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말이야, 절대 지루한게 아니야

아빠가 딸에게 가르쳐야 할 인생을 즐겁게 사는 방법 10
독서 - 책을 읽는 즐거움

“아빠,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4권 커튼 다 읽었어?”
“응? 아빠 요즘 바빠서 못 읽었는데?”
“그거 범인이 XXXXXX야 ㅋㅋㅋㅋ”
“야! 그거 얘기하면 아빤 무슨 재미로 읽으라고! 너 진짜~”
“어~ 그럼 나 다 얘기한다~ 15권은...”
“으악! 안 들어, 안 들어!”

요즘 딸 아이가 저를 놀려 먹는 것 중 하나입니다.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 같이 읽을 책을 고민하다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을 조금씩 사주고 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아합니다. 덕분에 아빠도 옛날에 읽었던 오리엔트 특급 살인 같은 명작을 다시 읽고 있지요.

‘책 많이 읽어야 훌륭한 사람 되는 거야’라고 우리는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그래서 어릴 적 부모님들은 아이들 머리 맡에서 책을 읽어주고, 수백만원씩 주고 전집 세트를 사주고, 도서관엘 데리고 다니면서 이런 저런 책을 읽게 해줍니다. 이도 저도 안돼면 책 대여점을 이용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대부분 아이가 어릴 때 뿐입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많은 부모들이 책 읽으라는 말을 안 합니다. 아니 어쩌면 못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학원 다니랴 공부하랴 쫓기는 아이들에게 책 읽으란 말은 어쩌면 사치입니다. 그래놓고 말은 잘 합니다. “책 읽어야 훌륭한 사람 되는 거야.” 하지만 안 읽습니다. 아빠가 안 읽는데 아이보고 책을 읽으라니요.

그래서 쓴 방법이 아이와 같이 책을 읽는 거였습니다. 제일 처음에 같이 읽은 건 이원복 선생님의 먼나라 이웃나라였고요, 60권짜리 만화 삼국지도 같이 읽었습니다. 해리포터 시리즈도 읽었고... 그냥 읽으면 재미 없으니까 중간 중간 퀴즈 내기도 합니다. 제일 쉬운 건 인물 퀴즈입니다. 맹획이 누구냐? 뭐 이런 거지요. 그러다 보면 퀴즈에서 이기려고 진짜 별 얼토당토 않는 인물을 찾아냅니다. 축융부인이 맹획의 아내라는 거, 이젠 절대 안 잊습니다.

한 번은 딸 아이가 제가 읽던 다카노 가즈야키의 추리 소설을 읽어보겠다 하더군요. 특별히 내용에 문제될 것이 없어서 그러라 그랬더니 완전 반응이 뜨거운 겁니다. 어린이용으로 번역한 셜록홈즈, 아르센뤼팽 시리즈를 좋아하던 아이였으니 다카노 가즈야키는 좋아할 수 밖에 없겠지요. 그 뒤로 아이는 제가 읽는 책들 몇 권을 따라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전세가 역전된 거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 천사들의 제국, 신까지 읽고는 아빠가 자기 몰래(!) 재미있는 책만 읽는다는 사실을 눈치챈 겁니다.

이런 책들 보다 의미 있는 책을 읽혀야 하지 않나고 아내는 가끔 얘기합니다. 물론 저도 그러고 싶죠. 그래서 저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사서 읽고는 아이 방에 꽂아 놓습니다. 책이 있으니 언젠가는 읽겠지 라는 생각으로요. 하지만 쳐다 보지도 않는 듯 해서 한 번은 위대한 개츠비 다 읽으면 엄청난 용돈을 주겠다고 꼬셨는데 결국 스무 쪽도 못 읽고 나자빠졌습니다. 어려워서 못 읽겠답니다. 하긴 아빠도 어려운데 아이에게 쉽겠습니까. 덕분에 위대한 개츠비는 이제 딸 아이에게 지루하고 재미없는 책으로 찍혔습니다. 아이는 앞으로 위대한 개츠비는 쳐다 보지도 않을 겁니다.


