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닥터루젠 리슬링 2006

와인을 사러 갔을 때 제일 당혹스런 경우는, 딱 한 가지 와인을 사야겠다고 마음 먹고 갔는데 그 와인이 없을 때다. 와인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잘 모르는 경우에는 이미 마음에 찍어둔 것 외에 다른 것을 사기가 쉽지 않고, 또 그렇게 샀다고 해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내 머리 속엔 미리 점찍어둔 와인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으니 그 대타로 들어온 와인에 대해서는 어지간해서는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디 와인 뿐이랴. 물건을 사야 하는 대부분의 경우가 이럴 것이다.

2007/12/23 - [행복한 음식 얘기] - [와인] 크리스마스에 꼭 추천하고픈 '콜롬비아 크레스트 리슬링'

크리스마스에 마시면 정말 좋은 와인이라고 겁없이(!) 콜롬비아 크레스트 리슬링을 추천해 놨으니 나는 이번 크리스마스에 그 와인을 마셔야만 했다. 적어도 그래야 글 쓴 책임 정도는 면할 수 있지 않을까 ^^. 코스트코에 가면 그 와인을 파는 걸 확실히 알고 있었지만, 거리가 미어터지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차를 몰고 코스트코까지 간다는 건 어지간한 용기가 필요하거나, 아무 생각이 없거나, 정말 절박해서일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닌 나는 그나큰 와인 샵이 주변에 몇 개 있으므로 구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을 거라는 방심을 하고 말았다. 저녁 무렵 느즈막히 와인샵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오피스텔 지하에 있는 작은 와인샵, 기대도 안했으니 없다고 해도 별 실망도 없었다. 옆으로 넘어가 롯데마트 안에 있는 와인 매장. 이것 저것 와인은 많은데 내가 찾는 건 없었고 찾기도 쉽지 않았다. 포기하고 롯데백화점 지하 1층에 있는 와인샵으로 갔다. 콜롬비아 크레스트라는 회사 이름만 꺼냈는데 취급하지 않는단다. 이제 남은 건 건너편 롯데캐슬 1층에 있는 레벵. 매일유업에서 하는 이 샵에는 비교적 많은 와인이 있어서 별로 걱정하지 않고 찾아갔다. 그러나 거기에도 이 와인은 없었다. 콜롬비아 크레스트가 있긴 한데 메를로만 있단다.

더 돌아다닐 시간 여유도 없고 해서 비슷한 와인을 골라 달라고 했다. 콜롬비아 크레스트 리슬링은 마셔본 적이 없다는 직원에게 나름대로 충분히 설명했다. '달아요, 달고 부드럽습니다. 향기는 단데 첫 맛은 그리 달지 않고, 나중에 올라오는 느낌이 또 달아요. 가족들하고 마실 거니까, 드라이한 것 말고 스위트한 걸로, 단 걸로 주세요'라고 나는 열심히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잘 알았다는 듯이 매장에 있는 분은 굳이 미국 와인이 아니어도 괜찮다면 독일 와인이 어떠냐면서 골라준 것이 바로 오늘 애기할 이 녀석, 닥터루젠 리슬링 Dr. Loosen Riesling 200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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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참 잘 빠졌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충분히 설명했으니 단 맛도 어느 정도 보장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크리스마스 저녁, 이 녀석을 땄다. 잘 생긴 코르크가 매끄럽게 빠져 나오는 느낌이 좋았고, '뻥'하는 소리도 경쾌했다. 금빛이 은은하게 도는 와인을 잔에 가득 따르고 급한 마음에 향부터 들이켰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이건 내가 애당초 기대했던 향이 아니다. 한 모금 입에 넣으니 살짝 탄산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레드 와인에 비하면 확실히 달지만 그렇다고 내가 원했던 그런 달콤한 맛도 아닌, 흔히 말하는 드라이한 느낌이 다가왔다. 어랏? 내가 요구했던 건 이게 아닌데...

