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맛있는 음식 그리고 추억

이렇게 긴 연휴엔 무얼 할까. 그런 흐뭇한 생각으로 추석 연휴를 시작했는데, 어느 틈에 추석도 지나고, 주말도 지나고, 그렇게 9월도 지나고 있습니다. 명절 연휴는 항상 그렇듯이, 설레임으로 시작해서 아쉬움으로 끝나는가 봅니다.

한 것 없이 명절이 지나간 듯 해도, 돌이켜 보면 남는 건 하나 쯤 있습니다. 오랫만에 반가운 친지들을 만났다든지 - 물론 이게 가끔 스트레스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 - 가족들끼리 여행을 떠났다든지, 이도 저도 아니면 가족들끼리 모여 맛있는 음식을 해 먹었다든지... 어쨌든 평소엔 하지 못하는, 그런 기억들이 하나씩 생겨납니다. 매년 반복 하던 것일지라도, 또 올해는 색다르게, 또 다른 모습으로 했을 테니까요.

저희는 특별히 찾아 오는 손님이 없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항상 큰 집을 찾았었는데 이젠 저희 부모님도 연세가 드시다 보니 큰 집엘 잘 안 가게 되더군요. 그러다 보니 명절엔 가족들이 모여 오순도순 음식을 만드는데, 다 그게 우리 먹자고 하는 겁니다.

추석이면 항상 빠지지 않는 음식이 바로 송편입니다. 송편 만들 때 가장 신나는 사람은 바로 딸  아이입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확실하거든요. 할머니가 만들어 준 반죽을 떼어 손바닥에 놓고 이리저리 굴려 동그란 모양을 만들어 냅니다. 이렇게 동그랗게 만든 반죽으로 엄마나 할머니가 송편으로 만드는 거지요. 보면 정말 별 거 아닌 듯 하지만 예쁜 모양을 만들기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손에 특별한 근육이 발달해서 굉장히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던데, 아마 그런 탓에 송편 같은 음식을 잘 만드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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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을 다 빚으면 솔잎을 넣고 쪄 냅니다. 조상들이 어찌 솔잎을 넣고 쪄 낼 생각을 했는지 참 신기합니다. 떡에 붙은 솔잎을 떼어내기가 번거롭지만, 은은한 솔 향이 배어 있는 막 쪄낸 송편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한 쫀득한 맛을 자랑합니다. 이번에 빚은 송편은 녹두와 깨와 팥 송편이네요. 딸 아이가 좋아하는 깨 송편을 구분하기 위해 송편에 초록색 반죽을 붙이는 할머니의 센스가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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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이 끝나면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부침을 만듭니다. 역시 원 재료를 가공(!)하는 건 할머니의 솜씨입니다. 첫째 부침은 제가 좋아하는 녹두 빈대떡. 아들 때문에 어머니는 손이 많이 가는 빈대떡을 빠뜨리지 않고 하십니다.

