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잘 포장된 책 - 창조 바이러스 H2C

집에 돌아오니, 책상 위에 책 한 권이 놓여 있었습니다. 친분이 있는 딸 아이의 친구 아빠께서 읽다가 너무 감명 받았다고 같이 한 번 읽었으면 좋겠다고 쪽지가 한 장 얹혀 있는 책이었습니다. 같이 여행을 가기도 했고, 가끔 술 한 잔 하기도 하는 사이였지만, 이렇게 책을 선물 받으니 기분이 또 묘하더군요. 저도 뭔가 답례로 책을 하나 보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선물은, 아마 이래서 더 아름다운가 봅니다. 받으면, 무언가 다른 책을 보내야 하겠기에.

사실 저는 문학이나 역사, 철학 같은 책은 책에는 손이 많이 가는데 경제 경영, 처세 이런 류의 책에는 손이 잘 안 가는 편입니다. 그래서 이런 쪽 책을 선물 받으면 더 기분이 좋죠. 제가 잘 고르지 않는 분야의 책을 접하게 만들어 주니까요. 이번에 선물 받은 책은 홈플러스 이승한 회장님이 쓴 창조 바이러스 H2C 라는 책입니다.


책 내용은 어렵지 않습니다. 활자도 크고 페이지도 잘 넘어 갑니다. 한 시간, 길어도 두 시간 정도면 읽어 내릴 수 있습니다. 한국에 홈플러스라는 유통점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저자의 인생을 마치 자서전처럼 풀어 낸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어린 시절의 가정 형편 부터 삼성이라는 대기업에 취직해 일을 하는 과정들, 어려웠던 시간들과 영광의 시간들을 에피소드 중심으로 풀어내면서 저자가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결론부터 말하면, 저는 그닥 감동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처음엔 이거 뭐, 돈 많고 성공한 분의 자기 자랑인가 보다, 그런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신입사원 시절 복사만 6개월 했다는 얘기는, 뭐든 남보다 두드러지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얘기로 들리지만, 현실에선 100% 적용되는 얘기가 아니므로 신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려웠던 시절 선비였고 엘리트였던 부모님을 두지 못했고, 국내 최고 학부에 다니는 형제들을 두지 못했으며, 대기업에 입사해보지 못했던 이 땅의 훨씬 더 많은 보통 사람들에게, (물론 저자는 정말 피나는 노력을 했고 그래서 성공했겠습니다만) 나는 이렇게 했고 저렇게 해서 성공했다는 얘기가 얼마나 설득력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홈플러스라는 기업이 입점 업체에게 부리고 있는 횡포(비록 이 바닥에 있는 업체들이 다 그렇게 하는, 관행이라는 말로 두리뭉실 넘어 가고 있지만)에 대해 중소기업 사장님으로 부터 들은 얘기가 있는 저로서는 책에 나와 있는 좋은 얘기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더욱이 책 중간에 우리나라에 나와 있는 상이란 상은 다 받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다 받았다는 얘기에선 실소까지 나왔습니다. 다 그런 건 아니겠습니다만 일부 언론사에서 주관하는 소비자 대상 등등이 사실은 돈 내고 사는 광고라는 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기 때문입니다.

선물해 주신 분께는 좀 미안할 정도로, 비판적인 관점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웠던 시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힘을 많이 얻으셨다는 친구 아빠의 소감은 나중에 술 자리에서 따로 한 번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저도 무언가 답례를 보내면서 이런 자리를 만들게 되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책이 주는 메시지까지 무시해서는 안되겠지요. 비록 지나치게 잘 포장된 개인의 성공담이긴 하겠습니다만, 벽에 붙여 놓으면 좋은 문구들이 꼭 있거든요. 우리가 모르진 않지만, 가끔씩 스스로에게 경각심을 줄만한 그런 문구들을 다시 한 번 되새겨 읽게 했다는 점은 틀림없이 이 책이 주는 좋은 점이니까요. ^^ / FIN

  • Favicon of http://blog.daum.net/bouquetdor BlogIcon 풍류대장 2009.09.14 20:3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맵씨나는 레이님의 글쓰기 솜씨로
    누군가의 자서전을 써 주시다면
    그 분의 일생은 또 얼마나 아름답게 보일런지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9.14 23:56 신고 수정/삭제

      뭐, 남의 이야기를 쓰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 전에 제 얘기를 먼저 써 보고 싶어요. ㅋㅋ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09.09.15 22:4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제가 좀 아는데요..
    책 안 읽어봐도 많이 맞아 떨어지지는 않을 듯..^^;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9.16 08:56 신고 수정/삭제

      ㅎㅎ 자기가 읽다간 아마 집어 던졌을(!) 지도 모를 일~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