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를 3D로? 에이, 이건 아직 3D가 아니에요

부모님 댁 TV를 바꾸면서 TV를 새로 바꿀 생각을 하는 나로서 3D TV에 관심 없을 수가 없다. 오죽하면 지난 번 LG전자 3D TV 발표회까지 다녀왔을까. TV란 것이 어차피 한 번 사면 십 년 이상을 봐야 하는 것. 한 번 사면 오래 쓰는 이런 제품일수록 처음 살 때 조금 오버해서 사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한다는 경험을 몇 번 한 이후로 사실 예산을 좀 넘기는 하지만 어쨌든 구경하는데는 돈 드는 것 아니니까, 이것 저것 염두에 두고 열심히 살펴보는 중이다.

사실 극장에서 아바타와 앨리스를 본 것 외에 별다른 3D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3D TV를 고르는 구입 기준이란게 있을 턱이 없다. 일단 잘 아는 브랜드여야한다는 거, 디자인이 예뻤으면 좋겠고, 기능도 많았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화질이 좋아야지 라는 생각 정도였다. 그러면서 하나씩 정보를 모으다 보니 3D TV를 제대로 보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당연히 3D TV가 있어야 하고, 3D TV를 보는 안경이 있어야 하고, 3D 전용으로 만든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안경이야 TV 살 때 따라오는 거니 별로 고민할 건 아닌데 문제는 3D 콘텐츠다. 3D 전용으로 만든 콘텐츠라야 3D로 볼 수 있다니, 기술자적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좀 황당하다. 아니, 3D로 볼게 별로 없는데 3D TV를 파는 건 또 뭐여? 라고 생각했지만 앞으로 월드컵 같은 스포츠도 3D로 나오고 아바타, 앨리스는 물론 타이탄 같은 영화들도 계속 나온다 하니 부족할 건 없겠다 싶었다. 그러다가 문득 본 삼성 3D TV 광고. 헐, 2D를 3D로 바꿔주는 기술이 들어 있단다. 드라마도, 영화도 죄다 3D로 바꿔 준다니. 그럼 뭐 새로 콘텐츠를 고민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거 이거, 딱 마음에 들겠다 싶어 어디 가서 한 번 봤으면 했는데 어디 딱히 볼만한 데가 별로 없었다. 백화점 매장에 가서 잠깐 보는 건 너무 겉핥기 식이고, 사방에 소문을 하다가 마침 잘 아는 어떤 선배네 회사에서 3D TV를 업무 관련차 구입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오홋, 그거 좀 구경 가도 되요? 그렇게 2D를 3D로 바꿔준다는 삼성 TV를 구경하게 됐다.

요즘 나오는 TV들, 다 예쁘다. 개인적으론 LG에서 나온 인피니아가 테두리도 얇고 더 쌔근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뭐, 얘는 2D를 3D로 바꿔준다니깐! 다른 건 다 됐고, 3D 먼저 보자고요, 선배를 졸라 TV를 켜고 리모콘을 눌러 3D 모드로 변경했다. 화면이 어두워지고 화면과 글자가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어떨 땐 똑똑히 보이다가 다시 흐려지기를 반복.

안경을 쓸 차례다. 안경 옆에 있는 전원 스위치를 누르니 안경 렌즈가 색이 변하면서 켜진 걸 알 수 있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안경을 쓰고 TV 감상 시작! 그런데 어랏? 순간 이거 3D 맞아? 하는 느낌이 들었다.

때마침 TV에서 하던 프로그램은 일반 드라마. 사실 3D 느낌이 날만한 콘텐츠는 아닐게다. 다시 유심히 보니 조금씩 눈이 안경에 익숙해지면서 입체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람의 얼굴 부위는 튀어 나오고 배경은 뒤쪽에 깔리는 듯 말이다. 채널을 돌려 예능 프로그램을 찾았다. 채널을 돌리니 3D 기능이 풀려 다시 설정해야 한다는 점은 좀 불편. 화면에 나오는 자막 같은 것이 좀 떠 보이면서 입체감이 조금씩 살아났다.