녹두를 갈아 넣고 고사리와 김치 등등을 넉넉하게 넣어 만든 반죽을 국자로 떠서 프라이팬에 올리는 건 제가 할 일입니다. 몇 번 구박(!)을 받아가며 프라이팬에 올리면 이걸 적당히 붙이는 건 아내의 역할이지요. 크다 작다 소리를 들어가며 하다 보면 어느 틈에 녹두 반죽이 다 떨어집니다. 그리고 완성된 녹두 부침개가 채반에 하나 가득합니다. 부치면서 기름 냄새를 맡으면 음식을 잘 못 먹는다 하지만, 그래도 냉큼 부치는 도중에 집어 먹습니다. 이럴 때 딱 소주 생각이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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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 빈대떡을 다 부쳤으면 이젠 동태전을 붙입니다. 녹두 빈대떡이 아들을 위한 것이라면 동태전은 며느리와 딸을 위한 것입니다. 푸짐한 동태 살에 밀가루를 묻히는 건 제 딸아이가 하는 일이고요, 그렇게 밀가루 칠 한 동태 살에 달걀 옷을 입히는 건 제가 할 일입니다. 그렇게 달걀 옷을 입혀 프라이팬에 올려주면 지글 지글 소리를 내며 아내가 부쳐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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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네 가족이 부침을 가지고 씨름하는 동안 할머니는 어느 새 나물을 볶아 내시고, 갈비찜을 만듭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것은, 바로 손주 녀석이 좋아하는 구절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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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고기, 버섯, 당근, 오이, 새우 등등을 재료 별로 익히고 볶아 구절판에 담습니다. 구절판의 가운데는 밀 전병이 있고요. 밀 전병에 각종 재료를 올리고 고추장을 찍어 잘 말아 먹으면, 그 고소함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바쁘게 손이 몇 번 가다 보면 구절판은 어느새 바닥을 보이는데, 그렇게 먹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이 가야 하는지... 그걸 생각하다 보면 구절판이란 참 만들기 쉽지 않은 음식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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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음식을 만들고 돌아오는 길, 한가위 달이 보입니다. 정작 추석 당일엔 카메라를 놓고 가느라 사진도 못 찍었는데 추석 전 날 음식을 만들고 돌아오는 길, 하늘에 보이는 달이 마냥 예쁘기만 합니다. 그리고 매년 그랬던 것처럼 달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소원을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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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온 가족이 달라 붙어 만들었던 음식을 모아 한 상 차려 냅니다. 하루종일 만든 음식을 먹어 치우는 건, 정말 순식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참 아쉽습니다. 음식을 즐기며 더 천천히 먹는 그런 문화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은, 공들여 만든 음식을 앞에 놓고는 항상 하는 생각입니다. 생각에만 그치는, 그런 안타까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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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추석 명절, 한 상 가득한 음식으로 시작하고, 그렇게 보냈습니다. 물론 남은 음식들은 일일이 자식들 집의 냉장고로, 냉동실로 들어 갔습니다. 아마 한 달 정도는 드문 드문 이번에 만든 송편과 부침을 먹을 수 있겠지요. 명절 연휴는 다 지났지만, 그렇게 가족을 생각하며 만든 음식들은 명절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 속에 담긴 사랑이 명절을 추억으로 만들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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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happyblog.kr BlogIcon 열심히 2007.10.01 02:0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추석 상차림에 정성이 가득한게 보입니다. ^^
    빈대떡도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지만, 구절판을 따라잡을 수는 없는데,
    명절에 구절판까지 만드시다니 대단하시네요.
    저는 제발 구절판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하는데.. 손이 많이 가서요 ^^;

    새벽녘에 이웃 블로거님들 블로그를 돌아보는데 대부분 음식 포스트라서,
    너무너무 입에 침이 고인채로 잠자러 갑니다. ^^
    행복한 10월 시작하세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10.01 21:08 신고 수정/삭제

      자식들 먹이겠다고 어머니가 애쓰셨지요 뭐 ^^ 다들 추석엔 맛난 음식 먹잖아요... 열심히님도 행복하게 보내셨겠지요?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7.10.01 08:3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와주.. 아주 제대로군요.. ^^ 부럽다.. 원.. 이거 명절 음식은 구경도 못했는데..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10.01 21:08 신고 수정/삭제

      뉴질랜드까지 가서 추석달 보고 오신 분이 부럽긴 머가 부러워요~ ㅋㅋㅋ

  • Favicon of http://health.gamsa.net BlogIcon 양깡 2007.10.01 11:5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추석 잘 보내셨나봅니다. ^^

    음식들이 너무 맛있어 보여요. 저도 송편만들기에 참여를 했는데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10.01 21:09 신고 수정/삭제

      그래서 전 송편은 손도 못 댑니다 ^^ 추석 행복하게 잘 보내셨지요? 하루종일 외근하고 들어오니 댓글들이 달려 있어서 늦게야 답글을 썼답니다 ^^

  • Favicon of http://blog.empas.com/bouquetdor BlogIcon 진주애비 2007.10.01 21:5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아~이거 명절 인사가 한참 늦었네요^^;
    이쁘고도 정성된 명절음식에 미소 짓게 됩니다*^^*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10.02 16:34 신고 수정/삭제

      네~ 진주아빠님도 즐거운 명절 보내셨지요? 인사가 늦기는 서로 마찬가지인 듯 ^^ 행복하세요

  • Favicon of http://blog.empas.com/diabloti BlogIcon 정현아범 2007.10.04 10:2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인제 봤네요..
    할머니 센스 짱!!!
    (근데 낼름 깨만 골라먹게 되는 거 아닌감요..ㅡㅡ;)

    올해 가기전에 함 뵈야죠...^^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10.04 12:27 신고 수정/삭제

      올 해 가기 전이 아니라, 추워지기전에 한 번 보자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