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Calvet Bordeaux Reserve 2003

[와인 생초보의 와인 맛 기억하기]
칼베 보르도 리저브 2003 / Calvet Bordeaux Reserve 2003

와인 맛을 설명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저마다 특징이 있고 또 작고 오묘한 차이가 있는데 그걸 일일이 표현하기에는 내가 알고 있는 우리 말이 너무 적고, 내 상상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를 그린 작가는 참 대단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만화 작가들이란 상상력을 바탕으로 먹고 사는 분들이니 ^^ 그 세계에선 당연한 일이라 생각들기도 하지만.

만화 때문인지, 아니면 와인 세게에선 원래 그런지 몰라도 와인 맛을 표현하려면 별 희한한 얘기를 해야 되는 것일까. 일전에 어떤 TV 프로그램에 나온 소믈리에가 와인 맛을 표현했다는 한 문구를 보고 난 그야 말로 쓰러지는 줄 알았다. 적어도 어떤 맛을 표현했다면 사람들이 그걸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써야 한다. 어설픈 따라하긴지, 원래 그 바닥이 그런 건지, 알 수 있을 일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어쨌든 그래서 와인 맛을 표현하려면 나도 나름대로 고심해야만 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맛일까. 뭐라고 표현하면 내가 나중에 다시 읽어도 그 맛을 연상할 수 있을까. 머리 속 상상은 하지만, 역시 표현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혼자 좌절하고 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번에 마신 와인은 프랑스 보르도 와인이다. 2003년산, 깔베 보르도 리저브. 레드 와인으로 코스트코에서 1만4천원 정도 주고 샀다. 사실 코스트코에서 1만4천원이면 막 싼 와인은 아니다. 1만원 이하 와인들도 꽤 많기 때문이고, 다른 샵에서 사려면 적게는 3천원에서 많게는 5-6천원까지 차이가 나기도 한다.

수입사 홈페이지에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메를로 70%, 까베르네 소비뇽 30%를 섞어 만든 와인이란다. 스위트하기 보다는 드라이한쪽에 가깝고, 풀 바디라 하니 입안에 넣었을 때 묵직한 느낌이 난다는 뜻일게다. 실크처럼 부드러운 탄닌이 형성하는 유연한 미감이 돋보이는 풀 바디 와인이라는데 참 광고 문구란게 희한하다. 이렇게 뱅글 뱅글 꼬아 놓으면 뭔가 그럴 듯해 보이니 말이다.
 
코르크를 열고 - 뻥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 기분이 좋았다 - 향을 맡으니 그렇게 강하지 않은 와인 특유의 향 끝 무렵에 알콜 냄새가 묻어난다. 다시 확인한 알콜 도수는 12%. 와인잔 반을 채웠지만 바닥이 살짝 비춰 보일 정도로 색깔은 맑다.

어쨌든, 첫 잔을 들어 입에 넣으니 약간 밍밍한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 먹어 본 와인 중에서 이런 느낌은 처음인 듯. 다른 와인들은 새콤한 맛 그리고 알콜의 쌉살한 맛에 달콤함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는데 이 와인은 달콤한 맛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게 와인을 계속 입에 물고 있었더니, 입안이 계속 텁텁해진다, 텁텁해진다.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았다가 와인을 넘긴다. 텁텁한 입안을 치즈로 달래고 다시 느낌을 생각해보니, 참 희한하다는 생각이 든다. 단 맛도 없고, 신 맛도 강하지 않고 약간 밍밍한 느낌에 물고 있으면 텁텁해지는 와인이라.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마셔 본 와인 중에 제일 맛없는 와인이다.

결국 한 병을 다 마시지 못하고(!) 코르크를 덮어 다시 넣어두었다. 물론 와인 한 병을 혼자 다 마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어쨌든 치즈와 감자칩을 안주 삼아 먹기엔 너무 부담스러운데다가 텁텁한 맛 끝에 묻어나는 매콤함(이걸 흔히 후추맛, 혹은 스파이시 하다고 표현하는가 보다)이 그렇게 기분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였다.

와인은 공기 중에 노출 시키면 공기와 결합되면서 - 와인이 열리면서 - 부드러워 진다고 한다. 그래서 와인을 잔에 넣고 빙글 빙글 돌리기도 한다. 실제로 나도 그렇게 와인을 돌린 후에 와인 맛이 부드러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 와인도 그렇게 한 번 해보기로 했다.

거 참 희한한 일이다. 선입견 때문일까 아니면 이 와인이 충분히 공기에 노출되어 그런 것일까. 입에 들어갈 때 시큼한 맛도 살짝 덜하고, 머금고 있을 때 께속 텁텁해지는 맛도 한결 줄어 들었다. 처음 맛이 지나치게 텁텁했다면 두 번째는 그런 부분이 많이 줄어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달콤한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 아무래도 다음 번에 이 와인을 선택할 일은 없을 듯. 하긴, 이 녀석 말고도 줄 서 있는 와인이 많이 있으니 굳이 맛 없다고 생각한 녀석을 고집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 FIN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7.06.04 17:2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역시 와인의 길은 멀고도 험하군...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06.04 17:36 신고 수정/삭제

      뭐, 고민할 것 없이 이것 저것 마시면서 즐기면 되겠지요? ^^

  • Favicon of http://blog.empas.com/diabloti BlogIcon 정현아범 2007.06.05 14:5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미국도 와인문화를 받아들인지 얼마 안되어서..
    미국 할인점이나 슈퍼마켓 와인코너에 가보면..
    쬐끄만 핸드북 같은 걸로 '비즈니스 와인 입문' 이런 책들이 참 많더군요..

    저는 공부 좀 해보려다 머리 아파서..
    기냥 쏘주처럼 마시기로 했음다..
    마셔보고 맘에 드는 걸로만..

    식당가도 참이슬만 시키자너요..ㅋㅋ

  • Favicon of http://pjk7260.tistory.com/ BlogIcon 발자국 2008.12.13 22:4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마셔 본 와인 중에 제일 맛없는 와인이다... ㅋㅋ
    아주 진솔한 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