책이 어려워 읽지 않는 것보단 재미있는 책이라도 읽는 게 훨씬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고른 책이 바로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입니다. 내용도 별 무리 없고 아빠가 읽기에도 재미있고요. 이 녀석, 아빠 보다 읽는 속도가 빨라 먼저 읽고 나서 아빠를 놀려 먹는 재미까지 생긴 겁니다. 다음 번 시리즈 빨리 사오라고 요즘 노래를 부릅니다. 덕분에 아빠는 매달 책 값 대느라 술 값을 줄이고 있을 정도입니다.

아빠는 딸에게 지금보다 많은 걸 주고 싶습니다. 여행도 자주 다니고 싶고, 가르쳐야 할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 건 정말 많지 않습니다. 몸도 무겁고(아, 움직이기 싫어하는 이 넘의 디앤에이가 딸에게 유전될 줄이야!) 상황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 가장 좋은 건, 누가 뭐래도 책입니다. 책 속엔, 진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빠가 아이에게 직접 가르칠 수 없는 수많은 보물들이 있습니다. 그 보물을 찾는 눈을 길러주는 것, 아빠로서 이보다 보람찬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 FIN


  • 2010.05.12 21:44 ADDR 수정/삭제 답글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5.12 23:16 신고 수정/삭제

      앗! 그런 일이! 곧 잘 해결되겠지요!^^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10.05.13 10:2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일단 아빠가 책을 좀 읽어야겠죠..ㅠㅠ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5.13 13:49 신고 수정/삭제

      그거이 뭐 어려운 일이라고~
      그냥 죽죽 읽으시면 됩니다 ㅋㅋ

  • Favicon of http://greendayslog.tistory.com BlogIcon 그린데이 2010.05.17 15:5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제 블로그가 다음에 스팸으로 등록된 모양입니다. --; .com만 들어가면 댓글이고 트랙백이고 아무것도 안되네됴. ㅠㅠ 암튼.. 팬더가 그려진 해문출판사의 전집을 열심히 사모으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얼마전 터키 여행에서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의 배경지를 우연히 가보게 되었는데 감회가 새롭더라구요. 추리소설 좋아하신다면 따님과 함께 가보셔도 좋을 듯. 손트랙백 남깁니다. http://greendayslog.tistory.com/203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5.17 17:30 신고 수정/삭제

      이런 이런. 도대체 왜 그렇게 됐을까요??
      사실 터키는 정말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에요.
      딸이야 지가 크면 알아서 갈테니
      전 애인하고 가보고 싶어요! ㅎㅎㅎ

    • Favicon of http://greendayslog.tistory.com BlogIcon 그린데이 2010.05.18 09:43 신고 수정/삭제

      앗 그 애인은 혹시...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5.18 10:16 신고 수정/삭제

      으응?? 누구 아시는 분 있으세요? ㅋㅋㅋ

  • 하루 2010.05.19 00:4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정겨운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me2day.net/wowpc BlogIcon WOWpc 2010.06.10 10:2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책을 많이 읽은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어휘력에서 차이가 나더군요. 제 딸아이는 이제 고작 4살이긴 한데, 아이 엄마가 극성을 부려 6개월때부터 책을 사서 읽어주곤 했었거든요.
    2달 차이나는 동네 친구랑 이야기 하는걸 비교해보면, 확실히 표현력에서 차이가 납니다.
    책 거의 읽지 않은 그 아이는 일상대화의 말은 참 잘 하는데 감정표현이 제 아이와 차이가 나더라구요~

    책 읽는게 습관이 되다보니 잠자리에 들기전에도 한 대여섯권 동화책을 가져와서 읽어달라고 합니다... 좋아라 하는거라 읽어주긴 하지만, 잠자리에선 다섯권 이상은 잘 읽어주지 않으려고 하고 있네요~

    아직 글자는 모르지만, 엄마 아빠가 읽어주었던 내용을 되뇌이면서 혼자 책 펴놓고 중얼중얼 하고 있는 모습보면 그냥 뿌듯하기만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