일단 이게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드니, 닥터루젠의 본 맛을 깨닫기도 전에 마음 속에서 불평이 올라왔다. 콜롬비아 크레스트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술을 잘 못하는 가족들을 위한 나름대로의 배려, 이런 것들 때문에 달콤한 와인을 찾았는데 달콤하다기 보다는 달콤 쌉싸름이라고 해야 할까. 하긴 와인에서 그 쌉싸름한 맛을 빼버린다면 그게 주스지 와인일까 싶기도 하지만, 왠지 미련을 버릴 수는 없었다.

단순히 와인을 추천받는 것과, 내가 마음에 둔 와인이 없어 대타로 다른 것을 추천받는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라는 걸 알았다. '맛'이라는 것이 주관적인 것일진대, 나의 경험과 인상을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그로부터 비슷한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또 하나를 배웠다. 내가 기대했던 와인이 없으면, 그 와인과 전혀 다른, 그런 와인에 도전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옛 와인에 대해 미련을 덜 갖고, 새 와인에 대한 선입견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긴, 어찌 생각하면 와인만 그럴 것인가. 우리네 삶도 다 그런 것은 아닐까.

닥터루젠 리슬링 / 8.5도 / 2만6천원 / 보통의 달콤함과 쌉싸름함, 약간은 모자란 알콜 도수 / 샵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브랜드라고 추천해 줌

  • 진주애비 2007.12.26 22:2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달라도 너무 다른 개인의 입맛을 맞추기는 퍽 힘듭니다
    가장 대중적인 맛을 권해드리면 그나마 실패는 없을거라 생각했지만
    간혹 당혹스런 반응을 보이는 소비자를 만나면 정말 난감하지요
    레이님의 오묘한 느낌의 표현을 얻어낸 콜롬비아 크레스트 리슬링(^^::)이란 와인을
    꼭 한번 맛보고 싶다는...^^

  • Favicon of http://www.rabbicat.kr BlogIcon 토양이 2007.12.26 23:0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약간은 모자란 알콜 도수"라는 표현이 참, 가슴에 와 닿는 거 있죠. ㅋㅋ

  • Favicon of http://blog.empas.com/diabloti BlogIcon 정현아범 2007.12.30 08:1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어제 파찌아빠네는 못 갔구요..ㅋ
    대신 장보러 갔다가 알렉스 엉아 만났네요..
    초창기 멤버끼리 1월에 파찌아빠네서 함 보자고 하더만요..
    연초 정신없는 거 좀 지나면 함 보시죠..^^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12.30 14:02 신고 수정/삭제

      아니 장을 어디서 보길래 알렉스를 다 만났다니 ㅋㅋㅋ 연초에 우리 멤버들끼리 같이 한 번 가자고.. ^^ 안 그래도 파찌형님하고 통화는 함 했다이... ㅋㅋ

[와인] 크리스마스에 꼭 추천하고픈 '콜롬비아 크레스트 리슬링'

와인을 잘 마시지 않는 사람들도 크리스마스라면 와인 한 번 마셔볼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겁니다. 예수님 생일과 와인이 도대체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 어쨌든 모든 사람이 로맨틱해지는 그런 날이니까, 와인 한 잔 떠올리는 게 그리 큰 잘못은 아니겠죠.

올 한 해 저는 대략 서른 병 정도의 와인을 마신 듯 싶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와인은 쳐다보지도 않다가 발효식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자연스레 와인을 접하게 됐죠. 그러니까 저는 절대로 와인에 있어서는 고수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고수 입장에서 이 글을 보시면 좀 웃기겠지만, 와인을 잘 모르시거나 처음 접하시는 분들에게는 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감히 한 번 권해 봅니다.

와인을 잘 아는 사람들은 와인을 처음 시작할 때 화이트 와인부터 마시라고 하던데, 굳이 그런 방법 때문은 아니었지만 올해는 화이트 와인을 주로 마셨습니다. 주로 샤블리를 즐겨 마셨고요, 소비뇽 블랑이나 진판델도 경험했었지요. 제가 비록 단 것을 싫어한다고는 해도 텁텁하고 묵직한 레드 와인 보다는 부드럽고 달콤한 화이트 와인이 훨씬 마시기 좋았습니다.

