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 빛 새콤 쫄깃한 비단멍게

과거 / 20055

회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멍게든 해삼이든 전복이든
... 다른 바다 생물들의 회 역시 즐거운 음식일 수 없었다. 익히지 않았다는데 대한 거부감에서부터, 견디기 어려운 비릿함과 입안에서 헛도는 물컹함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익히지 않고 그냥 먹는 ''라는 음식과 친해지는 건 틀린 일이지 싶었다. 물고기든, 조개든, 새우나 게 역시...

맛난 음식 찾아 다니기 좋아하고
, 술 잘 먹고 노는 걸로 봐선 회 역시 즐길 거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데 대해 주변 사람들은 간혹 놀라기도 하지만, 어쨌든 입에 안 맞는 음식인 걸 어찌하랴. 그래도 술 먹기 시작하면서 많이 좋아진 셈이다. 예전엔 입에도 안 대던 걸, 그래도 요즘은 안 먹으면 나만 손해라고, 입에 넣기는 넣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서 예의 그 거부감과 비릿함과 물컹함을 지우기 위해 소주 잔을 털어넣기를 반복했었다.

이런 상황이니 회집에 자주 가지도 않을 뿐더러 회집에 간다 한들
, 메인으로 나오는 물고기 회 외에 곁음식으로 나오는 멍게니, 해삼이니, 가리비니 하는 것들에 손을 댈리가 만무하다. 남들이 맛있다고 먹어보라고 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거나 억지로 입에 넣었다 해도 이게 대체 무슨 맛이야 하고 소주 잔으로 입을 헹궈내기야 급급했다.

모처럼 횟집을 찾은 날
, 물 좋은 생선이라고 권하는 놈은 돔. 1kg12만원을 달란다. 자연산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저하다가 회를 대신하는 멍게 한 접시와 해물탕을 먹기로 했다. 회 안 먹는 나를 배려한 최선의 선택이었을 터이다.

조금 후에 멍게가 나왔다
. 내가 아는 멍게는 주황색 뿐이었는데 여기 멍게는 빨간 색이 대부분이었다. 뭐가 다른가 했더니 서빙하는 아주머니 말로는 비단 멍게라고, 동해안에서만 나는 멍게로 서해안에서 양식으로 키우는 주황색 멍게와는 다른 것이라 한다. 회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는 나로서는, 그냥 믿을 수 밖에 없는 말이었다. 어쨌든...

어쩔 수 없이 이 넘을 한 점 집어 입에 넣는데
, 어랏? 이건 좀 특별한 맛이다. 물컹하긴 하지만, 마치 과일을 입에 넣은 것 같은 쫄깃함이 장난이 아니다. 거기에 비리다고는 표현할 수 없는, 새큼한 바다향이 숨어 있었다. 쫄깃함과 새큼함이 어우러지면서, 오호, 이건 좀 특별한 맛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의 별미
. 멍게 꼭지라고 해야 하나, 그 딱딱한 녀석을 입에 넣고 깨물으면 삐죽이 튀어나오는 맛이 일품이다. 딱딱한 꼭지를 씹는 맛에서부터 튀어나오는 쫄깃한 넘을 끌어내어 씹는 맛... 사람들이 이 맛에 멍게를 먹는구나... 했다.

현재
/ 200710

단멍게를 처음 접한 건 20055월의 어느 날 속초항에 있는 횟집에서였다. 그리고 비단멍게에 대한 기록은 내 옛날 블로그 한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그리고 지난 주, 어머니 회갑 기념 겸, 가족끼리 떠난 속초, 설악산 여행 때 다시 나는 비단 멍게를 만났다. 비단 멍게를 처음 먹은 지 2년 하고도 5개월 정도가 흘렀다. 그 사이에 나는 한 번도 비단멍게를 먹지 못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머니가 아는 사람에게 소개 받은 동명항의 한 식당. 곁음식으로 나오는 멍게를 한 사람 당 한 젓가락 먹을 만큼만 준다더니, 이 날은 꽤 푸짐하게 나왔다. 안 먹던 멍게를 열심히 먹는 나를 보며 가족들은 죄다 멍게를 내 앞으로 밀어 놨고, 그래, 회 대신 멍게나 먹을랍니다, 하고 남은 멍게를 싹쓸이 하기 시작했다.

엄마, 난 그냥 멍게는 비린내 나서 못 먹겠는데, 비단 멍게는 괜찮아. 비린내가 없고 입 안에서 씹히는 맛이 아주 상큼해’

니가 진짜 좋은 멍게를 못 먹어 봤구나. 통영 멍게는 이거보다 훨씬 맛있단다’

비린내 안나?’