그런데 3D 입체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크게 다르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스포츠 프로그램이라면 좀 다를까 싶어서 채널을 옮겼는데 이 역시 별 차이가 없다는. 앨리스 같은 영화에서처럼 공이 화면 앞으로 튀어나오는 정도까지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이런 정도의 3D를 감상하기 위해 굳이 불편하게 안경을 끼고 TV를 봐야 할 것인지가 의문스러웠다. 입체감을 10까지 조절할 수 있어서 올려봤으나 별 차이 없다는 느낌. 기본 입체감은 5였다.


게다가 3D가 좀 이상한 부분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사람의 얼굴이 살짝 찌그러진다고 해야 할까, 튀어나올 부분과 튀어나오지 말아야 할 부분이 막 섞여 있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특히 자막 같은 걸 읽다 보면 울퉁불퉁한 부분이 확실히 생겼다. 그러다 보니 속칭, 핀이 나가는 현상이 군데 군데 있다. 같은 자막에서도 한쪽은 초점이 안 맞고, 또 다른 한 부분은 초점이 맞는 현상이 생기는 거다. 이걸 사진으로 찍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카메라엔 3D 안경을 씌울 수 없으니깐!) 일단 맨 화면을 찍어 봤다. 안경으로 보지 않아 3D 느낌은 나지 않지만 같은 자막 레벨에서 일부는 또렷하고 일부는 중첩되는 현상이 보인다. 이걸 안경을 쓰고 보면 같은 레벨인데도 울퉁불퉁한 느낌이 난다.


사진 같은 경우에도 왜곡 현상이 꽤 발생한다. 특히 컬러가 복잡하고 화려한 사진일수록 왜곡이 심해 들어갈 곳과 나올 곳이 뒤집히는 현상도 있었다.

솔직히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고 해야 할까. 2D를 3D로 변환하는 기능이 왜 필요한지 의문이 생겼다. 물론 약간의 입체감이 생기긴 하겠지만, 그 정도 입체감을 위해 불편한 안경을 쓰고, 약간의 어지럼증을 감수하면서까지 TV를 볼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때로 화면이 왜곡되는 부분도 있고. 이게 무슨 3D야? 하는 생각까지 든다.

한 회사가 시작했으니 언젠가는 2D를 3D로 변환하는 기능이 모든 3D TV에는 들어갈 거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 때가 몇 년 후가 될지, 몇 개월 후가 될지 나는 알 수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수준은 아니다. 3D TV를 살 때 2D에서 3D로 변환하는 기능은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없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여기에 이런 생각 하나를 보태고 싶다. 기업은 세계 최초라는 말을 좋아하고 그 말을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할게다. 하지만, 그 타이틀을 얻으려고 제대로 완성되지도 않은 기능을 억지로 출시하는 건 옳지 않다. 그 기능을 선전하는 말에 현혹되어 제품을 산 소비자는 그저 기업의 모르모트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제품을 산 소비자는 그 만큼 애정이 많다는 뜻이다. 그 애정을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곘다. 삼성의 2D를 3D로 변환해주는 기능을 보며, 왠지 씁쓸한 생각이 드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 FIN


  • Favicon of http://redmato2.tistory.com BlogIcon 모노마토 2010.04.07 09:0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혹시나 하고 봤는데 역시나군요..
    지성박.....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군요 ㅠㅠ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4.08 09:11 신고 수정/삭제

      지성이 엉아가 뭔 책임이 있겠노~ ^^

  • Favicon of http://cafe.naver.com/3dtv100 BlogIcon 김호두 2010.04.07 14:1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레이님의 솔직하고 예리한 글이 맘에 콱 와닿습니다.
    제가 이쪽에 전문가이다보니 일반소비자는 삼성입체티뷔의 컨버팅 기능을 어떻게
    판단할까 궁금하던차 이런 귀중한 정보를 보게되네요.
    꼼꼼한 관찰, 날카로운 지적에 혀를 내두를 지경입니다. 링크 걸게요~.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제 카페에 함 놀러오셔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10.04.08 09:12 신고 수정/삭제

      아이고, 소비자 입장에서 별다른 지식 없이 쓴 글인데 잘 봐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카페에도 놀러갔더랍니다. 좋은 카페 운영하시더라고요 ^^

      고맙습니다!

  • 고구마 2010.04.11 06:0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2D에서 3D 자동변환이라.. 말이 안되죠.
    수동변환했다는 타이탄도 별루더군요.
    낚시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