한 해 동안 겨우 서른 병 정도의 와인을 마셨지만, 그런 제가 감히 크리스마스를 맞아 와인을 하나 골라 본다면 당연히 저는 콜롬비아 크레스트의 리슬링(Columbia Crest Riesling)을 고르겠습니다. 굳이 크리스마스가 아니고 올 한 해 마신 와인 중에서 가장 좋았던 와인을 꼽으라고 해도 저는 이 녀석을 고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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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크레스트 리슬링 2006년산은 여느 화이트 와인처럼 향기가 그만입니다. 달콤한 향기를 맡고 있노라면 저도 모르게 잔을 입에 가져가게 되지요. 그리고 향기만큼 달콤하지 않다는 사실에 약간 의아해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의아함도 잠시, 잔을 내려놓고 잠시 후 입 안에서 되살아나는 달콤함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맛을 음미합니다.

부드럽고 달콤한 까닭에 저처럼 와인을 처음 마시는 사람들도 부담없이 마실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남자 분들도 그렇지만 여자 분들 드시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와인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크리스마스처럼 누구나 한 번 쯤 달콤한 분위기를 내기엔 아주 그만인 그런 와인입니다. 감히 비교를 한다면 소위 작업용 와인이라고 남들이 부르는 - 도대체 와인을 마시고 무슨 작업을 한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 - 빌라엠 모스카토보다는 열 배는 더 괜찮은 와인입니다. 값도 싸고요.

코스트코에서 1만2천원 정도에 구입했습니다. 알콜 도수가ㅏ 4도에서 5도 정도 하는 술 같지도 않은(!) 빌라엠이 2만 2천원 정도이니 그보다는 훨씬 저렴하죠(빌라엠은 할인마트에서도 2만5천원 선에서 파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다른 와인 샵에서는 이거 보다는 조금 비쌀 듯 하네요. 이 녀석 말고 또 저를 감동시킨 뉴질랜드 산 빌라마리아 소비뇽 블랑도 코스트코에서는 2만2천원 정도 하던데, 잠실에 있는 한 와인 샵에서 2만8천원을 줬으니, 약간 가격 차이는 있을 듯 합니다.

제목을 크리스마스라고 달았지만, 굳이 크리스마스가 아니면 또 어떻겠습니까. 누군가의 사랑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따스하고 푸근한 또 그 어떤 자리에서 가볍게 와인 한 잔 생각난다면, 콜롬비아 크레스트 리슬링 2006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감히 추천해 봅니다. /  FIN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7.12.24 00:3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맞삼.. 달콤함..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12.24 09:13 신고 수정/삭제

      ㅋㅋ 올해가 가기 전에 한 두어병 더 먹을 수 있을까요?

  • Favicon of http://blog.empas.com/diabloti BlogIcon 정현아범 2007.12.24 05:1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그럼 이거 갖구 오심 되겠네요..
    12월29일7시에 가산동 모 막회집 송년회 있답니다..
    야매님 블로그 참조..ㅎㅎ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12.24 09:13 신고 수정/삭제

      그 자리에 우리가 껴도 되는겨? 29일은 시간이 좀 요상스럽다이~ ㅋㅋ

  • 진주애비 2007.12.24 08:31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좋은 와인과 함께 메리크리스마스하세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12.24 09:14 신고 수정/삭제

      진주아빠님 성탄절에 대박 나세요~ ^^

  • Favicon of http://happicialist.tistory.com BlogIcon Energizer Jinmi 2007.12.24 10:2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좋은 정보 감사해요^^
    담에 기회내서 마셔볼께요~~

  • 토양이 2007.12.24 13:33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대낮부터 와인 땡기네요-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12.24 14:02 신고 수정/삭제

      원래 술이란 시도 때도 없이 땡기는 거에요...

  • Favicon of http://www.kimdahee.com BlogIcon 다희 2007.12.25 23:0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전 오늘 무통 카데와 블루넌 마셨는데-ㅎㅎ 추천해주신 것도 마셔봐야겠어요^_^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7.12.26 01:36 신고 수정/삭제

      좋은 거 드셨는데요? ^^ 그나저나 이 넘을 열나 추천해 놨더니, 코스트코 말고는 파는 데가 그리 많지 않은 듯. 잠실 근처 와인샵 네 군데를 다녔는데도 없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