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양양을 보내며

아저씨 둘만 있던 사무실에, 야리야리하고(!) 이쁜 처자가 출근하고 싶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사실 기대 반 걱정 반이었습니다. 회사는 그 때까지 걸어왔던 긴 터널에서 막 빠져 나오려던 순간이었고, 한 단계 도약을 위해 누군가 같이 할 사람이 필요할 때였지요. 전 직원이 두 명인 회사에서 사람 뽑기란 정말 쉽지 않습니다. 회사의 규모만 보고, 이 회사 월급이나 잘 나오겠어 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태반일테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토양양이 출근하겠다고 했을 때, 걱정 반 기대 반은 당연한 일일 겁니다. 어쩌면 걱정이 더 앞섰을 지도 모릅니다. 잘 적응이나 할까, 아저씨 둘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잘못하다간 예민한 마음에 상처나 받고 나가지는 않을까… 별 쓸데 없는 걱정이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처음엔, 좀 그랬습니다.

위기도 있었지만(위기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습니다!ㅋ), 토양양은 잘 적응했고, 기대했던 것 이상의 일을 해냈습니다. 글이야 원래 잘 쓰는 거 알고 있었고, 클라이언트 관리도 별 문제 없이 잘 해나갔습니다. 회사도 오랜 시간의 기다림을 거쳐 순풍을 만난 듯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일의 분량은 점점 많아지고, 강도도 세졌고, 일의 수준도 달라졌지만, 여전히 토양양은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해 냈습니다.

가끔은 그 나이 또래의 다른 여성들처럼, 삶의 무게에 힘들어 했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지쳐하기도 했습니다. 지친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기도 하고, 때론 농담도 건네고, 때론 달래면서 작은 몸집에 참 많은 걸 안고 살아간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뭐, 누구나 짊어질 수 있을 만큼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는 법. 이럴 땐 작은 회사가 좋은 점도 있습니다. 아마도 회사가, 아저씨 둘이, 그녀에게 조금은 도움이 되었으리라, 그저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고 사람도 늘고 일의 규모도 커졌습니다. 다 같이 노력한 결과 예상했던 것보다 보수도 올랐고 상여도 줄 수 있었습니다. 마냥 어린 줄 알았던 토양양도 발이 넓어져서 글을 쓰는 것은 물론 몇 개의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이끌어 갔습니다. 그렇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 가끔은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욕심도 생겼습니다. 이런 저런 번역까지 하고, 독립을 하고, 살아가는 모습도 조금씩 달라지는 토양양을 볼 때, 모든 점이 다 마음에 든다고 할 수는 없곘으나(! ^^), 꽤 기특했던 건 틀림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토양양이 이제 회사를 떠났습니다. 처음 떠나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먹먹했습니다. 백년 만년 같이 있지는 않아도, 적어도 우리 회사에서 내 손으로 시집은 보내겠거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떠나고 싶다니까 딱히 할 말을 못 찾겠더군요. 그리고 한 달. 시간은, 정말 살처럼 흘렀습니다.


오늘 토양양을 보냈습니다. 환영회는 두 명이 해주었지만, 다행스럽게도 환송회는 여덟 명이 해주었습니다. 나중에 온 소님들까지 하면 열 한명. 많은 사람들이 함께 환송할 수 있어서, 그저 기뻤습니다. 원래는 인사불성 되기 전까지 먹어보자는 분위기였지만, 나중에 오신 손님들도 있고, 시간도 이미 늦었고, 그래도 뭐 비교적 멀쩡한 정신에 먼저 보냈습니다. 잘 가란 말을 하고 - 웃으면서 보낼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던지 - 책상에 돌아 오니, 그녀가 놓고 간 출입 카드가 보였습니다. 아, 그래, 정말 갔구나… 살짝 울컥하는 마음이 쏟아질 뻔 했습니다. 마음을 감추려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떨었습니다.

이 좁은 땅 덩어리에서 헤어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겠냐고 스스로를 달랩니다. 그저 할 말이 없어 어떤 일을 하든, 그녀의 앞 길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빌어 봅니다. 살다가 힘들 때, 그저 누구에게 수다라도 떨고 싶을 때 회사를 찾아주길 바랍니다. 우리가 회사라는 이름으로 만났지만, 같이 밥을 먹었던 식구였음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003이 우리 회사의 영원한 결번이듯, 언제나 자리가 비어 있음도 잊지 않길 바랍니다. 미처 못한 한 마디도 보태야겠습니다. 그 동안 수고했다고, 고생했다고, 고맙다고 말입니다. / FIN

  • Favicon of http://krlai.com BlogIcon 시앙라이 2009.09.19 02:0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이포스팅을 보니 불청객이 들어닥쳐 죄송스럽네요.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9.19 05:55 신고 수정/삭제

      에이고 별 말씀을.
      보낼 때 사람이 많아서 좋았다니께 ㅋ

  • Favicon of http://www.zoominsky.com/ BlogIcon 짠이아빠 2009.09.19 09:2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내맘도 이맘이여.. ^^ 아침에 이 글을 봐서 다행임..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9.19 10:14 신고 수정/삭제

      밤에 보셨으면 우짜실라고요 ㅋㅋ

  • Favicon of http://no1salaryman.tistory.com BlogIcon 정현아범 2009.09.20 05:52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결국 003호로서는 못 뵈었군요..ㅡㅡ;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9.19 10:14 신고 수정/삭제

      003은... 언젠가 또 다른 모습으로
      만날지도 모르지~

      (글타고 003이 뭐 변신의 귀재란 말은 아니지만ㅋ)

  • Favicon of http://realfactory.net BlogIcon 이승환 2009.09.20 11:1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아, 아름다운 글입니다. 그 날 감사했습니다 ㅠㅠ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09.20 11:43 신고 수정/삭제

      이 무슨 ^^

      그날 만나서 반가왔어요~ ^^

  • Favicon of http://wessay.tistory.com BlogIcon 위세이 2009.10.21 19:2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아.. 왜... 저는~ ㅠ.ㅠ

  • Favicon of http://greendayslog.tistory.com BlogIcon 그린데이 2009.11.05 16:2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홍일점 토양양이 떠났군요... 저 출입카드가 정말 쓸쓸해 보이긴 하지만...
    이렇게 멋지게 보내주실 수 있는 분들과 함께 했다니 부럽기도 하네요. 선배의 마음이란
    그런걸까요? 요즘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데 읽다가 조금 울컥.
    (전 레이님 블로그에만 오면 계속 울컥 하는 듯. 오지 말까봐요.. --;;)

    • Favicon of http://raytopia.tistory.com BlogIcon '레이' 2009.11.06 09:32 신고 수정/삭제

      울컥닷컴으로 바꿀까요? ㅋ

      요즘 게을러서 업데이트를 자주 못해서
      뜨문 뜨문 와주셔도 정말 감사할 따름이지요 뭐~ ^^