋㅋ

  • Favicon of http://sepial.net BlogIcon sepial 2009.03.21 22:0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도 아마 대학가서 읽었던 것 같아요....보면서 울었다는....ㅠ.ㅠ
    (스타워즈만 봐도 눈물이....으흐흑...)
    대학생이었지만, 그래도 인생의 방향...그런 건 잘 몰랐으니까요.....암튼 무척 기억에 남는 책이고, 오늘날의 저를 만든 책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도 같아요.

    아~ 책 고프당~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22 00:01 신고 수정/삭제

      정작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에 동감하면서 읽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어요.. 지금도 예민하시지만! ^^

  • Favicon of http://www.midorisweb.com BlogIcon 미돌 2009.03.29 03:4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명작 순례라..아주 멋진데요. 이책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본에서 번역해서 내놓기도 했다고 해서 저두 사서 봤는데 끝까지 읽지는 못하고 책장에 꽂혀있어요. 다시 시도해봐야겠군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29 19:52 신고 수정/삭제

      아유 요즘 감성이 옛날 같지 못해서, 진도가 빨리 빨리 안 나가네요~ ㅋㅋ 역시 명작은 괜히 명작이 아닌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