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고도를 기다리며

대학 때부터 몇 번이고 읽고 싶었던 작품. 그러나 아직까지 진중하게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작품. 올해 세계문학전집을 읽어야 겠다고 마음 먹은 후 가장 먼저 찾았던 작품. '고도를 기다리며'는 내게 그런 작품이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는다고 했더니 우리 사무실의 영문학도 출신 두 명이 이내 아는 체를 한다. 어랏? 이건 프랑스어 작품인데 영문학과 출신이 이걸 어찌 알어? 이런 대답이 나온 건 내 지독한 편견 때문일 게다. 다 알다시피 '고도'는 프랑스식 이름이다. 게다가 이 책의 원어 제목은 En attendant Godot다. 그러니 나는 이게 당연히 프랑스 문학 작품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영문학도 출신 중 한 명인 사장님 왈, 니네 과에서 그거 배워? 우린 연극도 해. 헐. 까먹었는 지도 모르겠지만, 수업시간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배운 적이 없었다. 그리고 불문과에서는 연극을 해도 몰리에르, 라신느 등등을 하지 부조리극을 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작가 이름은 사무엘 베케트 아닌가? 프랑스 식이었다면 '사뮈엘 베께'라고 불렀을 지도 모를 일이다.

사무엘 베케트는 아일랜드 사람이다. 프랑스어에 능숙해 영어와 프랑스어로 번갈아 가며 작품을 냈고 심지어는 영어로 쓰고 프랑스어로 번역하거나, 그 반대의 번역도 꽤 했다고 한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프랑스어로 먼저 썼고 나중에 영어로 번역했다. 그러니 사무엘 베케트에 대해 진중하게 공부를 한 적이 없는 나로서는, '고도를 기다리며'가 프랑스 문학이라는 지독한 편견에 빠져버리게 된 것이었다. 뭐, 결과적으론 내 잘못이지만.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고도를 기다리며'는 참 어려운 책이었다. 두께로 따지면 하루면 충분히 읽어낼 책을 거의 1주일은 붙들고 있었다. 진도도 안 나가고, 생각도 많이 하게 만드는 책이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라는 사람을 기다리며 얘기하고, 싸우고, 때론 침묵한다. 우리 여기서 뭐하는 거지? 이제 그만 갈까? 아니 고도를 기다려야 하잖아. 어떤 행위가 끝나는 지점에서 두 사람은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현실을 뇌까리며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살면서, 이런 행위들을 나는 얼마나 많이 반복하는가.

삶은 참 부조리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주장했다. 심지어 부조리 자체도 부조리하다고 말했다. 넘쳐나는 부조리 속에서 살며 사람들은, 나는 심지어 부조리란 무얼 가리키는지 잊고 말았다. 무엇을 부조리하다고 말하는가? 인생이 이미 넘치도록 부조리해졌는 걸.

번역하신 분의 작품 해설에 따르면 고도가 누구냐?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단다. 하긴 지금까지도 고도가 누구인지에 대해 논문을 쓰시는 분들이 있으니 고도를 기다리며에 열광했던 사람들에게는 고도가 누구인지 당연히 관심이 있었을 게다. 그런데 작가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단다. '고도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거기 썼을 것'이라고 작가가 대답했단다. 그러니 결국 고도는 아무도 몰라, 며느리도 몰라가 된 셈이다.

살다 보면, 때론 기다림에 목표를 두는 것도 한 방법일게다. 그러나 정작 고도를 만나고 난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우리는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 법이다. 내 삶에 고도는 누구, 혹은 무엇일까. 난 누굴, 무엇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저 책을 좋아하는 독자일 뿐이고, 누군가의 책에 대해 비평인 리뷰를 할 형편은 되지 못한다. 게다가 명작에 대해서라면 더더 그렇다. 따라서 독서일기에 쓰는 글들은, 이름 그대로 일기이고, 철저하게 개인적인 소감일 뿐이라는 걸 밝힌다.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9.03.05 10:1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이게 원래 부조리해서.. 기다리지만.. 막상 아무도 오지 않으니.. 그게 결국 아무것도 기다린 것이 아닌게 되고.. 최종적으로는 기다린 것도 기다리지 않은 것도 아닌게 되는거지.. ㅜ.ㅜ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05 13:36 신고 수정/삭제

      흐음... 그니까 결국 기다리긴 했는데 아무도 안 와서... 뭐이가 우짠거에요.. ㅋㅋ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09.03.05 11:0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출신학과와 관련한 결정적 오타가 있습니다..
    잘 찾아보삼..^^

    신입생 때 연극동아리 공연 보면서..
    "도대체 고도는 언제 나오는거냐" 했던 기억이..ㅋㅋ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05 13:36 신고 수정/삭제

      머여. 빨리 신고하셔! ㅋ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09.03.05 18:13 신고 수정/삭제

      제가 잘못 봤네요..ㅡㅡ;
      쏘리볼임다..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3.06 09:35 신고 수정/삭제

      흐음, 그럼 짧은 시간 날 고민하게 만든 죄를 어찌 감당하실껴?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