이구, 그건 비린내가 아니라 멍게의 고유 향이야. 서울 촌놈 같으니라고’

헐헐’

머니와의 대화는 간단했다. 하긴 생각해 보니 통영과 가까운 거제도에서 멍게 비빔밥이 유명하지 않던가. 그럼 통영 멍게 비스무레한 걸 지난 번에 먹긴 했는데, 왜 그 땐 감동이 없었을까. 뭐 그런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며 하여튼 내게 양보해준 가족들 덕에 비단 멍게와 멍게 꼭지는 혼자 독차지했다. 홍시 빛깔 같으면서 새콤하고, 쫄깃하고... , 그 맛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소주라도 있었으면 아마 멍게 여러 마리는 해치웠을 걸, 그런 아쉬움도 많이 남았다. 어쩌면 그런 아쉬움이 더 맛있는 기억을 만들었을 지도 모르지만, 비단 멍게, 동해안 가면 꼭 빼놓지 말아야 할 보물이란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 Favicon of http://sepial.net BlogIcon sepial 2007.10.17 20:5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정말 멍게가 빨갛네요....!
    저도 멍게랑 해삼이랑 산낙지는 안 먹지만.....
    어휴...지금같아선 뭐든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하하하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10.18 20:04 신고 수정/삭제

      ^^ 그 쪽에서는 회 같은 거 안 드시나요? 회는 없더라도 해산물은 왠지 풍부할 거 같다는 그런 느낌이~~ ^^

  • 멍게주디 2007.10.17 21:2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멍게 짱 맛있어용!!!

  • 통영사람 2007.10.17 22:1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제가 통영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지금은 학교때문에 서울에 있지만 님 블로그 보니까 그리워 죽겠네요~
    가족이랑 동생도 보고싶고 ㅎㅎㅎ 회도 먹고싶고. 으으으으. 이번 시험만 끝나면 꼭 내려가야겠습니다.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10.18 20:05 신고 수정/삭제

      꼭 가셔서 맛있는 것 많이 드시고 가족들과 정도 많이 나누시기 바랍니다. ^^

  • Favicon of http://lpost.net BlogIcon 레피니언 2007.10.18 09:0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전 바닷가에서 나오는 건 무조건.. 좋아하는데 ㅠㅠㅠㅠ

    맛있겠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10.18 20:05 신고 수정/삭제

      전 바다에서 나는 거, 안 익힌 거 말고 익히면 다 좋아해요~ ^^ 요즘은 고기 보다는 거의 해산물 중심으로 먹는 듯 ^^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7.10.18 10:2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어우.. 내가 돌아버린다니께.. 회 좀 배우면 안되겠니?..ㅋㅋ

    • Favicon of http://blog.empas.com/diabloti BlogIcon 정현아범 2007.10.18 11:20 신고 수정/삭제

      레이형님땜시 포기하는 경우가 왕왕 있으시겠군요..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10.18 20:06 신고 수정/삭제

      드시고 싶으면 간다 했잖어요~ ㅋㅋ 내가 뭐 언제 안 먹는다고 했나... 그리고 정현아범님~ 저 때문에 포기하는 것 없다우~ ㅎㅎ

  • Favicon of http://blog.empas.com/diabloti BlogIcon 정현아범 2007.10.18 11:1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 대학다닐 때까지만 해도 멍게 못 먹었더랬는데요..
    어느 순간 확 꽂히더라구요..
    아흐~~ 먹고잡다..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10.18 20:06 신고 수정/삭제

      나는 회도 서른살 되면서 먹기 시작했다네... >.<

  • gidrl0924 2007.10.18 16:2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비단멍개는 양식을 하지못해요,,수심 30 m쯤 내려가야 볼수있다고 하네요,,, 해녀들이나 다이버들이 들어가서 가지고오는거랍니다,,그래서 일반사람들이 잘 모를수도 있구여,,,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10.18 20:06 신고 수정/삭제

      아 그렇군요~ 그런 건 모르는 얘기였는데~ 재미있는 얘기 고맙습니다. ^^

  • 지선 2007.10.19 16:2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수심 26M즈음 내려가면 비단멍개가 보이지요 ㅎㅎㅎ 정말 맨처음에보면 이게 멍개인지 그냥 해초인지 헛갈립니다~ㅎㅎㅎ 비단멍개에 소주한잔 최고지요 ㅎㅎ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10.21 00:12 신고 수정/삭제

      야~ 바다속에 직접 내려가 보셨다는 말씀이네요~ 부럽습니다... 진짜 소주 한 잔 무척 땡기더라고요 ^^

  • Favicon of http://j4blog.tistory.com BlogIcon moONFLOWer 2007.10.19 18:5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하악! 여기서는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는데 말입니다!! 동해안 멍게..정말 맛있죠.
    아아..부럽습니다들..ㅜ,.ㅜ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10.21 00:13 신고 수정/삭제

      ^^ 마음 뿐이지만, 나눠드리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